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머니 이야기>를 읽고 적어도 엄마 이야기만은 잘 들어드려야겠다고 생각했는데 하루도 못 갔다. 통화를 하다가 또 울컥 하고 말았다. 엄마하고 동생이 연락하는 횟수가 내가 생각하기에는 잦다.

 

<나이 든 부모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는 전에 읽었는데 한동안 좀 착한 마음을 유지하게 해주었다.

 

<노년의 부모를 이해하는 16가지 방법>은 노년기에 이른 의학박사가 알아듣기 쉽게 썼다. 이 책에서 부모님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 괴팍스러운 의도나 고집스런 성격 때문이 아니라 노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설명해준다.

 

시어머니가 며느리 말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노년의 귀에 여성의 높은 주파수의 목소리는 잘 안 들린다고.

 

어르신들이 알아 들을 수 있게 천천히 이야기해야 하고, 낮은 톤의 목소리가 노인들에게 익숙하다고 한다.

 

미리보기로 일부 보고 아직 다 읽지 못했고 희망도서로 신청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는 어린아이들의 연령별 특성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부모님 세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별로 하지 않았다. 그저 쳇, 난 늙으면 저렇게 안 될 테다, 하고 오만하게 속으로 다짐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시간은 어김없이 흐르고 중년이 되어 나도 딸에게 '거기', '여기', '그거' 대명사를 남발하기 시작하면서 나도 시작되었구나, 하는 느낌이 온다.

 

책 소개에서 발췌한 것 중 잘 들어맞고 흥미로운 것.

 

-본인에게 불리한 말은 못 들은 척한다.

-시끄럽다고 화를 내고 정작 본인들은 큰 소리로 말한다.

-약속해 놓고 나중에 엉뚱한 말을 한다.

-같은 말을 질리도록 반복한다.  

 

아, 이래서 노인정에서 자주 싸움이 나는구나. ㅋ

 

사실 아이들도 그렇다. 방학 동안 남매가 나를 붙잡고 늘 엉뚱한 소리를 해서 중재하느라 힘들었다. 그리고 나도 어느 정도는 그렇겠지. 잔소리 대신 차라리 큰소리 내자 ㅋ

 

*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노년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부족해 '틀딱충'이니 '할줌마'니 하는 혐오 단어들이 넘쳐난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나 자신도 연장자와 대화하는 건 참 어렵다.

 

앞서의 상황과 모순되는 이야기, 필터 한 번 거르지 않고 머릿속 생각을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데에는 도통 적응이 되지 않는다.

 

엄마와 여러 일이 있은 후 나름대로 정리한 건 이해와 사랑이 없이는

N가지 방법도 다 소용이 없다는 것. 

 

그리고 그 사랑을 채울 시간이나 노력을 할 사이 없이 둘 다 너무 바쁘게만 살았다는 것.

 

 

게다가 지금은 물리적으로도 멀어져서 대화마다 어긋난다.

 

미사에 가서 '사랑 없이는 소용이 없고 아무것도 아닙니다'

성가를 부를 때면 뜨끔할 뿐 

실제 엄마 이야기를 들어드릴 때면 답답하기만 하다.

 

늘 같은 패턴의 불평과 원망, 한탄

이제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아무튼, 배드민턴.

 

어제는 전날 밤 학교 서류작업과 수업 준비로 신경이 쓰여 잠을 설치고 여러 가지로 힘들어 체육관에 안 나가려다 갔는데 운동을 하고 나니 몸은 피곤해도 기분은 나아졌다.

 

멀리서 어르신들 농담이 정겹고 재미있다. 한동안 안 보인 회원에게 어디 전지 훈련다녀왔냐고 하신다.

 

누가 좀 잘 치면 어디서 몰래 레슨 받고 왔냐고 하시고 어이 없는 실수를 하면 옆코트 우리아들 가리키며 왜 00이같이 치냐고. 귀엽게 보일 줄 아냐고. ㅋ

 

어제 온풍기 앞에서 아들이랑 치는데 역시나 몇 달이 지났으나 우리는 바보 배드민턴.

그냥 근본 없는 배드민턴.

 

경기는 안 하고 그냥 둘이 난타만 친다. 가끔 시간 남는 분이 쳐주시기도 해서 고맙다. 아들은 레슨을 받지만 난 아직은 뛰어들 준비가 안 되었다. 그냥 점점 멀어지는 아들과 이 정도 접점을 찾은데 만족한다.  

 

아들이랑 치고 있는데 착실한 어떤 청년이 00아, 치는데 방해되면 온풍기 꺼도 된다고. 사오정 아들이 못 알아들어 대신 답했다.

"저희 온풍기 바람 때문에 못 치는 게 아니라 원래 이래요" 하고 주접을.

 

연예인을 티브이에서 보고 친숙하게 여기듯이 몇 달 자주 보니 혼자 친한 마음에 돼도 않는 드립을 친 것이다. 말없이 아들이랑 주로 치는 조용한 아줌마가 그렇게 말하니 얼마나 어색했을지. 청년이 당황해서 우리 못 친다고 뭐라고 한 거 아니라면서 머쓱하게 돌아선다.

 

저도 농담이에요,  이 말을 못하고 그냥 보냈다.

 

애초에 담백하게 네, 불편하면 끌게요, 이러면 될 것을 ㅎ

 

서로 친해져서 자주 게임하고 대회 나가고 하시는 분도 있지만 

그저 우리는 우리만의 속도로 천천히 가야겠다.

 

아무튼, 배드민턴

우리끼리는 민턴이

그래도 올해는 언젠가는 게임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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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일을 마치고 희망도서가 도착되었다고 해서 빌려왔다. 올해는 진짜 책을 덜 사고 특히 굿즈에 연연하지 않으려고 번거롭지만 달마다 희망도서를 신청하기로 했다.

 

1월 초에 신청해 이제야 처리가 되어 받아본 <내 어머니 이야기>

 

잡지에서 단편을 보거나 한 적은 있지만

이렇게 연이어 보니 역시 놀랍다. 

 

백석의 섬세한 시어를 읽는 것 같기도 하고 토지나 혼불 같은 장대한 서사도 느껴진다. 읽으면 읽을수록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져서 어제 저녁과 오늘 새벽에 걸쳐서 다 읽었다.

 

이북 출신으로 혈혈단신? 남한에 내려와 고생고생하시다가 자손들이 편히 모실 즈음 되어 거동이 불편해진 채로 오래 투병하다 돌아가신 외할머니 생각도 난다. 대학에 들어가 김기찬 사진집 시리즈에서 외할머니를 발견하고 서둘러 사진집을 덮었던 기억도 난다. 특별히 내 기원이나 뿌리에 관심을 둔 적도 없고 언제나 가난한 그들이 막연하게 부끄럽기만 했다. 

 

그런데 같은 이야기를 듣고도 이렇게 다른 방식으로 역사를 새로 쓸 수도 있구나.

 

작품의 완성도 의미 있지만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이 어머니와 딸에게 치유의 과정이 되었다. 누군가가 자신의 삶에 관심을 두고, 끝없이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것이 큰 위로가 될 것이다. 

 

 

*

 

그 당시나 지금이나 정없는 손녀였던 나는 실향민 외할머니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어드리지도 못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생계를 책임진 엄마를 대신해 외할머니가 우리 자매와 외삼촌 자녀들 총 넷을 힘겹게 돌보셨다. 어린 마음에  할머니는 친손주만 예뻐한다고 여겼던 나는 공부한다는 핑계로 밖으로만 나돌았다.

 

가끔 할머니 부업을 돕다가 예전에 할머니가 이북에서 얼마나 잘 사셨는지 공산당이 얼마나 웃긴지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지 그런 이야기들이 나올 때면 그냥 흘려들었다.

 

그 중 강하게 머릿속에  남은 이야기는 할머니집 개가 토한 것을 어떤 가난한 집에서 받아가 씻어서 끓여먹었다는 실로 놀라운 이야기.

 

누구집 며느리가 어떻게 해서 소박 맞고 어떤 집은 아들이 몇인데 어떻게 죽고 어떻게 망하고 그런 이야기들.

 

일본 순사는 진짜 무섭고 피난길이 어찌나 춥고 무서운지 하는 이야기들이 신기하기보다는 지루했다. 빨리 이 방에서 나가 놀아야겠다는 생각뿐.

 

대강 듣는 척하는 사이 미취학이었던 사총동생들이 큰방 난로에 개미들을 올려두고 죽어가는 걸 보던 기억이 난다. 아주 작은 집개미가 까만 점이 되도록 죽어가는데도 별로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던 나날들.

 

한번은 할머니가 손주들 영화를 보여주려고 테이프를 돌렸는데 외삼촌이 빌려다둔 변강쇠 시리즈여서 모두가 어어어 이게 뭐야 전설의 고향이 아니네 하기도 했다. 어려운 형편이지만 사촌동생들에게 레고나 게임기도 있어서 같이 가지고 놀기도 했다.

 

그저 그렇게 마구잡이로 시간을 흘려보내던 시절이었다. 

 

할머니 이야기의 결론은 항상 아껴 살고 허황한 마음 품지 말고 도둑질 빼고는 다 배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부업을 도와드리면 천 원씩 주셔서 그거 모아서 신도시 아파트로 이사올 때 책상도 샀던 기억이 난다. 물론 밖으로 나도는 나와 달리 동생이 착실히 모은 액수가 더 많았던 것 같다.

 

<내 어머니 이야기>가 진짜 신기한 게 갑자기 통성기도같이 어린시절의 기억이 터져나오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얼굴들이 떠오르고 보깁고 그리웁고 그렇다.

 

어린 시절에 먹었던 할머니표 이북 녹두부침개나 많이 해서 둔 탓에 그득그득 남아 곰팡이가 슨 떡으로 무지 맵게 해서 먹었던 겔포스맛? 나는 떡국떡 떡볶이도 기억난다. 손자 손녀들이 맛이 이상하다 투정하고 숟가락을 놓기 시작하면 부잣집 개가 토한 것도 먹고 살던 어려운 시절도 있는데 이건 너무 멀쩡한 거라며 홀로 잘 드셨다. 당시 지독한 굶주림을 겪은 어른들이 다 그러하듯 음식 버리는 걸 죄로 생각하시던 분이니 그렇다.  

 

외할머니 간병 문제로 외가 형제들 사이가 어느 정도 벌어지고 나서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2009년 둘째 낳고 이틀인가 되어서 돌아가셔서 장례식에도 못 가봐서 지금까지 마음의 짐으로 남아 있다.

 

외할머니도 외할머니이지만

엄마에 대한 감정도 아직 정리가 되지 않아

내 어머니 이야기를 제대로 하려면 얼마나 걸릴지

휴 한숨이 나는구나.

 

 

 

*

 

예나 지금이나 어른들에게 살갑지 못하고 멀찍이 있어서 그런지 작가님이 어머님을 염려하고 일상을 잘 돌보는 모습에 애달픈 마음이 들었다. 엄마가 할머니를 간병하며 겪었던 그 힘겨움,  노인과 함께하는 삶의 실상을 어느 정도 알기에 안타깝고 애잔하고 그렇다. 언젠가는 작가님이 훌훌 다 털어버리고 마음 편히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르실 수 있기를......

 

 

*

 

오늘 내가 사는 광주에는

장마같은 겨울비가 내리고 있다.

 

어제 받아둔 희망도서가 그득그득하고

수업도 없는 날이라

한갓지고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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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초등학교는 봄 방학이 없이 쭉 두 달을 이어서 쉰다. 선생님들이 미치기 전에 방학을 하고 엄마들이 미치기 직전에 개학을 한다는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겠는 명언은 2000년대의 속담으로 남을 것이다.

 

목요일에는 독서모임 언니와 시내에서 잠시 커피를 마시고 책과 생활 서점에 들러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를 샀다.

 

어슐러 르 귄을 막연하게 남성작가로 생각했던 적이 있다. 나 역시 SF를 남성작가의 전문 분야로 여기고 있었나보다.

 

SF를 쓰는 여성작가가 노년에 이르러 남긴 단상들.

 

아시아문화전당 북라운지에서 몇 장만 읽었는데 벌써 매료되었다. 하버드동창회에서 노년에 여가를 어떻게 보내냐는 설문을 보냈다. 골프 등 여러 여가생활이 등장한 끝에 작가가 평생의 업으로 삼은 글쓰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작가는 노년에도 왕성하게 활동하기 때문에 은퇴가 없는 직업이고 더 이상 남겨둘 시간이 없다고 단언한다.

 

남겨둘 시간이 없다는 건 주부에도 적용된다. 돈을 받는 가사도우미같이, 수업료를 받는 학원강사같이, 전문 간병인같이 살림과 육아에 관련된 일을 여러 가지 하려고 들면 남겨둘 시간 따위는 없다.  

 

주부는 동동거리며 이렇게 여러 가지 일을 동시다발적으로 처리해도 늘 집에 있는, 시간이 남는 사람으로 치부된다. 학교 총회에서도 슈렉의 엄마인지 뭔지 이름마저 전근대적인 녹색어머니회 이야기를 하며 집에 계신 어머님?들은 되도록이면 나와주셨으면 한다고.

 

주부에게든 회사원에게든 하루를 여는 아침시간은 정말 소중하다. 한번은 주부들이 많이 다니는 사이트에서 녹색어머니를 공공근로로 돌려야 한다는 취지로 글을 길게 썼다가 댓글 포화를 받았다. 학교 자원봉사인데 그 정도는 엄마들이 해줄 수 있지 않냐고.

 

나는 학생들 안전에 직결된 것이고, 학부모에게만 부담을 지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노년층 인력을 활용해 공공근로의 형태가 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미 학교지킴이는 그런 식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매일 필요한 인력을 이런 식의 자원봉사에 기대는 것은 무리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주제를 주변에는 말하지 않는다. 그냥 나는 녹색어머니회 봉사에 동의하지 않고 별로 하고 싶지 않구나, 하고 결론지었을 뿐이다 (다른 형태로 학교 봉사를 해본 적은 있다. 그리고 사정상 학교 봉사를 안할 수도,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유명 여배우들도 녹색어머니회를 한다는데 집에 있으면서 그 정도도 못 하느냐는 소리를 같은 엄마에게 듣고 싶지 않을 뿐이다.  

 

*

어제는 아들이 방학 중에 파자마 파티에 초대를 받아 그집 엄마에게 답례로 차를 사드리는 시간을 가졌다. 서로 신상 소개를 간단히 하고 아이들 이야기가 이어지니 급격하게 피로감이 몰려온다.

 

막연히 주부끼리는 이야기가 잘 통할 거라고들 생각하지만 다년간의 경험으로 그렇지 않다. 나의 취향과 성격은 배제한 채 아이들 학년, 동네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만나서 겉도는 이야기를 하다 헤어질 때가 많다. 가끔 이야기가 통하는 순간도 있지만 대개는 거래처 사람들과 만나는 것과 같다. 자신과 아이들에게 유리한 무언가가 있지 않게 되는 순간 거래는 종료된다. 무형의 이 거래는 엄청 까다롭다. 거래를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세계.

 

품앗이 육아나 공동체 그런 걸 생각도 해봤지만,

네 이웃의 식탁과 같은 상황이 될 뿐이다.

 

 

 

 

 

 

 

 

 

 

 

 

 

 

 

오래 주부로 충실히 삶을 꾸리셨는데도 내가 하는 일을 듣고는 갑자기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 진짜 능력 있으시네요, 라고 한다. 그냥 내가 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인 수업노동자로 일하면서 나 역시 주부이기도 한데 과도하게 추어올리시니 불편했다.

 

가끔 이렇게 다른 활동이 없는 엄마를 만나면 흔하게 마주치는 광경이다. 대놓고 스스로 집에서 노는 사람이라 소개하기도 한다. 그리고 끝없는 비교, 행불행의 상호대조표를 만들어 같은 패턴의 대화가 반복되면 지루해진다.

 

어떤 분은 여자가 200만원 넘게 못 벌면 육아 살림만 전담하는 게 이득이라는 황당한 주장을 하기도 한다. 이건 아이들이 초꼬꼬마 0-24개월일 때나 해당되고 경력 단절이 길어질수록 좋을 건 없다. 물론 각자 개인의 사정과 가정경제상황이 다르니 일을 하네, 마네 하는 것도 자신이 정하고 가족과 상의해 하면 될 일이다.

 

어제 만난 엄마는 아들이 둘인데 대화 중에 계속 남자는 역시 능력이라는 말을 많이 하셔서 황당했다. 그리고 아무래도 딸아이보다는 아들 공부에 더 신경이 쓰이지 않냐는 진짜 황당한 이야기 끝에 자신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그런지 그냥 적당히 예쁘게 지내다 시집가면 된다고 생각하신다고. 아아아....엄청 열심히 들어드리기는 했는데

 

 

*

 

타샤 튜더의 말대로 주부는 잼을 만들면서도 셰익스피어를 읽을 수 있기도 하다.

 

꼭 셰익스피어를 읽는 게 아니더라도 뜨개나 다른 창의적 활동을 할 있게 시간을 잘 꾸려야 한다. 주부 역시 다른 직업과 마찬가지로 시간 관리나 자기 관리가 있어야 가정생활이 잘 기능할 수 있게 한다.

 

적절한 때에 대화 흐름을 끊지 못해서 이후 저녁시간이 좀 틀어져서 피곤했다.

 

이제 아이들이 컸으니 아이들친구 엄마와 따로 만나는 것 없이 아이 편에 작은 선물을 보내는 편이 나았을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역시 자신의 시간을 내는 것만큼 큰 접대는 없다고 생각해서 만난 것이니 이제는 비루한 생각들 털어버려야겠다.

 

 

 

 

 

 

 

 

 

 

 

 

 

 

 

 

'이진순의 열림'을 통해 한번은 본 기사이지만 그래도 다시 빌려왔다.

프롤로그가 특히 좋았다.

열림을 통해 만난 분들 모두가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활동을 하는 분들이었다.

 

그렇지만 저자는

 

"그렇게 훌륭한 인물은 세상에 없어요"

인터뷰를 위해 내가 만난 모든 이들이 내겐 감동이고 기쁨이고 희망이었지만, 그 누구도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만큼 위대하거나 훌륭하지 않았다. 시련이 깊을수록 내상은 깊었고 외로움과 두려움 앞에서 갈등하고 자책하는 사람들이었다. '백마 타고 오는 초인' 같은 존재는 현실에 없다.

 

(중략)

 

누구의 인생도 완벽하게 아름답지만은 않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한 방은 있다. 삶의 어느 길목에선가 자신의 가장 아름답고 선한 열망을 끄집어내 한순간 반짝 빛을 더하는 사람들이 있어 세상은 망하지 않고 굴러간다.                 7쪽

 

 

 

 

 

 

 

 

 

 

 

 

 

 

 

 

인터뷰이로 책에 나오기도 한 장혜영 감독의 인터뷰가 다시 봐도 좋다.

독립영화관에 아직 <어른이 되면>이 걸려 있는데 잠시 보고 와야겠다.

 

 

*

 

결혼하기 전에 활동하던 동호회에서 연말이면 앙케이트를 하곤 했다.

그중 질문 목록에 '일 년 중 내가 가장 반짝이던 순간'은? 이라는 항목이 있었다.

 

늘 거침없이 적어가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육아를 하면서는 한참 생각해도 적을 게 없어졌다.

 

커뮤니티 자체의 쇠퇴로 이제 활동이 없는 곳이지만

가끔 이전 내 글들을 찾아보고 얼굴이 벌게진다.

20대에 굉장히 명랑소녀인 척하고 살았구나.

 

늘 약간은 울적했으면서.

 

*

 

이제는 반짝이는 순간보다

그저 은은하게 비추는 그런 삶을 택했다.

뭐가 되었든 아주 사소한 선택이라 해도

후회하고 자책하지는 말자.

 

곧 개학도 하고 봄도 될 테니

조금만 더 버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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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신년 목표는 '운전하기'인데 지키기 참 어렵다.

 

운전을 처음부터 즐겁게 배우지 못했다는 건 핑계이자 사실이기도 하다.

처음에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 더디고 저항감이 큰 성격 탓이기도 하다.

 

택시에서 모유수유를 하는데 뒷자리를 흘끔거리며 역시 엄마 젖 운운하는 기사, 담배냄새 쩌든 차 안, 불특정 다수를 만나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운전을 꼭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적이 있다.

 

딸아이가 7개월 정도일 때 어린이집에 운전학원 가는 시간 동안 맡기고 힘들게 운전면허를 준비했다.

 

필기를 끝내고 운전석에 처음 앉은 순간부터 공포감이 밀려왔다.

 

아, 이건 내 길이 아니야.

평소에 속도 나는 고속 앞자리에만 앉아도 공포를 느끼는 사람이기에

범퍼카조차도 운전을 안 하는 나이기에.

낮은 경사의 눈썰매도 아이들 때문에 간신히 타는 처지이니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장내 연습을 마치고 원주의 어느 한적한 국도로 접어들었는데 라디오를 들으며 건성건성 봐주던 강사분이 눈길을 떼고 나도 라디오 사연에 한귀 판 사이 살짝 가드레일을 받았다. 그때부터 강사가 어찌나 위협적으로 죽을 뻔했다고 화를 내는지 돌아오는 내내 주눅이 들어 있었다. 학원에 차량 피해 손해배상를 이야기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경미한 일이었는데 그 강사는 이후 연수에서 내내 그런 태도였다.

 

육아를 시작하며 경력 단절 후 낮아진 자존감 탓으로 그때는 강사가 문제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중간에 사정을 이야기하고 강사를 바꾸어 제대로 수업을 받았더라면 '지갑면허'로 남지는 않았을 텐데.

 

<스노우캣의 내가 운전을 한다>를 다 읽지는 못했지만, 결혼하기 전에 한참 즐겨보던 작가 작품이라 반가웠다. 더불어 나도 언젠가는 심리적 저항감을 극복하고 운전을 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

 

운전을 해야겠다고 또 절실하게 느꼈던 건 아이 친구 엄마와 뒤틀린 관계를 겪고 나서이다.

 

양쪽 다 아빠들이 바쁘고 주말에 쉬지 않는 직업을 가졌고 아들, 딸 구성에 그 아들 딸의 나이가 같다는 이유로 한 3년간은 꽤 자주 주말에 어딘가를 같이 다녔다.

 

나는 나들이에 적당한 장소나 체험활동을 검색하고 간식거리를 종류별로 준비하고, 저녁을 먹을 일이 생기면 비용을 냈다. 그리고 그 엄마는 우리를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 주었다. 지금까지도 진심으로 감사한 일이다. 대중교통이 닿지 않는 곳까지 같이 계곡이며 산으로 다녀서 그 점은 매우 고맙다.

 

평소에도 퇴근이 늦은 아이 친구 엄마를 대신해 가끔은 밥도 차려주고 평일에는 우리집에서 노는 날이 꽤 되었다.

 

그러다 재작년 즈음에 집에 오다가 경미한 접촉사고가 났다. 아무도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될 정도였지만 차량 동승은 이런 문제가 있어서 이제는 내 선에서 거의 타지 않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이분만이 아니라 평소에도 상대방이 먼저 태워주겠다고 하는 경우와 동네 5-10분 거리 정도의 차량 동승만 하는 편이다. 당연히 그에 걸맞게 비용도 대는 편이다. 내가 운전을 못하고 안 하기에 태워주시는 분들 항상 감사감사. 

 

차량 동승 문제말고도 뭔가 내가 마음을 쏟아 해준 것들이 나중에 무성의하게 돌아오는 게 점점 마음이 멀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사업가의 특성인지 성격 탓인지 그 분은 약속을 모호하게 잡아 우리아이들을 기다리게 하기도 하고, 점점 뜸하게 만나게 된 지금도 갑자기 약속을 잡아 나에게 커피를 사주는 것으로 자신의 마음의 짐을 덜려고 한다.

 

아이를 매개로 만나는 사이의 공허를 알면서도 너무 거절하는 건 아닌듯해 내 스케줄을 무시하고 상대 스케줄에 맞추어 주말 오후를 불편하게 보냈다. 그리고 무엇보다 딸 역시 그집 아이 스케줄에 끌려다니거나 주체적으로 결정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 답답했나보다.

 

그분은 친정엄마에게 육아 일정 부분을 의존하고 오래 자신의 경력을 유지해 자수성가한 분이고 배울 점도 많다. 하지만 점차 뭔가 우리 관계가 또다른 부부 관계같이 되어버려서 어색해졌다. 그분은 유형의 뭔가 큰일(주로 운전)을 하고 나는 돈으로 환산이 안 되는 소소하게 신경이 가는 일? (아니 돈도 꽤 들었다. 간식비, 놀이재료비 등)을 담당하면서 내가 많이 피곤해졌다.  

 

중간중간 학원 시간 비는 사이 우리집 초인종을 누르거나 저녁을 먹고도 좀더 놀고 싶은 아이들을 대차게 내몰 수 없게 만드는 그런 구도가 오래 나를 불편하게 했다.

 

*

 

60-70년대에는 대다수 주부와 소수의 일하는 여성이 있었고 그들 사이에 크게 위화감이 없었다. 응팔의 엄마들같이.

 

그런데 이젠 전업맘, 워킹맘이라는 용어로 굳어져서 정서적으로 서로 멀어지고 있다.

 

특히 전업맘이라는 용어는 정말 생경하고 기형적이다. 

 

그냥 주부는 '전업맘'보다 전적으로 일하지 않나?

 

그리고 주변만 봐도 애들이 고학년이 되면 순수하게 가사만  담당하는 분은 소수이다. 다들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거나 집안 간병을 하거나 육아를 한다. 단지 그것이 돈으로 환산되지 않을 뿐이다.

 

 

*

쓰고 나니 엄청 길게 운전을 못 하고 안하는 것에 대한 변이 되어 민망하다.

 

그래도 아이 친구엄마에게 끌려다니거나   

호이가 반복되어 둘리되지 않기(호의가 반복되면 권리가 된다)를 바라며 쓴다.

 

이제는 '초보' 스티커나 '아이가 타고 있어요' 스티커도 붙일 시기가 다 지나버렸으니

자꾸 운전할 시기가 늦추어지면

'어르신이 운전하고 있어요'를 붙이게 될 판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병원에 혼자 다녀야 할일이 있을 테니

꼭 운전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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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을  몇 주 전에 힘겹게 읽었다. 마침 체육계 미투 조재범 코치 사건으로 시끄러운 시기였다. 제목만 들으면 하이틴로맨스 같기도 하지만 어둡고 힘겨운 소설.

 

이 세상에는 아직도 얼마나 많은 팡쓰치들이 있는 것일까.

 

행여나 나까지 말을 보태 상처가 될까 글을 쓰기 망설여졌다.

 

아침에 조간 뉴스를 클릭하기 무서운 세상이다. 세상 젠틀하고 성실하게 사는 이미지를 밀었던 아이돌 출신 사업가는 실상은 유흥업계와 깊이 관여되어 있다고.

 

너무나 더럽고 흉포해 호기심에 하나만 선택해 읽고는 당분간 보지 않기로 했다.

 

*

소설 속 팡쓰치, 류이팅은 둘도 없는 친구이다. 집안은 유복하고 학업성적도 뛰어나고 감수성이 풍부한 이 소녀들은 리궈화라는 문학강사를 만나며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받는다.

 

이원이라는 소녀들 주변의 인물은 중상류층 새댁이지만 남편의 폭력으로 무기력한 여성이다.

리궈화에게 찍혀 제물이 되어 인생이 망가진 또다른 학생도 나온다. 꼭 다시 찾아 이름을 기억해둘게. 이 학생의 사연도 너무나 마음 아팠다.

 

작가 린이한의 자전적 경험이 담겨 있어 팡쓰치의 절절한 내면을 보는 것이 너무 아팠다.

 

읽고 나서 한동안 예전 동네 골목에서의 일이나 만원 지하철이 꿈에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알았던 어떤 선생님들 얼굴도 스쳐갔다.

 

선생이기보다 한 '남자'로 보이고 싶어했던 그들.

 

 

뭐 이런 세상이 다 있어요? 어째서 피해자가 입 다무는 걸 교양이라고 해요? 어째서 남을 때린 사람이 텔레비전 광고에 나오죠? 정말 실망스러워요. 언니에게 실망한 건 아니에요. 이 세상이든 인생이든 운명이든 아니면 신이라고 부르든 뭐라고 부르든 정말 형편없어요. 요즘은 소설을 읽다가 인과응보 해피엔딩으로 끝나면 울음이 나와요. 세상에 아물 수 없는 고통이 있다는 걸 사람들이 인정했으면 좋겠어요. 아픈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이 제일 싫어요. 이 세상에 한 사람을 완전히 파멸시키는 고통이 있다는 걸 사람들이 인정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모두 행복하게 살았답니다같은 서정적인 결말이 싫어요. 왕자와 공주가 결국에는 결혼하는 해피엔딩이 혐오스러워요. 그런 긍정적인 사고가 얼마나 세상에 영합하는 비열한 결말인지! 그런데 내가 그것보다 더 원망하는 게 뭔지 알아요? 차라리 내가 세속에 영합하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차라리 내가 세상의 이면을 본 적도 없는 무지한 사람이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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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는 동안 리궈화라는 아동성애자가 타깃에 접근하는 방식이나 심리상태 등을 엿볼 수 있었다.

 

일단 리궈화의 원칙은 가난하고 부모의 영향력이 적은 아이에게 접근하는 것이었다.

 

팡쓰치는 이런 원칙에 해당하지 않는 부유한 집안의 아이였다.

 

그렇지만 리궈화는 팡쓰치의 결벽에 가까운 자존심이 자신을 안전하게 할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과감하게 결단을 내려 범행하고 팡쓰치를 길들여간다. 팡쓰치는 혼돈과 공포 속에서 차차 자신을 잃어간다. 리궈화는 팡쓰치를 만나면서도 다른 대상을 물색하고 동료들과 다른 나라로 원정 성매매를 가기도 한다.

 

팡쓰치는 자신의 생활을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고, 범행 사실이 알려진 후에 팡쓰치는 이미 손쓸 수 없게 심신이 망가진 상태였다.

 

팡쓰치의 교양 있는? 부모는 나이 많은 그와 팡쓰치 사이를 털끝만큼도 의심하지 않고 손쉽게 딸을 내어준다. 친구인 류이팅은 처음에는 팡쓰치와 함께 리궈화를 두고 인정 경쟁을 벌인다. 팡쓰치의 속사정도 모르고 다만 친구가 자신보다 스승의 관심을 더 받고 있다고만 여긴다.

 

팡쓰치는 고통 속에서 선생님을 사랑해보려고 한다. 차라리 그 편이 고통을 견디는 데 낫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사고회로가 망가진 상태였다.

 

그루밍 성폭력의 전형적인 사례.

 

농담으로 하는 말인 '키워서 잡아먹지' 하는 류의 멍멍소리들이 섬뜩하게만 들린다.  

 

 

*

2017년 대만에서 출간된 책에 실린 작가 소개는 다음과 같다고 한다.

타이난에서 출생. 전공이나 학력은 없다. 모든 신분 가운데 가장 익숙한 것은 정신병 환자라는 것. 두 가지 꿈이 있다. 하나는 소설을 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오에 겐자부로의 말처럼 책벌레가 독서 애호가가 되었다가 다시 지식인이 되는 것이다.’

 

책이 나오고 폭발적 반응을 얻었지만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부디 그곳에서는 고요하게 원하는 책 많이 읽고 산책도 하기를.......

 

어제 <롤리타>를 빌려왔다.

하도 고전이라고 하고 롤리타 컴플렉스니 뭐니 하는 말이 고전을 왜곡했다고 해서 좀 제대로 보고 싶었다.

 

한 다섯 장 읽고 벌써 불편하다.

 

아침에 양말 한 짝만 신고 서 있을 때 키가 4피트 10인치인 그녀는 로, 그냥 로였다. 슬랙스 차림일 때는 롤라였다. 학교에서는 돌리. 서류상의 이름은 돌로레스. 그러나 내 품에 안길 때는 언제나 롤리타였다.  17쪽

 

주석에 4피트 10인치는 147센티라고 나온다.

자연스레 키가 그 정도 되는 딸아이가 떠오르면서 엄청 불편하고 무섭다.

표지의 젓가락같이 마른 다리는 딱 딸아이의 다리 모양이다.

 

다 읽는 데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다.

 

*

오후에 딸아이가 공원에서 잠시 친구랑 노는데 어떤 남자고등학생이 어느 학교 다니냐고 말을 걸었다고 한다.

 

교육받은 대로 친구랑 일단 다른 데로 가서 놀았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공원의 다른 지점에서 다시 그 학생과 마주쳤는데 반갑게 손을 흔들어서 집에 왔다고 한다.

 

엄마, 그 오빠는 왜 모르는 우리한테 인사한 거야, 하고 해맑게 묻는다. 

 

물론 그냥 심심하고 너희들이 귀여워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일단 안전한 쪽으로 생각해야 해.

 

친절보다는 안전이야.

 

아주 잘했어, 라고 칭찬을 해주었다.

 

 

 

 

 

 

 

 

 

 

 

 

 

딸아이가 이런 책을 읽을 수 있게 되기 전까지

좀더 많이 지켜봐주어야 한다.

 

 

동네에서 많이 예민한 엄마 소리를 듣지만

시사 프로그램에 나왔던 갑자기 사라진 소녀들을 생각하면

좀더 과잉 보호해도 지나친 것은 아닐듯.

 

집에서 이십 분 거리에 성범죄자가 거주하고 있고

한 시간만 가면 나오는 군에서는 6월마다 여자 아이가 사라졌다.

 

내 아이가, 내 아이 친구가 피해갔다고 해서

안심할 수만은 없다.

 

 

지금부터 운동 많이 해야겠다.

 

20년 후엔

노란 형광 조끼를 입고

유흥가를 돌면서

술 취한 학생들을 깨우게 될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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