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그렇듯이 제목이 책의 운명을 가르는 듯하다.

 

<죽고 싶지만....>이 오래도록 순위권인데 나는 별로 공감을 하지 못했다. 항상 약간은 기분 부전 문제를 겪고 있지만 세대가 달라서 그런지 구성이나 문체가 와닿지 않는지 소장하고 싶은 책은 아니다.

 

최근에 생긴 북카페에서 <살아야 할 이유>를 읽었다.

 

제목이 참 정직하고 문체도 위트 있다. 솔직하게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고 같은 문제를 겪는 사람들이라면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을 담았다. 찾아보니 개정판은 제목이 바뀌었는데 표지도 제목도 이 판이 훨씬 좋다.  

 

 

 

 

 

 

 

 

 

 

 

 

 

 

 

 

우왕 명성 자자했던 천명관을 이제 읽었다.

 

대단한 이야기꾼이다.

여성에 대한 시선이나 질펀함, 육덕짐? 뭔가 그런 불편의 산을 넘고 등장인물의 인생유전 전체를 보면 납득이 가기도 하고 아니 그런 납득의 세계를 넘어야 한다. 고전소설 전기수 같기도 하고 환상성 짙은 남미소설을 읽는 것 같기도 하다.

 

어릴 때 할머니나 엄마에게 들었던 동네에 누구집 아이 혹은 그집 이렇게 저렇게 해서 잘 살다 망했고 누가 누구에게 시집 장가를 갔고 하는 이야기 같기도 하다. 놀라운 건 얼굴 한번 본 적도 없는데도 짠하고 애잔하게 만드는 기술이 있다.

 

이 책에서는 고래로 형상화한, 살면서 인간이 품는 거대한 욕망은 생을 파괴할 정도로 매혹적이다. 다들 남과는 다르게 특별하게 무언가를 이루려고 하지만 결국 운명에 굴복하고 마는 것이 인생일 것이다. 용모의 미추나 개인의 능력, 성품, 주변 환경, 국가의 흥망성쇠 등 한 사람의 인생에는 너무나 많은 변수가 있다. 이 소설의 히로인인 금복은 밑바닥에 있다 솟아오르기도 하지만 그녀의 딸 춘희를 비롯해 주변 인물들은 내내 바닥을 기다 사라질 뿐이다. 읽다보니 으으으 온몸의 기가 빠지는듯 힘들긴 했지만 어릴 때 전설의 고향 보듯이 두려워하면서도 그냥 다 봤다.   

 

전에 모임 분이 야쿠마루 가쿠의 <침묵을 삼킨 소년>을 추천해서<돌이킬 수 없는 약속>도 보게 되었다.

 

이건 사실 내용 유출이라 자세히 쓸 수 없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사회파 추리소설 작가답게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준다. 미미 여사의 <모방범>을 읽을 때도 느꼈지만 일본도 성 관련 강력범죄가 많고 성폭력 신고율은 우리나라 수준에 훨씬 못 미치는 것 같다. 일본 여성들도 정조 개념이 강해서 성폭행을 당하면 신고하고 싸우기보다는 자살하고 자신의 삶을 파괴하는 쪽이 훨씬 많은듯하다.

 

<고래>도 그렇고 이 책도 그렇고 남성 작가들이 뭔가 생생하게 그려내는 어떤 장면들을 여성 작가는 그처럼 생생하게 묘사하기 힘들다. 겪었든 겪지 않았든 각기 다른 차원에서 묘사하기 힘든 지점이 있다.  항상 나에게도 닥칠 수 있는 일이라면, 을 무시할 수가 없고 그런 상황에 대한 묘사는 '말할 수 없음'의 영역으로 가라앉는다. 내 은밀한 상처나 고통이 전시되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없다.

 

 

글 속에서만이 아니라 평온한 일상에서도 종종 당혹스런 상황 아니 공포스러운 상황이 닥친다.

 

얼마 전에 주말에 딸이랑 충장로 알라딘에 갔다. 지하이고 화장실이 빌딩 후미진 곳에 있어서 딸이 화장실에 가면 항상 앞에서 기다린다. 알라딘 매장 쪽 문이 열리고 어떤 남자가 나왔는데 흔히 보이는 노숙인 풍의 사내였다. 머리는 여기저기 솟아 있고 옷은 때가 타서 더럽고 화장실도 가기 전에 허리띠를 다 푸르고 지퍼를 내리며 실실 웃으며 내 쪽을 보는 것이 수상하고 공포스러워 얼른 여자화장실로 갔는데 다행히 딸은 나오지 않았다. 나도 다른 칸으로 들어가고 옆칸의 딸에게도 이상한 사람이 있으니 나오지 말라고 했다. 이어서 어떤 아가씨가 들어와서 입구에 누구 없냐고  물으니 없다고 해서 알라딘 매장으로 얼른 들어갔다. 어느 틈엔가 매장에 다시 그 남자가 들어와 있어 다시 나를 보고 실실 웃어서 매장을 아예 나왔다. 그냥 그 정도인 것에 가슴을 쓸어내렸고 딸이 혼자 화장실에 갔더라면 어떠했을지 생각하니 너무 공포스러워 당분간 그쪽에 가기 힘들 것 같다.

 

성추행, 성폭행 미수 형량이 낮은 것도 정말 말이 안 된다.  

미수,

시도했으나 목적한 바를 이루지 못했다고?

 

그 분위기 자체가 이미 폭력이다.

 

앞의 상황을 매장이나 경찰에 말해봐야 내가 예민하다는 판정을 받았을 것이다.

 

요 며칠 센 책들을 읽어서 책 선택에 신중을 기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찰나 문자가 왔다.

 

 

오정희 님 책은 주문 전이고

염승숙 님은 어느 모음집에서 읽은 작가인데 제대로 읽어봐야겠다.

 

 

 

 

 

 

 

 

 

 

 

 

 

 

 

 

 

 

딸이랑 양말 고르며 엄청 웃었다.

책 제목을 양말로만 바꿔도 얼마나 재미난지.

 

웃다가 브레멘 양말, 그리고 양말도 없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양말을 골랐다.

 

 

 

 

 

 

 

 

 

 

 

 

 

 

생각보다 질은 나쁘지 않고

M은 220 정도인 딸 발에도 잘 맞는다.

 

이제 애들 아침도 줘야 하고 마무리해야 하는데

제목을 뭐라 해야 하나 고심하다

나도 낚아보려고 이리저리 섞었다. 

 

'돌이킬 수 없는 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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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동네 배드민턴 클럽에 등록했다. 5학년이 되어 사춘기를 맞아 무기력한 아들이 간만에 의지를 보이며 배드민턴을 배우고 싶다고 해서 알아보았다.

 

전문 클럽이라 아이는 원래 등록이 안 되지만 안전상 이유로 부모가 같이 등록하면 아이가 배울 수 있다고 한다.

 

처음 하루이틀은 초보 둘을 맞아 회원님들이 반겨주며 의미없는 난타도 같이 열심히 쳐주셨는데 어제는 진짜 다들 바쁘셨는지 응대가 없어 아들이 나랑 치다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그래, 나 더럽게 못친다. (고등 때 체력장 4등급이었다. 학력고사 시절이면 엄청 손해봤을 거라고 체육선생님이 뭐라 하시던 게 기억에 선하다. 중3 때 심지어 에어로빅하다 쫓겨났다)

 

그런 내가

그래도 여기까지 따라와준 게 어딘데.

 

아저씨들이 쳐줄 때같이 랠리? 가 이어지지 않으니 투정을 부리는 아들

 

결국

어제 코치님께 강습받을 때부터 안 쓰던 근육을 써서 그런지 팔목도 아프다고 해서 일찍 집에 왔다.

 

아이는 이렇게 자꾸 나를 세상에 던져놓고 나를 시험한다.

그래도 화를 내지 않고 매일 가야 하는거라고 네가 선택했으니 책임을 지라고 했다.

 

오늘도 가야 하는데 참 뭔가 남의 눈을 많이 의식하는 사람은 참 일상이 불편하다.

 

<마녀 체력>을 읽으면서 체력도 체력이지만 친화력에 한번 더 놀랐다. 운동을 잘하는? 즐기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사람에 대한 믿음이 있는 듯하다.

 

이 클럽에 얼마나 나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야겠다.

먼저 한번 쳐줍쇼, 해야 하는데 그게 너무너무 안 된다, 말을 꺼내기 힘들다.

 

힘들게 직장일을 마치고 와서 운동으로 스트레스 푸는 분들 같은데

누군가에게 또 배려를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시험에 들게 하는 일을 하는 게 마음이 불편하다.

 

강습받고 나서 셔틀콕을 수강생들이 다 정리해야 하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들 덕에 참 여러 가지를 해본다.

밀대로 강당 여기저기 흩어진 셔틀콕을 모아 다시 깃털을 잘 정리하면서 일렬로 배열해서 (어딘가에서 가져온 것이 분명한) 롯데마트카트에 넣었다.

 

한 이틀 안 하던 운동을 해서 꿀잠을 잤는데 어제는 제자리였다.

내 식대로 낮에 산책을 하고 집정리를 좀더 하면서 일상의 리듬을 찾아야겠다.

 

 

  

 

 

 

 

 

 

 

 

 

 

 

 

 

화요일에 알라딘에 들렀다가 사온 책이다.

한 사람이 상반되어 보이는 두 분야에서 고른 성취를 보이기 쉽지 않은데 대단하다.

 

타국에서 시를, 문학을 붙들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성취도 이룰 수 있었다고 겸손하게 말씀하신다. 계속 운이 좋았다 강조하시고.

 

무엇보다 하루하루를 충실히 온전히 보내서 그런 것이겠지.

 

아래의 책들을 보아도 그렇고

한 분야말고 다른 분야에서도 동시에 성취를 이루는 분들이 많다.

 

 

 

 

 

 

 

 

 

 

 

 

 

 

 

다중지능 이론이 맞기는 한데

대개 한 사람에게 여러 다중 지능이 발현되는 듯하다.

 

그리고 다중 지능이 골고루 발현되는 건 또 소수다.

 

나머지 범인들은

그저 열심히 하는 수밖에.

 

너무 욕심내지 말고

천천히.

 

 

이제 가을이 되었으니

좀더 힘을 내봐야겠다.

 

하늘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이 계절이

참으로 짧다는 게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서 더더

좀더 움직여봐.

 

아들이 아닌

나에게 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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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매일 산책 행사 중 하나로 책과 생활 서점에서 오은 시인을 만났다.

 

<책과 생활>이 이전했다는데 계속 못가다가 지난 목요일에 들렀고

주인장 분께서 마침 오은 시인 아시냐고 좋아하시냐고 물으셔서 신청을 하게 되었다.

 

작년부터 그냥 아는 정도?

시집을 두 권 샀고 책읽아웃 몇 회 들어서 시인분이 어떤 캐릭터인지 대강은 알고 있었는데

직접 목소리를 듣고 이야기를 듣다보니 짐작대로 엄청난 달변가이신듯.

 

의도치 않게인지 아니면 큰그림을 그리신 것인지 서점 주인장 분과 만담 콤비 결성.

 

서점 주인장이신 신헌창 님은 오은 시인 진성 팬이신 듯했다.

 

시집도 정독하시고 작품세계를 잘 아시는 듯한데  팬심에 떨려서 ? 그러신 건지 진행이 그리 원활하지 않으셨고 보다 못한 오은 시인이 그냥 오은마당 식으로 진행을 하셨다.

 

약속된 시간이 두 시간이니 한 시간은 작가 소개와 서점에서 준비한 인터뷰를 하고 한 시간 정도는 거기 모인 문청들이 잘 알아서 꾸려갔을 것 같은데 서점 주인분이나 오은 시인님이나 여기 모인 사람들에게 빅재미를 선사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으신 건지 진행 모드로 일관하셔서 조금 부자연스러웠다.

 

그래도 만담은 참.

 

두번 다시 이루어지지 않을 이런 만담 콤비란 참.

 

 

이런저런 이야기들은 다 인터뷰를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이고 이런 현장감을 느낄 수 있으니 행사에 가나보다.

 

그런데

늘 이런 데 다녀와서 드는 생각인

역시 창작자들은 그들의 창작물로만 만나는 게 좋을듯.

 

 

그래도 나홀로육아의 절정을 달하는 일요일 오후에

마침 아이들 아빠가 쉬어서 이런 자리에도 나와보고 그게 제일 큰 감동의 요소가 아닐지.

 

아이들이 커서 슬슬 나혼자였을 때의 시간과 공간을 회복하는 것이 큰 감격을 준다.

 

더군다나 모임 언니가 근처 왔다가 합류해 같이 강연도 듣고 동명동에서 라멘과 덮밥도 먹고 궁금했던 지음책방까지 가보았기에.

 

지음에서 뭔가 이야기를 더하고 싶었는데 조용히 책만 보는 분들이 있어 금세 파했다.

 

버스를 기다리다 전당 하늘마당에서는 댄스 페스티벌이라고 젊은이들이 모인 걸 보았다.

신촌만 생각하다보니 너무 규모도 작고 사람이 별로 없게 여겨졌다.

광주가 대도시치고는 일자리가 없어 젊은이들이 많이 떠난다고.

 

그래도

오늘의 산책은

 

문화정보원 근처 배롱나무,

메이커스페이스라는 공간의 발견

음악 분수에서의 멍 때림이 좋았고,

 

시인 오은님 강연에서는

만담

오직 한 번뿐인 그 만담

그리고 오은 님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방식이라고 하지만

서점 창 너머로 흐린 하늘 아래 기와 지붕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며 들었던

신작 시 낭송이 좋았으니 그걸로 족하다.

 

참, 새로운 시집

<주황소년>이라는 자전적 시에 나오는 주황들이 정말 사랑스럽다

능소화, 오렌지,

 

샛노랑과 새빨강 사이.

 

어제 그 어딘가를 걷다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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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도 '애'로 끝난다. (어릴 때부터 너무 옛스럽고 착해 보여서 좀 별로였다) 성도 흔하디 흔한 성 중 하나이고 중간 글자까지 합하면 딱 교회 착실히 다니는 그런 인상의 이름이다. 학교 선생님들도 늘 교회 다니지 하고 묻곤 했다.

 

어쩐지 이름부터 답답해 보이는 경애.

 

그런 '경애'의 '마음'이 대체 어쨌다고.

 

알고 싶기도 하고 알고 싶지 않기도 하다. (무슨 00스러운 말투)

 

 

아무튼 답답한 방학 막바지를 지내며 이런저런 책을 읽고 아이들 개학하고 나서야 '경애의 마음'을 정독하기 시작했다.  

 

어제 동네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에서 읽다가 갑자기 울컥 했다. 책 소개로 1999년의 인현동 화재를 모티브 삼았다고 들었긴 했지만 경애를 통해 다시 듣고 나니 그 야만성에 치가 떨린다.

 

1999년 10월 30일 오후 6시 55분에 인천광역시 중구 우현로83번길 10(인현동 27-43)에 있는 '라이브2 호프집'에서 일어난 대형 화재였다. 씨랜드 청소년 수련원 화재 사고가 일어난 후 4개월밖에 안된 시점에서 일어난 사망 56명, 부상 78명의 대참사로 정부 수립 이래 3번째 규모의 대형 화재사고였다.

 

경애를 아예 견딜 수 없는 절망으로 몰아넣은 건 화재의 전말이었다. 발화 지점은 건물 지하였고 불이 번지기까지 분명 시간이 있었는데도 그 많은 아이들이 빠져나오지 못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놀란 아이들이 출입문으로 나가려고 하자 술값을 받지 못할까 걱정한 호프집 사장이 문을 잠갔기 때문이었다. 문을 잠갔기 때문이었다, 라고 신문에서 읽는 순간, 경애는 차가운 무언가가 와서 자신을 꽉 끌어안은 것 같았다. 몸체가 크고 체온이 아주 낮은 그것이 마치 등에 업히듯 자신에게 와서 붙은 것만 같았다.   71쪽   

 

검색해보니 그 화재 때 돈을 받지 못할 것 같아 문을 걸어 잠근 그 호프집 주인은 형을 살고 나와 복음성가 가수로 활동한다고. 하. 후.

 

이 대목에서 박차고 나와 집으로 왔다.

 

99년에 무기력한 대학 졸업반이던 나는 술 마신 동기를 데려다주던 동네가 인현동이라 어딘지 알고 있어 더 슬프고 무기력했던 기억이 난다.

 

교복을 입은 아이들에게 술을 팔고 불이 났는데도 문을 잠근 어른을 탓하기보다는 교복 입은 학생들이 그런 데서 남녀가 어울려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제대로 추모하지 않던 세상이었다.

 

화재 규모에 비해 추모 대열은 초라했고 희생자들은 잊혀져 갔다.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나 또다른 모습으로 그 비극이 변주되었다는 것이 더욱더 기막히다.

 

 

 

*

경애는 화재 때 천운으로 살아남아 대학에 가고 연애도 한다. 그리고 이후로 쭈욱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지부진한 연애 끝에 남자는 배신을 하고 경애의 선배와 결혼한다. 미련하디 미련한 '마음'밖에는 가진 게 없는 경애는 변심한 애인의 결혼식에 가서 축의금을 50이나 하고도 모자라 계속 그 커플의 SNS를 염탐하기도 하고 어느 날 불쑥 연락한 그를 만나러 간다.

 

이 대목에 답답해서 잠시 쉬고 있다. 경애의 상사인 '상수'가 결혼한 옛 애인과 만나려는 경애에게 부러 삼천원짜리 우동 쿠폰을 내미는 부분에서 쉬고 있다. 이건 특유의 '눈치 없음'이 아니고 진짜 알 수 없는 상황이기는 하다만. ㅋ

 

경애와는 계급적으로 전혀 다른 성장 배경을 가진 '상수'에게도 아픔은 있다. 내가 팔다리가 부러졌다고 해서 손가락에 피가 흐르는 사람이 안 아픈 건 아니다.

 

국회의원을 지낸 부친은 '상수'에게 늘 모범답안을 제시하지만 상수는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 아버지 입김으로 입사한 곳에서도 '상수'는 특유의 '눈치 없음'으로 인해 곤란을 겪는다. 인생의 유일한 낙은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연애 상담을 해주는 페이스북 페이지을 운영하는 것이다. 상수 특유의 '눈치 없음'은 군대를 다녀오지 않았다는 말로 다 설명이 된다.

 

상수는 그런 여자들을 잘 알았다. 그런 여자들은 상수가 운영하는 '언니는 죄가 없다'라는 페이스북 페이지에서도 얼마든지 만날 수 있었다. (중략) 언니로 산다는 것은 이런 것에 대해 아는 일이었다. 섹스하는 여자들, 원지 않았던 여자들, 이별해야 하는 여자들, 싸우는 여자들, 가족을 떠나려는 여자들, 우울한 여자들, 속은 여자들, 살이 찐 여자들, 소비하는 여자들, 지켜야 할 비밀이 있는 여자들, 억울한 여자들, 죽은 혹은 죽으려는 여자들, 분노에 빠진 여자들, 어리거나 너무 나이 든 여자들, 기다리는 여자들.   33쪽   

 

 

금수저로 태어났으나 아버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군미필자이자 낙하산인 상수는 이런 여자들과의 소통?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받으려고 한다.  

 

상수와 경애의 연결 고리는 이 페이스북 페이지인데 아직 당사자들은 모르고 있는듯하다.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다.

 

**

초반부에 경애가 중소기업에 입사해 농성에 참여하고 농성이 와해되는 과정이 설득력 있게 그려졌다. <파업일기>를 썼던 조선생이라는 캐릭터도 매력적이다.

 

 

'미싱'이 머신의 일본식 발음인지 소설을 읽고야 알았다.

 

경애의 회사는 미싱을 취급하는 중소기업이다.

낙하산 '상수'와 불순분자였던 '경애'는 팀을 이루어 쇠락한 공장의 미수금 따위를 받으러 다닌다.

 

참으로 정직한 기계 '미싱'은 이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요즘도 미싱을 쓰기는 하지만 홈패션용 미싱은 에어프라이어같이 여겨진다.

 

이 책을 읽다보면  그런 홈패션용 때깔 고운 미싱말고 차르차르차르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방직공장의 그 금속성의 녹슨 미싱이 떠오른다.

 

더불어 때 묻은 발을 드리운 독한 파마 약품 냄새가 가득한 좁은 매장에서 정신없이 롯드를 말고 있는 미용사가 떠오른다. 바로 경애의 '엄마'

 

거센 세파와 맞섰던 '엄마들'과는 다르게 경애의 마음을 잘 알아주었던 엄마.

 

엄마를 따스하게 그린 것도 좋았다.

 

현실에서는 먹고 사느라 정신 없이 사느라 딸과 사이가 벌어지고 불화하기 마련인데.

 

***

 

강남에서만 나고 자란 강남 키드들을 대학 때 알고 지냈는데 '상수' 같은 캐릭터도 있지만 대개는 부모의 기대에 부응해 실용적으로 사는 합리주의자들이 많았다.

 

그들은 나는 나의 계급적 이익을 위해 투표하는 것이고 너 역시 마찬가지라고 당당하게 선언했고 부모의 뜻을 받들어 수없이 맞선에 나가 자신에게 걸맞는 짝을 찾았다.

 

드라마나 소설과 달리 그들은 자신과 부모의 뜻, 즉 합리적 선택에 만족했고, 지지부진한 연애나 생활고에 시달리는 중생들에게 일침을 날렸다. 구질구질하게 매달리지 말고 그 시간에 상식, 토익책이나 한번 더 보라고. 우리 부모님도 겨우 노후 준비나 하신 정도고 집안이 힘들어 내가 이렇게 분초를 다투며 열심히 사는 거라고.

 

왜 모임에 잘 오지 않냐고 묻는 내게 한 후배는 단지 동아리방이 깨끗하고 사람이 적어 여기에 적을 두었다고 하기도 했다. 동아리 모임에 오지는 않지만 늘 사람 없는 새벽시간에 동아리방에서 열심히 공부하던 후배는 바라던 시험에 합격했다.

 

'경애'와 달리 그들은 거추장스럽고 불필요한 그 한 조각, 마음에 연연하는 법 없이 정한 목표로만 나가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전반부부터 만만치 않은 여러 주제를 안고 시작하는 이 소설이 어떻게 끝을 맺을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그저 '경애(敬愛)'의 마음으로 쭉 따라가보련다.

 

폭염도 지나가고 귀뚜라미 우는 이 계절에는 어쩐지 그래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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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에 양림동에 새로 생긴 독립서점 <러브앤프리>에서

<잘 돼가? 무엇이든>을 드디어 샀다.

 

원래 피너츠 매트가 받고 싶어 이리저리 조합하다 그냥 독립서점에서 구매.

 

어딜 가든 민원이 심한 아들은 그냥 두고 딸하고만 가서 여유롭게 차도 마시고 독립서점에서 책 사고 2층 공간에서 책도 보다니.

 

감격. 진짜 이런 일이 가능하구나, 이제.

 

딸은 2층에 비치된 그림책을 엄청 보았고 난 남궁인의 서평집을 보았다.

 

바쁜 분이 참 책을 많이 보시는구나.

 

 

 

 

 

 

 

 

 

 

 

 

 

 

 

 

 

어제 <잘 돼가? 무엇이든> 다  읽고 

지금 막 <미쓰 홍당무>를 보았다.

 

큰 아이 낳고 24개월 차이로 작은 아이 낳아 기르던 2007년-2012년 사이는  면 소재지에 있기도 했고 영화나 책을 보는 건 사치였던 시기다.

 

차라리 잠을 좀더 자는 것이 바른 선택이었던 시기.

 

그래서 놓친 영화나 책이 많고 요즘 찾아보는 중이다.

 

 

<미쓰 홍당무>를 블랙코미디 정도로 생각했는데

이렇게나 웃기고 이렇게도 슬플 수도 있구나.

 

공효진과 이경미 감독이 없었다면 탄생하지 않았을 영화.

 

우유부단한 불륜 선생 서종철 역을 맡은 이조녁 아저씨도 정말 딱 들어맞는다. 비열하긴 한데 그냥 멍하고 나쁜 놈인데 아주 밉상은 아니다.

 

대사 하나하나가 다 주옥 같다.

 

사는 게 선악이 딱 갈리는 것도 아니고

내가 원하는 게 정말 내가 그렇게 원하는 것이었을지.

 

막 허접한 걸 목표로 해서 그냥 바쁘게만 살고 난 이렇게 엄청 힘든데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내가 진짜 불쌍한데 막 밉고 사실 알고보면 나도 참 나쁘고 그렇다.

 

이경미 감독 영화를 보고 혹자는 감독님이 한번도 (한국)남자에게 제대로 사랑받지 못했을 거 같다고 했다.  서로의 전제가 너무나 다르기에 실소가 터져나온다.

 

어떤 부류의 남자이며 어떤 형태의 사랑이 제대로 된 것인지.

 

또한 한? 남자에게 사랑받는 것이 여자의 행복한 삶의 필수 조건은 아니다.

 

자신을 잃어가며 한 남자의 여자로 햄볶으며 사는 것보다 이경미 감독님같이 나를 지키며 많은 사람들을 웃기고 울릴 수 있고 공감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이 많은 인생이 더 부럽다. 최근에는 한? 남자의 열렬한 사랑도 받고 꿈꾸던 결혼식도 무사히 치르셔서 이제는 더 이상 루저? 인생도 아니다.

 

그렇지만

에세이를 보니 영화를 선택하고 작품을 만드는 과정 하나하나가

역시 짐작대로 아니 짐작했던 것보다 더 많이 힘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 하나 망하면 되는 게 아니라 영화 한 편 잘못 되면 연관된 사람이 얼마나 많을지....

그 부담은 정말 엄청날 것이다.

 

나도 경미한 불면증을 잠시 겪어봤는데 72시간이나 잠들 수 없었다면 정말 지옥이었을 것이다. 창작의 고통이라는 건 정말 무섭구나.

 

애증이 얽힌 가족들과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간 것도

인간으로서의 부모를 솔직하게 그리려고 한 것도 좋았다.

 

나는 아직은 어디 가서 가족들 이야기를 제대로 할 자신이 없다.

얽히고 설킨 감정이 너무나 많아서.

 

아무튼 영화를 보고 최종적으로

  

하. 나처럼 살아온 분이 또 있네, 하는 생각에 한참 웃었다.

 

 

사람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나에게 관심이 없다.

 

또 남자들은 진짜 '그냥'이다.

 

남편만 봤을 때는 잘 몰랐는데

이 '그냥'이 실감이 가지 않아

화도 참 많이 내고 울기도 많이 했는데

아들을 키워보니 이 '그냥'은  진짜 '그냥'이라는 걸 이제는 잘 안다.

 

요새는 중2병이 아니라 초5병이라고

아들이 그냥 사춘기를 직격으로 맞았다.

 

오전에 이천원 주고 도서관으로 쫓아보내고

웹툰을 보든 와이파이를 잡아 쓰든 좀 그냥 두고 있다.

 

생각해보면 나도 참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많았는데

해야만 하는 것에 매여서

 

양미숙 선생같이 그냥 밤에 잠도 못자고 제대로 챙겨먹지도 못하고

뭘 그렇게 힘들게 살았는지.

 

전혀 친해질 사이가 아닌데 부둥켜 안고 울기도 하고.

 

돌아보면 이불 뻥뻥 찰 사연 한가득이지만

 

잘 돼가? 무엇이든, 묻는다면

 

나도 예스.

 

평생 우울하면서도 우울 판정받는 건 또 지독히도 싫은 나.

 

어쩌면 엄청 의욕적인 인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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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8-08-15 0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책 읽었어요! 좋기도 했지만 책이 작고 편집이 너무 널널해서 좀 실망. 그냥 책방에서 서서 읽어도 다 읽을만한 정도라서요. 그렇다고 내용이 별로라는 건 아니고 내용은 착실하고 솔직하고 거침없이 자신의 얘기를 해서 좋았어요. 자도 작가와 공감하는 부분도 많았고. 다음에 책을 내면 그렇게 널널한 편집은 안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 <미스 홍당무>정말 재밌죠!! ㅎㅎㅎㅎ

뚜유 2018-08-15 07:23   좋아요 0 | URL
요즘 에세이 편집이 다 비슷하더라고요. 책은 호불호가 명확히 갈릴 것 같아요. 영화도 물론 그렇지만요. ^^

<미쓰 홍당무> 정말 왜 그 동안 안 보고, 못 봤을까요. 공효진 팬이라 작품도 거의 보고 책도 봤는데 이 영화를 놓친다면 팬이 아니죠. 여학교 생활을 잘 알고 여교사를 많이 관찰한 거 같아요. 익히 아는 소재를 새롭게 풀어가기가 힘들고 냉소적인데 그래도 굉장히 차가운 것도 아니고 잘 봤어요. 감독님 다른 영화들도 다 찾아보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