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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너 매드 픽션 클럽
헤르만 코흐 지음, 강명순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최근에 드라마 『추적자』를 흥미진진하게 보았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 재벌가와 정치인의 위선과 부도덕성에 혀를 찼다. 한편 마지막 유력 차기 대통령인 ‘강동윤’의 마지막 행보 역시 의아함을 자아내기도 하였다. 자신의 욕망을 위한 이기심, 자신의 친부모, 친자식에게만 국한된 사랑의 양태를 한 걸음 뒤에서 지켜볼 뿐이었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나는 아내와 딸을 잃은 형사 ‘백홍석’을 지지하고 응원하였다. 그리고 드라마 속 아버지, 언니, 형부를 둔 재벌가의 딸이자 방송 기자인 ‘서지원’의 갈등에 공감하기 보다는 오히려 등한시하고 그녀의 결정을 당연하게 생각하였다. 드라마 속 그녀의 말처럼 스스로 맨 앞에 서야할 경우에 대해서는 생각할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녀의 갈등이 지닌 무게감을 직시하지 않고, 그저 뒤에서 지켜볼 뿐이었다. 더 솔직히 고백하며, 드라마 속 여러 상황들 속 모순과 갈등은 나와는 상관없는,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고 치부하였다.

그런데 똑같다고 할 수 없는 드라마 속 상황들이 소설 <디너>를 읽는 내내 스쳐 지났다. 드라마 속 여러 이미지들이 떠오르고, 책을 읽는 동안엔 자꾸만 ‘나라면?’이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한 쪽에 편중되었던 감정은 <디너>라는 책 속에서 여러 인물들의 입장들을 헤아리고 각각의 인물들이 이야기 속에서 수시로 튀어나오고, 드라마 속에서 놓쳤던 여러 질문들이 떠올랐다.

 

소설 속 ‘끌레르’처럼 아비인 서회장을 생각해본다. 자신이 가진 돈과 권력을 총동원해 파렴치한 범죄를 저지를 자신의 딸을 보호하고자 했던, 자식에 대한 맹목적 사랑을 말이다. 물론 그처럼 쓸쓸하고 헛헛한 마지막 모습이 각인되어 있지만. 그리고 같은 질문은 던진다. 살인을 저지를 자식을 둔 부모라면 과연 어떤 판단을 내릴까? 과연 제 발로 자식을 신고할 부모가 몇이나 될까? 자식에 대한 사랑, 그 맹목적 사랑이 초래한 결과는? 진정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의 한계는? 그리고 자식을 보호하고자 하는 부모의 행동은 어디까지 가능할까? 부모의 맹목적 사랑의 폐단은 소설 속, 드라마 속 이야기만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작가가 던지는 질문들은 충분히 곤혹스러웠다. 자꾸만 ‘나라면?’이란 질문이 가진 딜레마에 빠지는 것이다. 지금껏 자녀의 잘못된 행동의 범주는 부단히 제한된 것이었다. 어느 부모가 자신의 자식이 (사회적으로, 법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를 상상할 수 있을까? 그런데 <디너>를 읽는 내내 스스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작가의 노림수라 할 수 있는 전개에 더욱 발목을 잡혀 묻고 또 묻게 된다.

 

앞서, 드라마 『추적자』속 이미지가 투영되었다. 그것은 바로 유력 차기 수상 후보인 형 ‘세르게’의 존재였다. 주인공 나 ‘파울’은 전직 교사로 정치인 형의 위선을 낱낱이 파헤치듯 알고 있고 수시로 그러한 형을 고발하듯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기존 우리가 갖고 있는 ‘정치인’과 드라마 속 이미지가 뒤엉켜 ‘세르게’에 대한 하나의 고착화된 이지미를 형성하게 된다. 중산층의 한 단란한 가족과 매몰차고 냉정한 정치인 형, 자신의 정치적 욕망에 집착할 것 같은 형과 그의 가족들의 모습이 대조적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노숙자를 구타해 죽인 열다섯 살 소년, 하나뿐인 아들’을 둔 부모를 전제에 깔고 이야기를 따라가게 된다. 그런데 전혀 예상 밖의 상황은 바로 중산층의 한 단란한 가족의 모습이다. 바로 중산층(과연 스스로 중산층이라 생각하는 독자의 비율은 접어두겠다.)을 대표하는 ‘파울’과 ‘끌레르’의 모습에서 우리가 직시하지 못했던 바로 우리 내면의 한 단면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진정 그러한 아들은 둔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피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디너>를 읽는 내내 정치인 ’세르게‘의 대한 반감에 비례하여 ’파울‘의 이야기에 동조하고 지지하지 않았던가! 이것이 <디너>를 읽는 독자라면 스스로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는 작가의 대단한 노림수이자 필력인 것이다. 윤리적, 도덕적 딜레마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우리가 갖고 있는 위선과 욕망의 한계, 그리고 그 속의 모순과 갈등을 절묘하게 이야기 속에 녹여두었다.

어떤 상황 속, 도덕적 잣대와 타인을 향한 질타와 비난이, 결코 나의 경우 같을 수만은 없다는 진실이 고개를 들었다. 어떤 ‘진실’과 마주할 때 처한 상황과 수많은 변수의 가능성이 떠오르고, 지난 이야기들이 떠오른다. 정말 불편한 이야기였다. 이런 저녁 식사라면 소화불량은 당연한 결과일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뇌리 속에 박힌 작가의 질문과 그에 대한 해답에 끙끙 앓을 수밖에 없다. 과연 ’나라면?‘ 정말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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