태양의 여행자 - 손미나의 도쿄 에세이
손미나 지음 / 삼성출판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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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여행 에세이를 읽으면서 정확히 두 가지로 구분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게 맞는 것과 맞지 않는 것. 여행 속에 '인간'과 '사랑'이 내재되어 있는 수기가 있는가 하면, 맛집과 지리와 여행스킬 등을 부각하여 기술한 수기가 있다. 잘 다음어진 전자 형태의 여행수기는 활자 속에서 타지와 타인과 자아를 동시에 탐구하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에 즐겨 읽는다. 하지만 후자 형태의 수기는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여행이란 내가 있던 자리를 떠나 내가 있던 자리를 보는 것이다, 라고 고백한 어느 작가의 명문장에 완전히 동의하기 때문이다.  

  『스페인 너는 자유다』에 이어 두 번째로 출간한 『태양의 여행자』는 아나운서 손미나의 도쿄 에세이다. 그녀가 아나운서 생활을 마감하고 여행작가로서의 첫 작품이기에 많은 독자들에게 관심을 주고 있는 책이다. 아나운서로서의 뛰어난 미모는 물론, 해박한 지식과 격조 있는 말솜씨, 재치 있는 진행이 마음에 들어 평소 나는 작은 팬임을 자임해왔기에 그녀의 신간 소식은 솔깃함 그 자체였다. 

  사실 일본은 가까우면서도 멀게만 느껴지는 나라다. 지리적으로는 가장 가깝지만 정서와 문화, 역사의식에서는 머나먼 당신이다. 동아시아권, 비슷한 용모와 생김새, 한자 언어권, 파란만장한 현대사, 최초의 월드컵 공동 개최 등 많은 동질성에도 불구하고 일본에 대한 한국인들의 시선은 보편적으로 곱지 않음이 사실이다. 이렇게 가까우면서도 먼 나라인 일본의 심장 도쿄를 작가 손미나는 소박하고 담백하며 인간적인 언어로 담아내고 있다.  

  몇 가지 흥미있는 내용을 소개하자면,
일본인들의 우상이자 친구로 통하는 만화 캐릭터 '아톰'의 태동이 일본 최고의 명문 사학인 와세다 대학과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와세다 대학이 있는 '다카다노바바'라는 동네가 아톰의 고향이다. 아톰이 처음 등장한 원간지 《소년》  의 출판사가 다카다노바바에 있었고 만화 속에서 철완 아톰에게 가족을 만들어준 오차노미즈 박사가 일하던 과학성도 다카다노바바에 있다. 이러한 아톰의 태동적 지역성은 인근 지하철역에서 와세다 대학까지 가는 거리에 온갖 '아톰' 캐릭터로 도배가 되어 있는 풍경을 자아내기도 한다.  

  더욱이 125년 역사를 자랑하는 와세다 대학은 일본이 낳은 세계적 소설가인 무라카미 하루키를 배출한 대학이기도 하다. 평소 하루키에 심히 경도되어 있던 손미나는 여행을 할 때 그 나라의 명문 대학을 방문해보는 원칙을 일본에서는 와세다 대학을 통해 완성시킨다. 캠퍼스 내 소소한 풍경 속에서 책을 읽는 학생들이 의외로 많은 것을 관찰한다. 만화 왕국이 아니랄까봐 너도 나도 만화책을 읽고 있는 모습에서 웃음이 발산되고, 와세다 대학 중앙 도서관 입구를 장식하고 있는 라틴어 문구를 목도하는 장면에서는 한국에서 온 한 관광객의 마음을 압도한다.
'QUASE SIT SAPIENTIA DISCE LEGENDO
(진정한 학문의 의미를 알고 싶다면 인간은 독서를 해야 한다)'
   <P. 126>
 

  손미나의 여행코스 중 군침이 도는 곳이 한 곳 있다. 세계 4대 시장 중 하나이며 수산시장으로서는 세계 최대 규모인 츠키지 시장이다. 인간들의 복닥거림과 생선 비린내의 퓨전이 만들어내는 광경을 좋아하는 유별난 습성을 갖고 있는 나는 평소 노량진 수산시장과 부산 방문 시 자갈치 시장을 즐겨 찾곤 한다. 그렇기에 세계 최대 규모의 수산시장을 방문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가슴 두근거리는 일이다. 더욱이 오랜 전통과 숙달된 스킬을 통해 나오는 맛있는 해산물과 함께라면 더욱더 말이다. 

  일본 내에서의 한류 열풍에 대한 이야기도 매우 흥미롭다. 일부 주책 없는 아주머니들의 광적인 연예인 찬양이라고 우습게 바라보는 한국인들이 적지 않지만, 보다 본질적인 측면에서 한류의 열풍 속에 일본인들만의 고독이 함의되어 있다는 점에서 마음이 무거워진다.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원자폭탄 투하의 아픔을 겪은 일본인들은 전쟁 후 국가의 재건을 위해 오직 경제 발전에만 목숨을 걸고 너나 할 것 없이 돈 버는 일에만 매진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의 인심이 삭막해졌고 개인주의와 물질주의가 팽배한 일본사회를 만들었다. 소위 '정 없는 사회'로 대변되는 일본사회에 한국 드라마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한국 드라마 속에 살아있는 인간미와 따뜻함이 외로움이라는 트라우마에 갖혀 있는 일본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한국인은 일본인에 대해 갖고 있는 선입견이 하나 있다. 일본사람은 계산적이며 마음을 숨기는 성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손미나는 자신이 만난 일본인들과의 만남을 통해 이러한 통념을 전복한다. 그녀가 만난 사람들은 누구보다 정이 많은 사람이었고, 마음 열기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진실성이 충만하고, 순수한 사람들이었다. 마음을 열고 닫는 문제는 국민성이라는 이름하에 일반화해버릴 수 없는 것을 손미나 자신의 체험을 통하여 명징하게 증명하고 있다. 

  인제 갓 두 권을 출간한 초보 여행작가의 글이 이토록 즐겁고 훈훈하며 감동적이었던 것은 여행에 '인간'의 존재감이 오롯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있던 자리를 떠나 전혀 다른 인간을 만나고, 그 인간을 알고 느끼며, 타인이라는 거울을 통해 내가 있던 자리를 보는 것. 그것이 여행이 인간에게 선사하는 가장 본질적인 선물이요, 축복임을 재확인한다. 

  차후 손미나는 여행작가로서 또 다른 많은 활자들을 선보일 것이다. 그녀 특유의 사람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식지 않고 계속 유지되기를, 그리고 여행을 통하여 보다 객관적으로 자기 자신을 사유하며 탐구하는 통찰력 있는 작가가 되기를 작은 팬으로서 기대한다.
 

실천하기 전까지 꿈은 단지 꿈일 뿐이라는 중요한 진리를 새삼 가슴에 새기게 되었다. 나는 혹시 그동안 그런 꿈을 꾸면서 그 꿈으로 인해 스스로 만족하고 행복해지는 것만을 즐기고 있지는 않았나? 그것을 진정 현실로 이루어내어 나의 꿈이 다른 이의 희망이 되도록 하기 위해 나는 과연 정말로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가? 아무리 거창한 꿈을 꾼다 해도 그것이 그냥 꿈으로 끝나버린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p. 207> 

나는 내 삶에서 커다른 걸음을 내딛는 그 마지막 순간에 가장 아름답고 가장 여유 있고 싶다. 젊고 싱싱한 외모로 자극적인 설렘을 주기보다는 세월이 갈수록, 나이가 들 수록 그윽하고 성숙한 아름다움으로 다른 이의 영혼에 감동을 주는 여성이고 싶다. 그래서인지 내게 있어 나이를 먹는다는 것, 시간이 추억으로 새겨진다는 것은 젊음에 서서히 작별을 고하는 서글픈 변화가 아닌, 가장 아름다운 나 자신의 모습에 가까이 가는 기쁘고 설레는 여정이다. 인생이라는 긴 여행의 매순간을 즐길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p. 221> 

내가 만난 사람들, 그 사람들은 곧 거울에 반사된 나의 모습과도 같은 것 아닐까? 그들이 곧 나이고 내가 곧 그들이고, 서로의 모습 속에서 자기를 발견하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만남이고 인생이고 그런 것 아닐까? 여행은 언제나 낯선 환경 속에서 나의 진정한, 또는 숨겨져 있던 새로운 모습을 만나게 해준다. 도쿄에서 보낸 시간과 그 추억을 함께 만든 수많은 사람, 만남, 또 사건들은 모두가 나의 거울이었다.   <p. 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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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긍정 - NEVER SAY NEVER
김성환 지음 / 지식노마드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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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에는 부인할 수 없는 몇 가지 진리가 있다. 그 중 하나가 '긍정'의 삶이다. 인생을 긍정적으로 사는 사람과 부정적으로 사는 사람의 차이는 그 결과가 확연히 구분된다. 매사에 긍정적인 생각, 긍정적인 표정, 긍정적인 마인드로 일관하는 사람은 삶의 열매 또한 긍정적으로 맺힐 확률이 높다. 반면에 어두운 표정을 짓고, 안된다는 생각으로 일관하며, 가능성보다 불가능성을 우선하는 사람의 열매는 부정적으로 나타날 확률이 높다. 서른의 나이를 살아오면서 이러한 '긍정'의 진리를 나는 수없이 목도했다.

  8000만원 빚더미에서 7년 만에 연소득 밀리언 달러의 세일즈맨이 된 김성환이 밝히는 절대긍정의 정상 정복기, 라는 솔깃한 문구의 띠지를 두르고 있는 『절대 긍정 - Never say never』는 100명이 넘는 세일즈맨을 억대 연소득자로 키워낸 젊은 리더 김성환이 전하는 자전적 긍정 예찬론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하여 긍정의 절대적 힘을 자신의 성공사례에 투영시켜 언급하고 있다.  

  매번 매너리즘의 반복된 확인으로 자기계발서에 적잖은 거부감을 갖고 있는 내게 이 책이 신선하게 다가왔던 것은 주제에 대한 구체적인 해법과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사변적이지 않고 저자 자신이 몸소 경험한 사례들과 도전되는 예화들을 접목시켜 긍정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설파하기에 읽는 내내 좋은 느낌을 견지할 수 있었다.  

  마치 소설가 김훈의 문체를 연상시키듯이 짧고 강렬한 문장으로 시원스럽게 긍정 찬가를 역설한다. 저자는 기존의 일반적인 세일즈 통념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방법과 아이디어로 신감각적인 세일즈 기법을 계발한다. 그리고 주변에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확신과 열정을 갖고 추진하여 성공사례를 수없이 창조한다.  

  보통 고객은 '갑'이요, 세일즈맨은 '을'이 되는 것이 마케팅 세계의 일반공식이다. 하지만 저자는 철저히 갑의 세일즈를 주문하고 있다.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쪽이 갑, 이를 파는 쪽이 을일 때 을은 언제나 약자였고 갑은 상대적 강자였다. 하지만 을이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면, 파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뛰어나다면 갑이 먼저 찾게될 것이며 당당하게 갑의 세일즈가 실현될 수 있음을 저자는 역설한다. 수동적이고 피상적인 세일즈가 아닌 적극적이고 진취적이며 주도적인 세일즈를 주문하는 저자의 의견에 나는 온전히 동의한다. 

  더욱이 세일즈를 남녀 사이의 연애관계로 은유하여 표현한 대목은 흥미롭다. 저자는 에이전트를 뽑을 때 같은 조건이면 연애를 잘하는 사람을 우선적으로 뽑는 불문율을 갖고 있다. 세일즈 활동과 연애 행위가 가지는 동질성을 날카롭게 지적한 것이다. 모든 고객은 여자와 같다는 것이다. 수많은 일반고객들의 성향이 변덕이 심하고 요구하는 것이 많으며 쉽게 결단하지 못하는 생리를 갖고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연애를 잘 하는 사람이 세일즈에서도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저자의 논지는 수긍할 만하다.  

  저자가 좋아하는 '수처작주隨處作主 입처개진處皆眞'이라는 구절을 나도 매우 좋아한다. '가는 곳이 어디든 주인이 되어야 하고, 서 있는 자리가 어디든 진실되게 마음을 다해야 한다'는 뜻이다. 평생직장의 의미가 점점 사라지고 공동체보다 개인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부각되어만 가는 작금의 시대에 '주인정신'의 회복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남의 일이 아닌 내 일, 남의 회사가 아닌 내 회사, 남의 돈이 아닌 내 돈이라 생각하고 일하는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과의 열매가 어찌 동일할 수 있겠는가. 절대긍정은 찬란한 주인정신을 포함한다. 

  프로는 자신감을 앞세우고 아마추어는 자존심을 앞세운다. 이 얼마나 통찰력있는 말인가. 삶의 현장 곳곳에서 비효율적인 자존심으로 인해 쓰러져가는 이들이 적지 않다. 물론 자존심 자체는 중요하다. 하지만 자존심은 반드시 사용해야 할 때에만 사용해야 빛나게 된다. 자신감은 자존심보다 상위가치다. 각계각층에서 부와 권력을 거머쥔 성공인들의 공통점은 겸손한 자신감으로 무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신감이 충만한 프로가 될 것인가, 자존심만을 앞세우는 아마추어가 될 것인가는 응당 자기 자신의 선택에 달려있다. 

  폭포수처럼 넘치는 자신감으로 강렬한 문장에 담아내는 저자의 절대긍정론을 나는 지지한다. 평소 자기계발서에 녹록한 관점을 갖고 있지만, 구체적이며 사변적이지 않고 해법적인 이 책에서 나는 좋은 느낌과 적절한 도전을 얻었다. 더욱이 부록편에선 저자의 《행복한 부자학 특강》을 수록하고 있어 한 권의 자기계발서의 마무리를 풍성하고 깔끔하게 완성하고 있다.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 이제는 더이상 긍정이냐 부정이냐를 논하는 시대가 아니다. '절대긍정'과 '긍정'과의 경쟁이다. 누가 더 긍정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며 일하는가에 따라 세상의 주인이 바뀌는 시대이다. 나 또한 마케팅 업무를 보고 있는 마케터의 한 사람으로서 한 권의 잘 다듬어진 절대긍정 예찬론을 통하여 필요한 도전을 얻고 에너지를 충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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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학교에 간다
오토다케 히로타다 지음, 전경빈 옮김 / 창해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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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교육계가 시끄럽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영어 공교육 완성 프로젝트'에 대한 이견으로 인해 정계와 교계는 물론, 언론과 국민들까지 여간 시끄러운 것이 아니다. 더욱이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예비 인가안을 둘러싼 분란은 일파만파이기도 하다. 일부 대학은 행정소송도 불사하겠다고 하고, 최종 인가권을 가진 교육부장관과 상위기관인 청와대의 아이러니한 대립각은 볼썽사납기까지 하다. 

  사실 대한민국 공교육 정책의 문제점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수시로 바뀌는 교육정책과 일관성 없는 정책 추진, 그리고 철저히 대학입시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교육의 획일성 등은 한국 공교육 오류의 지난한 역사를 대변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공교육의 문제점이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가장 가까운 이웃국가인 일본도 공교육의 문제점으로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과 유사한 문제점을 갖고 있던 일본의 공교육은 세계 제일의 경제대국답지 않은 후진적인 것이라고 평가를 받아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에 최근 공교육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총리 직속기구로 교육개혁 추진조직을 공식적으로 만든다는 일본정부의 발표는 솔깃하다. 우수한 인재의 조기 진학, 글로벌 체제에 대한 경쟁력 강화, 탄력적인 학교 운영방안 등을 개혁안으로 내세우며 공교육 정상화를 꾀하는 일본정부의 역동성을 보면서 동일한 문제점을 안고 있는 이웃국가의 국민으로서 그 관심은 배가 된다. 

  『그래서 나는 학교에 간다』는 교육에 대한 에세이다. 1998년 팔다리가 없는 장애인으로 살아온 자신의 성장과정을 다룬 『오체 불만족』을 출간, 한일 양국에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킨 베스트셀러의 주인공 오토다케 히로타다는 이 책을 통하여 '교육'에 대한 자신의 경험과 비전을 얘기하고 있다. 이 책은 저자 자신이 2005년 4월부터 '신주쿠구 아이들의 바른생활 파트너'로서 구내의 초·중학교를 돌아다니며 체험하고 사유한 내용들을 정리한 교육 에세이다. 책 속에는 오토다케가 목도한 일본 공교육의 현실은 물론, 자신의 교육 철학과 비전이 오롯이 담겨 있어 읽는 내내 훈훈하면서도 감동스러움을 선사한다. 

  다른 나라의 교육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가독성으로 흥미있게 읽혀졌던 이유는 한국과 비슷한 문제점을 갖고 있는 일본교육의 현실에 있다. 지나친 입시 위주의 획일적 교육으로 오랜 기간을 잃어버렸던 한국 공교육와 마찬가지로 일본 또한 국·영·수 중심의 특정한 학문적 능력만을 추구하는 '아카데미시즘(academicism)'의 오류에 빠져있다. 저자 오토다케는 이러한 일본 교육의 문제점을 직접 체험하고 목도하면서 그에 파생된 문제점 또한 적지 않음을 지적한다. 

  '학력'이라는 용어가 많이 쓰이고 있다. 요즘 아이들이 학력이 떨어졌다, 는 등의 학력저하 담론은 이미 가담항설이 되어 있다. 그렇다면 진정한 학력이란 과연 무엇인가. 오토다케는 이에 대해 '정보 처리력'과 '정보 편집력'으로 이원화하여 설명한다. '정보 처리력'이란 축척해둔 지식에서 순간적으로 '정답'을 끄집어내는 능력을 의미하며, '정보 편집력'이란 자신이 가진 지식, 기술, 경험 등 모든 것을 어떤 상황하에서 조합하여 발휘하는 능력을 말한다. 요컨대, 현재 일본학생들은 일반적 언어·추론 능력이라 할 수 있는 '정보 처리력'에는 큰 문제가 없으나 창의력과 조합력을 필요로 하는, 다시 말해서 '정답이 없는 문제'에 대한 답을 도출하는 '정보 편집력'은 형편이 없다는 얘기다. 날카로운 통찰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이러한 오토다케의 지적은 비단 일본에만 한정된 문제는 아니다. 전쟁과 가난의 지난함 가운데 일본 못지 않은 빠른 경제성장을 이룬 한국의 경우도 상상력과 창의력이 결핍된 획일적 교육으로 번민에 빠져 있다. 교육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가장 커다란 문제는 '학문적 능력'과 '지능'의 지속적인 혼동이다. '학문적(academic)'이라는 단어는 '교육적(educational)'이라는 단어와 흔히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다. 위정자들은 학교의 '수준'을 올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 수준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아마 '학문적 수준'이라고 답할 것이다. 학문적 능력이라는 개념이 교육적 성과에 대한 사고 속에 깊이 뿌리박고 있기 때문에 대중들에게는 그냥 상식처럼 느껴지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것은 하나의 이데올로기다. 많은 이데올로기가 그렇듯이, 정권이 바뀌고 교육정책이 바뀌며 그에 반하는 수많은 증거에도 불구하고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획일적인 교육은 학교에서 더 이상 '튀면' 안 되는 아이들을 양산하고 있다. 오토다케는 어느 중학교에서의 발표수업을 통해 목도한 심각한 비관용 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되도록 남 앞에서 발언하려 들지 않는 아이들로부터 오토다케는 충격을 받는다. 타인들 앞에서 의견을 말하지 못하는 것은 타인에게 어떻게 비쳐질지 모른다는 우려와 두려움에서 기인했던 것이다. 과연 그런 아이들이 학교를 떠나 사회로 진출하여, 또는 국가를 운영하는 지도자로 진출한다면 어떤 결과가 그려지겠는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자존감이 필요하다. 남들의 시선과 평가가 두려워서 내 자신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포장된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삶은, 개인은 물론 국가와 사회의 발전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더욱이 경쟁과 협력, 이기와 이타가 조화를 이루는 사회가 이상적이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내가 나로 존재하는 삶을 지향하는 것이 전제조건되어야 함은 자명하다. 더욱이 남을 포용하며 인정하는 관용 문화야말로 선진사회의 필요충분조건임을 단언한다. 

  저자는 열한 개의 카테고리 속에서 교육 현실과 문제점, 그에 따른 문제 제기와 미래의 비전 등 다양한 교육 담론을 이끌어내고 있다. 한 편의 교육 에세이에 침투되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달음의 속도로 읽음을 종결지을 수 있었던 것은 저자가 목도한 일본의 교육 현실과 내가 살고 있는 한국의 교육 현실이 갖는 강한 동질감에서 연유한 것일 게다. 현실이 비슷하니 진단도 비슷하고 원칙도 비슷하다. 나는 "교육은... 결국엔 인격, 그리고 인성이다."라고 설파하는 오토다케의 말에 오롯이 동의한다. 

  저자는 현재 도쿄에 있는 한 구립 초등학교 교사가 되어 있다고 한다. 불편한 몸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긍정이 주는 힘을 신뢰하며 역동적으로 살아가는 그의 리드미컬한 삶을 나는 지지한다. 『오체 불만족』을 통해 "장애는 불편하지만 불행하지 않다"고 얘기한 그의 명문장처럼 미래를 짊어질 아이들에게 '행복'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주는 '살아 있는 교과서'가 되기를 기대한다. 더 나아가 그의 삶과 꿈이 참교육으로 거듭나기를 희망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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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이유 있는 '뻥'의 나라 - 황희경의 차이나 에세이
황희경 지음 / 삼성출판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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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BRICs'라는 용어가 있다. 2003년 미국의 증권회사인 골드만삭스그룹 보고서에서 처음 등장한 용어다. 브릭스는 2000년 이후 폭발적인 경제발전을 이루고 있는 브라질(Brazil), 러시아(Rusia), 인도(India), 중국(China)의 영문 머리글자를 딴 것이다. 네 나라들은 공통적으로 많은 인구와 넓은 영토, 풍부한 자원과 저렴한 노동력으로 세계경제의 발전에 전면에 서있다. 그 중 중국은 단연 선두다. 

  중국의 기세가 무섭다. 1인당 GDP는 이미 2,000불을 넘었으며, 3대 도시인 베이징, 상해, 광저우의 경우는 1만 불 달성을 코 앞에 두고 있다. 전 세계 제조업의 23%가 중국에 자리잡고 있으며, 세계자본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면서 외환보유고는 부동의 세계 1위이다. 미국이 연 1조 달러가 넘는 쌍둥이적자(재정적자+무역적자)를 맞으면서도 무리없이 서나갈 수 있는 이유가 중국의 달러 정책에 있다고 할 정도로 중국의 경제력은 막강한 힘 위에 올라 있다. 더욱이 금년에 개최되는 베이징 올림픽과 2010년 개최되는 상해 엑스포, 그리고 2012년에는 달나라에 중국인을 올려 놓겠다는 중국정부의 야심찬 계획은 차후 중국의 헤게모니를 예견케 하는 역동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약 1년 간 한겨레신문에 '변하는 중국, 변하지 않는 중국'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었던 것을 수정 보완하여 책으로 출간한 『중국 이유 있는 '뻥'의 나라?』는 저자 황희경 씨가 관찰하고 경험한 중국에 대한 이야기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중국으로의 헤게모니화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이라는 아이콘을 알지 않고서는 글로벌리제이션의 도도한 흐름에 침투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그런 차원에서 이 한 권의 차이나 에세이는 중국을 부담없고 흥미있게 탐구하는 안내자의 역할로 손색이 없다 하겠다. 

  사실 중국이라는 나라가 워낙 거대하여 어디서부터 알아가야 할지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 이 책은 저자가 알고 경험한 내용들을 흥미있게 풀어놓아 중국을 쉽게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주고 있다. 총 스무 가지의 콘덴츠를 다루고 있는데, 정치와 문화는 물론 문학, 사상, 사회, 관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면과 각도에서 중국을 설명하고 있다. 더욱이 저자 특유의 맛깔나는 문체와 자기 경험의 투영은 뛰어난 가독성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저자는 중국의 문학에 대해 상당히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중국의 사대기서인 《삼국지연의》, 《수호전》, 《서유기》, 《금병매》는 물론 《홍루몽》과 《손자병법》, 그리고 중국의 대문호 루쉰의 현대문학에 이르기까지 중국문학 속에 투영되어 있는 중국인들의 습속과 성향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 

  그 중 가장 솔깃했던 것은 중국인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있는 《홍루몽》이라는 고전과 중국 현대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루쉰에 대한 내용이다. 2007년 TV 드라마로 새로이 제작에 들어갈 당시 총 42만 명이 배우 선발 공개오디션에 신청할 정도였다고 한다. 《홍루몽》에 대한 중국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이 얼마나 지대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더욱이 중국 봉건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읽어야 할 걸작 중에 걸작이라기에 조만간 읽어보지 않을 수 없는 책이다. 

  특히 저자는 루쉰에 대한 경외심이 남다르다. 책의 첫 부분과 마지막 부분을 루쉰의 글귀로 소개하는가 하면, 내용 중간 중간마다 '루쉰'이라는 이름이 적잖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중국을 설명함에 있어 루쉰은 핵심이자, 소재이자, 조미료의 역할로 수도 없이 등장하고 있다. 저자의 일관된 상찬과 함께 현실에 기반한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이자 행동하는 지성인으로 많은 중국인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는 루쉰의 존재감을 생각한다면, 그의 대표작인 《아큐정전》만큼은 조만간 빨리 만나야겠다는 의지가 발동된다. 

  비단 문학뿐만 아니라 정치의 현대사, 사회적 문제점, 습속과 문화, 관광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면에서 중국을 설명하고 있다. 저자 특유의 문체로 보이는 유쾌하고 맛깔난 문장들과 각 페이지마다 수록된 컬러사진들은 한 나라를 탐구하는 에세이로서의 깔끔한 완성도를 정갈하게 대변한다. 

  고백하자면 나는 단 한 번도 외국땅을 밟아보지 못했다. 글로벌리제이션의 시대에 부끄러운 일이지만서도 중국만큼은 반드시 방문해야 할 나라라는 것을 의심치 않고 있다. 근무하는 직장의 중국공장을 방문한다는 설정과 값싼 중국에서 여름휴가를 보낸다는 설정은 차치하더라도, 내가 가장 먼저 밟아야 할 외국땅이 '중국'이라는 의지만큼은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천안문 광장의 마오쩌둥 초상화 앞에서 중국 전통녹차를 마시며 루쉰과 《홍루몽》에 대한 상념에 빠질 미래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며 이 책에 대한 좋은 느낌을 곱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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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블로그 - 역사와의 새로운 접속 21세기에 조선을 블로깅하다
문명식 외 지음, 노대환 감수 / 생각과느낌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반면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역사의 호오에 대해 각기 타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대개 전자의 경우 과거를 곱씹는 과정에서 현재와 미래를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찾을 수 있다는 이유를 거론한다면, 후자의 경우는 그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역사 자체가 갖는 딱딱함과 건조함으로 인한 접근의 비수월함을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알고 탐구해서 나쁠 것은 없지만 호감도가 떨어지기에 많은 독서가들로부터 역사책들이 외면 받고 있다는 지적은 그리 틀린 진단은 아닐 것이다. 

  역사의 사전적 정의를 알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하니 다음과 같이 정의되어 있다.
1. 인류 사회의 변천과 흥망의 과정. 또는 그 기록.
2. 어떠한 사물이나 사실이 존재해 온 연혁.
3. 자연현상이 변하여 온 자취.

  즉, 역사는 과거의 '사실'이다. 사실이 아닌 것을 역사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이다. 과거의 사실만을 역사라고 인정할 수 있기에 역사는 '사실'로 시작해서 '사실'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명목 하에 과거의 역사가 적잖이 손질되는 것도 사실로의 귀결을 지향하는 역사의 성질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일반 대중들이 역사를 탐구하면서 따분하고 지루함이 발산될 수밖에 없음은 십분 이해될 만 하다. 

  이러한 역사의 사실에 의한 종속으로 인하여 정통역사가 갖는 비대중성을 인식, 최근의 역사소설과 사극드라마의 경향은 상상력의 비율을 점차 높이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입증된 사실과 작가의 상상력과의 오묘한 결합과 긴장감 사이에서 대중들은 정통역사가 주지 못하는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얻고 있는 것이다. 물론 역사적 정통성과 사실 관계를 훼손한다는 역사학계의 지적이 많지만 일반 대중들의 관심과 사랑을 유도한다는 측면에서 최근에 역사 미디어의 시류로 형성되어 도도하게 흘러가고 있다. 

  저명한 역사학자 노대환 교수가 감수하고 생각과느낌社에서 출간한 『조선 블로그』는 역사와의 새로운 접속을 시도하고 있다. 조선시대를 풍미했던 몇몇 유명 인물과 사건, 배경을 소재삼아 내용에 있어서는 역사적 사실 그 자체를, 전달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블로그'라는 21세기적 아이콘을 사용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재미있는 역사책으로서의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를 위시하여 정도전, 세종, 이순신, 광해군 등의 역사인물을 21C 인터넷 개인공간의 아이콘인 '블로그'라는 메커니즘 속에서 풀어놓고 있다. 블로그 주인장이 포스트를 올리면 그와 관련된 인물들의 덧글과 반론이 이어지고, 포스트와 덧글의 등록 시간과 안부게시판의 활용까지 매우 그럴 듯하고 흥미있게 조선시대를 다루고 있다. 더욱이 의병, 실학, 풍속화 등의 조선시대를 풍미했던 사건과 시류에 대해서는 '카페'라는 공간을 통하여 녹여놓고 있어 매우 흥미롭다. 

  '블로그'에 대한 공감적인 흥미 유발로 인한 뛰어난 가독성에 불과 두 시간만에 완독할 수 있다. 문장의 이해를 돕는 컬러 도판의 삽입과 역사용어에 대한 번호달기 참고 설명도 이 책이 가진 강점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권위있는 역사학자의 감수와 각 내용에 대한 출처를 밝힌 것 등은 가벼워질 수 있는 부분을 감안한 저자와 출판사의 노력이라 할 만 하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풍속화 카페' 파트였는데,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의 경쟁구도를 흥미있게 표현한 대목이 압권이다. '단원빠'나 '혜원빠'와 같은 시쳇말을 사용한 덧글 전쟁은 코믹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된 부분이다. 마치 『바람의 화원』의 몇몇 장면을 옮겨놓은 듯한 두 화가의 경쟁구도와 컬러판의 그림을 보는 재미는 쏠쏠함을 넘어 짜릿한 페이소스와 맞닿아 있다. 

  아쉬운 점은 조선 후반의 역사가 빈곤하게 다뤄졌다는 것이다. 태조, 정도전, 태종, 세종 등의 초기 조선의 인물들은 많이 다루고 있지만, 조선의 태평성대를 이뤘던 영·정조 시기나 한 번쯤 곱씹을 필요가 있는 고종 대의 망국기를 다루지 않은 점은 아쉬운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조선역사 전체를 순차적으로 다루지 않고 부분적으로 역사를 발췌하여 인물과 사건 중심으로 다루다보니 전체 구성면에서 다소 산만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러한 단속적인 역사 훑어보기는 '블로그'와 '카페'라는 아이콘을 부각하기 위한 흔적임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조선왕조의 매끈한 흐름 구도와 역사의 거시적 완결성을 위해 왕조 중심의 '블로그' 아이콘만을 배치했으면 더 좋았을 껄,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신선한 시도에 있어 그 어찌 완벽함만을 요구할 수 있겠는가? 저자는 작가후기에서 역사에 대한 가벼운 접근이 아닐까 하는 우려감을 표현했지만, 내용에 있어 상상력을 배제하고 정통역사를 다뤘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구성의 신선함과 흥미도가 탄탄하다는 점은 그런 기우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이 책의 매력 포인트다. 

  과거 조선 역사와 21세기 인터넷 블로그 메커니즘의 합일. 그 조화가 만들어내는 흥미는 독자로 하여금 시간가는 줄 모르고 한 시대의 역사상을 훑어보게 할 수 있는 힘이 되기에 살포시 추천한다. 더불어 이러한 신선한 구성의 역사책들이 많이 출간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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