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는 반숙에 소금 뿌리고요, 하나는 완숙에 케첩 뿌려요. 우리는요, 맨날 그렇게 먹어요."
"그 동네에 살 때요, 시장 모퉁이에 꽈배기 파는 집이 있었는데요, 오빠가 거기서 꼭 꽈배기를 사왔거든요. 내가 좋아하니까 먹으라고 여기 이 상에 딱 이렇게 놔두거든요. 내가 밤중에 일어나서 먹기도 하고요, 아침에 일어나서 먹기도 하고요. 내가 꽈배기를 디따 좋아하는데 그 집 꽈배기가 진짜 맛있었거든요. 근데 거기가 열한시 반이 넘으면 문을 닫아요. 그래서 오빠가 그거 사려고 꼭 열한시에 치킨집에서 나와요. 사장 아저씨도 그거 알아서 오빠가 일하고 있으면 빨리 꽈배기 사러 가야지, 그러고 그랬거든요. 그때 그다음 날 아침에 꽈배기가 여기 이렇게 딱 있었거든요."
어떤 삶은 이유 없이 가혹한데, 그 속에서 우리는 가련한 벌레처럼 가혹한 줄도 모르고 살아간다.
권여선 <레몬>
하루하루가 지루하고 지겹고 시시해서
오랫만에 공들여서 화장을 하고(마스카라를 하고 속눈썹을 한올 한올 말아 올렸다는 말)
발렌티노 매장에 가서 아직 공식 홈페이지에는 업데이트조차 되지 않은 신상 팔찌를 샀다.
발렌티노의 미덕은 대기가 없다는 것이다.
사이즈가 제법 있는 금빛 스터드가 번쩍번쩍 하는 게 5미터 거기에서도 여기 발렌티노요 할 듯했다.
아주 맘에 든다.
착용 사진을 보냈더니
여동생은 개목걸이 같다고 했고, 발렌티노라는 브랜드도 첨 들어 본다고 했다.
남동생은 그 돈이면 차라리 애플워치를 사지라고 했다.
나는 팔이 2개고 오른팔은 마우스 사용을 위해서 남겨둬야 하니까
남은 건 왼팔 하나 뿐인데,
애플워치를 왼팔에 끼면 팔찌는 어디에 껴야 하나?
(미밴드는 이제 잘 때만 낀다. 미밴드 있다고 해서 내가 더 걷는 것도 아니더라.)
애플워치 같이 실용적인 것만 추구하는 태도가 우울과 홧병과 울화의 근원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사치와 낭비를 하지 않고도 행복할 수가 있단 말인가?
요즘 나는 직구도 하지 않는다. 그냥 매장 가서 이것저것 해보고 결국엔 신상으로 사버린다. 그렇게 쇼핑백을 달랑달랑 들고 다른 매장도 기웃기웃 하면서 물건 구경하고 사람 구경하면 기분이 좀 화사해진다. 예쁘게 화장하고 잘 차려입은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좀 좋아진다.
고가의 소비와 행복을 연결짓는 것은 낡은 개념이며, 우리는 지나치게 일하고 생산하며 그렇게 번 돈을 소비하는데 쓰는 한심한 인간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많다.
하지만!
마감이 훌륭한 물건을 몸에 직접적으로 걸치고 있는 것 자체는 실제적인 행복이다.
그걸 부정할 수는 없다.
나는 돈이 안드는 작고 소박한 행복을 생각할 때면 권여선의 소설 레몬에서의 계란 후라이와 꽈배기가 생각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유감스럽게도 이 소설 속 남매의 삶 속에는 이 정도의 소박한 행복 말고는 없었던 것이다. 즉, 사치스런 행복은 없었던 것이다.
나는 계란 후라이와 꽈배기와 발렌티노가 공존하는 행복 속에서 지내고 싶다.
가능한가?
설마 그럴리가.
인생이 그렇게 인자하지 않으니까.
양자택일인 것이다.
가난하게 살면서 안분지족하던가
일중독자가 되어서 사치로 스트레스를 풀던가
둘 중 하나 밖에 없는 게 인생.
그 둘 모두 아닌 경우도 있긴 하다.
그런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멸시하며, 자기보다 잘난 사람을 질투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