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혁명과 레닌의 사상
최일붕 지음 / 책갈피 / 2007년 2월
평점 :
절판


10월 혁명은 볼셰비키들이 권력을 잡기 위해 일으킨 무력정변이었는가 아니면 민중의 자발적인 역량이 일구어낸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었나. 이 책의 저자는 후자의 입장을 취한다. “10월 혁명이 소규모 음모 집단의 작품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단지 볼셰비키가 대중정당이었다는 사실만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주장은 또한 그 당이 노동자 권력을 위한 조건들을 혼자 힘으로는 창출할 수 없었다는 점도 무시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10월 혁명이 복잡한 사회경제적 격변과 정치적 사건들을 거치면서 대중 스스로가 의식적으로 각성하여 이루어낸 혁명이었으며, 결코 볼셰비키가 대중의 불만이나 혁명적 감정을 조장한 게 아니라고 강조한다. 이러한 관점을 바탕으로 저자는 1917년 러시아 노동자 국가와 스탈린 치하의 관료 획일체 사이에 완전한 단절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스탈린 정권 이후 혁명의 정신이 변질되었다는 것이다. 러시아 혁명을 바라보는 저자의 이러한 관점을 내가 신뢰하기 어려운 까닭은 순전히 개인적인 기억 때문이다. 

책날개에는 이 책의 저자가 현재 ‘다함께’의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나와 있다. 나는 신문 읽을 때에도 정치면을 읽는 게 제일 어려운 일일 정도로 정치 쪽으로는 영 까막눈이지만 ‘다함께’라는 정치조직에 대해서라면 한 가지 또렷하게 기억나는 게 있다. 지난 촛불 정국 때 집회에 몇 번 참가했던 일이 있는데, 거기서 목격한 ‘다함께’의 활동 모습은 지금 생각해 봐도 퍽 인상적이었다.

내 눈에 비친 그들은 대중의 자율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존중하고 신뢰하는 집단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선각자적 나르시시즘과 권위주의에 젖어서 대중을 지도하고 교화시켜야 할 대상으로 간주하는 전형적인 선동꾼의 모습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의 정치적 이념이나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확실히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그들이 대중과 접촉하는 방식에 있어서만큼은 상당히 문제가 많은 조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정치적 이념에 대해 호의를 품었던 사람들조차도 반감을 느끼고 죄다 떨어져 나가지 않을까 염려스러울 정도였다. 하물며 요즘은 신제품 광고도 그렇게는 안 하는데.     

전형적인 선동꾼의 면모를 보여주던 정치조직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이 러시아 10월 혁명의 의의를 민중의 자발적인 역량에서 찾고 있다는 사실이 내게는 매우 아이러니컬하게 느껴진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결과적으로 나로 하여금 러시아 혁명을 바라보는 저자의 관점 자체를 신뢰하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오히려 러시아 혁명이 과연 프롤레타리아 혁명이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생긴다.

어쩌면 볼셰비키는 부르주아들과는 또 다른 통치전략을 가지는 권력집단에 불과한 게 아니었을까. 이 책에서는 1917년의 소비에트 국가가 20년대 초에 일당국가로 대체되어버린 까닭을 결코 레닌 개인의 권력의지 때문이 아니라, 소비에트의 무능과 더불어 자본주의 열강의 위협이 극에 달했던 국제 정세의 불가피성 때문이라고 역설하고 있지만, 이런 논리는 설득력 있게 느껴지기보다는 오히려 위험해 보인다. 왜냐하면 이런 식의 논리대로라면 과거 우리나라 독재정권의 정당성도 얼마든지 인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과연 볼셰비키는 얼마나 대중의 입장을 대변하는 정당이었을까. 만약 볼셰비키가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정당이었다면(그런 정당이 정말로 존재하는지는 차치하고서라도), 거의 국가 폭력이나 다름없던 곡물징발정책과 크론스타트 봉기에 대한 잔학무도한 진압은 어떻게 해명되어야 하는가. 특히 크론스타트 사건과 관련해서는, 트로츠키의 언급처럼 진압이 비록 '비극적 필요'였을지라도, 이 책의 저자가 볼셰비키를 두둔하기 위해 꺼내들고 있는 변명들(크론스타트 수병들이 유대인을 혐오하는 구시대적 집단이었다거나, 정치위원이라는 트로츠키의 직책상 그에게 군사적 책임을 지울 수는 없다는 주장)은 뭔가 옹색해 보인다.  

러시아 혁명의 세부 사정을 알아갈수록 10월 혁명이 결코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아니었다는 자율주의자들의 의견에 관심을 갖게 된다. 또 한편으로는, ‘혁명’이라는 용어 자체가 굉장히 신중을 기해서 사용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이 용어는 신중함을 넘어서 가급적이면 지양되어야 할 용어인 것 같다. 혁명은 모든 민주적 의사결정과정을 무화시키고, 반동의 반동을 낳으며, 이성이 마비된 극단적 유혈 사태를 불러일으킨다.

진리의 관철을 위해 불가피한 경우 살인과 파괴와 폭력이 수반될 수 있다고 여기는 이들에게는 움베르트 에코의 말이 유용할 것 같다. "진리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자를 경계하라. 진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자는 대체로 많은 사람을 저와 함께 죽게 하거나, 때로는 저보다 먼저, 때로는 저 대신 죽게 하는 법이다." 혁명은 결코 낭만적인 구호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최악의 카드다. 더 이상 아무런 카드도 남아있지 않을 때 절망적으로 꺼내들 수밖에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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