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원 아침달 시집 2
유진목 지음 / 아침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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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흑백사진이 49페이지에 걸쳐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한 사람의 일생 혹은 여러 사람의 인생이 겹쳐 있다. 마지막 두 장은 종려나무 사진이다. 그리고 시가 이어진다.

 

 

 

 

21

종려나무가 있었다.

그는 이 땅에 살면서 많은 일을 겪었고, 그중에 어떤 시간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 시간에 그는 자주 고개를 숙였고, 남몰래 주먹을 쥐었고, 그러다 하품을 하였고, 이대로 끝이 난다 해도 어쩔 수 없다고 여겼다. 그는 지루함을 견디며 종려나무 사이를 옮겨 다녔다.

다른 것이 아닌 그는 종려나무인 것이 좋았다. 길고 가느다란 잎과 뾰족한 끝이. 찌르기 전에 꺾이는 무력함이. 천천히 말라가는 목숨이. 때로 휩쓸리는 삶이. 여럿이 모여 있으면 징그럽기도 한 것이 좋았다.

바람이 불지 않을 때도 그는 어깨를 움직여 그것을 흔들어 보았다. 그러면 사람들은 바람이 부는 줄 알았다. 그는 사람들을 속이며 계속해서 종려나무 사이를 옮겨 다녔다. 어떤 사람은 종려나무 아래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어떤 사람은 휘파람을 불었고, 어떤 사람은 그대로 잠이 들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체로 그가 거기에 있는지도 몰랐다.

마찬가지로 그는 불면에 시달렸다. 뒤척이다 뒤척이다 가까스로 잎사귀를 모으고 잠이 들었다. 그럴 때 함께 밤을 지샌 바다도 그랬다. 뒤척이다 뒤척이다 나중에는 돌아누울 힘도 없어 보였다. 그는 바다에 있을 때보다 산에 있을 때 자신을 건강하게 여겼다. 다시 한번 떠나기에 앞서 깊은 숨을 쉬었다. 그는 잠자코 서서 바다의 종려나무에서 산의 종려나무로, 낮의 종려나무와 밤의 종려나무 사이를 옮겨 다녔다.

(시 전문)


   
이 시집을 읽으며 다른 종려나무 그림자가 내게 드리워졌다. 왕가위 감독의 《아비정전》(1991).

어렵게 찾아갔는데도 친어머니가 만나는 걸 거부해 돌아가던 아비. 아비는 종려나무숲을 한참 걸으면서 친어머니가 궁금해할 자기 얼굴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결코 뒤돌아보지 않는다. 이 애증의 시퀀스와 묘하게 어울리는 시가 이 시집에도 있다.
   
   

24

어머니, 하고 부르자 그는 다시 돌아온 것 같았다.

어머니는 베란다에서 벤자민에 물을 주고 있다. 나는 어항의 물이 줄어든 것 같아 조바심이 났다. 어머니, 물이 줄어든 것 같아요. 어머니는 벤자민에 주고 남은 물을 어항에 따랐다. 어항에 손대지 말라고 했지. 손자국이 남잖니. 나는 한 걸음 물러섰다.

어머니의 벤자민은 길고 두껍고 무성했다. 어쩜 이렇게 잘 자랐을까요? 별로 해 준 것도 없는데 그래요. 어떨 땐 좀 징그럽더라구요. 그래요? 어떨 땐 그래요. 마냥 좋지만은 않아요. 나는 벌써 얼마나 죽였는지 몰라요. 벤자민을 죽인 사람은 나뿐일 걸요. 나도 처음엔 여러 번 죽였어요. 자꾸 죽으니까 싫더라구요. 나한테 무슨 악감정이 있나 싶고 왜 그렇잖아요. 어머니는 벤자민 바구니를 천장에 매달 때 발꿈치를 들어 키를 높였다. 어머니, 제가 걸어 드릴까요? 어머니는 괜찮다고 말한다. 나중에, 나중에 해주렴.

그때는 집에 어항이 있었다. 다른 집에도 어항이 있는 것 같았다. 마지막에 물고기는 한 마리만 남아서 구석에 가라앉아 있었다. 모서리를 두드리면 조그만 입을 뻐금였다. 언제부터 이랬니? 모르겠어요. 이제 곧 죽겠구나.

어머니, 하고 부르자 그는 다시 떠나고 싶었다.

(시 전문)



아비와 친어머니’가 끊을 수 없는 에토스(이 글에서는 ‘어느 사회 집단의 특유한 관습’이라는 뜻으로 씀)적 관계라면, 함께 시계를 보며 1분을 공유한 뒤 짧은 기간 연인이 된 ‘아비와 소려진’은 파토스로 묶인다. 아비에게 버림받고 감정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복도에서 거리에서 서성이던 소려진. 그리고 아비는 그녀에게서도 이 지상에서도 영영 사라진다. 소려진을 사랑했던 경관이 우연히 아비의 임종에 있었던 광경까지 이 시집에도 《아비정전》의 첫 만남부터 이별까지의 다른 버전 같은 시들이 있다.   
   
   
   

28

형광등의 불이 두어 차례 깜빡인다.

제가 고쳐 드릴까요?

그는 고개를 들어 형광들을 바라보았다.

여자는 그런 게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이제 돌아가 달라고 말했습니다. 돌아가요. 다시는 오지 말아요. 그때는 왜 그랬을까요? 그는 싸구려 볼펜의 머리를 딸깍이고 있다.

방은 이따금 어두워졌다가 밝아졌어요.

여자의 인중은 깊고 노여웠습니다.

그런 건 절대로 잊을 수가 없더군요. 갈라진 모양이 불길했어요. 어떻게 하면 자신을 전부 맡길 수 있을까요? 이제 나는 더 이상 줄 것도 없고……. 그는 손이 가는 대로 무엇인가를 그리고 있다. 그런 뒤 비가 왔을 겁니다. 여잔ㄴ 노랗게 질린 얼굴로 울면서 서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여자를 지나쳐 갔어요.

(시 전문)



25

그해 여름에 그는 옆 방에 사는 남자가 궁금했다. 랜드로바 봉투에 든 와이셔츠를 보고 이런 건 이제 필요 없다며 돌려 보내는 걸 본 뒤로

여자는 방에 들어가지 못하고 복도에 서 있었다. 한참을 그러더니 영수는 잘 있어요 하고 울먹였다.

그는 여자가 랜드로바 봉투를 들고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것도 보았다. 플라타너스 아래로 버스가 오고 버스가 가고 여자는 보였다가 안 보였다가

그는 방에 누워 영수는 잘 있어요 하고 말해보았다.

아침에 일어나니 옆 방이 비어 있었다. 그는 그가 영수에게 갔을 거라고 말해주었다. 그러자 영수가 누구냐고 물었다. 그는 모른다고 하고 방문을 닫았다.

어쩌다 미친 연놈을 들여가지고. 씨팔. 문에 귀를 대고 서 있었다.

여름이 끝나면 죽을 것이다.
매미처럼 울다 잠이 들었다.

(시 전문)


 
《아비정전》은 사랑하는 이에게 버림받아 외로움을 겪었음에도 타인에게 같은 아픔을 주며 모두가 징그럽게 모여 있으면서도 무력하고 뾰족한 자신의 잎을 감출 수 없이 종려나무처럼 존재하던 영화였다. 한 시대의 독특한 감수성, 청춘에서 전체 삶으로 확장되는 삶의 고통과 구도적 고행을 보여줬던 왕가위와 또 겹치는 종려나무가 있다. 헤르만 헤세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에밀 싱클레어라는 이름으로 『데미안』을 발표했다. 유명한 작가인 그가 굳이 익명으로 책을 발표한 이유는 자신의 명성과 위치를 내세워 말하기보다 동년배가 말하듯 젊은이들의 정신적 방황을 공감하고 위로하고 싶어서 였다고 했다.
『데미안』에서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는 명문장과, 《아비정전》에서 “세상에 발 없는 새가 있다더군. 늘 날아다니다가 지치면 바람 속에서 쉬곤 한대. 평생 딱 한 번 땅에 내려앉는데 그건 바로 죽을 때지.”라는 명대사는 어떤 흐름을 짐작게 한다. 헤세의 작품은 고독과 허무주의가 짙게 깔려 있지만 1900년부터 죽음에 이른 1962년까지 그가 쓴 3천여 편의 서평과 에세이에서 젊은이의 정신적 방황을 공감하고 위로하고자 한 작가 의도도 고려해야 하고, 고행 속 종교적 해탈을 자주 그렸던 것처럼 포기하지 않으려는 희망도 살펴야 한다. 그래서 저 대사는 초극 의지가 느껴진다. 20세기의 헤세와 달리 21세기로 넘어가는 즈음의 왕가위 작품은 그런 초극성을 꿈꾸지 않는다. “발 없는 새” 대사를 한 뒤 장국영이 그 유명한 맘보춤을 추듯이 꿈과 희망은 저 먼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순간에만 존재한다. 《아비정전》의 또 다른 명대사처럼 말이다. “1960년 4월 16일 오후 3시. 우린 1분 동안 함께 했어. 난 잊지 않을 거야. 우리 둘만의 소중했던 1분을. 이 1분은 지울 수 없어. 이미 과거가 됐으니.” 기억은 우리 머릿속에서 무수히 변조되지만 바로 그렇기에 가장 기억하려는 것만이 남는다는 점에서 그것은 영원의 속성을 지닌다. 기억 작용이 없다면 우리는 영원히 모를 수도 있다. 
 
   

27

잘못 기억하는 거예요. 나는 그런 적이 없어.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 사람이 자꾸만 나보고 그러는 거예요. 정신을 차리라고. 천벌을 받는다고. 보세요. 내 손을 가져다가 자기 목을 이렇게 해요. 차라리 죽이라는 거예요.
(중략)
여자는 간다고 말하고 싶었다.
기다리지 말라며 문을 닫고 싶었다.

(시 부분 인용)


  
이 시집을 여는 문장은 이렇다.
“이른 아침 그는 식물원으로 들어갔다. // 해 질 녘 그가 식물원에서 나왔을 때는 / 전 생애가 지나버린 뒤였다.”
  
식물은 임의의 한 부분이 전체의 형태와 닮은 꼴을 나타내는 프랙털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생명력의 강인함과 순환을 보여주지만, “발 없는 새”가 있을 수 없듯이 물과 대기와 빛 없이 살 수 있는 식물도 없다. 식물은 식물로서 슬픔을 표현할 테지만 인간은 슬픔을 소설로 시로 영화로 모든 수를 동원해 가장 강력하게 인간으로서 표현하며 사라진다.       


32

살면서 가장 슬펐을 때가 언제냐고 물었더니 나 같은 사람이 한둘은 아니라고 하더군요. 사람은 왜 그런 걸 궁금해하냐고 해요. 나는 몇 번 째냐니까 몇 가지 떠오르는 일이 있나 봅니다.

무슨 생각해?

그는 가지 끝을 떨구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우리 엄마는 너처럼 고운 빗을 가지고 있었어. 그걸로 내 머리를 빗겨 주었거든. 널 보면 그때 생각이 나.

그건 마치 바람이 불어서 네가 흩어지는 것과 비슷한 거야.

그는 좋았던 이야기를 생각하며 나무 아래 서 있었습니다.


   
ps)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을 기억하려는 건 우리 인간의 본능이라서 왕가위 감독이 《화양연화(花樣年華)》를 찍은 건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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