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단지 겨울 날씨로 인해 앙상해진 것이 아니라 늙어서 시들고 쇠잔하고 말라붙은 것처럼 보였다.. 그런 나무를 본 것이 나는 정말, 정말로 기뻤다. 무언가가 그대로 남아 있을수록, 그것은 결국 더 변해 버린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나무도, 사랑도, 심지어 폭력에 의한 죽음조차도. (p11)

 

 

빌 게이츠가 인생의 책이라고 꼽았다는 책이다. 제목이 특이해서 영문명은? 하고 찾아보니 영문명도 'Separate Peace' 다. 역시 일전에 읽은 <네메시스> 처럼 전쟁이 한참인 시절의 이야기이다. 2차 세계대전. 이땐 아마도 모두의 가치관이 흔들거리던 때였는 지도 모르겠다.

 

결국은 다 변한다. 그리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수록 더 변한다. 늙고 쇠약해지거나 닳아서 힘이 없어지거나 어쩌면 물리적인 것 뿐 아니라 화학적인 부분까지 몽땅 변해 버릴 지도 모른다. 사랑은 지키려 하면 세월의 흐름에 무관심과 애증으로 변모하기도 하지.

 

변해서 기쁘다... 내가 변했듯 내가 생각했던 그 무엇도 그 자리에서 변해가는 게 기쁘다. 그런 심정은 어떤 걸까. 생각해본다. 나는 변했는데 그 무엇은 그대로 남아 있다면 꽤나 비참하겠다 싶다. 단물 빠진 껌 마냥 버릴 수도 삼킬 수도 없는 애매한 느낌. 어쩌면 나에 대한 회한, 상실감 때문인지도 모른다. 또 어쩌면 기억 속에서는 변해버린 그 대상이 여전히 눈에 보기에 변함이 없더라.. 라는 것에 대한 배신감일 지도.

 

요즘, 변하는 것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고 있다. 나는 앞으로도 변할 것이고 내 주위도 변할 것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누군가가 있다가 없다는 것. 그리고 그게 누구나에게나 해당된다는 것. 그것 뿐이라는 생각에 많이 힘들다. 힘들 주제는 아니지만, 있다가 없는 것을 느끼는 내가, 또 어느 순간엔 없어지고 그 있다가 없다가를 느꼈던 나는 어디론가 사라진다는 게 이상하고 묘하고 비애스럽다. 결국 사는 건 무엇이냐. 그런 문제에 천착된 슬픔인 지도 모르겠다. 슬픔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좀 묘한 경계선을 가지고 있지만.

 

이렇게 점심시간에 책을 읽고 생과 사의 문제를 고민하다가, 책을 덮고 업무를 시작하면 고객과 지극히 사소하고 현실적인 문제로 언성을 높이게 된다. 서로 돌대가리라고 생각하면서, 서로 말을 바꾼다고 생각하면서. 근데 그 흥분의 시간이 지나 차분히 생각해보면, 이게 무슨 의미인가 싶다. 어차피 있다가 없을텐데, 누구나가.

 

이 책의 저자인 존 놀스의 작품은, 이 책 하나만 번역되어 나와 있다. 영문판도 이것뿐이고. <호밀밭의 파수꾼>에 버금가는 작품이라고 했는데.. 이 책 하나로 멋지게 살 수 있었던가 보다. 있다가 없지만, 이 책은 변함없이 남았다. 어쩌면 변화하지 않고. 그래서 사람들은 창작이란 걸 하고 작품이란 걸 만들고 하나... 남기기 위해서. 있다가 없지만, 영원히 있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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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2015-08-28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이 변하지 않는 유일한 것인듯 싶습니다. 저희 회사가 지금 구조조정 중에 있거든요. 포지션이 닫히는 대로 몇 년 같이 일한 사람들이 매달 떠나고 있는데 , 웃고 싸우고 (?) 했던 사람들인데 , 안 보이니까 또 익숙해지기 시작하고...삶이란게 이런 것 같아요. 만나면 헤어지고... 매끈하던 목에 주름이 생기기 시작하고..ㅎㅎ...... 그저 순간순간 즐기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어요. ㅎㅎㅎㅎ.

서로 돌대가리라고 생각한다는 말에 뻥 터져서 웃다 갑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비연 2015-08-30 09:37   좋아요 0 | URL
몬스터님. 요즘 많이 드는 생각이 그거에요. 순간순간 즐기는 것이 진리다. 모든 것이 변하는 것이 변하지 않는 유일한 것이라면 변할 수밖에 없는 그 순간을 지극히 누리는 게 맞는 것 아닌가... 회사가 구조조정이라니 많이 심란하시겠네요... 그런 상황이 익숙해진다는 것도 좀 슬픈 일인 것 같기도 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