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가야 할 길 아직도 가야 할 길
M.스캇 펙 지음, 최미양 옮김 / 율리시즈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선하게 생긴 노인이 재판장으로 불려 왔다. 그리고 변호사석, 검사석에는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이 재판은 신과 종교, 인간의 마음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관한 치열한 법정 공방이 계속되고 있었다.

 

 

<배역>

 

재판장 : 소셜북스 회원

 

피고 : 스캇 펙

 

검사 : 스피노자

 

변호사 : 파스칼

 

 

 

<검사 변론>

 

 

존 경하는 재판장님. 본 법정은 신과 인간에 관한 중요한 논의를 하는 자리입니다. 스캇 펙 피고는 제가 개인적으로 존경해 마지 않는 심리치료사입니다. 그리고 그가 심리 연구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점 역시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는 하느님을 '인격신'으로 상정함으로써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자신의 하느님과 가까이 있음을 경험한다는 것은 또한 자신이 하느님의 권력의 대리자가 되며 하느님처럼 될 것을 강요받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은총에의 부름은 사랑으로 돌보고 수고하는 삶에의 부름이며, 봉사와 희생이 요구되는 삶에의 부름이다"(<아직도 가야 할 길>(열음사판) 440쪽)

 

피고는 이런 주장을 책의 후반부에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본 검사는 피고의 이런 주장이 대중의 오해를 호도하며 폐해를 야기한다고 생각합니다.

 

신 은 절대적으로 무한한 존재이며 자기 스스로를 포함해 모든 존재의 원인이 됩니다. 인간은 신의 일부이자 결과로서 존재합니다. 인간은 스스로는 원인이 될 수 없습니다. 스캇 펙 박사가 피고석에 설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신과 인간의 이러한 관계를 모르고, 쉽사리 신에게 인간의 정서를 부여했다는 점입니다. 그는 모든 자연물이 어떤 목적을 위해 움직인다고 생각하며, 더욱 그는 신이 인간을 위하여 모든 것을 만들었으며 신을 숭배하도록 하기 위하여 인간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위험한 까닭은 신의 완전무결성을 훼손시키기 때문입니다. 만일 신이 인격신이거나 목적을 위하여 작용한다면 그는 자신이 결여하는 어떤 것을 필연적으로 욕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신에게 표상을 귀속시킨 것입니다. 신은 자신을 사랑하는 한에 있어서만 인간을 사랑할 수 있고, 따라서 인간에 대한 신의 사랑과 신에 대한 정신의 지적 사랑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실체인 신과 인간의 관계를 둘로 나누는 순간 커다란 혼란이 야기됩니다.

 

 

<변호사 변론>

 

 

 

존 경하는 재판장님. 검사는 신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한 자세를 보이고 있지만, 오히려 그것은 무신론에 가깝습니다. 모든 존재에게(미생물까지도) 신적 요소가 담겨 있고 인간도 신의 일부라고 하는 주장은 범신론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검사의 신관(神觀)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저는 신이라는 추상적인 논변보다 '신앙'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신앙은 증명과는 다릅니다. 증명은 인간적인 것이고 신앙은 신의 은총이기 때문입니다. 신의 인식에서 신을 사랑하게 되기까지는 얼마나 거리가 먼지 잴 수도 없습니다. 검사는 이로부터 얼마나 멀리 와버렸는지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할 것입니다.

 

신 이 있다는 것은 불가해(不可解)하고 신이 없다는 것도 불가해합니다. 영혼이 육체와 함께 있다는 것은 불가해하고, 우리가 영혼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도 불가해합니다. 세계가 창조되었다는 것은 불가해하고, 세계가 창조되지 않았다는 것도 불가해합니다. 원리가 있다는 것은 불가해하고 원리가 없다는 것도 불가해합니다.

 

데카르트와 마찬가지로 스피노자 검사도 자신의 철학을 위해서 '신'을 요청했을 뿐입니다. 세계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신으로 하여금 한 손가락을 움직이게 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죠.

 

피고와 본 변호인에겐 있고 검사에겐 없는 것이 있습니다. 스피노자 검사가 보시는 바와 같은 입장을 취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우리는 영성을 경험했고, 스피노자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스캇 펙 피고의 신앙은 정당합니다.

 

 

<검사>

 

 

 

재판장 님, 신의 존재는 불가해하지만 신에 대한 인식은 가해합니다. 파스칼은 무지로부터의 환원(귀류법)을 통해서 신에 대한 인식을 흐릿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예 컨대 만일 지붕 위의 돌이 머리에 떨어져서 어떤 사람이 죽었다면, 그들은 돌이 그 사람을 죽이기 위해 떨어졌다고 여기고 다음과 같이 증명할 것입니다. 만일 돌이 신의 의지에 따라 그러한 목적을 위하여 떨어진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렇게 많은 사정이(왜냐하면 주변의 많은 사정이 흔히 동시에 일어나기 때문에) 우연히 일치할 수 있는가? 바람이 불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 사람이 그곳을 지나갔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대답한다면 그들은 다음처럼 반박할 것입니다. 왜 바람이 바로 그때 불었는가? 왜 그 사람은 바로 그곳을 지나갔는가? 만일 여기에 대하여, 전날까지도 날씨가 좋았지만 갑자기 날씨가 거창해지고 그때 바람이 불었으며 그 사람은 벗의 초대를 받았다고 답한다면 물음은 끝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다음처럼 논박할 것입니다. 왜 바다가 거칠어졌는가? 그 사람은 왜 그때 초대를 받았는가? 이처럼 그들은 계속해서 원인의 원인을 물어서 끝내는 신의 의지, 곧 무지의 피난처에 도피할 대까지 그렇게 끊임없이 물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들은 또한 인간의 신체 구조에 대해 경탄하며, 그러한 위대한 기술의 원인을 모르기 때문에 그들은 이로부터, 그것은 기계적 기술이 아니라 신적 또는 초자연적 기술에 의하여 만들어져 어떤 부분도 다른 부분을 손상시키지 않게끔 되어 있다고 결론 내립니다. 그러므로 기적의 참다운 원인을 탐구하는 사람, 그리고 어리석은 사람처럼 경탄하는 대신에 학자로서 자연물을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을 흔히 이단자나 불경한 사람으로 여기며, 일반 대중들이 자연과 신들의 대변자로 숭배하는 사람들에게 비난받게 됩니다.

이것은 그들의 뻔한 수법입니다.

 

본 재판정은 누가 누가 신앙이 깊은가를 가리는 경기장이 아니라 신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판받는 자리입니다. 따라서 감정이나 행위에 대한 논의보다는 신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본 검사는 판단하는 바입니다.

 

 

재판은 격론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스캇 펙 박사의 최후진술 시간이 되었다.

 

 

<최후진술>

 

 

존경하는 재판장님, 이 재판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많은 방청객님들. 이 노구의 변변치 못한 노인네를 아껴주셔서 정말 감사하며, 이렇게 피고의 몸으로 재판에 오게 된 점에 대해서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저 는 차이보다는 공통점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검사와 변호사, 저는 모두 신앙의 편견에 빠진 기독교인들을 비판했습니다. 저는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기독교인들 때문에 수입이 늘었다"고 농담함으로써 기독교가 인간의 심리를 혼란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진정한 신앙을 이것으로부터 자유롭게 만드는 노력에 대해서는 검사님도 인정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제 가 쓴 "인격신으로서의 하느님" 표현은 논의의 본질이 아닙니다. 다만 스피노자 검사는 인식을 통해 신을 지적으로 사랑하는 경지를 이야기했고, 저는 "무의식"을 통해서 신과 합일되는 경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는 점이 다를 뿐입니다. 이미 스피노자 검사 또한 인간이 자신의 본질과 원인을 이해하려는 각고의 노력을 통해서 신에게 다가가고 신을 사랑할 수 있다는 설정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우스갯소리의 소재로 삼은 기독교인들은 여기서 벗어난 사람들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의식의 세계뿐만 아니라 무의식의 세계도 중요하며, 무의식 역시 신과 연결되어 있다고 믿습니다.

 

다만 제가 스피노자 검사의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논변에 대해서 걱정스러운 부분은 과학 자체가 하나의 종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 역시 스피노자 검사, 파스칼 변호사, 제가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부분입니다. 저는 화해를 바랍니다.

우 리 세 명의 과정은 한마디로 영적 성장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마다 자신의 방식으로 영적 성장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영적 성장이란 쉬운 길을 가려고 하고 날짜가 지난 지도나 낡은 관행에 집착하려고 하며 변화를 싫어하는 본능 등을 극복하고, 자기 마음대로 길을 가려는 자연의 저항을 이겨 내야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서 스피노자 검사가 신앙의 허위에 대해서 파고든 것을 저는 영적 성장으로 간주하고자 합니다.

 

나머지는 재판장님의 판결에 맡기겠습니다. 이 노인은 어떠한 처분을 받든지 유감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재판관이라면 어떻게 판결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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