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입 크기의 프랑스 역사 - 혁명과 전쟁, 그리고 미식 이야기
스테판 에노.제니 미첼 지음, 임지연 옮김 / 북스힐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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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식은 중요하다. 왜? 먹지 않고 살 수는 없으니까. 그런데 단지 그 이유뿐이라면 음식은 그저 살아있는 존재의 생명을 유지시켜주는(물론 가장 중요한 기능이긴 하지만) 단순한 수단 이상의 존재감을 뽐내지 못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음식은 그 어떤 것보다도 확실한 정치적 도구이자 사회 통제의 수단이었다. 음식으로 사람을 평가하기도 하고(지금도 어떤 음식을 먹는 국민이라며 미개하다, 야만하다는 이런 표현을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 사회계층을 나누는 계급장의 역할을 하기도 했으며 인간의 모든 역사 속 발자취마다 음식이나 식재료가 관련있지 않는 경우가 드물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한 나라를 대표하거나 상징하는 음식의 기원을 두고 우리가 먼저네라며 싸우는 모습은 역사 속에서 수차례 반복되는 에피소드이다.


   이 책은 바로 인간의 역사에 얽힌 음식 이야기이다. 제목도 센스있다. '한 입 크기의 프랑스 역사' 원제로 하면 'A Bite-Sized History of France'. 프랑스의 역사 중 먹는 것과 관련있는 내용을 다룬다는 걸 의미하는 동시에 한 장 한 장의 내용이 짤막하다는 의미로 '한 입'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저자의 이력도 특이하다. 부부 공저인데 남편은 '치즈 전문가'이고 아내는 '전쟁학' 전문가란다. 각종 전쟁과 내란 혁명으로 얼룩진 프랑스와 미식의 나라라는 프랑스를 조합한 이 책의 내용이 당연할 수 밖에.


   책이 진짜 재미있다. 내가 세계사를 다룬 책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여기에 먹는 이야기가 끼어드니 환상의 궁합이다. 글의 서두에서도 언급했지만 음식만큼 정치적인 것도 드물다. 그러다보니 책에 언급된 역사의 대부분은 정치나 전쟁과 관련성이 많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다. 음식이라는 존재가 치고 들어오는 순간 음식의 역사가 된다. 저자는 한 장에 한가지의 음식이나 식재료등을 다루고 있는데 그것의 기원에 얽힌 전설과 진실을 비교하는 것부터 시작해 역사의 한 페이지가 어떻게 프랑스 미식의 한 페이지와 연결되는지 이야기한다. 이 책은 재미없을 수가 없는 책이다. 물론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좀 다를 수는 있으나 음식에 방점을 찍고 읽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음식의 기원을 두고 싸우는 짓이 얼마나 무의미한 지 알게 된다. 특히 유럽처럼 셀 수도 없을만큼 많은 전쟁으로 영토가 뒤섞이고 사람도 뒤섞인 경우에는 더더욱 말이다.


   이 책은 책상이 아닌 식탁에 두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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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가기 전에 - 미리 보는 미술사, 르네상스에서 아르누보까지
아당 비로.카린 두플리츠키 지음, 최정수 옮김 / 미술문화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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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문화'에서 새로 기획한 시리즈인가보다. 미술이 가장 발전했고 전 세계의 미술관에서 가장 사랑을 받는 그림들의 시대인 르네상스부터 아르누보시대까지의 서양미술이 이번 기획 시리즈의 첫번째이고 다른 시대와 다른 대륙의 예술은 다음 시리즈에서 다룰 예정이라 하니 요 시리즈만 다 모으면 전 시대와 전 세계의 미술을 아우르는 셈이 될려나?


   제목을 보아하니 미술관에 가기 전에 이 책에서 유용한 팁을 얻어가라는 의미인 듯 하다. 그래서인지 책의 구성이 아주 친절하다. 일단 시대순, 미술가별로 정리되어 있고 작가의 대표작이 한 두점 정도 실려있는데 작가와 작품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실려있기도 한데 가장 특이한 부분은 페이지 아래 해당 미술가의 생애 동안 일어난 주요 역사적 사건들이 타이틀로 소개되어 있다. 이렇게 시대적 배경과 미술가의 생애를 연결지어 놓으니 그 둘의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다고 하더라도 시대적 분위기를 통해 미술가와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듯하다.


   치마부에를 시작으로 카미유 클로델까지 총 150명의 화가들의 작품이 실려있는데 요약 중심이라 이미 미술사를 많이 접해 본 독자라면 다소 심심할 수 있다. 하지만 초보자들이나 아이들과 관람하는 부모라면 미술관에서 그림을 감상할 때 이런 방법이나 순서로 따라가다보면 훨씬 재미있고 체계적으로 관람할 수 있을 듯 하니 유용한 감상 팁이라 할 수 있겠다. 약간 아쉬운 점이라면 제목이 '미술관에 가기 전에'인데 미술관 별로 정리가 되어 있지 않다 보니 특정 미술관을 관람하고자 할 때 한 권만 들고가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 그럼에도 시대순으로 화가들과 작품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미술사에 입문하는 기본 도서로는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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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크 머리를 한 여자
스티븐 그레이엄 존스 지음, 이지민 옮김 / 혜움이음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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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호러나 공포는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날이 더워지는 계절이면 가끔 생각나는 장르이다. '오싹하다'는 표현이 진짜 잘 들어맞는 장르라서 제대로 쓰여진 작품이라면 서늘하고 싸한 느낌을 주기 때문. <엘크 머리를 한 여자>의 원제는 '좋은 인디언은 오직'이다. 이것만 놓고 보자면 이게 뭔 소리인가 싶은데 책에 그 의미가 나온다. 'The only good Indian is a dead Indian'이라는 말에서 유래된 것으로 백인들이 인디언들을어떻게 생각했는지 명백하게 드러나는 문구이다. 책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 인디언들은 블랙피트족인데 작가 역시 블랙피트족이라고 하니 백인들이 인디언들을 인디언 자치 구역에 가두어놓고 자행했던 그 모든 불공평한 일들은 아마도 작가의 경험에서 나온 부분일 듯 하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백인들이 인디언들을 착취하고 학대하는 그런 이야기는 아니다. 암묵적으로 그러한 시대가 배경이 되기는 하지만 주요 이야기는 금지구역에서 엘크떼를 사냥했던 젋은 혈기의 4명의 인디언들이 10년 뒤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댓가를 치룬다는 것인데, 그 복수의 펀치를 날리는 이가 바로 당시 새끼를 밴 채 죽었던 '엘크'라는 점에서 이 소설은 공포, 호러가 된다.


   그런데 내가 공포나 호러의 수위에 아주 민감하다는 사실을 놓고 보더라도 이 소설은 심심한 편이다. 잘못을 저지른 4명의 인디언들이 자신들이 그 때 저지른 일의 벌을 받는 것임을 깨달으면서 느끼는 공포감과 서서히 그들을 향해 다가오는 심리적 압박감이 아마도 이 소설의 하이라이트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 그 부분이 일반적 심리현상이 아닌 인디언 특유의 문화적 현상과 결합되어 있어 온전히 공감하기가 좀 힘들었다.


   이야기의 마지막은 '백년동안의 고독'을 생각나게 했다. 가문이 숙명처럼 안고 가던 백년동안의 고독을 끊어내는 이가 백년동안 탄생했던 수많은 대단한 부엔디아 일족이 아닌 돼지꼬리 달린 아울렐리아노였던 것처럼 부족을 엘크의 복수로부터 구해 낸 이는 작은 여자아이 데노라라는 점에서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은 듯 하다. 하지만 엘크의 복수가 진짜 나쁜 것인가. 아니면 그 복수의 대가가 너무 과한가. 4명의 인디언들의 죄값을 왜 다른 이들도 져야 하는가. 그게 삶이 움직이는 방식인가...라는 많은 질문들을 남겨놓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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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한 걸 정리해주는 사전
한근태 지음 / 클라우드나인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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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요즘 시대가 유행어와 맞춤법을 무시하는 표현이 쉽게 받아들여지고 사용된다고 하더라도 나는 글을 쓸 때 맞춤법이나 올바른 표현법을 쓰려고 굉장히 노력하는 편이다. 그래서 서평 하나를 쓰면서도 애매할 때는 사전을 찾아보기도 하고 검색을 통해 어떤 것이 맞는 표현인지 확인한 후 쓰는 경우가 많다. 맞춤법도 그렇지만 한 문장을 읽었을 때, 주어와 동사가 맞지 않는다거나 전체적인 문맥이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을 참지 못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완벽한 글쓰기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노력을 하는 편이라 가끔은 아무도 신경쓰지 않을 법한 가벼운 댓글 같은 것도 몇 번을 지웠다 쓰기를 반복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애매한 걸 정리해주는 사전>이라는 책이 내 눈에 들어왔을 때, 오! 이거야말로 내가 참고할만한 책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정증보판이라는데 나는 처음 접해본다. 제목과 목차를 대충 보았을 때는 헷갈리기 쉬운 맞춤법이나 표현 같은 것을 명확히 판결해주는 '사전'의 역할에 충실한 책이지 싶었는데, 읽어보니 단순히 그런 것만 다루는 것이 아니고 단어나 표현의 어감이 주는 느낌이 다른 경우나 전혀 헷갈리는 단어는 아니지만 문학적인 느낌이 비슷하면서도 다른 경우, 그리고 영어를 한글로 번역하는 경우 같은 단어로 번역되지만 언어에 따른 미묘한 어감의 차이가 있는 경우처럼 다양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가나다 순으로 편집되어 있어 나중에 다시 찾아보기를 할 때, 쉽게 해당 항목을 찾아볼 수 있도록 되어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아쉽다. 이렇게 목차를 구성하니 아이러니하게도 여기에 포함된 내용의 선정 기준이 애매하다. '가르치다와 교육하다' 처럼 대체적으로 같은 의미처럼 사용되지만 사실은 다른 의미인 경우, '엄마와 어머니'처럼 어감이 다른 경우, '책임과 리스판서빌러티'처럼 한글과 영어의 차이, '다리와 터널'처럼 서로 상관없는 것처럼 보이는 단어의 비교 등이 무작위로 되어있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하게 전달되지 않는다. 다음 개정판이 나온다면 수록된 단어나 표현에 대한 명확한 분류 기준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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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으로 살다 - 짧지만 강렬하게 살다 간 위대한 예술가 30인의 삶과 작품 이야기
케이트 브라이언 지음, 김성환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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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가 중에는 유독 요절한 이들이 많다. 그리고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죽은 후에 훨씬 더 큰 명성을 얻었다. 천재들의 요절과 명성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저자는 그 관계는 만들어진 신화라고 말한다. 때이른 죽음과 엮인 인연으로 예술가는 신격화 되었을 지 모르지만 그로 인해 오히려 예술가와 그들의 작품을 그 자체로 보기 어렵다고 말한다. 저자는 만들어진 신화를 해체하여 위대한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품에 새로운 '사후 생명'을 부여함으로 그들이 예술사에 진정한 자리매김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사실 유명한 예술가들을 떠올려보면 그들의 작품도 작품이지만 파란만장한 삶이 먼저 생각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러니까 그들 삶의 일부분이 너무나 유명해져서 예술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아는 그런 것 말이다. 예를 들자면 빈센트 반 고흐나 모딜리아니, 툴루즈로트렉 같은 이들. 저자는 이들의 삶과 작품으로부터 신화적 요소를 벗겨내고 싶어한다. 그렇게 요절한 예술가들 30인의 삶과 작품을 우리 앞에 가져다 놓았다. 요절의 기준은 40세 초반까지로 잡았으며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 화가로 불리던 라파엘로부터 2019년에 죽은 현대 예술가까지 시대를 불문하고 예술적 유산으로서의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30인을 선정했다. 대부분이 화가이지만 사진 예술가들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


   저자의 글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아무리 대중을 독자로 한 교양미술서라고 하더라도 가끔은 지루하기도 하고 너무 학구적으로 파고들어 힘들게 하거나 아니면 너무 가벼운 가십거리로 둔갑시켜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 책은 둘 다 아니다. 예술가들에게 충분한 경외감을 표하면서도 글이 마치 재미있는 소설처럼 술술 읽힌다. 이미 알고 있는 화가들 뿐만 아니라 처음 들어보는 현대 예술가들을 다룬 부분(나는 현대미술에 큰 관심이 없어 현대 미술 특히 20세기 후반의 예술가들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거의 없다)도 몰입도가 굉장했다. 심지어 그들에 대해 마구마구 검색하게 만들었다는. 이 책에 대한 찬사는 저자에게만 돌아가서는 안될 듯 하다. 번역하신 분에게도 마땅히 감사하지만 거기에 더해 추천사까지 훌륭하다. 나는 보통 책에 실린 추천사 같은 건 잘 읽지 않는데, 책의 첫머리에 실린 추천사조차 혜자스럽다. 특히 아프리카의 특별한 시간 관념인 '사샤'와 '자마니'의 개념은 이 책을 읽기 전부터 예술 수호자들이 가져야 마땅한 태도를 짚어준다.


   30인 한 명 한 명의 이야기가, 그들의 짧지만 강렬했던 예술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예술은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내 취향이 아니더라도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작품에 시선을 두게 된다. 흔히 농담처럼 '짧고 굵게' 사느냐 '가늘고 길게' 사느냐를 이야기하는데, 의도이건 의도치 않았건 간에 '짧고 굵게' 살다간 30인 예술가들의 유산은 길게 이어지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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