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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시간 사계절 1318 문고 61
지크프리트 렌츠 지음, 박종대 옮김 / 사계절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어쩌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침묵 속에 머물고 지켜져야 할지 모릅니다 (153쪽)
 

어떤 말로 시작을 해야할 지 아직도 모르겠다. 깊은 밤을 무색하게 하더니, 깊은 울림, 먹먹함이 온몸을 잠식해버렸다. 그리곤 생각을 하고, 표현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진정 '침묵'해야 할 시간인 것일까? 때로는 아주아주 소중한 것은 오히려 가슴 깊은 곳에 뿌리내려 안으로 안으로 옹골지게 여물어야 하는 것!

 

오랜만에 연달아 책을 들었다. 책의 부피가 주는 가벼움과 달리 묵직한 한 방에 나가떨어져 정신을 차리기가 버거웠던 것인지 아니면 거장이 풀어낸 알싸한 사랑 이야기가 메마르고 메말랐던 이 가슴을 촉촉하게 젖혀주었던 것인지 이 책을 또 읽어야 했던 이유를 아직도 모르겠다. 아니 둘 다겠다.

가볍고 가벼운 것을 쫓았던 스스로를 탓하면서 <침묵의 시간>을 통해 이 적막하고 깊은 밤이 한층 풍만해짐을 느낀다.

 

학창시절, 선생님에 대한 선망은 어느 정도는 통과의례일지 모른다. 더욱이 내게 있어 학창시절 선생님에 대한 짝사랑을 무료했던 교실 속 하나의 환상의 세계, 입시라는 지옥에서 살게 해준 청량제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은 무차하게 흘러버렸다. 풋풋함에 대한 아련한 추억이 때론 뺨을 붉히지만, 여전히 기분 좋은, 영원히 설레는 추억으로 자리하고 있다. <침묵의 시간>은 그렇게 시간을 거슬러 잃어버린 풋풋했던 숱한 감정들을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침묵의 시간>은 조금 더 나아가 학생과 선생의 사랑을 담고 있다. 어린 한 소년의 외사랑이 아니, 금기의 사랑 그래서 더욱 위태롭고 긴장할 수 밖에 없는 사랑을 담고 있다. 금기의 사랑이란 선입견에서 비롯된 한계 내에서 저자가 풀어내는 이야기는 상상의 한계를 뛰어넘어, 아슬아슬하면서 아름다운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선생님 슈텔라의 추모식에서 크리스티안의 회상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선생님의 영정을 바라보며 그들의 사랑이야기를 풀어내는데, 죽음의 원인에 대한 궁금증과 함께 크리스티안의 고백이  끊임없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드넓은 바닷가를 배경으로 결코 겉으로 표출할 수 없는 사랑의 애잔함이 절묘하게 어울어진다.

 

따스함을 머금은 물결이라는 사랑, 그 사랑의 출렁임이 뜻밖의 사고로 침묵이라는 호박 속에 영원히 갇히게 되는 상황, 그래서 그 침묵 속에서 영원토록 더욱 빛을 내고 타오르게 될 절제된 사랑이 선생과 제자의 사랑이란 굴레를 벗어버리고 가슴 시리도록 아름답고 아찔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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