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작가론' 수업을 들으면서 '김유정 전집'을 분석해본 일이 있다. 그때는 그럴 듯한 '전집판'이 없었고, 김유정의 작품목록을 들고 이책 저책에서 작품을 복사하거나 사와야 하는 실정이었다. 그래도 제법 김유정 소설사전까지 마련해 놓고 단어정리까지 하면서 보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때 비평가들의 글을 좀 보았는데, '작품성은 있으나 퇴물'취급을 받았던 기억이다. 김유정은 많은 작가와 비평가에게 회자되지만 '언급'되지는 않는 이상한 캐릭터라는 인상을 받았다. 김유정의 작품을 읽고 나서 '비평문'들은 모두 휴지통에 처박아 버렸다. 그들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작품을 분석하는 잣대를 작품 외적으로 너무 한정시키거나 작품 분석 역시 판형에 끼워맞추는 듯한 '생뚱함'을 느꼈다. 마치 '디워'를 찍으면서 공룡 전문 가게에 공룡들을 주문한 것과 같았다. (어떤 영화든 그 영화의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이미 만들어진 도구를 재활용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성석제의 김유정 글은 반갑다. 김유정을 다시 읽고 싶게까지 만드는 매력이 있다. 작가로서 무엇이 부족했고, 어떤 점을 주목해서 보아야 하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성석제와 김유정의 글을 쓰면서 자꾸 '디워'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디워 논란'을 보면서 비평의 채널이 너무 한정돼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비평가들이 김유정을 평가하면서 제한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과 같다. 비평가는 자신의 눈으로 견적을 낼 수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우선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최신의 문예사조가 역대의 문예사조를 모두 질서지으려는 욕구가 있듯이, 비평가들은 자신의 관점이 작품을 모조리 설명할 수 있으리라는 착각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비평가 비평과 함께 작가 비평, 독자 비평이 필요한 것이다. 즉 논평하기 위한 비평과 쓰기 위한 비평과 읽기 위한 비평이 자리를 잡을 때가 되었다는 말이다. 수년 동안 찾지 않은 김유정 전집을 다시 읽고 싶다. 어줍잖은 비평가의 시선과는 전혀 다른 관점으로 그를 바라보고 싶다.



출처 :
2007 YES24, PAPER 공동 기획 "제4회 네티즌 추천 한국의 대표작가"

<내 마음 속 우리 작가> "김유정, 비참한 풍속에서 피어난 염화미소"


소설을 쓰기 시작한 이후 좋아하는 작가가 누군인가 하는 질문에 나는 대체로 연암 박지원과 벽초 홍명희를 꼽아왔다. 연암에게서는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과 천부적인 낙천성을 느꼈고 벽초는 연면하고 도도한 서사성으로 나를 압도했다. 그리고 근래 어떤 계기로 『김유정 전집』을 통독하고 나서 좋아하는 작가가 두 사람이 아니라 연암, 벽초, 김유정 세 사람이라고 말하게 되었다. 아니 이들 작가의 후인으로서 충심으로 경애한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김유정의 소설을 처음 읽은 것은 초등학교 시절 자유교양문고 시리즈에서였다. 단편 「동백꽃」이 기억에 남아 있는데 중학교 아니면 고등학교에 다니던 형과 누나들이 보던 시리즈의 ‘한국단편문학선’에서 읽은 것 같다. 그때는 「동백꽃」의 해학성보다는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처녀 총각 간의 긴장과 접촉에 관심이 많이 갔고 닭싸움을 시킬 때 고추장을 먹이면 된다는 게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는 게 흥밋거리였다. 그 뒤로 교과서나 다른 책을 통해 읽은 게 「봄봄」이나 「금 따는 콩밭」정도였다. 『김유정 전집』의 산문에서 1930년대 사람들이 사이다를 마신다거나 냉면을 먹는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게 역시 흥미로웠다.
『김유정 전집』에서 김유정 본령인 소설을 원문으로 읽고 나서 나는 그동안 내가 김유정에 대해 가져왔던 선입관을 완전히 버렸다. 아니 생각을 완전히 바꾸게 되었다. 그는 널리 알려진 대로 해학과 풍자의 작가이기 이전에 독자를 소름 끼치게 하는 작가이다. 그의 작품을 읽으면서 웃거나 미소 짓기보다는 눈시울이 뜨거워질 가능성이 훨씬 높다. 그 이유는 먼저 작중 현실이 너무 처참했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그 현실의 바탕이 되었을 작가의 현실이 비참하고 곤고하기 때문이며 세 번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당대의 현실을 시종 냉정하게 심지어 냉랭하게 느껴질 정도로 거리를 두고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 위대한 시선은 어디서 나타난 것일까.
‘장을 보고 오는 농군을 농군이 죽엿다. 빼앗은 것이 한끗 동전 네 닢에 수수 일곱 되. 게다 흔적이 탄로날까 하야 낫으로 그 얼골의 껍질을 벗기고….’
「만무방」에 나오는 이 포악한 현실의 낫질에 대해 작중 인물들은 그런가보다 하고 순응적이다 못해 속 터지게 만든다.

“저 사촌형님께 쌀 두되 꿔다먹은 거 부대 잊지 말고 갚우”하고 부탁할 제 이것이 필연 안해의 유언이라고 깨닫고는 “그래 그건 염녀 말아!” “그러구 임자 옷은 영근어머이더러 사정 얘길하구 좀 빨아달래우”하고 이야기를 곧잘 하다가 다시 입을 이그리고 훌쩍훌쩍 우는 것이다. - 「땡볕」

이러한 피동성은 아예 유전자인 듯 김유정의 작중인물 대부분에 해당이 된다. 「솟」을 보자.
‘안해는 분에 복바치어 눈 우에 털뻑 주저앉으며 입맛만 다실 따름. 종국에는 안해를 잡아 일으키며 울상이 되었다. “아니야 우리 솥이 아니라니깐 그러네”’
그리하여 피동성은 무지함으로, 무지함이 아예 후안무치함으로 변해 버린다. 남편이라는 작자는 들병이(떠돌이 매춘부)에게 가져다 주려고 제 집 부엌의 솥을 뽑아다 주는데 그 전에 ‘어젯밤에 아내의 속곳과 그제 밤 맷돌짝을 훔쳐낸 것이 탄로가 났다.’ ‘닳아 일그러진 수저가 세 자루 길고 짧고 몸 고르지 모산 젓가락이 너덧매 있었다. 그 중에서 덕이(아들) 먹을 수저 한 개만 남기고는 모집어서 괴춤에 꽂았다.’ 그런 연후의 정황인즉 ‘들병이의 남편, “왜 섰수. 어서 같이 갑시다유.” 솥을 빼간다고 들병이에게 달려드는 아내, 들병이 두 내외는 귀가 먹었는지 하나는 짐을 하나는 아이를 업은 채 언덕으로 늠늠히 내려가며 한 번 돌아다보는 법도 없다.’
들병이의 두 내외가 그냥 내려가는 게 아니라 ‘늠늠히’ 내려가게 만드는 것이 김유정다운 관점이다. 이러한 냉철한 작가적 태도가 작품에서 통속성을 걸러내고 고전성을 획득하게 한다.
이제 김유정 그 자체의 표상이 된 해학성을 이야기할 차례다. 유머, 해학(諧謔)은 자연스럽고 선천적이면서 기질에 근거한다. 김유정이 낙천적이고 웃음을 좋아하고 웃음기에 민감한 기질을 타고난 작가임은 분명하다.
먼저 「봄봄」에서 “빙모님은 참새만 한 것이 그럼 어떻게 앨 낫지유?” 하는 것이나 「金 따는 콩밧」에서 ‘뽕이 나서 뼉따구도 못 추리기 전에 훨훨 벗어나는 게 상책이겟다.’고 하는 언어적 감각이 해학성의 근간이다. 또한 해학성이 높은 작품을 남긴 대부분의 작가에 해당되는 말이지만 특히 대사에 능하다. 「안해」를 보면 “이리와 자빠저 자---”라고 남편이 말하자 아내가 “곤두어 너나 자빠저 자렴---”하고 대꾸하는 것이 그런 예이고 한참 동안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나서 ‘나뿐 아니라 년도 매를 한참 뚜들겨맞고 나서 갗티 자리에 누우면 “내 얼굴이 그래두 그렇게 숭없진 않지?”’ 하는 대사가 나온다. 웃기면서 리얼하고 한심하면서도 자연스럽다.
이처럼 자연스러운 해학은 진주와 같아서 순결, 무구한 것이 아니라 상처에서 생겨나고 불순하고 냄새 나서 인간다운 희비극이 되고 또한 비희극을 이룬다. 더러운 곳에서 피어나는 꽃처럼, 그 연꽃을 자리로 형상화한 연화대 위에 앉은 부처의 염화미소처럼 김유정의 소설은 은연중에 피어서 빛나고 있다.

“더러운 걸 널더러 입때 끼고 있으랬니? 망할 계집애년 같으니” 하고 나도 더럽단 듯이 울타리께를 힝하게 돌아나리며 약이 오를대로 다 올랐다 하고 하는 것은 암탉이 풍기는 서슬에 나의 이마빼기에다 물찍똥을 찍 갈겼는데 그걸 본다면 알집만 터졌을 뿐 아니라 골병은 단단이 든 듯싶다. - 「동백꽃」

불과 스물아홉 살에 요절한 김유정은 다섯 해 남짓한 작품 활동 기간에 30여 편의 소설을 남겼다. 당시의 지면 사정이나 집필환경을 생각하면 상당히 다작에 속한다. 한편 20대이고 등단한 지 얼마 안 된 것을 생각하면 무조건 많다고 할 수도 없다. 결국 작가적인 성실성이 척도가 되는데 나는 김유정처럼 자신의 삶과 글을 직접 맞바꾼 예를 알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과장한다거나 엄살을 떤다거나 순교자처럼 군다는 느낌이 전혀 없다. 작가는 직설로써 독자의 흉중에 가장 단거리로 단시간에 도달한다.
작가는 역사가는 아니지만 ‘당대 풍속의 기록자’가 되라는 요구를 받는 경우가 많다. 사람에 따라 예술가로서의 깨끗하고 좁은 길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 김유정은 스스로가 풍속의 한 부분이었고 그 풍속을 가감 없이 서술하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그럼으로써 불후성을 얻었다. 언어의 장벽만 아니었더라면 당대는 물론 20세기 작가 가운데 가장 먼저 세계성에 도달했을 것이다.


글/성석제(소설가)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소나기 2009-04-17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승주나무님, 글 잘 읽고 갑니다. 졸업논문 주제에 대해 생각하다가 검색창에 '성석제, 김유정'이라고 쳤더니 승주나무님 글이 짜자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