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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의 시간 - 100곡으로 듣는 위안과 매혹의 역사
수전 톰스 지음, 장혜인 옮김 / 더퀘스트 / 2023년 4월
평점 :
요즘은 모르겠지만 나 어렸을 때는 가정에서 피아노를 교습하는 곳이 꽤 많았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제대로 된 교습소는 아니었을 듯 하고 그냥 그 시절 많은 아이들이 그런 피아노학원에 다녔었다. 집집마다 피아노 있는 집도 꽤 있었을 것이다. 피아노는 그렇게 큰 덩치를 지녔음에도 흔한 악기였다. 오히려 아이들이 플룻 같은 걸 배운다고 하면 경탄의 시선으로 바라보았지 피아노는 그런 수준이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 역시 피아노를 조금 배우기는 했지만 난 손에 땀이 많이 나는 체질이라 손으로 하는 무언가를 오래 붙잡고 있지는 못했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피아노를 위한 연주곡 100곡을 통해 피아노의 역사를 풀어놓은 저서다. 이런 책은 진도는 느리지만 소개된 음악을 한 곡 한 곡 들으면서 읽는 맛이 있다. 어, 피아노는 도대체 언제부터 있었지? 라는 질문을 해 본적이 없어 몰랐는데, 피아노의 역사는 그리 오래 된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바흐 시대까지만 해도 하프시코드였지 피아노가 아니었다. 하이든과 모차르트 시대에 와서야 오늘날 우리가 아는 피아노가 등장한다. 물론 그 당시에도 표준화된 피아노 같은 건 없었고 피아노 제작자에 따라 각기 다른 스타일의 피아노라서 작곡자가 어떤 피아노를 염두에 두고 작곡했는지에 따라 음악의 스타일이 달라졌을 것이다. 하이든이나 모차르트가 지금 자기네들의 곡을 오늘날의 피아노로 연주하는 걸 들으면 좋아할 지 기겁할 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뜻이다.
피아노가 어느 정도 대중화되었던 18세기 후반이 되면 교양있는 가정이라면 무조건 피아노가 있었고 젊은 여자들은 피아노를 연주할 줄 아는 것이 필수일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그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같은 걸 보면 자녀들 중 한 명이 연주를 하고 가족들이 노래를 하는 모습이 많이 등장한다). 하지만 피아노의 표현력이 다양해지고 메커니즘이 발전한 건 19세기에 접어들어서라고 한다. 그 때 쯤이면 작곡가들 사이에서 피아노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게 되고 중요한 악기로 자리잡게 된다. 그러다가 20세기는 피아노가 도전을 받는 시기가 되는데 이는 피아노가 굳이 가정에 없더라도, 연주회장에 가지 않더라도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방법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중음악이 발전하게 되면서 클래식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지는 것도 한 몫했을 것이다. 하지만 피아노는 죽지 않았다. 블루스, 경음악, 재즈 등의 다양한 실험적 음악이 등장하면서 피아노는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된다. 그런데 현대로 와서 컴퓨터 기술을 사용한 음악이 등장해 피아니스트는 만들 수 없는 효과를 내게 되면서 피아노의 미래가 위협받고 있다.
시대별 피아노의 발전에 따른 음악의 변화와 발전상이 흥미롭게 기술되어 있어 피아노를 직접 연주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특히 소개된 음악들과 함께 읽기를 추천한다.
*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 발견! 보통 우리가 요한 세바스찬 바흐를 '음악의 아버지'라고 알고 있는데 이런 말이 등장하게 된 근거가 늘 궁금했다. 찾아봐도 그저 바흐가 위대하기 때문에 정도라고 밖에 나오지 않았던 듯. 그런데 이 책에 보니 모차르트가 "바흐는 아버지이고 우리는 아직 어린애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더더 놀라운 사실은 모차르트가 언급한 바흐가 우리가 알고 있는 요한 세바스찬 바흐가 아니고 그의 둘째 아들인 카를 필리프 에마누엘 바흐라는 사실! 18세기 후반에는 아들 바흐가 아버지 바흐보다 유명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