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 소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6
앨리스 먼로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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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삶을 위대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인류의 위대한 지성이라 불리는 작가, 사상가, 학자의 죽음의 순간을 재구성한 미셸 슈나이더 『죽음을 그리다』를 보면 그들의 유언은 소박하다 못해 원초적인 감각을 좇는 모습으로 덩그렇다. 우리는 모두 한 사람으로 살다가 아무것도 아닌 상태로 돌아간다. 시공간이 다를 뿐 우리 삶은 그래서 본질은 비슷하다. 소문과 폭력과 억압이 가득했던 소설 속 소도시 핸래티는 특별한 곳이 아니다. 1970년대에도,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는 인간이 꾸리고 사는 장소다. 저마다의 아랫도리가 내는 목소리, 폭발적인 순간뿐만 아니라 은밀한 한숨이나 으르렁거림이나 애원이나 단순한 진술까지도 익숙해지고, 지나가는 여자들을 보면서 목적 없는 음담패설을 주고받는 핸래티의 풍경이 낯설기만 한 사람이 있을지. 비교하고 비교 당하며, 폭력을 당하고 폭력에 동조하기도 하면서, 우리는 자신을 만들고 허물기를 반복한다. 거지 소녀에서 기꺼이 다시 거지 소녀로 돌아간 로즈처럼. 왜? 우리 삶은 배우고 버리는 끝없는 과정이기 때문에. 그러나 이 소설에서 자주적으로 허물어지는 걸 선택한 사람은 로즈가 유일하다. 로즈의 아버지를 도피처로 생각하며 결혼한 의붓어머니 플로, 다시는 학생들을 보지 않아도 되고 스펠링 책을 들추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교직 생활을 한 선생, 가난을 그저 불우함이나 결핍 정도로 생각하며 가난한 여학생들에게 자선을 베풀며 품위 있는 중산층 생활을 유지해온 독신녀 헨쇼 박사, 물질적 풍요가 있으니 거짓 유대조차 없이 악의로 서로를 대하던 패트릭의 가족, 가족의 부와 속물주의를 비판했지만 자신도 마찬가지 생활을 꾸렸던 패트릭, 사람들의 통념을 깨려 하고 비웃었지만 남편 클리퍼드의 성공으로 자신의 삶을 채우려 했던 조슬린 등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 현실 세계의 우리는 서로에게 착취적이고 기만적이다. 패트릭의 열정을 받아준 것처럼 자조했지만 로즈도 가난하고 혼란스러운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결혼으로 도피했을 뿐이었다. 단지 가난의 문제가 아니었다. 시골 수재로 장학금을 받고 대학을 갈 정도의 지성을 갖춘 로즈였지만, 교내에 생리대가 떨어진 것만으로 풍기 문란죄로 범인을 색출하려 했던 핸래티 학교, 도덕을 핑계로 술에 취한 청년들이 노인을 찾아가 집단 폭행해 숨지게 만드는 사건 등을 보면 그녀도 마을 정서, 피로, 교활함, 기만성, 심술처럼 어떤 계층의 공통적인 성향 같은 것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아버지의 ‘장엄한 매질’ 속에서도 공포와 매혹을 느꼈던 그녀가 스스로의 균열을 도모한 중대 사건이 성적 일탈이나 외도 등이었던 걸 보면 말이다. 로즈가 클리퍼드에게 끌린 것도 계층의 공통적인 성향(‘둘 다 의뭉한 물건들’) 때문이었다.

 

“당시에 그녀는 술집을 드나들지 않았다. 진정제를 복용하지 않았고, 갖고 있지도 않았으며, 그것에 대해 알지도 못했다. 어쩌면 그때는 그런 게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 괴로움. 그건 무엇이었을까? 모두 낭비였을 뿐,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했다. 너무도 불미스러운 슬픔. 짓밟힌 자존심과 웃음거리가 된 환상. 마치 망치를 들고 의도적으로 제 엄지발가락을 박살 낸 것과 같았다. 그것이 때로 그녀가 하는 생각이다. 다른 때 드는 생각은, 그것은 꼭 필요한 사건이었다는 것, 파괴와 변화의 시작이었으며, 패트릭의 집에 머무르지 않고 지금 있는 곳에 오게 한 과정의 시작이었다는 것이다. 으레 그러하듯, 인생은 작은 효과를 위해 엄청난 소동을 피우는 법이다.”(「장난질」, p237)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는 게 대단한 일탈이고 금기를 깨는 행위처럼 여겨지는 시대, 장소, 나이가 있었지만 인생을 되돌아볼 때 그것은 치기 어린 헛소동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방향 키를 잡지 못하고 그대로 돌진해 자신의 인생을 소진해버리는 이들도 많다. 로즈는 배우라는 직업으로 자신의 페르소나를 적절히 배출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로즈의 모습에서 시골 여자의 특징을 읽어내고 첫 캐스팅된 일화처럼 로즈는 자신의 치부를 배우라는 가면 속에 숨기고 또 드러낼 수 있었다. 그러나 적절하다는 건 어디까지일까?  현실 속 로즈의 모습을 누구도 제대로 볼 생각이 없다.

 

“시기나 하는 빌어먹을 기득권층.

로즈는 그 말을 들었다, 혹은 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경멸이 담긴 시선으로 그녀를 흘낏 보았다, 혹은 그랬다고 생각했다. 그들을 바로 보지 못했으므로. 기득권층. 그것이 로즈였다. 그런가? 로즈가 기득권층인가? 배우 일로는 먹고 살 수 없어 교직을 택했고, 무대와 텔레비전에서의 경력 덕분에 교직을 구할 수 있었으나 학위가 부족해 급여가 깎인 로즈가? 그녀는 그들에게 다가가 그런 말을 하고 싶었다.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싶었다. 일을 해온 오랜 세월, 피로, 출장, 고등학교 강당들, 긴장, 지루함, 다음 급여는 어디에서 받게 될지 모르는 형편. 로즈는 자신을 용서하고 사랑하고 같은 편으로 받아달라고 그들에게 간청하고 싶었다. 자신의 주장을 지지한 거실의 무리가 아니라 이 사람들의 편에 속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선택은 원칙이 아니라 두려움에 의한 것이었다. 그녀는 그들이 두려웠다. 그들의 박절한 도덕관념과 냉정하고 경멸이 서린 얼굴, 그들의 비밀과 웃음, 음담이 두려웠다.”(「사이먼의 행운」, p288)

 

 

 

사실 우리는 모두가 모두에게 그렇다.

 

 

“브라이언은 로즈와 같은 계통의 일을 하는 사람들을 좋게 보지 않는다고, 본인을 면전에 두고 여러 번 말했었다. 하지만 그가 좋게 보지 않는 사람들은 아주 많았다. 배우, 화가, 언론인, 부자(자신도 부자라는 사실은 결코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대학의 예술 계통 교직원 전체, 관련 계층과 범주 전체가 다 쓸데없는 낭비. 죄목은 모호한 사고와 과시적 행동, 부정확한 말, 도를 넘는 방종. 그가 진심으로 하는 말인지 누이 앞에서 일부러 하는 말인지 로즈는 알 수 없었다. 브라이언이 경멸조의 낮은 목소리로 미끼를 던지면 그녀는 덥석 물었다. 남매는 싸웠고 누이는 눈물을 머금고 그 집을 나왔다. 그런데 로즈는 느꼈다, 그 모든 것의 한꺼풀 아래에서 그들은 서로 사랑한다고. 하지만 그들은 아주, 아주, 오랜 경쟁─누가 더 나은 사람인가? 누가 더 좋은 직업을 선택했는가?─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들은 무엇을 갈구한 것일까? 그것은 상대방의 인정, 아마도 둘 다 기꺼이 줄 의향은 있지만 아직은 아닌 인정이었다.”(「스펠링」, p323~324)

 

로즈의 존재를 알아봐 주고 그녀가 인생의 진정한 동반자로 생각한 사이먼과의 어이없는 사별도 삶이 잘 안 풀리는 사람들의 클리셰이기도 하지만 이 일은 그만큼 자주 일어나고 이미 늦을 때가 많다. 어린 시절 흉내를 잘 내던 랠프 길레스피와 만났을 때도 그녀는 동류의식을 느꼈다.

 

“그는 분명 무언가를 바랐다. 하지만 그것을 얻기 위해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를 보고 소년처럼 수줍어하고 환심을 구한다고 느꼈던 첫인상은 수정되어야 했다. 그것은 그의 껍데기였다. 그 껍데기 아래에서 그는 자족적이었고 당혹감 속에서 사는 삶을 받아들였으며 어쩌면 긍지를 느끼는 것도 같았다. 그녀는 그가 바로 그 차원에서 말을 건네주길 바랐고 그 자신도 그러기를 바란다고 생각했지만, 무언가가 그들을 막았다.

그러나 뭔가가 부족한 듯했던 이 대화를 나중에 떠올렸을 때, 로즈는 두 사람 사이에 우애가, 공감과 용서가 흘렀다고, 비록 분명 누구도 그런 말을 입에 올리지는 않았지만 그런 감정이 물결이 되어 흘렀다고 회상했다. 그녀가 늘 떨쳐내지 못했던 이상한 수치심이 누그러진 것 같았다. 연기를 할 때 그녀는 자신이 허튼 것에만 주목하고 우스꽝스러운 장난만 전달했던 건 아니었을까, 항상 그 이상의 어떤 것, 섬세한 결이나 깊이나 빛 등이 있는데 자신은 그것을 포착하지 못했고 그러려고 하지도 않은 건 아니었을까 생각하며 수치심을 느꼈다. 그리고 그런 의심은 비단 연기와 관련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때까지 해왔던 모든 일이 때로는 실수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랠프 길레스피와 이야기하고 있을 때처럼 강렬했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나중에 랠프에 대해 생각할 때는 자신의 실수들이 모두 하찮게 느껴졌다. 그녀 역시 그 시대가 낳은 자식이었으므로 랠프에 대한 느낌이 단순한 성적 호기심이나 정감이 아닌지도 생각해보았지만, 그런 건 아니라고 판단했다. 번역을 통해야만 말해질 수 있는 감정들이 있는 것 같았다. 아마도 그 감정들은 번역을 통해야만 행동으로 옮겨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에 대해 말하지 않고 그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 것이 올바른 길이다. 번역은 의심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위험하기도 하고.”(「넌 도대체 네가 뭐라고 생각하니?」, p367)

 

 

이 소설에서 로즈는 의붓어머니 플로와 학교 선생에게 “넌 도대체 네가 뭐라고 생각하니?”란 훈계를 듣는다. 사랑과 관계가 강요와 책임으로 자주 변질하듯이 한 사람의 정체성도 상대에 따라 사랑스러운 거지 소녀가 되기도 하고 경멸스러운 기득권층이 되기도 한다. 얼마나 잘 나갈 수 있는 존재인지 증명해야만 하는 관계도 있고, 변함없이 잘해줘야 하는 역할을 요구받을 때도 있다. 내가 누구인지 이야기에 담지 않아도 번역하지 않아도 행동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도 있다. 로즈는 랠프 길레스피를 통해 그런 관계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결혼 같은 관습도 인연의 절차도 필요로 하지 않으면서 이해할 수 있는 관계!

플로가 묵고 있는 요양원에서 노인들이 아이 때처럼 스펠링 맞추기를 하는 모습이 나온다. 단어가 되어 의미가 되기 전의 스펠링. 스펠링은 아직 미래가 비밀스러운 인간의 아이 때 모습이기도 하다. 노인은 많은 스펠링이 담긴 책처럼 완성된 것인가. 잘못된 지식과 편견과 실패와 악의로 가득하다면 그 책을 누가 볼 것인가! 그러나 삶은 되돌릴 수 없다고 해서 실패한 것은 아니다. 먼로에 의해, 로즈에 의해 드러난 이 책의 많은 인간 군상들이 그것으로 모두 설명될 수 없다. 우리는 스스로도 자신을 다 말하지 못한다. 우리는 증명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사는 존재다. 우리의 모습, 시선, 마지막 말 모두에 우리 자신이 담겨 있다. 어쩌면 그게 다 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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