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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라 시대의 사랑 1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7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4년 2월
평점 :
어느 더운 날, 티비에서 영화 소개 프로그램이 흐르고 있었고, 나는 남자친구(지금의 남편)와 데이트 약속을 정하고 있었다. 붕붕 돌아가는
선풍기 바람과 티비 소리 덕에 남자친구가 하는 말이 잘 들리지 않아 무얼 먼저 끌까 고민하다 티비를 보았다. 그때 본 영화에서 나온 책이 바로
<콜레라 시대의 사랑>이었다.
<콜레라 시대의 사랑>이 나온 영화는 <세렌디피티>였다. 여자 주인공은 운명이라 느낀 상대에게 <콜레라 시대의
사랑> 책에 연락처를 적어주었다. 그 때는 "그래 저정도 운명은 되야 진짜 운명의 상대이지"하고 여자주인공의 행동에 감탄하고 저 책 당장
읽어보아야겠다며, 후다닥 나가 책을 구입한 기억이 아직도 선하다.
운명을 시험하고자 했던 영화속 여주인공과 <콜레라 시대의 사랑>의 페르미나는 닮은 구석이 있다. 간절히 소망하는 상대를 두고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긴 시간을 돌아왔다는 그것이다. 페르미나는 가난한 남자 플로렌티노와 사랑에 빠지지만 그가 자신이 사랑한 남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그를 매몰차게 떠난다.
그녀를 위한 변명을 하자면, 그녀는 너무 어렸고, 사랑에 대한 경험이 없었다. 처음 이 책을 읽을 당시에는 분명한 이유도 없이 플로렌티노를
떠난 그녀가 바보같았다. 이제와 생각하면 그녀와 같은 경험은 누구나 한다는 것이다. 누구나 사랑은 서툴다. 그리고 첫사랑은 더욱
그러하다.
페르미나는 자신의 병을 고치러 온 의사와 결혼을 한다. 우루비노라는 이름의 의사는 부유하고... 어쩐지 군인같은 느낌의 남자이다. 열정적인
페르미나를 품어줄 수 없는 그는 그의 방식대로 페르미나를 사랑하지만 페르미나는 행복하지 않다. 깐깐한 시어머니와 군인같은 남편 사이에서
힘들어하는 페르미나를 보면 마치 우리나라 여성들 같아 동질감이 느껴진다. 그러면서 무서워지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는 제대로 된 사랑을 선택하지
않아서, 우리만의 플로렌티노를 버렸기 때문에 이렇게 불행하게 사는 건 아닐까하고 말이다.
모든 것이 지나간 후 남는 것은 무엇일까. 우루비노가 죽고 플로렌티노는 페르미나에게 다가온다. 과거의 사랑을 상기시키지 않고 새로운 사랑을
천천히 준비하는 것이다. 그녀의 방식으로 천천히. 아마 사랑은 이런 것이 아닐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원하는 것을
주는 것. 불꽃같은 연애와 폭풍같은 결혼 생활 그리고 태풍같은 육아를 거치면서 사랑이란 상대에게 맞추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그것을 이 책에서
발견하게 되니 더욱 기쁘고, 왜 그때는 몰랐을까 싶어 아쉽기도 하다.
예전에 그날, 선풍기가 풍풍 돌아가고 티비에서 영화 소개 프로그램이 나오고 남자친구와 전화를 하던 그 날로 되돌아가 이 책을 제대로
읽는다면, 좀 더 많은 것을 깨닫고 행복한 사랑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지만 대부분, 진짜 중요한 것은 이렇게 뒤늦게 깨닫는 것 같다.
콜레라 시대의 사랑이나 지금의 사랑이나, 사랑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연인의 소망은 언제나 콜레라 시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