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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녀 - The House Maid
영화
평점 :
현재상영
전설적인 김기영 감독의 영화다. 50년이 지난 지금봐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한국 영화 중 하나다. 이 영화를 다시 본 이유는, 임상수 감독이 리메이크한다는 기사를 보고 녹슨 기억장치에 기름을 바르고 싶었다. 이 영화가 단순 불륜영화가 아닌데도 기사는 '불륜'에 초점을 맞추고 임상수 감독이라는 이름을 듣고, 불륜에만 조점을 맞춘건 아닐까, 조바심도 든다. 임상수 감독은 의미심장한 소재를 통속화하는 데 남다른 재주가 있는 거 같다. 아직 덜 숙성한 정신세계라고 할 수 있겠다. 상업영화 감독의 고충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의 손을 거치면 생각이란 걸 걸러내고 자극이란 장치에 더 정성을 들이는 거 같다.
1. 미장센
이 영화의 미덕은, 무엇보다도 미장센이다. 영화가 전개되는 곳은 이층양옥집이다. 영화가 만들어진 시기가 60년인라는 걸 감안하면 영화 속 집은 요즘, 김지운 감독 영화의 탐미적 때깔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이층은 베란다로 방과 방이 이어지고 벽은 청담동에 있는 한 까페처럼 벽지가 아니고 액자와 조각품이 눈높이에 장식되어 있다. 스릴러물에서 필수인 실내공간은, 계단, 주방, 안방으로 분리된다. 계단은 상승과 하강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스릴의 샘이라고 할 수 있다.
2. 인물
아내-음악선생(김진규)-하녀의 러브 트라이앵글이다. 세 인물 모두 심리학적 관점에서 바라볼 때, 흥미롭다. 아내는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소비사회의 충실한 시민이다. 그녀가 행복지수는 이층집, 피아노, 텔레비전 등등 지름신의 강림에 충실히 봉사하면서 생긴다. 이 모든 것을 사기위해 그녀는 밤낮으로 재봉틀질을 한다. 남편이 죽어갈 때조차 재봉틀질을 한다.
남편은 이런 아내가 못마땅하지만 아내의 경제적 능력을 무시하지 못한다. 그는 가부장적이지는 않지만 수동적이다. 하녀가 그를 유혹할 때도 그는 저항하는 척하고 아내의 말에도 그는 수긍하지는 않지만 저항하지 않는다. 그는 일자리를 잃어버릴까 두려움에 떨고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있지만 전반적으로 무능하다. 자신의 감정에도 솔직하지 못하고 책임감만을 갖고 있다. 일련의 사건이 벌어지자 그는, 아내를 질책하는 말을 한다. 왜 집을 짓자고 했냐고. 단칸방에 그냥 있었으면 별 일 없었을텐데..하고. 그의 발언은, 그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게 버겁다는 걸 고백하는 거 같다. 정작 사건의 발단은 자신의 우유부단함인데도.
하녀는 가장 현대적 인물이다.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 알고있고 자신이 원하는 걸 얻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인물이다. 남자의 아내도 재봉틀을 매개로 꿈을 현실로 이루는 행동파지만 순종적 여인상이다. 하녀는 다르다. 그녀는 자신을 무시하는 사람에 대한 적개심으로 남자를 유혹하고 살인을 한다.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부조리한 사회랑 맞짱 뜨는 잔다르크적 정신도 갖고 있는 거 같다. 결국 죽음을 택하는 그녀는, 죽음의 순간에서도 의연하고 자신이 원하는 걸 이루려고 발버둥친다.
3. 이데올로기
영화는 부부가 사회면 신문기사를 읽고 담소를 나누면서 시작하고 끝이 난다. 배우자가 아닌 다른 이성의 유혹에 맞닥뜨릴 때, 남자의 본능을 비웃으면서 끝이난다. 찰라의 쾌락을 쫒는 21세기에, 20세기의 비웃음은, 의미심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