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만에 다시 찾은 진우도...
아직 띠풀은 다자라지 않았지만
선착장에서부터 우리를 반기는 두 마리의 큼지막한 개와
산책길 입구에 피어난 파란색 갯완두꽃의 인사...
이어진 소나무길 사이로 펼쳐진 풍경위로 3년전의 풍경이 오버랩된다...
더욱 넓어진 산책로와 비온 뒤의 질퍽할거라 예상했던 기대와는 반대로 잘 말라있었던 바닥의 감촉은 우주가 우리에게 베푼 선물이었다.
선두에 서서 걷고 싶었던 이유는 아무도 발길닿지 않은 무인도에 첫 발걸음을 내린 그 기분을 한껏 느끼고 싶었던 것 때문이다. 강쌤이 진우도에서 첫 자리를 시종일관 놓치지 않은 이유도 그것이었지 싶다.(흥, 혼자만 다가지게 놔둘 순 없지....)
시야 가득히 채운 갯풀과 갈대들이 햇살받고 몸을 풀고 바람맞아 몸을 흔들때...
아! 그 때 난 그 속으로 드러누워 파란 하늘을 쳐다보고 싶었다.
그 속에 누워 눈을 감고 나는 떠다니는 바람이 되고 구름이 되고 하늘이 되고 싶었다.
황량하고 쓸쓸한 그 곳에서 가덕도의 연대봉으로 넘어가는 장엄한 태양을 맞이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번 답사는 우리가 가이드의 입장에서 온 것이니...어쩔 수 없었다.
길이 끝난 곳에 펼쳐진 은빛 모래, 금빛 물결을 따라 신발을 벗었다.
발가락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오는 모래의 부드럽고 미세한 감촉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이제부터 세속의 나이는 필요없다.
아니, 진우도에 발을 디디는 순간부터 잊어버렸다.
역시 그랬다.
가장 연로하신 두 선생님의 발걸음과 얼굴 표정엔 초등학생 아이보다도 천진난만한 웃음기가 흐르기 시작하였고, 되도록 해변에 가까이 붙어 호기심어린 눈으로 이것저것을 둘러보며 걷는 모습 속엔 어릴 적 하늘 높이 날려 보냈던 풍선의 꿈이 있었다.
늘 해변 끝에 다다르기 전부터 나를 괴롭히던 생리적인 문제가 오늘도 어김없이 아랫배에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막걸리를 좀 많이 마셨다) 음, 아까 강쌤과 함께 할 것을...어쩔 수 없이 나는 일행 뒤로 쳐져야만 했다.
노을이 서서히 지기 시작할 무렵 우리는 가덕도의 눌차항으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항구에 이어지는 예쁜 다리 너머로 소담하지만 아름다운 마을의 모습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리 많지 않은 가구가 닥지닥지 붙어있는 작은 항구마을에 드는 노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좋은 사람들과 어깨 끝이 살짝 스쳐가듯 마주치는 마음의 스쳐감이 또한 노을만큼의 아름다움이었으리라.
젊은 시절 이런 마을의 어느 작은 교정에서 살아보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한이 될 것 같다.
화려하진 않지만 작은 집 하나하나마다 정성들여 만든 분재가 집의 멋을 한차원 고양시키고 있었다.
이런 곳에 방 하나 빌려 방학 때 책보따리 싸들고 들어와 달빛 창에 드는 밤이면 책 덮어두고 벗과 함께 술 한잔 하며 안빈낙도의 삶을 살아봤으면....
눌차항을 떠나는 배위에서 고양된 마음을 한껏 담은 선생님들의 얼굴도 얼굴이지만,
석양속으로 자꾸만 멀어져만 가는 눌차항을 가슴에 깊이 담아두고 싶었다.
오늘 함께 한 이 모든 이의 마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