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빛 속으로의 출발

양양 선림원지

 폐허는 폐허의 방식으로 사람을 위로한다.

 

....

(전략)

 출발 전에, 자전거를 엎어놓고 닦고 조이고 기름쳤다. 서울서 가지고 간 장비들을 현지에서 출발하기 전에 버리고 또 버렸다. 수리공구 한 개가 모자라도 산속에서 오도가도 못할 테지만, 장비가 무거우면 그 또한 오도가도 못한다.

 스패너 뭉치와 드라이버 세트와 공기 펌프와 고무풀은 얼마나 사랑스런 원수덩어리인가. 몸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을진대. 장비가 있어야만 몸을 살릴 수 있고, 장비가 없어야만 몸이 나아갈 수 있다.

출발 전에 장비를 하나씩 점검해서 배낭에서 빼 버릴 때, 몸이 느끼는 두려움은 정직하다. 배낭이 무거워야 살 수 있지만, 배낭이 가벼워야 갈 수 있다. 그러니 이 무거움과 가벼움은 결국 같은 것인가. 같은 것이 왜 반대인가. 출발 전에 장비를 하나씩 빼 버릴 때 삶은 혼자서 조용히 웃을 수 밖에 없는 비애이며 모순이다. 몸이 그 가벼움과 무거움, 두려움과 기쁨을 함께 짊어지고 바퀴를 굴려 오르막을 오른다.

 빛 속으로 들어가면 빛은 더 먼 곳으로 물러가는 것이어서 빛 속에선 빛을 만질 수 없었고 태백산맥의 가을빛은 다만 먼 그리움으로서만 반짝였다.

...

(후략)

 김훈의 글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의 글 속에서 '문장의 육체성'을 느낄 때마다 그가 더욱 짐승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곡해하여 이해할까봐 다시금 설명을 하자면, '생(生)'을 최우선시하는 짐승은 인간들이 이 세상속에 만들어낸 틀과 잣대를 이해하지 못한다. 오히려 부조화하고 대립하여 인간들은 인간보다 하등한 생명체로서 내리보는 눈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그러나, 인간들의 사회틀에서 벗어나 있는만큼 인간이 발명한 문명의 이기를 함께 누릴 수는 없다하더라도 짐승은 온몸으로 세상을 구르며 세상을 느낀다. 그리고, 벗어난 만큼 자유롭게 사고하며 '생(生)'을 살아간다.

 모순된 것들이 짬뽕처럼 어우러져서 전체를 이루고 있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짐승의 단순성. 그 단순성은 세상을 눈으로 보고, 입으로 느끼고, 발로 밟은 만큼의 사실만을 기록하기에 군더더기가 없다.

 그래서, 김훈의 문장은 그의 짐승과도 같은 본능이 여태껏 지켜본 세상을 토해낸 것이라 '인간세상'의 잣대로 평가하기엔 불편한 것들이 많으면서도 그 불편함 속에 숨겨져 있는 원시의 자유로움 때문에 힘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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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9-23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짐승처럼 육체적 글을 쓰는 김훈을 좋아하는 접니다.
제 글이 김훈과 많이 닮지 않았나요? 우헤헤^^
참고로 저 양양 선림원지 2003년 이때쯤에 다녀왔습니다. 미천골 휴양림 있는 계곡이지요.
불바라기 약수터 올라가는 산길 왼쪽에 신라의 무너진 탑이 저를 반기더이다.

클레어 2005-09-24 0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훈과 닮았다는 느낌을 받지만 김훈의 애조에서는 벗어난 것이 파란여우님의 글이죠. 좀 더 따뜻한 뭔가가 있습니다. 그래서 여우님을 좋아한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우헤헤~ ^^ 여우님의 행보는 전국구군요.. 항상 발이 묶여있던 신세인지라(게을러서 그런 것이지만..) 여우님이 보셨던 양양 선림원지를 저도 한번 눈에 담고 싶습니다.
 



 열어 달라고 애원하고 싶은 마음과
기억과 함께 낡아버리기를 소망하는 마음이
맴돌아
 
그냥
왔다간다네.
 
바람은 흔적을 지우고
또다시 문이 열려도
내 체취는
남아 있지 않겠지.
 

계절의 변화는 언제나 위태롭고 부는 바람은 객의 발길을 몰아 가고..

 
뒤돌아보지 않고
가는 길이건만
왜 이리도 닮았을꼬..
 
마치
넘어진 진흙구덩이는
짚고 일어서야
건널 수 있다는 듯..
 
아무리
달아나도
그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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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9-21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즉, 저런 집모양새가 남아 있는 동네...어딥니까.

클레어 2005-09-22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종로쪽요..^^
 

창밖에 흐린 하늘 사이로 창백한 미녀의 얼굴같은 달이 보입니다.

아직은 둥근 원형의 모습으로 차오르지 못했지만 '한번 보고 두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은' 미녀처럼

자꾸만 흰 달을 쳐다보게 되네요.

 

저는 내일 아침 일찍 고향으로 내려갈 예정입니다.

도시에 박혀 있다가 간만에 엄니랑 수다도 떨고 전도 부치고 엄니가 가꾸는 남새(나물)들도

다듬고 저녁에는 엄니, 아부지랑 같이 바닥에다 판을 깔고 고스톱 한 판을 벌이며

신경전을 펼치겠지요. 흐흐~

 

제 블로그를 방문해 주시는 모든 이웃분들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고 했던 옛조상들의 말씀처럼

맛난 음식도 많이 드시고

즐거운 이야기들도 많이 하시고 했으면 좋겠습니다.

 

고향으로 내려가시는 수고로운 귀향길에서도 지치지 마시고 건강하게 내려가셨으면 하구요..

 

모두들 평화롭고 즐거운 추석 연휴를 보내시길

다시 한 번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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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9-15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자러 갈려고 양치질 하고 잠옷바람으로 컴 끄러 왔다가^^
에오스님도 고향길 잘 다녀오셈.
삭제된 뻬빠가 서운하지만
네이버의 매력있는 한 여인 블로그를 우연찮게 발견했다가 왔다는^^
암튼, 한가위 넉넉하게 보내세요^^

클레어 2005-09-21 0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늦은 인사드립니다. 즐거운 추석 보내셨는지요?
파란여우님의 활동력은 역시 대단하시다니까능..흐흐~
제 블록을 찾아내시다니..
여우님의 애정에 보답해드릴 것은 변변찮은 답글뿐이라 안타깝네요.
여우님 페이퍼에다가 답글이라도 잘 달아서 사랑받으리라..
하하~

딸기 2005-09-21 0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다녀왔니?

클레어 2005-09-22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옙.. 잘 다녀왔습니다. :)
 



어미를 발로 차고 땅이 싫다며 모두들 소를 판 돈을 들고 튀었다. 마몬..오! 이시대의 유일한 숭배할만한 신이여!! 그들은 제 몸 하나 오그리고 잘 곳을 만들지 못한 채 유영(流泳)한다. 도시! 높이서 바라보며 휘양찬란하게 전사(戰死)하고 있는 태양의 통곡도 이젠 그들에게 들리지 않는다. 마몬..오! 그를 위해 밤을 밝히리라. 네온을 켜라. 기계를 돌려라. 문서를 작성하라. 머리를 짜라! 짜라!! 짜라!!

널 팔아라! 날 팔아라! 우리를 팔아라!! buy korea! 가 그들의 유일한 기도가 되었다.

우리를 구원하소서!

우리를 구원하소서!

 

야~ 마몬빽 믿던 미국이 구호물자를 받는단다.  의심하는 자들이 고개를 쳐든다. 잠시 보이는 탈출구. 허리굽은 어미는 돌아올 명절을 위해 부지런히 손을 놀리며 기다림의 탯줄끝에다 떠도는 도시의 자식을 매달고 있다.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탈출구는 탈출하고자 하는 자에게만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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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9-10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런 말도 못하고........

클레어 2005-09-14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 토닥토닥~ ^^
 



photo by EOS

DMC-LZ1

장소: 이대앞

 

로모 사진을 보다보면 몽환적인 색감에 홀릴 때가 있습니다.  누구는 믿을 수 없는 렌즈의 변덕을 견디기 어렵다고 로모가 싫다고 말하지만, 그래도 색감만큼은 '로모'안에 또다른 뭔가가 있어서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느낌을 줍니다. 한마디로 회화적인 요소가 제게는 강하게 느껴지는 것이 로모입니다.

 

그에 비해 이번에 새로 구입한 panasonic DMC -LC1의 경우는 보급형으로 나온 작은 디카입니다. 강한 색감을 보여주는 캐논과 빤딱빤딱하는 인물사진을 보여주는 니콘과는 다르게 뭔가 담담하고 침착한 느낌이 드는 카메라입니다. 카메라에 대해 이야기 해 놓은 싸이트를 며칠에 걸쳐 들락달락한 결과 '파나소닉'은 화이트 밸런스가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 놓았더군요. 흰색이 제대로 나오는 사진이라면 대조가 강한 사진으로 한번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피에수: 파란여우님, 흐흐~ 지름신의 압박으로 결국 구입했구요. 저게 첫 사진이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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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8-28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커밍 순이라~~~
이젠 섹쉬함과 함께 로모까지 품으려는...아흑, 파나소닉이군요.
차분한 색감...좋아요. 저도 디카를 교체해야 하나. 한동안 고민했다가
에이, 그냥 살자!!로 남았다는^^
곧, 에오스님의 미모도 확인할 날이 머잖을 듯...흐흐
일단은!!!! 추카추카!!!

2005-08-29 09: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클레어 2005-09-09 0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여우님/ 미모였으면 확 공개할텐데 ..아쉽..

속닥님/ 제가 착각하는 그런 아해라니께요.. 뽀샵이 뭔지도 모른답니다. 기냥 찍은 거 올리는데도 벅차요..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