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에 거의 5년 만에 영화관에 가서 <건축학개론>을 보고 왔다.
예전의 그 음악들은 어느새 지나간 세월로 우리를 데려다 준다.
간만에 클리셰 이런 단어들도 내뱉어보았다. 퓨전중화 요리점에서 이야기를 하고는 좀 뒤통수가 따가웠다.
항간에 자주 회자되는 '납뜩이' 때문에 웃기도 하고 그 시절의 패션이나 삐삐 같은 것들에 미소 짓기도 했다.
96학번 그 시절에 나는 여학교 학생이었다.
늘 아르바이트와 학교 근로와 동아리 잡다한 행사 등으로 근근이 지내는 내게 연애는 먼나라 이야기였다.
학교 근로를 도서관에서 했는데 바보같이 몰입해서 일하다 학교 수업에 늦은 적도 있고 축제 때 동기들이 이웃학교 남자친구들을 데려와 이거저거 시키는 동안 열심히 전만 부친 적도 부지기수.
수지보다는 승민과 그의 엄마에 깊이 감정이입하여 영화를 보았고 자주 울컥했다.
1학년 때 받아든 학과 교수님, 학생들 주소록 대개는 압서방(압구정, 서초, 방배)으로 채워져 있었다.
오티 때 강남이 집인 한 아이가 내가 경기도 소재의 우리집에 대해 말하자
'그럼 넌 자취하니? 하숙하니?' 하고 묻기도 했다.
봄이었는데도 학교는 늘 추웠고 내가 속한 동아리 방은 낡은 가건물에 자리잡고 있었다.
3학년 선배언니들의 담배연기 자욱한 그곳에서 들리는 연애담은 대개 씁쓸한 것들 뿐이었다.
여중여고여대로 이어지는 초건어물녀인 내게 그래도 약간의 희망의 불씨가 있다면
연합동아리라서 가끔은 남자 사람들을 볼 수 있다는 것
그나마 그 희망의 불씨도 한 학기가 지나자 꺼져버렸다.
여러 학교를 돌며 경험한 결과 같은 학교 여학우를 대할 때의 존중도(?)와 여학교의 '여자'를 대하는 태도는 확연히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또 그 모임의 특성상 수질이 영 ㅜ.ㅠ
남자애들이 영화 속의 승민이랑 패션만 같았다.
주책맞기는 납뜩이 저리가라였고.
나 역시 그러했을 테지만 ㅋ
이제 80년대 학번이 영화 속에서 자신들의 젊은 날을 찾듯 90년대 학번이 그렇게 추억을 소비하는 세대가 되었다.
이런저런 아련한 짝사랑을 거쳐 첫연애를 거쳐 바로 결혼에 골인한 심심한 아줌마는 서연의 아버지나 승민의 어머니 모습이 남일 같지 않다.
늘 생계에 치여 냉장고 정리 같은 것은 할 수 없어 냉장고를 열 때마다 발밑에 채이는 봉다리들....아들이 버린 목 늘어난 짝퉁 티를 입은 모습.....이런 것들에 울컥하고 말았다.
무엇보다 자명한 현실은 이제 진짜 어느새 '젊음'이 저만치로.
열아홉 그때는 진짜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제일 많은 게 시간인 줄로만 알았지.
아깝고 또 아깝다.
그때 왜 그 아까운 것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바보같이 내주었는지.
*
강릉 프리머스는 고맙게도 엔딩을 끊지 않아주었다.
옆자리의 남자는 뭔생각을 하는지 미동도 않고 있다. 아마 첫사랑 생각을 하는듯.
싱숭생숭이였던 여고생이 어느덧 그마저도 아무렇지 않은 그런 덤덤이가 되어버렸어.
1호가 영화 속 승민이 같은 날들을 맞겠지, 2호는 서연이만큼 예뻐질까 뭐 그런 잡생각을 하며 조수석에서 잠시 졸았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