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세 끼가 내 몸을 망친다
이시하라 유미 지음, 황미숙 옮김 / 살림Life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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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과식은 면역력도 떨어뜨린다. 과식하게 되면 음식물의 영양소가 위장에서 혈액으로 흡수되어 혈중 영양상태가 좋아지는데, 이렇게 되면 백혈구도 영양소를 잔뜩 먹어서 배부른 상태가 되므로 더 이상 미균이나 알레르겐이나 암세포를 잡아먹으려고 하지 않는다. 반대로 공복일 때는 혈중 영양상태가 좋지 않아 허기진 백혈구가 미균이나 알레르겐, 암세포를 열심히 잡아먹게 된다. 흔히 몸이 안 좋을 때 입맛이 떨어지는 까닭도 우리 몸이 백혈구의 활동을 활발하게 해서 면역력을 높이려고 하는 자연스런 현상인 것.

2 과식이 계속되면 노폐물의 배설 속도보다 영양분이 흡수되는 속도가 더 빨라져 혈중에 노폐물이 쌓이게 된다. 노폐물은 결석이 되기도 하고 혈관에 침착하기도 한다. 혈중에 노폐물이 많아서 오염된 혈액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고대로부터 거머리를 이용한 사혈요법이 널리 쓰였는데, 이는 일부러 출혈을 하게 해서 혈액을 정화시키는 방법이다. 서양 의술과 달리 한방에서는 혈액이 진득해져 혈전이 생기거나 반대로 혈액이 응고되지 않는 증상 모두 혈액의 오염 때문이라고 보아 두 증상 모두 사혈요법으로 치료한다고. (그렇다면 헌혈하는 것도 일종의 사혈요법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3 몸속에 수분이 너무 많아도 독이 된다. 한방에서는 배설되어야 할 수분이 정체되어 발생하는 증세를 '수독증상'이라 한다고. 한의학에서 수독증상으로 분류되는 질병은 양의학에서보다 훨씬 더 포괄적이다. 한방에서는 메니에르 증후군(내이 속의 림프액 과잉), 편두통, 대상포진(수포를 통한 수분 배설 현상), 결막염, 비염, 천식 등 각종 알러지 증상들도 모두 몸속의 수분이 과잉된 것(=수분이 제대로 배설되지 않는 것, 대사가 정체된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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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 21
가라타니 고진 지음, 송태욱 옮김 / 사회평론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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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백한 필연성의 세계 속에서 좌초당한 주체는 어떻게 주체성을 회복할 수 있을까. 이러한 물음에 답하기 위해 가라타니 고진은 역사를 거슬러 스피노자식 결정론적 세계 속에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되찾으려 했던 칸트를 소환해낸다. 우선, 칸트가 제3이율배반이라고 말한 두 명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정명제- 자연법칙에 따르는 인과성은 그것으로부터 세계의 모든 현상이 도출될 수 있는 유일한 인과성이 아니다.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 외에 자유에 의한 인과성을 상정할 필요가 있다. 

반대명제- 무릇 자유란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의 모든 것은 자연법칙에 따라서 생겨난다.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자유의지에 의한 인과성을 상정할 필요가 있다는 정명제는 스피노자식 결정론을 보여주는 반대명제와 대립한다. 그렇지만 칸트는 양쪽 모두 참 명제라고 말한다. 서로 반하는 명제들은 어떻게 각각 참으로서 공존할 수 있는 것일까. 저자는 ‘괄호 치기’에 의해 그것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정명제에서 말한 자유에 의한 인과성을 괄호 쳤을 때 현상(자연필연성의 세계)를 발견하고, 반대로 반대명제에서 말한 자연필연성을 괄호 쳤을 때 자유를 발견한다. 괄호를 어디에 치느냐에 따라서 전자의 경우에는 인식적 판단, 후자의 경우에는 윤리적 판단이라는, 현상을 받아들이는 전혀 다른 태도가 동시에 가능해진다.

가령, 어떤 사람이 범죄를 저질렀을 때 우리가 그의 행위에 격분하는 까닭은 그가 저지른 범죄가 사회적 구조적 모순에 의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에게 자유의지가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어떤 사람의 죄를 추궁한다는 것은, 우리가 이미 자연의 필연성이나 구조적 불가피성에 괄호를 치고 나서, 그를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서 상정하고 그에 따른 윤리적 책임을 묻고 있는 것이다.

거스를 수 없는 대전제인 자연의 필연성에 수긍하되 그것에 과감히 괄호를 침으로써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주체의 자유다. 자유는 결코 자연(섭리)으로부터 나오지 않는다. 저자는 칸트가 말한 ‘자유의지’에서의 ‘자유’가 오로지 ‘자유로워지라’는 의무, 당위, 정언명령에 따름으로서 존재하는 자유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러한 정언명령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여기서 저자는 사르트르를 끌어온다. 사르트르에게 있어서 자유란 데카르트적인 주체에게 주어진 그런 고상하고 형이상학적인 자유가 아니라, 실존적 긴장과 불안에서 비롯하는 자유다. 자유로워지라는 정언명령에 따름으로서 존재하는 자유란, 형벌과도 같은 실존적 고투 속에서 비롯하는 자유인 것이다.

칸트는 자유라는 관점에서 도덕성을 봤다. 그에게 있어 도덕성은 선악보다는 오히려 ‘자유’의 문제였다. 선악을 공동체의 규범으로 보거나 개인의 행복이라는 관점에서 보는 견해는 둘 다 개인의 주체성과 자유의지를 무시하고 오로지 사회적 인과성에 따라서만 판단하는 경우일 뿐이다. 이것은 윤리적 판단이 이루어져야 할 일에 대해 인식론적 판단을 해버리는 것과 같은 오류다. 칸트는 사회적 인과성에 괄호를 치고, 오로지 개인의 자유(자유로워지라는 당위에 따르는 자유)에서 그 도덕성을 찾았다.

자유로부터 도덕성을 논할 수 있는 것은 자유가 책임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칸트의 윤리는 책임윤리다. 우리가 어떤 현상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것은 실제로 우리가 사회적 인과성의 법칙에 얽매여 자유롭지 못하더라도 우리 자신을 자유로운 주체로서 간주함을 의미한다. 어쩔 수 없는 경우에도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는 이러한 인식은 니체의 운명애로 이어진다. 니체의 운명애가 “인생을 타인이나 주어진 조건 탓으로 돌리지 않고 마치 자신이 만들어낸 것처럼 받아들이는 것”이었다면, 칸트에게 있어 운명애는 “여러 원인들에 의해 규정된 운명을 그것이 자유로운(자기원인적) 것인양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칸트와 니체의 오묘한 접점을 발견해 낸다.

칸트가 말한 자유의지를 지닌 주체는 니체적 운명애의 실천으로서 '책임'을 져야 하는 주체로 재탄생한다. 그렇다면 책임을 어떻게 져야 하나? 저자는 책임 추궁에 응답하는 한 가지 바람직한 윤리적 실천이 원인을 철저하게 인식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공교롭게도 내가 이 대목을 읽으면서 떠오른 것은 가토 노리히로였다. 전후책임 논쟁에서 가라타니 고진은 가토 노리히로를 비판하는 쪽이었지만, 나는 오히려 이 책 <윤리21>에서 가라타니 고진이 얘기하고 있는 윤리적 주체의 모습을 가토 노리히로에게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토 노리히로의 <패전후론>(사죄와 망언 사이, 창작과 비평사, 1998)를 읽으면서 내가 느꼈던 것은, 그가 전쟁 책임을 둘러싼 일본 내부의 자기분열적이고 이율배반적인 심리를 파고들므로써 굉장히 힘겨운 자기 해부의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었다. 내가 감히 굉장히 힘겨웠으리라고 짐작하는 까닭은 그의 글이 일본 지식인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나는 논쟁의 포문을 여는 그런 글을 썼을 때 가토가 이미 어느 정도 자신에게 쏟아질 비난을 각오하고 있었으리라고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런 글을 썼다는 것은 그것이 추궁에 응답하는 가토 나름의 한 가지 치열한 방식이기 때문이었으리라. 이렇게 믿는 한에서(이 전제가 중요하다), 나는 가토 노리히로에게서 가라타니 고진이 칸트를 경유하여 이야기한 윤리적 주체의 모습을 발견한다.   

전후책임 문제와 관련해서 일본인들이 보여주는 자기분열적 모습은, 그들 자신이 죄를 저지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조상의 죄에 대해 후손으로서 사죄해야 한다는 묘한 상황에서 기인한다. 죽은 자가 저지른 범죄에 대해 후손이 느끼는 책무감은, 이 책 1장에서 가라타니가 아이가 저지른 일에 대해 부모가 책임지는 일의 부당함을 얘기한 것과 똑같은 차원에서 부당한 일일 수 있다. 한 마디로 전후책임 문제와 관련한 일본인의 자기분열적 태도는 '조상의 죄로부터 자신이 무관하다는 개인주의적 태도'와 '전쟁 책임에 대해 사죄해야 한다는 도덕적 규범' 사이의 간극에서 연유한다. 그리고 이러한 분열을 치유하기 위해 가토가 고안해낸 해결책이 바로 일본 전사자들을 우선적으로 애도하자는 제안이었다.  

가토에게 있어서 죽은 자를 애도하는 일은 가라타니가 이 책에서 말한 것처럼 단순히 죽은 자를 영구적으로 추방함으로써 불안해진 공동체를 재확립하기 위함은 아니었을 것이다. 일본 내부의 자기 분열적 상황을 어떻게든 극복해보려는 가토에게 애도의 문제는 보다 복잡한 의미를 갖는 사안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적 상황에 대한 깊이있는 천착과는 무관하게 가토가 제안한 자구책은 올바르지 못했다. 왜 올바르지 못한가에 대해 이 책 7장에서 가라타니는, 죽은자가 이미 타자라는 이유를 든다. 가라타니에 따르면, 죽은 자는 소통이 불가능한 영원한 타자다. 때문에 죽은 자를 애도하는 일은 죽은 자와는 하등 상관이 없는 자기 위안이고 자기 만족일 뿐이며, 그것은 죽은 자를 산 자의 방편으로 활용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가토에 대한 가라타니의 반박은 호소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토가 전후책임문제와 관련해서 지식인 사회에 발표한 몇 편의 글들이 윤리적 주체의 실천으로써 충분히 의미있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은 이 책에서 가라타니가 인용한 소세끼의 소설 <모방과 독립>의 한 구절을 재인용하는 것으로 갈음할 수 있을 것이다.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의미에서 보나 그 사람이 나쁜 일을 저질렀다고 해도,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감추지도 빼지도 않고 쓸 수 있다면, 그 사람은 그것을 쓴 공덕에 의해 바로 성불할 수가 있습니다. 법률에 걸리고 징역은 살게 됩니다만, 그 사람의 죄는 그 사람이 쓴 것으로 충분히 씻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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率路 2010-12-16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저 이책 진짜 좋아해요! 세번이나 읽었다능. 근데 놀랍게도 하나도 기억안남ㅋ-_-;;;;
 

19세기 후반 러시아에서는 사회의 후진성을 절감한 인텔리겐차들이 등장하여 브나로드운동을 벌인다. 그들은 자본주의 진입의 문턱에 서있던 러시아가 자본주의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사회주의로 이행되어가길 바랬다. 그러나 아이러니한 것은, 당시 러시아가 어떤 면에선 이미 사회주의 국가 상태였다는 점이다. 이 나라에는 오래 전부터 '미르'라는 촌락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었는데, 이것은 어떤 면에선 사회주의자들이 그토록 열망했던 이상사회의 모습과 유사해 보인다.  

볼셰비키들은 프롤레타리아 독재 이후 국가가 점진적으로 소멸하리라고 보았지만, 제정 러시아에서 국가의 지위라는 것이 과연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의 그것처럼 막강한 권력을 가졌는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오늘날 자본주의사회의 국가의 권능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제정 러시아에서 황제의 지위란 것은 이미 '소멸' 단계에 가까운 상태가 아니었을까. 물론, 이것은 내멋대로의 추측이지만, 전제왕권체제에서 황제의 존재라는 것은, 광대한 영토에서 구속감 없이 자유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최소한의 어떤 질서와 통일의 필요성을 느껴서 스스로 구심점을 만들어낸 결과였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런 관점에서는, 제정러시아가 꼭 자유주의 이념에 위배되는 전근대적 사회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광대한 영토를 유지하는데 합리적인 정치체제를 갖추고, 세부적으로는 촌락자치공동체들로 이루어진, 어떤 면에선 이미 '선진적 사회주의 국가'였던 러시아는, 전세계적 자본주의의 대열에 합류하기 시작하면서 심각하게 불안한 사회가 되어버렸다. 자본주의 및 자본주의를 뒷받침하는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유입이 사회를 계몽시킨 게 아니라 오히려 사회를 뒤틀리게 만들고, 혼란을 부르고, 그 결과 반동적으로 일어난 것이 혁명이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러시아 역사는 맑스가 얘기한 사회주의이행론이랑은 그닥 상관없이 펼쳐진 셈이다. 비약인지 모르겠지만, 맑스의 사회주의이행론이 역사가 진보한다는 근거 없는 믿음에 따른 가상적인 시나리오였다는 것을 (사회주의 이행론을 그토록 체현하려 했던)이 나라의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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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본성에 관하여 외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70
소스타인 베블런 지음, 홍기빈 옮김 / 책세상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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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블런은 자본의 착취가 노동자의 잉여노동 뿐만 아니라, 사회 공동체 전체의 생산력까지도 아우르면서 이루어진다고 본다. 사회 공동체 전체의 생산력이란, 공동체가 오랜 세월에 거쳐 누적해온 지식과 기술로부터 비롯하는 능력을 말한다. 최첨단 기술이나 기계도 사실상 개인의 독창적 발명품이 아니라 공동체가 수세기에 걸쳐 누적해온 기술과 지식과 사고능력과 창조력의 총화가 빚어낸 성과물인 것. 이러한 역사적 성과물을 특정인이 독점적으로 소유하여 이윤창출을 위한 도구로 전유한다는 것은 공동체 전체가 지닌 무형자산을 일방적으로 갈취하는 것과 다름 없다.(베블런이야말로 인지노동 담론의 원조인 듯. 베블런의 논리에 따르면 특허권이나 저작권 같은 권리도 사실상 권리로서 주장하기 어려운 종류가 될 것 같다.)

 

베블런의 사상이 마르크스의 그것과 구별되는 점이 한 가지 더 있다. 마르크스가 노동자의 상품화가 이루어지는 산업자본주의를 분석했다면, 베블런이 분석한 것은 자본의 상품화가 이루어지는 금융자본주의였다. 베블런은 ‘자본이 생산을 지배하는 구조’ 위에 ‘금융이 자본을 지배하는 구조’를 하나 더 올려놓는다. 수탈구조가 이중적으로 일어나는 셈인데, 이런 구조 속에서는 '재화시장에서 시장을 지배하는 자본가들의 움직임'과 '금융시장에서 자본을 운용하는 금융거물의 움직임' 사이에 흥미로운 유비가 가능해진다. 

금융시장에 하나의 상품으로서 투입된 기업자본은 이제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상품 가치를 높이는데 사활을 걸게 된다. 기업자본의 상품 가치를 매기는 것은 금융시장의 행위자들, 즉 금융거물들이다. 그들은 “기업이 앞으로 창출할 수익의 흐름을 현재 가치로 환산한 것”을 기초로 하여 그 기업의 가치를 매긴다. 이것은 사실상 “그 기업이 앞으로 경제적 과정을 둘러싼 사회 전체에 대하여 얼마만큼의 권력을 가지게 될 것인가에 대한 예측”이나 다름없다.

기업은 자신의 상품가치를 높이기 위해 고용을 최대한 유연하게 하고 장기성과를 내는 투자는 가급적 억제하려고 한다. 앞서 유비가 가능해진다고 했듯이, 자본시장에서의 기업을 재화시장에서의 노동자로 치환해서 생각해보면, 기업의 이러한 전략을 꼭 이윤추구에 사활을 건 탐욕스런 행동이라고 볼 수만도 없을 것 같다. 오히려 그것은 금융시장에서 착취(?)당하면서도 어떻게든 자기가치를 높여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한, 기업 나름의 필사적인 발버둥이라고 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필사적인 발버둥의 최종적 희생양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라는 점은 두말 할 나위가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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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혁명과 레닌의 사상
최일붕 지음 / 책갈피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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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혁명은 볼셰비키들이 권력을 잡기 위해 일으킨 무력정변이었는가 아니면 민중의 자발적인 역량이 일구어낸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었나. 이 책의 저자는 후자의 입장을 취한다. “10월 혁명이 소규모 음모 집단의 작품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단지 볼셰비키가 대중정당이었다는 사실만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주장은 또한 그 당이 노동자 권력을 위한 조건들을 혼자 힘으로는 창출할 수 없었다는 점도 무시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10월 혁명이 복잡한 사회경제적 격변과 정치적 사건들을 거치면서 대중 스스로가 의식적으로 각성하여 이루어낸 혁명이었으며, 결코 볼셰비키가 대중의 불만이나 혁명적 감정을 조장한 게 아니라고 강조한다. 이러한 관점을 바탕으로 저자는 1917년 러시아 노동자 국가와 스탈린 치하의 관료 획일체 사이에 완전한 단절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스탈린 정권 이후 혁명의 정신이 변질되었다는 것이다. 러시아 혁명을 바라보는 저자의 이러한 관점을 내가 신뢰하기 어려운 까닭은 순전히 개인적인 기억 때문이다. 

책날개에는 이 책의 저자가 현재 ‘다함께’의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나와 있다. 나는 신문 읽을 때에도 정치면을 읽는 게 제일 어려운 일일 정도로 정치 쪽으로는 영 까막눈이지만 ‘다함께’라는 정치조직에 대해서라면 한 가지 또렷하게 기억나는 게 있다. 지난 촛불 정국 때 집회에 몇 번 참가했던 일이 있는데, 거기서 목격한 ‘다함께’의 활동 모습은 지금 생각해 봐도 퍽 인상적이었다.

내 눈에 비친 그들은 대중의 자율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존중하고 신뢰하는 집단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선각자적 나르시시즘과 권위주의에 젖어서 대중을 지도하고 교화시켜야 할 대상으로 간주하는 전형적인 선동꾼의 모습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의 정치적 이념이나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확실히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그들이 대중과 접촉하는 방식에 있어서만큼은 상당히 문제가 많은 조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정치적 이념에 대해 호의를 품었던 사람들조차도 반감을 느끼고 죄다 떨어져 나가지 않을까 염려스러울 정도였다. 하물며 요즘은 신제품 광고도 그렇게는 안 하는데.     

전형적인 선동꾼의 면모를 보여주던 정치조직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이 러시아 10월 혁명의 의의를 민중의 자발적인 역량에서 찾고 있다는 사실이 내게는 매우 아이러니컬하게 느껴진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결과적으로 나로 하여금 러시아 혁명을 바라보는 저자의 관점 자체를 신뢰하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오히려 러시아 혁명이 과연 프롤레타리아 혁명이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생긴다.

어쩌면 볼셰비키는 부르주아들과는 또 다른 통치전략을 가지는 권력집단에 불과한 게 아니었을까. 이 책에서는 1917년의 소비에트 국가가 20년대 초에 일당국가로 대체되어버린 까닭을 결코 레닌 개인의 권력의지 때문이 아니라, 소비에트의 무능과 더불어 자본주의 열강의 위협이 극에 달했던 국제 정세의 불가피성 때문이라고 역설하고 있지만, 이런 논리는 설득력 있게 느껴지기보다는 오히려 위험해 보인다. 왜냐하면 이런 식의 논리대로라면 과거 우리나라 독재정권의 정당성도 얼마든지 인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과연 볼셰비키는 얼마나 대중의 입장을 대변하는 정당이었을까. 만약 볼셰비키가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정당이었다면(그런 정당이 정말로 존재하는지는 차치하고서라도), 거의 국가 폭력이나 다름없던 곡물징발정책과 크론스타트 봉기에 대한 잔학무도한 진압은 어떻게 해명되어야 하는가. 특히 크론스타트 사건과 관련해서는, 트로츠키의 언급처럼 진압이 비록 '비극적 필요'였을지라도, 이 책의 저자가 볼셰비키를 두둔하기 위해 꺼내들고 있는 변명들(크론스타트 수병들이 유대인을 혐오하는 구시대적 집단이었다거나, 정치위원이라는 트로츠키의 직책상 그에게 군사적 책임을 지울 수는 없다는 주장)은 뭔가 옹색해 보인다.  

러시아 혁명의 세부 사정을 알아갈수록 10월 혁명이 결코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아니었다는 자율주의자들의 의견에 관심을 갖게 된다. 또 한편으로는, ‘혁명’이라는 용어 자체가 굉장히 신중을 기해서 사용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이 용어는 신중함을 넘어서 가급적이면 지양되어야 할 용어인 것 같다. 혁명은 모든 민주적 의사결정과정을 무화시키고, 반동의 반동을 낳으며, 이성이 마비된 극단적 유혈 사태를 불러일으킨다.

진리의 관철을 위해 불가피한 경우 살인과 파괴와 폭력이 수반될 수 있다고 여기는 이들에게는 움베르트 에코의 말이 유용할 것 같다. "진리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자를 경계하라. 진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자는 대체로 많은 사람을 저와 함께 죽게 하거나, 때로는 저보다 먼저, 때로는 저 대신 죽게 하는 법이다." 혁명은 결코 낭만적인 구호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최악의 카드다. 더 이상 아무런 카드도 남아있지 않을 때 절망적으로 꺼내들 수밖에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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