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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
앨마 카츠 지음, 이은선 옮김 / 현대문학 / 2023년 1월
평점 :
'타이태닉'은 영화가 너무 유명해서 그런지 영화 속 내용 말고는 기억이 없다. 아마도 타이태닉 사고와 관련된 수많은 자료나 책들이 있었겠지만 접해 본 적이 없는 듯 하다. 이 책으로 알게 된 사실인데, '브리태닉'호라는 타이태닉호의 자매호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브리태닉호도 타이태닉과 같은 운명을 맞았다는 소름 확 돋는 진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브리태닉호는 부자들의 유람선이 아닌 1차 세계대전 때 부상병들을 운반하고 치료하기 위한 병원선으로 개조되었는데, 타이태닉을 교훈 삼아 구조변경도 하고 구명정도 많이 준비한 덕분에 사망자가 타이태닉만큼 많지 않았다는 것이고 (이 책에 따르면) 배의 결함이 아니라 독일군이 설치한 어뢰로 인한 폭발이 사고 원인이었다는 점이 타이태닉과 다르다.
운명의 장난인지 그 두 배에 모두 타고 있었고 끔찍한 사고에서 생존했던 실존 인물이 있었다고 한다. 저자는 이 사건에서 모티프를 얻어 <심연>을 탄생시켰는데 두 배의 사고라는 팩트에 '더바사'(인어 혹은 사이렌과 비슷한 전설 속 존재)라는 신화적 존재 그리고 유령을 접목하여 두 배의 사고에 어두운 비밀을 덧입혀 비밀스런 이야기를 좋아하는 독자들을 혹하게 만들었다.
타이태닉 사고는 1912년, 브리태닉 사고는 1916년으로 4년 간격을 두고 있는데, 이야기는 12년과 16년을 오가며 진행된다. 타이태닉호의 경우 일등석 승객들과 그들을 맡은 승무원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추리소설까지는 아니지만 일등석 승객들이 가지고 있는 비밀스럽고 어두운 구석들에 대한 힌트들이 하나씩 까발려지면서 긴장감이 더해진다.
이야기가 타이태닉호에서 시작되어 브리태닉호로 마무리 되는 것 같지만 사실 진짜 이야기는 그보다 오래전에 그 두 배와 상관없이 시작되었다. 아무 상관 없을 것 같은 두 여성을 더바사라는 전설 속 존재를 등장시켜 연결시키고 거대한 호화선의 침몰이라는 팩트 속에 숨겨놓은 저자의 스토리텔링이 매력적이다. 다만 인간의 사랑이라는 것이 (이성간의 사랑 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사랑) 초자연적 존재를 거스르고 거대한 힘에 저항하면서 소중한 존재를 지켜낼만한 능력을 지녔는지는 의문이지만, 이 엄청난 비극이 작품을 다 읽고 나면 비극처럼 생각되지 않는 것 또한 의문이니 이야기가 지닌 힘이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