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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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 아시아에서 더럽게 부자 되는 법
모신 하미드 지음, 안종설 옮김 / 문학수첩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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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신 하미드'는 『주저하는 근본주의자』에서, 내가 되고 싶은 나와 본연의 나는 다르다고 말해서 사람 가슴을 찢어놓더니, 이 작품에서도 결국은 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 아니, 그 얘기를 하려던 게 아니었는데 내가 그렇게만, 그것만 받아들인 것 같다. 처음엔 묵직한 작품이 아니잖아? 하고 설렁설렁 읽다가, 결국 또 가슴이 뜯겨져나가 버렸다 ㅠㅠ 페이퍼로 길게 막 쓰다가, 너무 구질구질해져서... 간단하게, 내 가슴 찢어졌다고만 말하련다 ㅠㅠ



다 읽고나니, 내가 나를 다시 보게 된다. 본연의 나를 더 깨닫게 되고, 내 위치를 새삼 알게 됐달까. 나에게도 '내가 되고 싶은 나'가 있었다.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예쁜 여자'가 내가 맡고 싶은 역할이었고, 그리고 그것이 가능할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을 다 읽고나니, 그것은 한낱 나의 바람이었을 뿐이고, 내가 지금 맡은 역할은 고작해야, 안 되는 걸 바라다가 포기하고 옆으로 돌아눕는, 이 책 속에서 남자의 '아내' 였달까. 나는 내가 되고 싶은 내가 될 수 있다고 믿었는데, 아니었다.


결국 아내는, 자신의 사랑을 놓는다. 


사랑이 무서운 지점은 바로 여기다. 엄청나게 뜨겁고 영원할 것 같았던 사랑도, 멀어지기도 하고 희미해지기도 하고, 그러다 영영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 남편은 뒤늦게 그것이 자신에게서 떠난 걸 알고 찾아보려 하지만, 안녕, say goodbye. 



마침, 어제 삼겹살 먹으러 가는 길에 들었던 노래, '일기예보'의 <떠나려는 그대를>이 생각난다. 







슬퍼서 더는 리뷰를 쓸 수가 없다.
하아- 오늘도 술을 마셔야겠다.....





"네 말소리에 엄마가 깨지 않으셔?"
"나 지금 옥상이야."
당신은 잠시 생각해본다. 그녀가 혼자 옥상에 앉아 있는 모습을 떠올리니 숨이 멎을 것 같다. (p.55)

"너야?" 그녀가 묻는다.
당신이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그녀는 당신을 와락 끌어안는다.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느닷없이 뜨거운 포옹을 나누려니 무척 당황스럽지만 짜릿한 흥분이 밀려오는 것도 사실이다. 그녀의 감촉이 달빛이 내리비추던 옥상을 떠오르게 한다. 수백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녀가 당신의 뺨에 입을 맞추자, 당신은 그녀가 여전히 자기 여자일지 모른다는 희망을 품는다. (p.93)

"결혼은 했어?"
"아니. 너는?"
그녀가 웃음을 터뜨린다. "안 했어. 남자들이 나 같은 여자랑 결혼을 하려고 할지 모르겠는걸."
"나 같으면 할 거야."
"고마운 얘기네. 그러니까 내 말은, 남자들이 나 같은 여자랑 결혼하면 안 될 거라는 뜻이야."
"왜?"
"내가 수시로 변하니까."
"사람은 누구나 변해."
"나 자신도 종잡을 수가 없어."
"알아. 너는 옛날에도 그 동네를 떠나고 싶어 하더니 결국 그 꿈을 이뤘잖아. 이제는 유명한 사람이 됐고." (p.95)

당신은 기다려보기로 한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먼저 전화를 걸어온다. 그렇게 자주는 아니다. 한 달에 한 번 꼴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때로는 밤늦은 시간에 영화를 본 뒤 졸음이 잔뜩 묻은 나른한 목소리로, 이미 술을 한 잔 하고서, 편안하게 침대에 누워 전화를 할 때가 있다. 그녀는 당신을 자기 지으로 초대하지도 않고, 어디서 만나자는 말도 하지 않지만, 이런 식으로 당신, 그리고 당신 인생과 인연을 이어간다. 이것이 때로는 못 견디게 힘들 때도 있지만, 또 때로는 일말의 희망을 주기도 한다. (p.97)

당신은 지금까지 술을 입에 대본 게 딱 두 번이고 취하도록 마신 적은 한 번도 없어서, 나른하면서도 심장이 두근거리는 이 느낌이 낯설기만 하다. 당신과 그녀는 식사를 하고 수다를 떨다가, 다른 손님들에게 방해가 될 만큼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마음이 따뜻해지고 간절한 열망이 피어오르니 그녀와 이토록 가까이 있다는 게 새삼 실감 난다. 하지만 식사가 너무 빨리 끝나고 포도주 병마저 빈다. 이제 곧 오늘의 만남도 끝나겠거니 마음을 다잡고 있는데, 불쑥 그녀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내 방에 한 병 더 있어. 같이 올라갈래?"
"그래." (p.117-118)

이따금 예쁜 여자 생각이 나고, 그녀 역시 마찬가지지만, 그녀는 아내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당신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연락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른다. 당신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연락을 끊고 지낼 때조차, 예쁜 여자는 당신의 인생에 개입한다. 당신에게 진짜 여자는 그녀뿐이어서, 당신의 아내는 가짜 밖에 될 수 없다. 아내를 볼 때마다 그녀가 떠오르는 바람에 당신은 아내에게 온전히 마음을 열 수가 없다. 아내의 웃으소리를 들으며 살을 섞는 순간에도 예쁜 여자의 그림자를 떨쳐내지 못한다. 당신은 아내에게 마음의 문을 닫고 한 발 물러선다. (p.142)

아내와 함께 침대에 나란히 누운 당신은 그녀의 몸에는 손도 대지 않는다. 정전 사태에 대비해 최근 아래층에 설치한 소형 발전기가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목뒤가 자꾸 뻣뻣해지는 탓에 목에 수건을 받치고 누운 당신은, 아내의 사랑이 점점 멀어지고 있으며 그 사랑이 영영 사라지고 나면 그제야 못 견디게 그리워질 거라는 사실을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다. (p.143)

"너야?" 그녀는 전에도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당신은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아에 선 여인을 바라본다.
"그래." 당신이 대답한다.
두 사람 다 말을 잇지 못한다. 천천히 그녀가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녀가 당신의 손을 잡자, 관절에 와 닿는 그녀의 살갗이 매끈하면서도 서늘하다.
"나도 너처럼 늙어 보여?" 그녀가 묻는다.
"아니." 당신이 대답한다.
"거짓말은 못하는 줄 알았는데."
당신이 미소짓는다. "가끔 할 때도 있어." (p.212)

"널 혼자 두고 싶지 않은데." 어느 날 오후, 그녀가 차를 홀짝이는 당신을 향해 중얼거린다.
"걱정하지 마." 당신이 대답한다. 하인도 있고, 세입자도 있고, 전화로 아들과 통화할 수도 있다고 덧붙이고 싶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p.228)

약은 그녀의 고통을 조금씩 분산시켜주기는 하지만 덜어주지는 못해서, 그녀의 마음속에는 그만 떠나고 싶다는 욕망이 자리잡는다. 마치 흔들리는 젖니를 간신히 붙잡고 있는 것처럼,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자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게 조금 성가시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만 떠나고 싶다는 생물학적 욕구가 밀려드는 순간까지도 그녀가 마지막 기운을 짜내어 고개를 들고 당신에게 미소를 짓거나 손을 붙잡는 것은, 지나간 과거에 대한, 달리 표현하면 사랑에 대한 눈물겨운 배려다. (p.228-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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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16-11-11 1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신 하미드의... 소설이었어요???
가슴을 찢는...?
제목 때문에 몰라봤어요

다락방 2016-11-12 12:31   좋아요 0 | URL
네, 이것은 소설인 것입니다!!!!! ㅎㅎ

책읽는나무 2016-11-11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 저두 소설인줄 몰랐네요?
자기계발서 비슷한건줄 알았어요
리뷰를 못쓸만큼의 소설이라???
음~~~

다락방 2016-11-12 12:32   좋아요 0 | URL
읽고나서 가슴이 막 찢어졌어요 ㅜㅜ 휴- 힘들었답니다 ㅜㅜ 이젠 기운 나는 책 읽으려고요 :)

2016-11-11 2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12 1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