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칼립스투 나무는 특유의 향과 성분때문에 주변에 곤충, 해충, 다른 식물들이 얼씬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인간없는 세상>에서 읽었다. 유칼립투스 나무에 대해서 읽으면서 '유칼립투스 외롭겠구나.'하는 생각보다는 '와 대단한데! 성가신 모든 동식물들을 쫓아내고 귀여운 코알라만 허용한 유칼립투스 너무 멋지군.'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보니 나 역시도 본인 유리한 상황에서만 '정'운운하는 한국사회에서 유칼립투스 나무처럼 지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몹시 뿌듯해졌다. 물론 나에게도 내가 허용한 몇몇 코알라처럼 귀여운 존재들이 있다. 또한 더 이상의 코알라를 추가할 의사도 없고 능력도 없다.
내가 한국'정'서에 적응하지 못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일단 가장 큰 이유는 먹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뭔가를 먹으면서 시시껄렁한 잡담(주로는 남욕)을 하는데, 나는 먹는 것에도 주변 사람들 뒷담화에도 관심이 없는 탓에 그런 자리에 참가하지 않고 계속 일을 하거나 시간이 남으면 <인간없는 세상> 혹은 <고독한 산책장의 몽상>같은 책을 먹을 것이 없어서 칡뿌리를 질겅질겅 씹어먹는 박완서 소설의 어린애처럼 책장을 씹어대고 있으니 적응될 리가 없는 것이다.
최근에는 봉준호 특별전에 가서 필름상영인 <마더>를 봤다. <마더>는 극장에서만 3번째다. 이런 나의 사생활을 듣고 싶어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고 나 역시 나의 소소한 취미인 영화애호를 떠벌릴 생각이 없다.(이런 옛날 영화를 굳이 시간과 돈을 들여 극장에 보러오는 몇 안되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회사를 다니면서 인간관계 때문에 고민을 해 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인간관계 자체를 만들지 거의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느 조직이든 꼴깝떠는 동네 반장 같은 원숭이가 한 마리는 있게 마련이다. 그 반장 원숭이가 나에게도 꼴깝을 떠는 경우가 있는데 그 때 확실하게 꼴깝을 더 쎈 꼴깝으로 받아쳐주면 소문을 널리널리 퍼져서 아무도 나에게 꼴깝을 떨지 않게 된다. 다시 말하면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체면을 중요시하는데 그 체면을 공개적으로 밟아주면 된다. 대체로 꼴깝떠는 원숭이들은 경우에 없는 짓거리를 하기 때문에 그 경우 없음을 논리적으로 지적해주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경우가 강박적으로 강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체면 즉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에는 전혀 관심없다. 내 유일한 관심은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밖에 없다. 나는 나 자신에게 잘 보이고 싶고 나 자신에게 인정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천만다행인 것은 나는 자기애가 높은 인간이라는 것.
최근에 코로나 때문에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한 정보가 필요해서 게시판을 자주 들락거렸는데 사람들이 인간관계 혹은 직장문화 때문에 엄청난 고민을 하는 것을 보고 정말 놀랐다. 싫은데요. 왜요? 사생활입니다. 먹지 않습니다. 이런 말을 못해서 고민을 한다는 거 자체가 충격 그 자체였다. 누군가 나에게 다이어트 비결을 묻는다면 나는 해줄 말이 없다. 왜냐하면 나는 다이어트를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인간관계 고민 역시도 도움될만한 조언을 해줄 수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인간관계에 대해 별 고민을 안해봤고, 경우 없는 인간을 만날 경우 바로바로 그 경우없음을 지적하면서 살아기 때문이다. 지위고하, 나이고하를 따지지 않고 공평하게.
예전에 수 년 만에 만난 외삼촌이 나에게 "너도 결혼해야지. 그게 부모한테는 제일 큰 효도야."라고 말해서 외삼촌은 큰 봉변을 당했고, 엄마는 너는 엄마 체면은 생각도 안하고 어떻게 오랫만에 본 외삼촌한테 그럴 수가 있느냐고 했었다. 그래서 엄마도 나에게 큰 봉변을 당했다. 그 이후로 아무도 나에게 그 이후로 결혼의 ㄱ도 꺼내지 않는다. 나는 다년간의 위대한 반항아들의 걸작을 읽고 촌철살인의 비법을 터득한 지라 말로써 사람의 심장에서 피가 나게 해 줄 수 있다. 그것도 사람을 가르치는 듯한 잘난척 하는 말투로. "외삼촌은 오랫만에 본 조카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예요? 덕담은 못해줄 망정. 그리고 나는 내 방식대로 효도를 하고 있고, 자식은 자살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 만으로도 효도를 다한 겁니다. 이런 말 할거면 앞으로는 내가 부모님 집에 있을 때는 오지 마세요. 불쾌하니까요." 이런 말이었다. 나는 이런 말을 사람 면전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할 수 있기 때문에 나에게 이런 봉변을 한 번 당하고 나면 대부분은 내 앞에 나타나지 않고 나타나게 되면 예의를 갖추게 된다.
나에게 이런 봉변을 제일 많이 당한 사람은 당연히 내 부모인데, 이제 그들은 자식에 대한 예의를 배웠다. 나에 대한 예의를 갖추지 않으면 일촌관계 정도는 가볍게 잘라 버릴 수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이나 예의만 갖추면 만사오케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일단 부모의 다른 자식들은 서울로 가버렸기 때문이다. 하하하 . 가까이 사는 자식이 효자인 셈이지.
어제도 회사에서 버릇없는 중생 한마리를 처리했다. 나보다 나이가 10살이상 많은 사람이었는데, 본인은 늘 그렇게 행동했고 이런 컴플레인은 처음들어본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말했다. 나도 이번이 이런 종류의 컴플레인은 두 번째라고. 처음은 입사해서 회사2번이 나에게 무례하게 대해서 문제제기(회사1번에게 말함. 그래서 3자대면하고 사과 받아내고 그 때의 꼬리표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아무도 나에게 시건방 떨지 않았다)이번이 두 번째라고. 그 중생은 친함의 표시였다고 했고, 나는 친한 거보다 나에게는 예의가 중요하니 예의를 지켜달라, 친하지 않아도 된다고 전했다.
곧 조만간 또 무수한 해충들이 박멸될 것이다. 유칼리투스 나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