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의 식탁 - 진화론의 후예들이 펼치는 생생한 지성의 만찬
장대익 지음 / 김영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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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에 독서실 앞을 지나다가 우연히 <대학 배치표>를 보게 되었다. 대학 서열화를 조장하여 학벌 사회를 만든다는 점에서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나도 인간인지라 내가 다니는 학교와 학과를 찾게 되었다. 하지만 이 작업은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자연계에서 당당히 '생명과학' 혹은 '생명공학'이 가장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을 보면 한국 사회가 얼마나 이른바 <Life science>를 유망한 학문으로 여기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우리 나라도 미국과 같이 종교 근본주의의 힘이 강해짐에 따라 <진화론>에 대한 교육은 점점 경시되고 있는 듯 하다. 본인의 경우도 생명 공학을 전공하고 졸업을 앞둔 4학년으로서 진화론에 대해서는 알 만큼 안다고 자부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 이런 생각은 잠시 접어 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였다. 

 사실 이 책의 글쓴이인 장대익 선생과는 한 다리 건너서 아는 상태이다. 장대익 선생과 최재천 박사가 함게 번역한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을 현재 쉽게 풀어쓰는 일에 잠시 몸 담고 있는데 아마 최종본이 나오기 전에 통섭의 번역자로서 한 번 만날 기회가 있을 것 같다. 그런데 통섭의 경우 너무도 이해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장대익 선생이 과연 진화론을 대중 수준에 맞게 설명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조금 회의적 이었다. 역시 나의 기대대로 이 책을 수월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학교 [일반 생물학] 수준의 지식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비록 일반 생물학을 수강하지 않았다고 해서 이 책을 읽지 않는 일은 구더기가 무서워서 장을 못 담그는 일과 같을 것이다. 그만큼 이 책은 [진화론]의 정수가 그대로 담겨져 있는 좋은 책이다. 

 이 책의 구성으로 특이한 점은 가상으로 현재 진화론의 쌍두마차인 굴드도킨스의 토론을 통해 진화론을 설명하려고 한 것이다. 여기서 글쓴이 장대익 선생은 뻔뻔하게 그 토론의 제목을 [다윈의 식탁]이라고 정하고 서기가 되었지만 말이다. 개인적으로 판단하건데 장대익 선생은 굴드보다는 도킨스의 손을 들어주는 것 같다. 큰 맥락에서 나도 도킨스의 의견이 좀 더 그럴듯해 보이지만 <진화의 속도와 양상><진화와 진보>에 대한 토론에서는 굴드의 의견이 좀 더 그럴듯해 보인다.

 이제 이 책의 내용을 하나 둘 살펴보면 생물학, 그 중에서도 특히 진화론이 받게 되는 공격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예컨데 언어의 기원에 대해 '단지 그럴듯한 이야기 just so story'라 구렁이 담 넘어 가듯이 설명하려고 한다든지(p.37), 사실 진술과 가치 진술을 동일시하여 인간은 유전자의 생존 기계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도킨스에 대해 유전자 환원주의라고 비판하는 것 등이다. 분명 유전자 환원주의는 이념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점이 많다. 하지만 사실 진술과 가치 진술은 분명히 다른 것이고 유전자 환원주의가 경험적으로 부적합하다는 증거가 없는 한 자유로운 학문 탐구를 단순히 거북하고 불쾌하다고 막아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다윈에게는 인간의 이타적 행동을 해석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는데 이 책에서는 그 해결책으로 <해밀턴 규칙(Hamilton's rule)>이 소개되어 있다. 즉 "rb-c>0"이라는 규칙인데 r=유전도, b=이득, c=손해 라는 것으로 이타적 행동이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을 설득력 있게 설명하였다. 그 결과 20세기 초반의 전설적 생물학자 홀데인 J.B.S Haldane이 선술집에서 했던 "나는 2명의 형제나 8명의 사촌의 생명을 위해 언제나 목숨을 던질 준비가 되어있다"는 유명한 일화가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TFT 전략>이란 것도 소개하면 "먼저 배신하지 않되, 상대방의 배신에는 즉각적인 응징을 하고, 상대방의 이전 배신들에 대해서는 눈 감아 주는 전략"이다. 이 전략은 상대방과 다시 만날 확률이 일정 이상되면 항상 배신을 때리는 전략에 비해 더 이득이 됨이 연구 결과 밝혀졌다. 이로써 이기적 유전자로 이타적 행위를 설명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딱딱한 진화론적 논점을 굴드와 도킨스의 토론이라는 방법을 이용하여 대중에게 쉽게 설명해 준 책이다. 이 책을 먼저 읽고 도킨스의 다른 책들을 읽는다면 서양 과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다윈의 진화론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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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 보급판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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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연 운명이란 것이 존재할까? <e-멋진 책세계> 12월의 인물로 칼 세이건(Carl Sagan)을 선정해서 국내에서 번역된 칼 세이건의 저작들을 읽고 '08.12.9(금)에 상암동 독서 아카데미에서 독서 모임을 가졌는데 바로 다음날 12월 20일이 칼 세이건 서거 12주기가 되는 날이였고 12월 20일 네이버 오늘의 책에 바로 이 책 [코스모스(Cosmos)]가 선정되었다. 이를 보면 흔히 어떤 알지 못하는 미지의 힘이 이렇게 만들었다고 말하기 쉽지만 이렇게 표현하면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에서 비과학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하던 칼 세이건이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 그저 우연이 모여서 필연처럼 보이게 된 것 뿐이겠지….

 어쨌든 이 책은 수많은 권장과학도서 목록에 언제나 상위에 위치하고 있는 책이다. 그렇지만 양장본의 경우 엄청난 크기와 두께, 그리고 학생으로는 심히 부담스런 가격 때문에 접근하기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던 중에 2006년에 칼 세이건 서거 10주기를 맞아 저렴한 가격의 보급판이 출판되었고 평소 눈독 들이던 책이었기 때문에 지름신의 가르침을 쫓아 이 책을 구입하였다. 그런데 이 책은 인간적으로 너무 두꺼웠다. 자그만치 700여 쪽 두께에 달하는 책을 보고 주눅이 든 나머지 자신있게 이 책의 첫 장을 넘기기가 너무 힘들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우주의 광활함에 비해 지구가 얼마나 자그많고 하찮은 존재인지 깨닫게 된다. 칼 세이건도 "모든 인간사는 우주적 입장과 관점에서 바라볼 대 중요는 커녕 지극히 하찮고 자질구레하기까지 하다."라고 말하고 있다.(p.36) 얼마 전에 적외선 우주 복사를 연구할 끝에 우주의 나이가 137억 년 가량이라고 밝혀졌다.(약 ±1% 오차로 이를 밝혀냈는데 이는 정말 놀라운 일이다.) 본인의 경우 이를 알고 나서 힘들거나 화난 일이 있을 때마다 우주의 나이와 본인의 수명을 비교하면서 마음을 가라앉히곤 했다.

 그리고 우리가 관심이 있는 혜성 충돌에 대해 살펴보자. 얼마 전에 <딥 임팩트(Deep Impact)>란 영화가 큰 히트를 친 적이 있었다. 이 영화는 지구에 혜성이 충돌할 때 어떤 재앙을 가져오는지 실감나게 묘사한 영화인데 실제 중생대 공룡 멸종을 이로써 설명하려는 이론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지리라는 점은 걱정 안 해도 좋다. 그 이유는 목성이 그 거대한 크기 만큼이나 강력한 중력으로 혜성이나 소행성이 내행성계로 향하는 것을 한 몸 희생해서 막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얼마 전에 혜성 조각 6개가 목성과 차례대로 충돌한 적이 있었다. 과연 이 사건에서 목성과 혜성에 대해 얼마나 많은 것을 알아내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이 책은 딱딱할 수 있는 우주 과학을 여러가지 시적 표현을 동원해서 쉽게 설명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압권이 바로 "새로운 진리의 아버지는 바로 시간이다"라는 표현이다. 이 표현은 비록 칼 세이건이 직접 쓴 표현이 아니고 1638년에 쓰인 존 윌킨스의 [달세계의 발견]에 있는 내용이지만 이 짧은 말 속에 우리에게 희망을 안겨주는 말 같다. 과연 인류는 언제쯤 이렇게 광활한 우주의 끝을 알게 될까? 언제쯤 인류 외의 외계 생명체를 만날 수 있을가? 이에 대해서는 오직 진리의 아버지인 시간만 믿고 꾸준히 진리를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 것이 중효한 것 같다.

 이어서 칼 세이건은 6장에서 네덜란드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는다. 16~17세기 네덜란드는 사회 전반에 퍼져 있던 개방적 사고와 생활양식 그리고 물질적 풍요와 새로운 세계에 대한 탐험과 개척의 정신은 네덜란드를 지성과 문화의 중심지로 만들었으며 그 대표적 인물인 크리스티안 하위헌스(Christiaan Huygens)이다. 데카르트도 그가 그렇게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을 믿을 수 없다며 놀라워했는데 그는 직접 굴절 망원경을 제작하여 다른 행성의 크기를 잰 인물이며 추시계를 발명하고 증기 기관의 개발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등 놀라운 인물이었다. 이런 훌륭한 인물들을 볼 때마다 나는 한 편으로 놀라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 질투심을 가지게 된다. 비록 과거와 달리 자꾸 학문이 분화되어 더 이상 이런 팔방미인이 존재하기 힘들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통해 자꾸 나를 채찍질하는 것이다.

 이어서 우리가 외계 문명을 찾는 일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이 많은데 이에 대한 칼 세이건의 설명이 흥미롭다(p.620~621) 인류는 우리보다 진보한 외계 문명과 접촉하면 그들이 인류를 지배하거나 멸망시킬까봐 두려워한다. 이에 대해 칼 세이건은 이것은 인류의 역사에서 한 문명이 그보다 약간 선진적인 문명에게 철저하게 파괴당하는 야만적 상황을 여러 차례 목격하였으며 그래서 우리의 외계 문명 접촉에 대한 공포감에는 우리 자신의 죄의식이 담겨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칼 세이건은 성간 여행이 가능할 정도로 진보된 문명이 있다면 그들은 문명으로 스스로를 파괴하지 않고 살아남았기 때문에 그 자체가 다른 문명과 잘 어울려 사는 법을 획득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만에 하나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될까? 그 때야 말로 인류의 종말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칼 세이건은 과학하기에 있어서 우리가 지켜야 할 두 가지 규칙을 이야기한다.(p.660) 그것은 신성불가침의 절대 진리는 없다는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 주장은 무조건 버리거나 일치되도록 수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과학하기에 있어서 절대 진리일 것이다. 이런 절대 진리가 무시된 경우는 우리는 <황우석 사건>을 통해 익히 몸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이 책을 통해 칼 세이건은 멀게만 보이던 우주를 잘 소개해주는데 성공했다. 괜히 영어로 쓰인 과학 서적 중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이 아니었다. 하지만 번역 과정에서 수많은 오타가 보이는데 보급판을 내면서 번역자가 수정했다고 하지만 계속 보이는 오타는 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다음에 개정판을 낼 때는 책임감을 가지고 오타와 비문을 수정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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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로부터 마음을 읽는다 - 어떤 뇌 이야기
오키 고스케 지음 / 전파과학사 / 199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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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는 '뇌와 마음의 시대'라고 불러도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드물 것이다. 20세기 초반에 탄생하여 분자를 포함하여 물질존재의 모든 것을 해명한 양자론과 20세기 후반에 탄생하여 신비하게만 여겼던 생명을 분자수준에서 해명한 분자생물학은 이제 인간의 뇌와 마음의 관계를 분자수준에서 해명하려고 하고 있다. 특히 1980년에 PET(Positron Emission Tomography)가 실용화되면서 인간의 뇌에 어떠한 장해도 주는 일 없이 뇌내 분자의 활동을 관찰할 수 있게 되면서 이른바 <뇌과학의 시대>가 도래하게 되었다.

 이 책은 1996년에 출판된 책으로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는 뇌과학을 고려할 때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뇌로부터 마음을 이해하려는 일원론적 이해, 즉 뇌라는 물질계의 성질로부터 마음의 현상을 연구하려는 <뇌과학> 전반을 생략한 부분 없이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다. 특히 뇌과학 연구에 필요한 장비부터 설명을 시작해서 뇌를 이해하는데 기초가 되는 신경 세포에 대한 설명을 거쳐서 본격적인 신경에 대한 설명을 거쳐서 마음을 좌지우지하는 분자에 대한 설명 함으로써 이 책을 순서대로 읽다보면 자연스레 뇌과학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배경지식을 온전히 획득하게 도와주고 있다.

 특히 이 책은 호르몬과 같은 작은 분자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하고 있는데 이런 점은 기존의 뇌과학 서적과 다른 점이다. 일반적 뇌과학 서적은 주로 뇌의 각 부분이 담당하는 역할을 설명하는데 촛점을 두는 반면에 이 책은 도파민, 아드레날린 같은 호르몬이 어떻게 작용하며 그 분자가 담당하는 역할을 설명하고 있다. 이는 아직 이 때에는 뇌의 각 구조가 담당하는 역할에 대한 연구가 미진해서 이에 대한 설명을 충분히 할 수 없었고 어쩔 수 없이 분자생물학 관점에서 설명하려고 한 듯하다.

 다만 인간의 창의력을 이끌어 내는 것이 바로 오토리셉터가 없는 A10신경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것(p.48)은 굉장히 흥미롭다. 사실 인간의 창의력은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지에 대한 것은 자연과학 뿐만 아니라 철학, 신학적으로도 굉장히 중요한 문제로 다루어졌었다. 그런데 오토리셉터가 없기 때문에 쾌락을 담당하는 A10신경이 마이너스 피드백을 받지 못하므로 이는 결국 끊임없이 이어지는 인간의 창의성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추측하는 글쓴이의 생각이 일리가 있어 보인다.

 결국 이 책은 비록 오래되기는 했지만 분자생물학양자론을 통해서 <뇌과학> 전반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배경지식을 배울 수 있게 도와주는 책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뇌과학>을 감안하면 이 책을 나중에 읽게 되면 오히려 헷갈릴 가능성이 있으니 배경지식을 얻기 위해 가장 먼저 읽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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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위한 과학
토머스 루이스 외 지음, 김한영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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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을 위한 과학>이라… 솔직히 말하면 조금 외설적인 제목 아닌가? 맨 처음 '뇌과학' 관련 서적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드렸을때 이 책이 들어간 것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물론 '사랑''뇌과학'이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책 제목으로 유추해 보건데 이 책은 뇌과학으로 자연과학에 분류되기 보다는 사랑으로 철학에 분류되어야 되는 책 같아 보인다. 실제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의 경우 이 책은 '철학'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수많은 '사랑' 서적 중에 이 책이 꽂혀 있다는 것은 다행인가 불행인가? 이제 우리가 낭만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사랑'마저도 '과학'에 그 자리를 내어 주어야 한다는 것일까? 아니면 이 책을 읽어보지도 않고 철학으로 분류했던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사서의 무사안일을 탓해야 할까? 이 책의 출판사면서 국내에서 독보적인 자연과학 출판사인 <사이언스북스>는 과연 이 책이 자연과학이 아니라 철학으로 분류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그리고 어찌보면 나에게도 역시 다행이자 불행이기도 하지만 이 책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연인간의 사랑'에 대한 책이 절대 아니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이 '뇌과학'에 할애되어 있으며 사랑 중에서도 '어머니와 자식간의 애정'에 대한 이야기가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혹시 다른 의도로 이 책을 펼쳐든 사람이 괜히 신경질 내면서 이 책을 집어던질 모습이 자연스럽게 머리에 그려진다. 바로 이런 상상이 신피질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점 또한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뇌과학 지식이다.

 일반적으로 사랑과 같은 인간의 감정을 해석하는 길에는 크게 2가지 길이 있다. 바로 경험주의인상주의인데 글쓴이는 "경험주의는 척박하고 불완전한 반면 인상주의적 가설은 자유분방한 결론을 피할 수 없으며 인간의 감정을 연구할 때는 과학적인 증거와 직관을 신중하게 조화시켜야만 가장 정확한 관점을 얻을 수 있다. 공허한 환원주의와 허황된 미신이라는 두 개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증거를 존중하는 자세를 가지는 동시에 입증되지 않은 것들과 입증 불가능한 것들에 대한 우호적인 자세도 견지해야 한다"(p.23)라고 강조한다. 이런 관점은 나에게 굉장히 새롭다. 기존에는 마음이란 과학이 접근할 수 없는 공간이라는 의식이 강했는데 1990년대에 들어서 뇌과학이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본인이 요새 공부 중인 생물학을 기본으로 하는 '통섭'에서는 강력한 환원주의를 바탕으로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용'을 강조하는 견해를 만나게 되니 기존에 내가 가졌던 시각이 얼마나 편협하였는가를 깨닫게 된다. 물론 이왕 이렇게 된 것이니 생물학으로 모든 것을 해석해 보는 시도도 나쁘지 않겠지만 글쓴이의 지적은 꼭 마음 한 구석에 담아 놓을 것이다.

 그리고 정신분석에 관한 2가지 조류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p.240) 크게 프루이트로 대표되는 전통적인 <심리학적> 그룹과 새롭게 등장한 <생물학적> 그룹이 그것인데 이에 대해 글쓴이는 빛을 입자와 파동으로 단순히 분류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다고 지적하고 있다. 결국 인간의 정서도 이와 마찬가지로 마음을 심리학적 측면과 생물학적 측면으로 구분하는 간편하고 매력적인 이원론을 초월한 곳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다만 여전히 글쓴이는 기존의 프루이트 이론에 대해서는 과학적 근거가 빈약하고 허공에 성을 지었다는 비유로 강력히 비판하고 있다.(p.325) 이제 실질적으로 프루이트는 시대는 끝나고 <포스트 프루이트의 시대>가 바햐흐로 도래한 듯 하다.

 마지막으로 인상 깊은 것은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첨예한 의견 대립이 일어나는 민간의료보험에 대한 이야기다.(p.318) 이에 대해 글쓴이는 강력한 어조로 비판하고 있는데 특히 켄터키의 한 의료 관리 조직에 있는 한 의사는 금전적 이익을 위해 환자의 생명에 필요했던 수술을 거부함으로써 그 환자를 죽음으로 몰아간 적이 있었다는 고백을 하였는데 이는 결국 건강 유지 기구(HMO)와 의료 관리가 가입자들이 내는 돈보다 적은 비용을 지출함으로써 이익을 얻는 태생적 한계 때문에 발생하는 사건으로 이는 민간의료보험을 도입하려는 우리 나라에서도 반드시 의논되어야 하는 반작용일 것이다.

 결국 이 책은 <사랑을 위한 과학>이라는 조금 수상한 제목을 가지고 있지만 뇌과학 입문 서적으로 균형잡힌 시각에서 쓰인 좋은 책이다. 다만 이 책에 포함된 그림의 질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번역을 이와 관계없는 '미학' 전공자가 했기 때문에 단어의 선택면에서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한 점은 굉장히 아쉽다. (이를 보면 과연 <사이언스북스> 편집자 또한 이 책을 뇌과학 서적이라기 보다는 평범한 사랑 서적이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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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지음, 조석현 옮김 / 이마고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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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이 책이 이렇게 유명한 책인지는 알지 못했다. 이 책과 같이 자극적인 제목을 사용하는 책이 그 '질'에서 만족할 만한 수준에 이른 경우는 쉽게 찾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책을 빌려보기 위해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에서 검색하니 예약자가 많은 것이 아닌가? 그리고 [네이버 오늘의 책]에도 선정된 적이 있는 책이었다. 그래서 많은 기대를 가지고 이 책을 빌렸는데 외국에서 1985년에 출판되어 이미 20년이 넘은 책이지 않은가? 특히 하루가 멀게 발전하는 <뇌과학> 분야에서 20년 전 책이면 너무 오래되어서 캐캐묵은 냄새가 나는 책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단점은 이 책을 읽으면서 다른 장점에 의해 충분히 상쇄되었다. 기존의 <뇌과학> 서적과 달리 다양하면서도 흥미있는 사례 위주로 구성되어서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 흥미를 유발시켜주며 결정적으로 이 책에서는 글쓴이 올리버 색스(Oliver Sacks)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자폐증이나 다양한 정신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우리는 귀찮다 혹은 불편한 감정을 가지는 것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글쓴이는 실제 다양한 예를 통해 그들도 '인간'임을 알려주고 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여러가지 예 중에서 <대통령의 연설>이라는 글이 기억에 남는다. 이 글에서는 언어상실증 환자들의 대통령의 연설을 들으면서 크게 웃는 것을 소개하고 있는데 언어상실증 환자들은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진실인가 아닌가를 이해하는 힘을 지니고 있으며 그 때문에 대통령의 연설에 속지 않으며 현란하고 괴상한 말장난과 거짓, 불성실을 간파하고 크게 웃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p.162) 결국 우리 정상인들은 마음속 어딘가에 속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잘 속아 넘어간다는 것이다.

 이어서 극심한 혼란 상태와 중압 때문에 진정한 정체성을 얻지 못하는 슈퍼 튜렛 증후군에 대한 이야기가 감동적이었다.(p.240) 그들은 진정한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서 끊임없이 충동과 싸워야 하지만 그들은 살아남아야겠다는 의지 '개체'다운 존재로서 살고 싶다는 의지력을 바탕으로 '경이'롭게 대부분 그 싸움에서 승리한다. 즉, 싸움을 겁내지 않는 용맹스런 건강이야말로 항상 승리를 거머쥐는 승리자라고 글쓴이는 말한다. 이를 보면 병마와 끊임없는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후배가 생각난다. 오늘도 메일이 왔는데 대체 내가 무슨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나는 후배의 고통을 모르는데 어떤 말을 한들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힘내라'는 말 뿐…. 오직 싸움을 겁내지 않는 용맹스러운 건강으로 고통을 이겨내기를 기도할 뿐이다.

 결국 이 책은 비록 오래되기는 하였으나 다양한 사례 위주로 흥미롭게 구성되어 있으며 특히 글쓴이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다는 점에서 굉장히 높게 평가하고 싶다. 다만 너무 두껍기도 하고 삽화도 썩 맘에 들지 않는다. 차라리 조금 크기를 늘리고 두께를 줄였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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