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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과 문학에 나타난 그로테스크
볼프강 카이저 지음, 이지혜 옮김 / 아모르문디 / 201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그로테스크의 창작은 현세에 깃들어 있는 악마적인 무언가를 불러내고 그것을 정복하는 일이다.”

(309쪽)

 



영어 단어 grotesque는 ‘기괴한, 괴상한’의 의미로 알고 있을 뿐이었다. 이번에 새롭게 미학 용어로써의 ‘그로테스크’를 만나게 되었는데, 기괴하고 섬뜩함, 음산함 등의 감정들이 떠올리며 몇 개의 그림들을 연상하였다. <미술과 문학에 나타난 그로테스크>란 제목에도 불구하고 나는 ‘미술’에서 나타난 그로테스크만을 인지하였다. 섬뜩함, 오싹함이 불러온 거북함이 먼저 떠오르는 그림들이 작은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지만 여전히 거리감에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솔직히 책을 펼치면서 내심 기대했던 것과 달리 수많은 글자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는 점이 당혹스러웠다. 이 책은 분명 학술서이다. 미술과 문학에 나타난 그로테스크 중에서도 특히 문학(소설, 연극)쪽에 치우친 점이 정말 아쉬웠고, 또한 문외한인 내겐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다행스러운 점은 옮김이 역시 나와 같은 아쉬움을 토로했다는 점에 위안을 얻는다.

작가 ‘볼프강 카이저’는 20세기 독문학사에 큰 영향을 미친 학자들 중 한 사람이란다. 즉 독문학자이기에 미술보다는 문학에서의 그로테스크를 많이 다룰 수밖에 없었고, 낯선 독일문학들도 많이 소개할 수밖에 없었다. 더 솔직히 말하면 낯설다는 표현은 독일 문학작품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름-에드거 앨런 포, 토마스 만, 카프카 등-만큼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지만 그들의 작품들은 여전히 낯설 뿐이었다. 그래서 문학작품들을 예를 들어 ‘그로테스크’의 용어의 역사를 파악하고 그 개념을 이해하는 것은 분명 힘겨운 일이었다.

 

건축과 장식예술에서 동물, 사람, 식물 모양을 함께 사용하여 만든 벽장식, 조각장식에서 비롯된 그로테스크는 16세기, 낭만주의 시대, 그리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영역이 넓어지고 그 의미도 조금은 다양해졌다. 그로테스크라는 용어의 역사를 통해 미술, 문학사를 이야기하는데 특히 주목할 점은 바로 그로테스크가 크게 유행했던 시기가 바로 혁명의 시기, 또는 혼란의 시기라는 점이었다.

간략하게 한 마디로 정의내릴 수는 없지만 ‘그로테스크’ 속에 내포된 의미 중에서 나는 바로 우리 안에 깃든 악마성에 주목했다. 책을 읽는 동안 내가 제대로 이해하는지에 대한 판단은 유보하고 바로 내면 깊숙이, 그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우리 안의 모순과 현실의 부조리와 왜곡, 불안과 공포 등을 떠올렸다. 마주하고 싶지 않는 또 다른 나의 본모습에 대한 공포가 눈앞에 펼쳐졌다. 하지만 질서와 원리, 그에 대한 믿음과 확신으로 가득찬 세계를 오히려 극단적으로 비틀어 버림으로써 파괴하는 행위 자체가 지닌 ‘그로테스크’의 진정한 의미를 찾게 되었다. 때론 우리 안의 무자비함, 잔혹함을 인정하고, 더 나아가 그것을 극복하고 우리의 삶 속에 깃든 수많은 불안과 공포에서 좀더 자유로워지는 것에 '그로테스크'의  큰 참의미가 있다는 결론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그로테스크의 핵심은 죽음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삶에 대한 공포’, ‘미지의 무엇을 구체화하는 것’(304쪽)의 말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거북하다는 이유로 외면하고 무시할 것이 아니라 그 안의 진실에 주목할 때 오히려 우리가 갖고 있는 많은 모순과 갈등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나름의 지혜로 이 어려운 책을 정리해본다. 그리고 책 속에 소개되었던 그로테스크한 작품들을 찾아 이 여름의 찌든 더위를 날려버릴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해본다. 또한 이젠 작품들 속 오싹함에 전율하는데 그치지 않고 나름의 의미와 삶의 지혜를 얻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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