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에 맥주 한잔 마시고 조금은 스트레스가 풀린 마음으로 누워 스마트폰으로 기사를 훑었다. 아.. 근데.. 신영복 선생님께서 돌아가셨다는 부고가.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고야 말았다. 편찮으시다더니.. 결국 하늘나라로 가셨구나...

 

대학교 때 방학마다 읽은 책 중에 제일은 무엇이냐 나혼자 랭킹을 한 적이 있었다. 워낙 잡다하게 책을 읽는 편이라 방학만 되면 이 책 저 책 가리지 않고 봤던 것 같은데... 몇 학년 때였는 지 기억은 나지 않으나 어느 겨울방학 때 읽은 책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이 ... 신영복 선생님의 <감옥부로부터의 사색> 이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책을 잡아서 읽었던 건, 제목이 주는 무게감 때문이었다. 통혁당 사건 무기수 신영복의 편지. 통혁당이라는 단어가, 거기다 무기수라는 단어가 눈에 확 들어왔더랬다. 저자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오고 석사를 하다가 통혁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대의 젊은 나이에 감옥에 들어갔다. 그리고 20년을 감옥에서 지냈고... 그동안 그 안에서 가족과 주고받았던 서간들을 모아 이 책을 낸 것이었다. 소위 엘리트에 속하는 어떤 남자가 20년을 억울하게 감옥에서 지냈다... 솔직히 그 당시 시대정황에 비추어볼 때, 마음에 늘 분노를 삼고 지냈던 그 때, 꼭 읽어야 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책은, 그러나 분노가 아니었다. 감옥이라는 곳에서 느끼게 되는 많은 생각들, 읽은 책들, 사람들, 그리고 가족에 대한 사랑... 이런 것들이 철학적으로 차분히 쓰여지고 있었다. 나중에 신영복 선생님은 감옥은 수양을 위한 장소였다며 그냥 이 곳에 그렇게 그냥 있었으면 몰랐을 많은 것들을 깨닫게 해주었노라 말씀하셨더랬지만, 참... 이럴 수도 있구나 라며 마음깊이 무언가 깨지는 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감옥에서 풀려나고 선생님은 책을 쓰시고 강의를 하시고.. 그리고 성공회대에서 교수를 하시며 깊이있는 생각들을 공유하셨다. 그 분이 쓴 책은 대부분 읽은 것 같다.. 그리고 매번 실망한 적이 없었던 것 같고. 특히 '신영복체'라는 그분의 필체를 보면 왠지 위안이 되었었다.

 

 

 

 

 

 

 

 

 

 

 

 

 

 

 

 

 

 

 

 

 

 

 

 

 

 

 

 

 

 

 

 

 

 

 

 

<강의>는 이 분의 철학이, 공부가 어디까지 갔는 지를 알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동양의 고전을 꿰뚫고 거시적인 안목과 미시적인 관점이 조화를 이룬, 훌륭한 글이다. <나무야 나무야> 라든가 <더불어 숲>, <변방에서> 등의 에세이들도 읽으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래, 마음이 따뜻해진다. 오랜 세월, 혼자서 스스로의 방에 침참해야 했던 젊은이가 중년이 될 때까지 그렇게 지낸 세월들은 그에게 분노와 억울함을 깊게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깊게 해주었다. 내가 지금 사소한 것들에 펄펄 뛰고 화를 내는 게 참, 민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담론>은 아직 읽지 못하고 있었다. 이 책이 나올 때 신영복 교수의 마지막 책 운운하길래 믿지 않았었는데. 금방 털고 일어나셔서 좋은 말씀들 또 해주시겠지 했었는데. 마음이 너무 아프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을 끝내면 바로 <담론>을 펼쳐야겠다...

 

신영복 선생님. 모진 세월 지냈던 세상,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이 세상, 뒤로 하시고 하늘나라에서 영면하시길 기원드립니다. 선생님의 글, 말, 던지는 메세지들 모두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이며 위안이 되었음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좀더 사셨으면 좋았을텐데.. 라는 건 남은 자들의 부질없는 욕심일테지요... 편안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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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6-01-16 23: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늘 아침 신문 보고 깜짝 놀랐고 안타까웠어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고 팬이 되어
<담론>을 구입한 독자로서 앞으로도 좋은 책 많이 내시길 바라고 있었는데 타계 소식이라니...

타계 소식에 저도 페이퍼를 올릴까 했는데 많은 분들이 올려 주셔서
이렇게 댓글 쓰는 걸로 대신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비연 2016-01-17 15:25   좋아요 0 | URL
pek0501님... 모두에게 정말 놀랍고도 슬픈 일인 것 같아요.
고인의 명복을.. 좋은 곳에서 평안하시길... 다시한번 빌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