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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 속의 영화 - 영화 이론 선집 현대의 지성 136
이윤영 엮음.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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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 속의 영화> 참으로 멋들어진 제목이라 생각했다. 단순히 시각-영화음악 같은 청각적 요소도 강하지만 내겐 영화는 하나의 장면 장면으로 각인되어 기억되는 이미지, 시각적 요소가 강한 조각들의 집합이라 여겼다. -적인 하나의 이미지가 아닌 사유의 장에 발을 들이고 싶은 욕망을 자극하였다. 영화에 대해, 영화를 통해, 영화와 함께 사유한다는 것은 좀처럼 내겐 없는 일이다. 그저 유일한 문화생활의 전부처럼 여겨질 뿐, 깊이 무엇인가를 생각한다는 것은 부러움과 선망, 존경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이거, 발을 잘못 디뎠다. 나의 기대와는 달리 <사유 속의 영화>는 정말 프로들의 학구적인 토론의 장이었다. 한 편의 영화를 통해 본 지적 상호작용 그 이상이었다. 활자들로 가득 채워진 것을 보고 기겁을 했다. 이를 어찌 읽어야 할지 당황하고, 그저 나 몰라라 내팽겨 두고 싶은 마음이었다. 나의 욕망이 그저 지적 허영이 불과하다는 것을 또 한 번 뼈저리게 통감하는 순간이었다.

문외한인 내가, 그 어려운 용어들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대가들의 논문, 방대한 지식을 어찌 이해할 수 있을지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올 정도였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난독증으로 신음하며, 이 책에 대해 왈가불가한다는 것 자체가 버거울 뿐이다. 그럼에도 내가 느끼고 생각했던 것을 조금은 정리할 필요성에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있다.

 

이 책이 주는 압박감에도 불구하고 엮은이의 배려에 다시 한 번 감사한다. 이 책에 실린 이론, 다양한 분야를 망라하며 다채로운 영화 이론 선집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천만 다행으로 비교적 짧은 논문, 글들을 엄선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한 주제와 씨름하다보면 어느새 한 숨 돌릴 수 있을 정도로 한결 여유 있게 읽을 수 있었다.

솔직히 영화의 이론에 대해 전혀 알지도 못하는 내가, 그것도 1920대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 영화적 시각에서 생각을 한다는 것은 글도 깨치지 못한 어린 아이의 수준과 책하등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1장 ‘에이젠슈테인’의 ‘영화의 원리와 표의문자’는 이 <사유 속의 영화>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영화를 이야기하는 이 책은 일본 영화를 소재로 하면서 표의문자를 다루고 있었다. 한자와 영화의 관계가 쉽게 설정되지 않았지만, 말미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러면서 영화라는 것에 대해 살짝 생각해볼 수 있었다. 일본 영화에는 없는 일본문화의 영화적 특징에 대해 논한다고 밝히고 있는데, 특히 자신들이 가진 잠재력을 무시하고 그들의-여기서 그들은 유럽인들, 특히 저자는 러시아학자- 엉성함을 그저 모방하려 애쓰고 있다고 일침을 가한다. 자신이 가진 문화적인 특색을 영화에 적용하라는 논지의 글은 1929년, 일본인에게만 효용적인 이야기가 아니었다. 바로 고유의 전통과 문화를 스스로 파악하고 그 가치를 표현하는 하나의 도구로써 영화를 접근하라는 것은 어떤 문화 사대주의에 빠진 지금의 우리에게도 따끔한 충고였다. 별개의 독립된 상징들의 조합이, 기괴한 부조화의 조합이 영화라면서 이는 우리 자신과 사회, 정치 등과의 관계 재설정의 도구로써 기능하는 것이 또 ‘영화’였다.

 

영화의 진정한 라이벌은 연극이 아닌 소설-5장 영화의 심리학 개요 (1939)-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 내가 느낀 영화와 소설은 어느 정도 상호작용을 통해 교감하고 있었다. 최근에 읽은 소설, 굉장한 서사, 흡입력에 매료된 이야기는 으레 영화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소설의 영화화에 대한 굉장한 호기심은 텍스트의 한계를 벗어나 하나의 영화적 장치들에 의해 더욱 풍성하게 재탄생하게 되길 바라게 된다. 그러면서 '이야기할 수 있다'는 영화가 가진 장점을 향유하고 만끽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것이 왠지 모르게 감사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영화는 사유되는 것이 아니라 지각하는 것이다.’(181) 그리고 ‘설명하지 않고 보여주는(182)’ 것이라 말한다. 그만큼 영화는 시각적 요소가 강했다. 하지만 영화의 발생 과정과 오늘의 영화를 비교하면 결코 영화는 시각적 감각에만 의존할 수 없다는 것은 새롭게 인식할 수 있었다.

 

활자에 기대 뇌세포들의 아우성을 배경음악 삼아, 영화라는 것을 나름 사유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영화라는 것이 진정 여러 다양한 예술의 총합이라는 것을 절로 느끼게 되었다. 특히 영화를 통해 삶의 본질을 꿰뚫고자 다양한 관점에서 영화에 대해, 영화를 통해, 영화와 함께 사유한다는 주제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영화라는 광활한 우주에서 그저 내가 볼 수 있는 것인 단지 이 지구의 작은 티끌일지라도, 분명 내겐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영화가 왠지 더 흥미진진해진다. 과연 영화의 우주는 어떤 모습일지, 더욱 호기심을 갖게 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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