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안면인식 장애가 있다. 뭐 이게 크게 부끄럽지는 않다. 물론 난감한 일은 많다. 지금 내가 하는 일에서는 얼굴을 기억해야 할 일이 많은데 그걸 제대로 못해서 동료직원에게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다는 점. 그러니까 누군가 방문하면 나는 동료 직원의 얼굴을 보고, 그 직원은 내게 입모양으로 누구라고 말해준다. 부끄럽다. 이 인식 장애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서 작동하지 않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나는 연애하는 남자의 얼굴도 만나기 직전까지는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가장 심각한건, 첫키스 상대에 대해서인데, 정말 미안하게도 그의 얼굴이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심지어는 헤어스타일도, 얼굴 형태도.. 미안한데, 이름도 생각안난다. 참 이상도 하지. 그날 했던 대화와 장소 손짓과 몸짓 날씨까지 다 생각나는데 그 남자의 얼굴과 이름만이 까맣다. 그래서 나는 두렵다. 혹시라도 길을 걷다 우연히 첫키스 상대를 만났는데 그가 내게 아는척을 해오고, 나는 그를 기억하지 못할까봐. 그래서 내가 누구시더라? 라고 했을 때 이름을 말할까봐. 이름을 말해도 내가 기억을 못해서 저 기억이 잘..이라고 했을 때 너 나랑 첫키스 했잖아, 라고 할까봐. 아, 생각만 하도 끔찍하다. 젠장. 내가 주책이지, 그것이 첫키스라고 왜 말했을까. 머저리.
나는 여자사람 친구도 오랜만에 만나면서 알아보지 못했었다. 모르는 여자에게 가서 반갑다고 어깨를 친 것. 그 여자 옆에는 남자친구로 보이는 사람이 서있었는데, 남자친구를 데리고 나온 줄 알았다. 여자가 계속 나를 모른척 하길래 너 왜이래, 하면서 큰소리까지 쳤는데 그때 그 여자가 자신의 남자친구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이여자 미쳤나봐.."
orz
나는 뭔가 잘못됐다는 걸 인식하기 시작했고 잠시후에 내 친구가 도착해서 여기서 뭐하냐고 해서 그 여자한테 죄송합니다 하고 돌아섰다.
안면인식 장애라는 단어를 뒤늦게 알게되고 나는 그런 장애가 없다고 굳게 믿어오다가, 그리고 첫키스 상대를 기억 못하는건 심리적인 거라고 생각하다가, 오, 나는 케이트 블란쳇과 틸다 스윈튼 때문에 비로소 내가 그 장애가 있음을 인식했다.
난 이 둘이 한명인줄 알았다. 나니아 연대기에 나온 하얀 마녀와 반지의 제왕의 요정이 같은 인물인줄 알았다. 그래서 이 여자는 이런 역을 즐겨하는군, 하고 말았더랬다. 그러다가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보고 나와서 동행이 그 둘이 닮았더군요, 하는데 나는 깔깔 웃으며 닮은게 아니라 분장을 잘한거죠. 한명이에요. 라고 거침없이 답한거다. 그럼 1인 2역이에요? 라고 묻는 동행에게 그렇다고 답했다. 대체 어디서 그런 근거없는 확신을...orz 동행은 그런 정보를 들은 적이 없다고 했는데, 나는 아마도 영화의 재미를 위해 비밀로 한게 아닐까요, 라고 말한거다. 머저리.. 그리고 그걸 확실히 해주기 위해 다음날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나는 이 둘이 전혀 다른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들은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다. 맙소사. 나 그렇게 잘난척 했는데..어쩌지.
백화점에 가서 남성 향수를 구입할 일이 있었다. 나는 매장 직원에게 향수를 시향하고 싶다며 이렇게 말했다. 요즘 에단 호크가 광고하는 다이아몬드 향수요, 라고. 그러자 매장 직원은 아, 조쉬 하트넷이 광고하는 거요? 하는거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조쉬..하트넷 이라고?
난 이 둘이 따로 있으면 구분할 수 없다. ㅜㅜ 틸다 스윈튼과 케이트 블란쳇도 마찬가지. 언젠가 친구가 대화하다가 제시카 알바와 안젤리나 졸리를 구분할 수 없다고 해서 내가 깔깔대며 비웃었던 적이 있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그런데 그 친구는 케이트 블란쳇과 틸다 스윈튼을 구분할 수 있었다. 아, 나란 인간은 정말.
며칠전에 화창한 오전, 나는 길을 걸으면서 문득 나탈리 포트만이 주연한 영화 『블랙 스완』이 생각났다. 흑조로 변신해 완벽하게 춤을 추고 자랑스런 표정과 몸짓으로 무대 뒤로 들어가던 그 장면. 그때 뱅상 카셀에게 키스했었지. 하고 뱅상 카셀을 자연스레 떠올리는데, 아, 나는, 김갑수의 웃는 표정만 생각났다. 나에게 뱅상 카셀은 김갑수였다.
나를 어쩌면 좋아. 나는 사람을 두번째와 세번째 만날때가 두렵다. 내가 알아보지 못할까봐. 나는 부디 상대가 먼저 나를 알아봐주기를 바란다. 나는 진짜로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건 내가 상대를 좋아하고 싫어하고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냥 나는 그런 장애를 가진 것 뿐이다. 나는 내가 얼굴을 알아봐야 하는 상황이 두렵다. 하아-
문제는, 내 얼굴은 기억이 잘 되는 얼굴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내 얼굴을 기억을 잘한다. 나는 기억을 못하는데 사람들이 잘해서 .. 당황스럽다. 특히 음식점 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환상의 기억력을 가지고 계신다. 그 기억력과 나의 얼굴이 만나면 시너지 효과가 작렬하는데, 한두번 간 음식점 에서도 나를 알아보고 심지어 어느 자리에 앉았는지까지도 기억하는 것이다. 백화점 매장 직원들도 마찬가지. 지난번에 이 향수 시향하셨잖아요, 라고 아는척을 하는데 내게 그 직원은 낯.설.다. 미안할 따름이다..
페이퍼에 두번이나 이름을 넣어줬건만 댓글 한번 달지 않는 임지규는 이제 무시하기로 했다. 역시 송편이 짱이다 싶어서 아까는 문득 검색창에 김석훈을 넣고 검색해봤다. 그러고보니 나는 일전에 연극 [밤으로의 긴 여로]를 관람했던 바, 김석훈을 실제로 본적이 있구나. 그걸 이제서야 깨달았다. 하하. 뭐 그게 중요한건 아니고, 김석훈을 검색했는데, 오, 놀랍다. 그의 전공은 연극인데 특기가 발레와 현대무용이란다! 대체 이남자는 어떤 삶을 살았던 거지? 어떻게 발레와 현대무용을 하는거지? 전공은 연극이고? 아 멋져. 짱이네. 이런 남자라니..대단하다. 하버드 법대와 발레전공은 나의 로망인데..
금요일밤에는 A,B,C 군을 만나기로 했는데 A,B 군과는 몇주전에 미리 약속을 잡아놓은 상황. C 군은 오늘 듣게 됐다. 넷이서 다같이 메신저로 대화를 하는데 C군에게 내가 그랬다. 야, 우리 넷이 만난다. 너 없을때 우리끼리 정했어, 라고. C군은 언제냐 물었고 금요일 밤이라 답했더니 황금시간대군, 이라고 답한다. 그러더니 이렇게 말했다.
골든 타임에 골드 미스를 만나는군
하하하하 나는 또 완전 뿜어가지고. 모두가 대화에 참여하고 있다가 A 형(brother)은 피씨를 재부팅한다고 잠깐 나갔다 온다고 하고, B 군은 전화통화를 하는 상황, 대화창에는 C 군과 나만 남았다. 내가 말했다.
우리 둘 뿐이군.
그러자 C 군이 말했다.
두려워. 이럴때가.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다들 돌아와 다시 대화를 하고 최종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나니 C 군에게 말했다. C군아, 이제 그만 나랑 결혼하자, 라고 말했더니 C군이 싫다고 말한다. 그래서 나는 C 군에게 다시 말했다.
너 젊었을 때 나 좋아했잖아. 그때를 기억해봐.
그러자 C 군은 이렇게 말했다.
그러기엔 너무 돌아왔어요, 누나.
나는 또 말했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내가 도와줄게.
옆에서 B 군이 도와준다.
그래, 이제 락방 누나한테 너 자신을 던져.
ㅎㅎㅎㅎㅎㅎㅎ 나는 금요일밤, C 군에게 집에 들어갈 생각 하지 말라고 말했다. 하하하하. 애들(이라고 했지만 한명은 나보다 위)하고 대화하다가 너무 웃겨서 아, 니네는 정말 너무 또라이들이야. 라고 말하자 B군이 말했다.
누나가 최고야. 누나가 늘 짱이었어. 또라이 짱.
잠시후에 B 군이 C 군에게 너 락방누나랑 사랑해라, 라고 했더니 C군이 말했다.
손 떠는 중....
이 책을 읽고 있는데, 어휴, 코맥 매카시 다음에 읽기에는 정말 적절하지 않은 책이다. 의욕은 앞서지만 너무나 뻔한 글들의 모음이랄까. 어떻게 이렇게 뻔할까 싶어서 리뷰들을 찾아보니 다들 좋다고 말한다. 오, 나 혼자 뻔하다고 생각하는구나. 뭐, 어쩔수 없지.
다 읽고 덧붙인다. 마지막 두편의 단편은 뻔하지 않았을 뿐더러 꽤 좋기까지 했다.
앗. 내일 금요일인줄 알았는데 목요일이네 ㅜㅜ 어쨌든 그래도 시간은 참 잘도 흘러간다. 상반기 결산..하는 페이퍼 하나쯤 써야 할 타이밍인 것 같군아.
그리고 지난번에 LOVE VIRTUALLY 에서 못 찾았던 문장을 찾았으니, 마지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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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 teases me, irritates me-at times I could boot her into cyberspace, but then I'm just as eager to get her back again. I need her here on earth, you see.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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