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레미 말랭그레 그림, 드니 로베르 외 인터뷰 정리 / 시대의창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촘스키는 언어학자로서도 유명하지만 비판적 지식인, 특히 자국인 미국에 대한 끊임없는 비평으로도 필명을 날리고 있다. 단순히 글로 그치지 않고 행동하는 지식인상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 시대가 원하는 진정한 교양인이지 않을까 싶다. 솔직히 개인적으론 촘스키의 이런 겉모습만 알고 있을뿐 아직까지 그의 저작을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다. 이 책 또한 그의 세상에 대한 심층분석이라기 보다는 인터뷰를 통해서 들여다볼 수 있는 그의 주된 생각의 요약본 정도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나와 같이 아직 그의 견해에 대해서 알고싶지만 섣불리 읽어보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입문서로서의 역할은 충분히 해주고 있다고 보여진다. 물론 짧은 시간의 인터뷰로 인해 그의 주장에 대한 충분한 논거를 들을 수 없다는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일단 그의 주된 생각을 읽는 재미도 만만치않다.

이 책의 저자가 쓴 프롤로그에서는 촘스키가 전해준 교훈 한가지를 전해주고 있다.

기존의 생각을 곧이 곧대로 믿지 말고, 말을 앞세우는 사람들을 절대 믿지 말라는 것이다. 어떤 것도 확실하고 당연한 것이라고 믿지 말라는 것이다. 확인하고 심사숙고하라는 것이다. 각자의 기준에 따라 생각하고, 기지의 사실에서 해방되라는 것이다. (중략) 자기만의 생각만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이 이런 도전의식을 키우면서 스스로 알아내려 한다면, 그것만으로 나는 내 목적을 어느 정도 성취한 것이라 생각합니다.(12쪽)

이것은 세상에 당연시여기는 모든 것에 대해 의심해보라는 말처럼 들린다. 그리고 이런 의심은 분명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줄 것임을 믿는다. 당연하다고 여기는 상식들과 기존의 가치관들, 그리고 의무라고 생각되어지는 것들에 대해 한번이라도 의심하지 않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도 때론 삶의 한 방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삶에서는 운이 따르지 않는다면 진짜 인간답다고 생각되어지는 것들을 놓치고, 꼭두각시 마냥, 또는 줄로 조정당하는 마리오네트와 별반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이 마리오네트임을 잊고 운명의 주인처럼 줄을 잡아당기고 있다고 여기는지도 모른다. 또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운을 자신은 가질 수 있다고 여기는지도.

개인의 이익을 인간에게 주어진 최고의 가치로 찬양하는 이데올로기, 특권층과 권력층을 위한 이데올로기와 인간의 감정을 어찌 비교할 수 있겠는가!(12쪽)

즉 감정의 상실 대신에 소유로 대체되는 현재의 사회에서, 소유만을 확대해 나가려는 삶의 태도 자체를 바라보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이 바로 마리오네트일지도 모른다고 여겨진다.

홍보와 광고, 그래픽 아트, 영화, 텔레비젼 등을 운영하는 거대기업의 주된 목표가 무엇이겠습니까? 무엇보다 인간 정신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인위적 욕구를 만들어내서, 대중이 그 욕구를 맹목적으로 추구하게 만듭니다. 그 결과로 대중은 서로 소외되어 갈 뿐입니다. 이런 기업의 경영자들은 아주 실리적으로 접근합니다. 대중을 삶의 표피적인것, 즉 소비에 몰두하게 만들어야 한다라고 생각합니다.(29쪽)

물론 촘스키의 이런 말이 과장되어진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삶의 행복감을 어디서 느끼는지 찬찬히 자신을 들여다보면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님을 알아챌 것이다. 무엇인가를 품에 안는 것, 그것을 위해 무엇을 지불하든 자신의 손에 쥐어질 때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로 변해가지 않았는가?

교육제도가 선별 작업을 합니다. 교육제도가 순종과 복종을 조장합니다. 이런 제도에 따르지 않는 사람은 배제됩니다.(71쪽)

사회에서 원하는 생산력의 일부가 되기 위해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고, 그 댓가로 돈을 쥐면서, 그것을 다시 소비할 때 행복감에 젖어든다는 것. 그 것이 전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 행복감만이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문제이지 않을까? 우리가 그 행복이 전부라고 배워오지 않았는가 의심해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생각들은 수많은 언론매체들을 통해 공고해져 간다.

지난 20여년 동안 국가 정책은 민주주의 원칙을 파괴하면서까지 다국적 기업의 권한을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이른바 신자유주의라는 이름 아래서 말입니다. 달리 말하면 시민의 권한을 개인 기업에 양도하는 것이 신자유주의입니다.(59쪽)

우리가 행복을 느끼게 만드는 소비의 과정 속에서는 수많은 소외가 발생합니다. 특히 다국적 기업의 제 3세계에 대한 횡포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채 그들의 선전된 이미지들만을 우리는 접하고 있습니다. 아마 어떤 기업체들의 문화에 대한 원조나 기아에 허덕이는 아이들을 위한 구원의 손길에 감명받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누군가를 위한다고 생각되어지는 손길이 실은 다른 누군가에게서 훔쳐낸 것임을 어찌 알겠습니까?

우리는 매일 신문에서 시장경제의 기적과 기업정신을 극찬하는 기사를 읽습니다.(80쪽)

더더군다나 최근의 자본주의는 오직 금융자본주의로 치닫아, 소위 말하는 돈을 가진 자가 돈을 벌 수 있는 제도로 굳혀가고 있는 실정이기도 합니다.

매일 약 20억 달러가 컴퓨터를 통해 이동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엄청난 돈이 새로운 자산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그저 주인이 바뀔 뿐이빈다. 이런 자본의 압도적 다수가 투기성을 띱니다.(중략)외국에 투자되는 자본은 대부분이 경영 지배권의 확보를 위한 돈입니다. 공공기업의 민영화는 공공기업을 민간기업이나 외국계 다국적 기업에 넘기려는 속임수일 뿐입니다.(109쪽)

최근 이런 경향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되어버렸습니다. 론스타라거나 브리즈 증권 등등 뉴스 속에 등장하는 외국계 자본들이 어떻게 우리나라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를 살펴본다면 촘스키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실감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점점 많은 사람들이 이런 다국적 기업의 횡포와 신자유주의의 허울을 알고 있으면서도 세상은 여전히 그 변화의 흐름이 바뀌지 않는 것일까요?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당신이 앞장서서 기존 질서를 뒤바꾸려 한다면 그 대가를 호되게 치러야 할 것입니다. (중략)요켠대 행동하기 위해서는 그 대가를 기꺼이 치르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169쪽)

즉 내가 앞장선다면 분명 난 무지막지한 탄압을 받을 것임을 다들 알고 있다는 것이죠. 앞장 선 사람들의 희생이 뒤따른뒤에서야 비로소 그 열매를 사람들은 따먹을 수 있다는 것을. 따라서 이런 횡포를 막겠다는 실천적 의지만으론 좀체로 변화의 흐름을 꺾을 순 없을 겁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조직화입니다.

이런 곤경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조직화되는 것입니다. 예컨대 노동조합으로 조직화된다면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희생을 수월하게 넘길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노동조합과 같은 조직을 파괴하려는 음모가 다각도로 펼쳐지는 것입니다. 선전보다 이런 파괴공작 때문에 국민이 혁명세력으로 발전하지 못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171쪽)

촘스키의 이 말을 듣다보면 떠오르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 언론에서 다루는 노조에 대한 보도가운데 노조 입장을 보여준 적이 얼마나 될까요? 교통 혼잡을 가져온다거나, 한국에 대한 인상을 나쁘게 한다거나, 생산력 손실이 몇백억이라던가, 아니면 노조 사이의 갈등을 조장하는 보도들로 가득합니다. 도대체 왜 파업을 하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들춰보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노조가 완벽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 노조라는 조직도 그것이 조직의 양태를 띠는 한 어떤 부조리가 개입할 여지가 곳곳에 숨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노조의 잘못된 한가지를 마치 노조자체의 문제로 몰아가는 마녀사냥식 보도로 우리의 사고를 마비시킵니다.

따라서 우리는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아야 합니다. 쏟아지는 정보들을 곧이곧대로 흡수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잃고 살아가는지, 진정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나의 본모습이 무엇인지를 항상 생각하며, 세상이 어떻게 나를 현혹시키려 하는지 간파할 수 있도록 철저히 의심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인간답게 살아간다는 꿈을 위해 누군가가 희생되어서도 안됩니다. 즉 영웅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각자의 의지와 마주잡은 손이 필요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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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5-05-12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님의 리뷰를 읽으니... 전에 이 책을 읽을 때... 정수리로 뭔가 차가운 게 쏟아져 내리는 듯한 느낌....살아나네요~
요호...참 기네요... 하지만...구구절절...옳습니다... 촘스키... 그리고 님의 리뷰가말이지요...

하루살이 2005-05-12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모르면 잔소리가 많은 법이죠. 제대로 안다면 한마디로 딱 . 마치 요술지팡이처럼. 언제쯤 그런 지팡이 하나 가질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