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어떻게 정리정돈을 돕는가 - 정리되지 않는 인생을 위한 철학의 조언
이나 슈미트 지음, 장혜경 옮김 / 어크로스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질서(Cosmos)와 무질서(Chaos)에 대한 것들을 철학적 사유를 통해서 풀어내는 철학 에세이다. 그런데 어렵다. 이 책을 보게된 이유는 내 주변에 강박적으로 질서에 대해 집착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매우 날카롭고 조직적인 사유를 가지고 있는 이 사람은 자신이 판단력을 심각하게 신뢰하며 늘 모든 현상들을 분석하고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조언하려는 사람이다. 좋은 사람이지만 이러한 습성으로 인해 자신도 주변의 사람도 어렵게 만든다. 옆에 보면서 어떤 질서에 모든 사람들과 현상들을 편입시켜 그것을 통제하려는 그 습성이 너무나도 나쁘게 보였기 때문이다. 나쁘게 보이는 것을 넘어서 어떤 강박관념이 사람들의 자류를 빼앗기까지하는 정신적 폭력으로 까지 비쳐졌기 때문이다. 그러던 차에 이 책 <철학은 어떻게 정리정돈을 돕는가>가 눈에 들어왔다. 일단 이 책의 주제가 코스모스와 카오스, 즉 질서와 무질서를 철학적 사유를 통해서 전개하는 내용이 궁금했다. 살려고 마음먹었다가 근처 도서관에 신간으로 들어왔길래 일단 빌려서 보기 시작했다. 질서라는 뜻의 코스모스는 단순히 우리 주변의 질서뿐 아니라 우주와 나와의 질서로 확장되는 개념이다. 이러한 개념을 매우 예민한 철학적 사유로 전개해 나가기 시작한다. 질서라는 것은 어쩌면 자신의 세계속에 이 모든 세계를 집어 넣으려는 편협한 자기 만족일 지도 모른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이런 맥락에서 이미 19세기 말에, 우리는 항상 가장 비슷하지만 절대 동일시하지 않은 사물들을 동일시한다고 한탄하였다. 우리는 사물들을 패턴과 책장 속으로 억지로 밀어넣는다. 뜻대로 잘 안 되면 새 패턴을 짜는 게 아니라 사물의 모퉁이를 살짝 잘라내고 그 위에 칠을 해 덮어버린다. 그래놓고는 아무리 해도 우리의 정신적, 외적 질서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스스로 의하애한다.

 

이 책의 저자는 완벽한 질서, 코스모스는 하나의 환상에 불과하다고 한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고 모든 자아의 내면이 질서에 순응하는 이 세상이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저자는 무질서의 혼돈을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단호하게 철학적 사유를 키우라고 말한다. 철학적 사유란 어떤 패턴에 정해진 조직적 사유방식이 아니라 이 세상의 현상을 무질서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찾을 뿐 아니라 그 나름의 질서속에 스스로를 편입시킬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말한다. 그리고 그러한 철학적 시각을 가진 관찰자 속에서 그 관찰대상이 되는 사물이나 사람, 그리고 나아가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이점에 대해서 저자는 이렇게 탁월하게 설명한다.

 

지난 세기 양자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Karl Heisenberg는 물리학과 철학의 ‘만남’을 집중 조명하여 이런 사실을 발혀냈다. "자연의 온갖 형태를 만들었고 우리의 영혼, 즉 우리 사고 능력의 구조를 책임지는 것은 동일한 정돈하는 힘들이다.“ 그러니까 몇 십 년 고전물리학이 양자물리학으로 발전하면서 우리도 이미 확고부동한 실체에 대한 우리의 관념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관계 속에서 생각하는 법을 배우고 그에 따라 사물들의 관계를 맺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관찰자는 관찰 대상을 변화시킨다. 이 역시 과학의 세계를 뛰어넘어 사고 전환을 이루어낸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가 밝혀낸 중요한 깨달음이다. (p.44)

 

이 책을 읽으면서 질서와 무질서에 대해서 이렇게 집요한 사유가 가능하다는 것이 놀라웠다. 세계는 코스모스지만 무수히 많은 카오스가 존재한다. 개별적 카오스들은 어쩌면 전체적 코스모스 속에 편입되어있는 지도 모른다. 카오스를 혼돈스럽게 여기지 말고 그것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약동하는 운동의 힘에 맡긴다면 그것들을 자연스럽게 코스모스의 질서속에 들어가게 된다고 한다. 이 책의 설명을 들으면 현대 철학의 첨예한 담론인 차이와 동일자 이론이 생각났다. 현대 시대의 우울과 파괴는 주체가 모든 차이의 타자들을 동일성이라는 질서에 편입시키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철학자들은 진단했다. 그래서 현대 시대의 문제점을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모든 것을 ‘동일성’이라는 질서에 편입시키려는 폭력이라고 보고 ‘차이’에 대한 이론을 만드는데 현대철학이 집중하지 않았나 싶다. 주체와 타자의 차이는 결국 카오스와 코스모스와 일맥상통한다. 주체의 입장에서 모든 타자는 카오스이다. 그러나 주체로써의 타자는 카오스가 아니라 코스모스이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결국 전체 질서를 위한 최소한의 배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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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모노로그 2012-10-26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에서 빛이나요 ㅎㅎㅎ이글보고 천장지구가 떠올랐던 것도 기억이 나네요 ㅎㅎㅎ
글 보고 누구신지 알았네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