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버는 자본주의 사회를 가리켜 '자본을 가진 사람이 자본을 가지지 못한 사람을 지배하는 사회'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자본이 없는 우리는 그런 사회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 자신을 포함한 모든 걸 상품화했지요. 인터넷 시대가 열리고 이런 현상이 급격히 심화되어 요리, 반려동물, 디저트 사진부터 단순히 게임하고 밥을 먹는 영상까지 상품화되고 있습니다.
저는 제 딸이 취직해서 매일 아침 정장 차림으로 전철을 타고 회사에 출근하는 모습이 슬프다고 할까요, 가슴 아팠습니다. 내 딸마저 상품화시켜버렸다는 자책감이 든 거겠죠. 그 저변에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세상에 이 아이를 태어나게 했다는 무력감이 깔려 있었습니다.
이가라시 미키오
이랑*이가라시 미키오 /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아기 고양이가 10마리쯤은 들어 있을 것 같은 만삭의 고양이가 놀아달라고 뒹구는 걸 보면서 '너는 이 세상에 생명을 태어나게 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기나 하는 건지...' 하는 생각을 한다.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아비라는 새끼가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후견인 노릇을 하면서 자식을 노예처럼 부려먹으면서 자식의 살을 뜯어먹고 피를 빨아먹으면서 살아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 입장에서는 '원래 부모라는 사람들은 그러려고 자식 낳는 거 아냐?' 하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한국의 돈 잘 버는 연예인의 부모들이 자식에게 하는 짓이기도 하고.(안정환, 장윤정, 김혜수 등등)
나는 영화 <힐빌리의 노래>에서 부모-자식(부모)-자식으로 이어지는 저주를 받아들일 수 없다. 영화를 보는 내내 '아 , 제발 그만해. 그만 좀 해. 그만해.'를 외치면서 간신히 다 봤다. 엄마 베브(제이미 아담스)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돌봐주는 딸 린제이(헤일리 베넷)를 받아들일 수 있나? 이런 영화 만드는 저의가 뭐야? 딸 린제이처럼 부모의 어린 시절 상처를 이해하고 돌봐주라는 말인가? 효녀 심청처럼 아비를 위해서 인당수에 투신자살이라도 하라는 거야, 뭐야????????????????????????
내 부모는 돈이 들지 않는 애정만을 나에게 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게 싫었고, 지금도 그 점이 싫다. 아빠를 예로 들면 썰매를 직접 만들어 준다던가 대나무를 잘라서 연 살을 만들어주는 식이었다. 나는 그게 싫었다. 엄마를 예로 들면 치킨, 자장면 같은 걸 요리해 주었다. 심지어 면도 집에서 만들었다. 종이인형을 그려 준다던가 바비인형 옷을 코바늘 뜨기로 만들어 주었다. 나는 그 모든 것들을 완구점이나 문구점에서 사고 싶었고, 나는 외식을 하고 싶었다. 동화책도 직접 읽어주었는데, 그 이유는 테이프와 세트로 있는 동화책이 비쌌기 때문이었다. 주산암산 학원을 다니고 싶다고 하자 엄마가 서점에서 주산 문제집과 주판을 사서 직접 가르쳐 주었다.
어른이 된 지금은 돈이 낭비되지 않는 애정만 주신다. 간단히 말하면 포르쉐는 절대 안된다는 거다. 아비의 꿈은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고 죽는 것이고, 내가 부모에게 바라는 유일한 것은 포르쉐(=돈 낭비!!!)다.
내가 포르쉐를 타면 "OO 씨 요즘 주식 잘 나가나 봐??"라고 누군가 묻겠지.
그러면 나는 "저 주식 안 해요. 이거 아빠가 사준 거예요~~~~~~~~."하고 싶은 거다.
자식의 행복이 부모의 행복이라고 말하는 부모에게 "아빠, 나는 아빠가 나한테 포르쉐 사주면 진짜 남은 여생이 너무 행복할 것 같고, 효녀 심청을 능가하는 효녀가 될 거 같아."라고 말했지만 아빠는 "포르쉐는 안된다, 돈을 아껴 써야지."라고 한다. 그건 애정이 아니다. 그건 죽어서도 내 자산을 유지시켜주는 존재로 자식을 활용하겠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아빠, 나는 아빠가 1원 하나 상속안해줘도 내가 번 돈으로 잘 먹고 잘 살 수 있어. 지금 통장에 있는 돈도 다 못 쓸 지경이야. 다만 포르쉐는 내 노동으로 번 돈으로는 사기 아깝다는 거야. 하긴 아빠는 내가 내 돈으로 포르쉐 사도 돈 아까워서 와병이 날 사람이지..."
얄궂게도 인간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고 자식을 낳는다. 그렇기 때문에 아빠는 자신이 어린 시절에 얼마나 힘들 게 살았는지를 주절주절 늘어놓고, 엄마는 내가 너를 키운다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라는 말은 염치도 없이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요즘은 "너는 얼마나 좋으냐, 부모가 생활비 달라고 안 해서." 이런 말도 하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자식한테 재산 물려주고 죽는 게 꿈이라면서... 그 꿈 이루려고 나한테 방패연 재료도 사주지 않았으면서. 나는 방패연을 만들고 싶었는데, 아빠가 대나무 자르는 솜씨가 없어서 가오리연 밖에 못 만들었어. 그 댓살이 너무 두꺼워서 내 가오리연은 하늘을 날지도 못했어."라고 말하면 나한테 대나무 잘라준 기억이 안 난데, 불리한 건 전부 기억이 안나는 사람.
그렇기에 내 부모와 동년배인 이가라시 미키오가 이런 세상에 자식을 낳은 게 미안한다고 생각하는 것에 놀라 자빠질 뻔했다. 내 아비는 아직도 사람은 자식을 낳아야 어른이 된다고 하는데, 그 말을 할 때마다 나는 "아빠, 남자는 자궁이 없어서 자식을 낳을 수가 없어. 여자한테 정자 하나 제공해놓고 너무 날로 먹는 거 아냐?" 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웃기게도 아빠는 자식을 가져본 적이 없는 박OO과 윤OO을 지지하는 사람이다. 쉽게 말해서 아전인수 그 이상의 것을 할 수 있는 지능이 없는 것이다. (이가라시 미키오 역시 남자라서 자식을 낳은 적은 없긴 하지...하지만 같은 책에서 부계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모계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쓴다. 내 말이!!! 남자는 재생산에 정자 하나 기여해놓고 너무 많은 권한을 가진다. 아주 날강도다.)
고양이 사회는 모계다. 임신한 고양이는 털에 윤기가 엄청나게 돌며 살이 턱끝까지 차오른다. 홀로 출산을 한다. 주로는 한 번에 5마리 정도 낳는다. 모유 수유를 하는 동안은 급격히 살이 빠진다. 뱃살은 늘어나고 새깨들이 물고 빨고 한 젖은 늘어난다. 쉼 없이 새끼들을 핥아준다. 조금이라도 위험이 느껴지면 어느샌가 거처를 옮겨버린다. 새끼의 목뒷살을 물고 한 마리씩 더 안전한 곳으로 숨긴다. 모유 수유 기간이 끝나면 새끼들을 더 이상 돌보지 않는다. 달리 표현하면 믿을 만한 어린이집(내가 사료를 주는 곳)에 맡긴다. 다시 자유냥이가 되어 들로 산으로 사냥을 떠난다. 지금 만삭인 어미 냥이를 볼 때마다 너에게 임출육은 어떤 의미를 가지니?라고 혼자 속으로 묻곤 한다. 사실 나는 아기 고양이들을 볼 때도 '너희들도 태어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으련만...'하는 생각을 한다. 어차피 5마리 중에서 1~2마리는 3개월 안에 죽는다. 야생에서의 삶이 마냥 즐거운 것도 아니다. 생후 12개월이 지나면 번식할 수 있다(해야만 한다). 그것의 무한 반복이다. 그리고 독립도 해야 한다. 한 영역에 어미 냥이는 1마리다. 그것이 대원칙이다. 수컷들은 무조건 독립해서 떠난다. 그것도 대원칙이다. 고양이들은 끊임없이 태어나고 죽는다. 내가 어미 고양이를 중성화 수술 시키고, 남은 고양이들도 모두 중성화 수술을 시키고 다 거둘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건 옳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없다. 내가 신도 아닌데 야생 고양이의 재생산에 관여하고 또 그들의 남은 생을 결정(연명치료마저도)하는 것도 하면 안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브리트니의 아비가 브리트니의 후견인이 되어서 한 행동과 지금 많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하는 행동이 큰 차이가 없다.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아비는 브리트니가 임신하는 것을 법적으로 막았다.
모든 고양이에게 후견인이 필요한 것이 아닌데, 사람들은 자신의 정서 욕구를 채우고자 독단적으로 후견인이 되어 고양이를 중성화 수술 시키고 좁은 집 안에 가둔다. 숲에 사는 야생 고양이가 얼마나 용맹한지를 보면 절대 그럴 수 없을 텐데... 고양이에게는 캣타워가 아니라 타고 올라갈 수 있는 진짜 나무가 필요하고, 또 장난감이 아니라 진짜 사냥감이 필요한 것이다. (이점에서는 이가라시 미키오도 이랑에게도 실망스러운 점이다. 두 사람 모두 고양이를 키운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고양이 반려는 영화 <고양이와 할아버지>다. 타마는 자유냥이다. 마음대로 외출하고 마음대로 외박도 하고 또 할아버지와 함께 한다.
나는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버렸다는 무력감을 느낀다. 그리고 출산이 임박한 어미 냥이에게 사료를 주고 있는 나 자신은 도대체 뭔가 하는 생각 또한 한다. 어미 냥이는 만 3살이다. 이 어미 냥이가 대모 어미 냥이에게서 태어날 때부터 따로 또 같이 지내는 고양이다. 예전부터 동생은 고양이 족보를 만들라고 하는데, 나는 진짜 동물을 인간화하는 것에는 질색이라서 절대 그런 거 하지 않는다. 사람 납골당도 극도로 거부하는 나는 동물 납골당을 보면 그냥 인간이 싫어질 뿐이다.
아는 사람이 많이 없고, 책도 많이 읽는 편은 아니라서 그런가 나 말고 모계사회를 주장하는 사람은 책과 영화, 인간관계를 통틀어서 이가라시 미키오가 처음이고, 반려동물 현상을 반대하는 사람은 아직은 나 말고는 본 적이 없다.
세상은 거대한 특수학교 또는 영화 <슈퍼배드>의 그루와 그의 추종자인 미니언즈들로 가득 차 있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