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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와 설탕 그리고 혁명
유재현 지음 / 강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유재현씨의 쿠바 여행 사진집이라 할 수 있는 느린 희망을 참 인상적으로 봤었다.
<느린 희망>이 사진이 주인공이었다면
이 책은 쿠바를 여행하면서 작가가 고민하고 바라본것들을 보다 구체적으로 풀어쓴 여행기라 할 수 있다.
저자의 실제 여정은 동서로 기다란 쿠바란 나라를 아바나를 중심으로
서쪽 끝까지 갔다가 다시 아바나로 돌아와 동쪽 끝까지 갔다가 다시 아바나로 돌아오는 3,500km에 달하는 엄청난 여정이다.
하지만 그의 관심은 그런 쿠바의 도로여행이나 일반적인 여행자의 자연찬미, 문화찬미에 있지않다.
그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여정은 다른 길을 따른다.
첫번째 길은 독립혁명에서부터 사회주의 쿠바혁명의 길이다.
그리고 두번째 길은 1990년대 냉전체제의 붕괴 이후 멸망의 문앞에서 되살아난 쿠바의 오늘을 횡단하는 길이다.
첫 번째 길에서 우리는 곳곳에서 쿠바 독립의 영웅들을 만나고
또한 혁명 그 자체가 된 사람 체 게바라를 만난다. 또한 카스트로와 그의 동료들을 만난다.
유럽이 이 땅에 발을 디딘 이래 이 지역의 원주인인 인디오들은 백인들의 가혹한 노동착취에 의해 아예 멸종을 당해버린다.
한 인종 자체를 멸종시켜버리는 가공할 폭력이란....
그래서 쿠바에 인디오는 없다.
인디오의 노동력을 대체하기 위해 수입되어온 흑인들과 그 흑인과 백인의 혼혈인 뮬라토, 소수의 백인이 이제 쿠바의 주인들이다.
아니 혁명전까지는 소수의 백인이 주인이었고 나머지는 노예였다.
1895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기위한 독립전쟁에서 흑인과 뮬라토 역시 투쟁에 나선다.
그 부대를 이끌었던 이가 안토니오 마세오였다.
그 역시 뮬라토였고 지금 그는 뮬라토로서는 유일하게 지폐에 등장하는 인물이 되었다.
쿠바의 서쪽 끝 피나르 델 리오에는 안토니오 마세오의 혁명광장과 기가 막힌 그의 동상이 있다.
쿠바의 동쪽 끝 관타나모 영웅 기념탑에는 순수한 흑인이었으며 모든 자식들을 혁명가로 키워냈던 안토니오 마세오의 어머니 마리아나 그라할레스의 두상이 영웅기념탑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어쩌면 쿠바의 양쪽 끝을 장식하고 있는 이 흑인 모자의 기념상은 어쩌면 오늘 날 우리 세계가 지향할 바를 알려주는 바로미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피부색에 의한 인간의 차별은 부당한 모든 차별의 대표주자중 하나일게다.
인간에 의한 인간 차별의 종식!
어쩌면 이 어머니와 아들이, 쿠바가 전 세계에 전하는 메시지이기도 하지 않을까?
그란마호라는 25인승 보트를 타고 쿠바로 향한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를 비롯한 82명.
그마저도 미리 준비하고 있던 바티스타 정권의 공격을 받아 그들이 시에라 마에스트라의 깊은 산중에 도달했을때는 겨우 12명으로 줄어있었다.
그 12명에서 본격적인 쿠바 혁명이 시작되었다.
이만하면 전설이란 말 이외에 도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이 조그만 나라가 세계제국을 이룬 미국의 코앞에서 혁명을 성공시키고 또한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아무리 봐도 기적이다.
그것이 기적이기에 쿠바의 혁명 얘기를 듣는 것은 하나의 전설을 듣는 것이 된다.
또한 그 자신이 전설이 되어버린 체 게바라를 곳곳에서 만나는 것 역시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는 가슴떨리는 노래가 된다.
두번째 길.
혁명을 성공시킨 쿠바는 미국에 공세에 맞서 소련의 위성국가로 들어선다.
냉전시대 당시 쿠바는 국제시가의 3배 이상의 가격으로 사탕수수를 소련에 판매하고 원가 이하로 석유와 식량 공산품들을 소련으로부터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받아 경제를 유지하는 나라였다.
이러한 경제 체제는 냉전체제가 무너지면서 당연히 같이 무너질 수 밖에 없는 체제였다.
1990년대 초반의 쿠바는 한마디로 온국민이 굶어죽을 위기라는 말 이외에는 도저히 표현할 길 없는 처지에 빠져버린 것이다.
그런데 그걸 딛고 일어섰다.
도대체 어떻게.....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시장경제로의 진입도 아니고 사회주의라는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말이다.
이 불가능한 일이 어떻게 일어났을까?
1990년 당시 식량 자급률 40%를 오늘날 식량 자급률 95%로 바꿔놓은 기적은 어떻게 일어났을까?
석유가 없어 폐물이된 트랙터의 노동은 소들이 대신한다.
화학비료가 없어진 자리는 유기농이 대신한다.(그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그런데 이것이 지금 쿠바의 새로운 관광상품으로 개발되고 있다)
도시의 공터들을 모두 농지로 개편, 도시농업을 활성화시킨다.
거대한 국유 사탕수수농장을 잘개 쪼개 협동농장화 하고 작물을 다변화한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과정과 지원은 철저하게 국가가 주도하며, 전 국민에게 식량 배급제를 실시한다.
국민들이 굶고 있던 시절에 정부 고위관료들이 호의호식한 흔적은 거의 없다.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서 쿠바의 국가 청렴도는 부동의 1위다. (물론 아주 없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의 새로운 연대의 모델을 만든다.
대표적인 것이 베네수엘라와의 교역모델.
부족한 석유의 수입을 위해 베네수엘라와 쿠바는 연대한다.
즉 차베스 정권 이후의 베네수엘라가 쿠바에 석유를 수출한다.
당연히 그 대금을 지불할 현금 능력은 없다.
대신 쿠바는 그 대금으로 의사와 교사인력을 파견한다.
차베스는 집권 이후 의료와 교육의 개혁을 공약으로 내걸었으나 문제는 베네수엘라에서 이미 어느정도 특권층인 교사와 의사 집단이 누구도 시골 변방에 가서 가난한 이들을 위해 일하려하는 이가 없다는게 문제였다.
바로 그 베네수엘라의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육과 의료 사업을 쿠바인들이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쿠바의 의료수준은 세계적이며 교사의 숫자 역시 우리와는 비교가 안된다.
아무리 어려웠던 시절에도 쿠바는 의료와 교육의 무상혜택을 멈추지 않았으며 그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인구 170명당 의사 한 명, (학생이 아닌)인구 36.8명당 1명의 교사가 있는 나라가 쿠바다.
이들의 대우가 특별하냐? 아니다. 기껏해야 노동자의 평균임금보다 약간 많은 정도.
그나마도 근무조건도 좋지 않다.
오지중의 오지에 가서 근무하는것도 태반이다.
그럼에도 국가의 지원은 불가능해 보이는 이 일을 해내고 있다.
또한 쿠바와 베네수엘라는 지금 공동의 의료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잇다.
즉 카리브해와 중남미 지역에 사는 맹인 또는 시력장애 환자들을 쿠바로 불러들여 눈을 뜨게 한다는 것.
이 인도주의 프로젝트는 베네수엘라가 자금을 대고 쿠바가 병원과 의료진, 환자와 보호자들의 숙식을 제공한다.
2005년 한 해에만 라틴아메리카의 가난한 시각장애인 10만명에게 빛을 준 프로젝트다.
세계에서 제일 잘 사는 나라 미국은 뭐하고 있냐고...
정치적 목적으로 아픈사람을 이용한다고 비난하고 있다. 젠장.....
쿠바와 베네수엘라와의 연대는 미국이 뭐라하든 이제 새로운 올바른 국제협력의 모델의 첫 출발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모범을 따르는 나라가 없는게 문제지만 그것이 라틴 아메리카 전체로 번져가지 않을거라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꿈이라 할지라도 이제 시작하는 나라가 생기지 않았는가 말이다.)
이런 쿠바에 문제가 없냐고?
모든 것을 환상적으로 잘 돼가고 있다고 열광하기에 작가의 나이도 사유의 깊이도 그리 얕은게 아니다.
애정은 애정이고 현실은 현실이니....
1990년 이후 경제붕괴 이후 외화의 부족은 쿠바에 이중경제체제를 발생시킨다.
국영체제 이후에 달러경제가 한 곳에서 따로 성장하고 있는 것.
미국 친척으로부터 송금을 받을 수 있는 자들이 생기고, 일부 관광업 종사자들 중에서 어느정도의 부유층이 형성되면서 빈부격차가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 것.
새로이 생긴 달러상점은 대부분의 쿠바인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나 소비의 욕망을 증폭시키는데는 마찬가지다.
집권층에서의 부정부패보다도 오히려 일반 국민층에서의 부정.
국영공장이나 농장등으로부터 빼돌린 물건들을 암거래하는 암시장이 일반화되어있다.
이러한 이중경제는 물론 국가의 단속대상이지만 그것이 워낙에 광범위하다보니 완전 ?결은 불가능.
아직은 그것이 국가 체제를 위협할 정도는 아니지만 한 번 풀린 욕망이 어떻게 전개되어 갈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쿠바의 미래가 밝기만 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면 쿠바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책의 마지막에 저자가 우리에게 던지는 말을 들어보자.
천국도 지옥도 아닌, 몰락을 면하고 여전히 지구상에 존재하는 현실사회주의 국가일 뿐인 쿠바, 지구 반대편의 이 이상한 나라를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이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그렇다고 믿는다. 쿠바의 시선으로 쿠바를 보면 그 너머에 우리 안의 일상호된 잔혹함과 비인간성의 음습한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꼴을 볼 수 있다. 그 그림자가 주는 영감으로 우리 사회가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다면, 좀더 나은 세계를 만드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렇게 믿지 않을 이유가 없다. 사회주의적 영감이 사라진 자본주의만큼 참혹한 체제는 없는 법이다.(34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