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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러면 아비규환
닉 혼비 외 지음, 엄일녀 옮김 / 톨 / 2012년 8월
평점 :
처음엔 별로 주목하지 않은 책이었다. ‘이름만 들어도 호기심이 동하는 영미권을 대표하는 스타 작가’라고 책을 소개하고 있지만 내가 기억하는 이름이라고는 ‘닉 혼비, 닐 게이먼, 스티븐 킹’ 이렇게 세 명의 작가가 전부였다. 호감을 갖지 않은 상태로 책을 받아보고선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 부피감에 입이 절로 벌어졌다. 더 솔직히 말하면, ‘오싹한 이야기Thrilling Tales’를 테마로 쓴 소설집이라기에 결코 읽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불편하고 거북한 이야기, 오싹함은 끔찍한 피의 현장일 것만 같고 특정 장르소설을 연상하며 내키지 않음 마음이 컸는데 결코 그렇지가 않았다. 그리고 책에 대한 찬사가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 선입견에 마음을 닫고, 방구석에 처박아 두었다면 크게 후회할 뻔했다. 읽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일이니 결코 후회하진 않았을까? 여하튼 나는 스스로도 의아할 정도로 커다란 호기심에 휩쓸렸다. 20여 명의 작가들이 풀어낸 이야기는 참신하고, 그렇다고 가볍게 읽기에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기묘한 사건, 기발하고 황당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호기심을 자극하였고, 내내 흥미진진한 시간을 만끽하였다.
“노력이라는 것은 치열하게 꾸준히 해야 하는 것” (180)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 하나를 정리할까 한다. 그것은 바로 ‘데이브 에거스’의 『정상에서 천천히 내려오다』이다. 항상 귀차니즘에 빠져 안일했던 삶에 강렬한 균열을 일으키며 뒤흔들었다. 최근, 나를 괴롭히던 어떤 일에 대해 다시금 마음을 단단하게 다잡고 흔들리지 말라고 속삭여주었다.
킬리만자로로의 하이킹을 떠난 후 일련의 과정을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다. 오래 전에 동생과 함께 준비했던 킬리만자로, 하지만 홀로 떠나왔다. 부정적이고 회의적이며 끊임없이 불평불만에 사로잡혀, 자신의 목적을 읽고 방황하고 있었다. 주인공 ‘리타’는 분명 꽤나 무력하고 따분함에 빠져있었다. 산행을 시작하고도 여전히 겉돌고 있었다. 그런데 한 밤중, 달빛 아래 드러난 킬리만자로 정상을 보고 그녀는 정상까지 오르기로 결심을 하다. 그녀의 놀라움과 그 성취감에 들뜨는 그 마음이 오롯이 내게도 전해졌다. 그녀의 마음이 새롭게 의지와 열망으로 불탔다. 킬리만자로의 산행을 예전에 tv에서 본 적이 있었는데, 그 때의 이미지가 겹치면서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지는 듯, 압도적이었다. 힘겨운 상황들 속에서도 끝까지 정상에 도달하는 과정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날씨는 말할 것도 없고, 산행의 과정은 고통의 연속이었고, 그들의 산행을 함께 했던 짐꾼의 죽음 그저 희열, 환희에 들뜬 수도 없어 가책에 빠지기도 하였다. 그녀는 의욕도 없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휩쓸리듯 시작된 산행, 그 며칠 동안의 힘겨운 시간의 이야기를 통해, 그녀의 변화로 인해 내 마음도 뜨거워지는 듯했다. 그럼에도 또 주저하고 흔들렸다. “짐꾼들과 이대로 캠프에 머물면서 마지막 등정을 포기할까 잠깐 고민한다. 킬리만자로에 대한 사진도 있고, 아이맥스 영화도 있다. 정상에 오르지 않아도 그녀는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 리타는 자신이 해낼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 진절머리가 난다. 오랫동안 그녀는 노상 자신의 깜냥을 벗어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어떻게든 해보려다, 매번 느닷없이 포기하고는 그저 열심히 했다는 데에 만족해왔다. 성공과 실패 사이, 성취하고 이룬 목표와 조정된 목표 사이의 그 미묘한 지점에서 위안을 발견했다.”(184~185) 아~ 그 어떤 문장보다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나 또한 지금껏 그러했다는 자각에 몸서리쳐졌다. 올 해 초 어떤 목표를 세우고 최근에 많이 흔들리고 있었다. 1 년여의 장기 레이스에 몸과 마음이, 아니 마음이 많이 지쳐가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갈등, 그녀의 변화가 내 마음을 다잡아주었다.
또한 단순한 개인적 성취의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그 누군가의 말없는 희생이 짐꾼의 죽음으로 구체적으로 표현되고 있었다. “일이 죄 틀어졌는데도 왜 올라간 것일까? 짐꾼들은 매일 앞서 올라갔고, 지독히 춥고 바람이 무지막지 불어도 경치 좋은 장소까지 등산객들이 오르는 것을 도왔으며, 빌어먹을 수박과 커피를 날랐다.”(194) 그런데 힘겹게 짊어지고 올라갔던 수박이 그냥 버려졌던 것을 기억하게 된다. 그녀는 결코 혼자 힘으로만 그 정상에 오른 것만은 아니었다. 한 편이 짧은 이야기였지만, 삶의 진솔한 단면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삶의 속살을 여지없이 그려내고 있었다.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고,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다시금 해본다. 그럼에도 앞으로 수없이 흔들릴 것이다. 하지만 ‘리타’의 이야기를 되새기면서 굳건해질 것이다.
그리고 킬리만자로는 아닐지언정, 푸르른 가을 하늘, 오색의 들과 산으로, 따사로운 가을 햇살 속으로 내달리고 싶어진다.
“그녀와 정상 사이에는 오직 시간과 숨결밖에 없다.
그녀는 젊다.
그녀는 할 것이고, 해낼 것이다.”
(1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