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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일반판)
스미노 요루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17년 4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이 작품을 12세 관람가의 한 영화를 보러갔다가 처음 알게되었다. 추석연휴라 영화관을 찾은 손님들의 대부분이 가족단위였는데, 이 작품의 제목이 화면에 뜨는 순간 정말 거짓말 안보태고 관람관이 '헉'하는 소리로 가득 찼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광고는.. 책 표지에서도 느껴지지 않는가, 제목과의 괴리감이 느껴지는 달콤하고 풋풋한 무엇인가가(이 작품도 12세 관람가였다). 제목이 너무 충격적이라, 일본연애소설이 궁금해 질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다. [아니지, 연애소설이 아니었다면 표지도 못 들여다봤을 제목이라는 쪽이 더 맞는말인가?] 그와는 별개로 굉장히 오래 읽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아, 혹시 스포일러에 예민한 분이라면, 스크롤을 그만 내리는 것을 추천합니다.]
그럼 문제의 제목부터 풀이해볼까(??). 일단 '췌장'은 '이자'의 다른 이름이다. 소화효소와 혈당조절과 관련한 호르몬을 분비하는 기관(으로 기억하고 있는)인데, 이런건 어차피 이 작품과 별 관련있는 내용은 아니고, 이 작품의 여주인공인 '사쿠라'가 췌장에 병이 있어 시한부의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과, 어느날 그녀가 '나(남주인공)'에게 던진 '이상한 고백'이 이 책의 제목이 되어버렸다.
"어제 텔레비전에서 봤거든. 옛 사람들은 어딘가 안 좋은 곳이 있으면 다른 동물의 그 부분을 먹었대."
"근데 그게 뭐?"
"간이 안 좋으면 간을 먹고, 위가 안 좋으면 위를 먹고, 그러면 병이 낫는다고 믿었다는거야. 그래서 나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라고 이야기하니까, '뭐야 별 것 아니었잖아'라는 느낌의 글이 되어버렸는데, 사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는 문장은 이 작품을 접한 사람들에게는 결코 가벼운 의미로 들리지 않을 것이다. 음, 요컨데 '사랑해.' 아니, 그보다 더 깊고 농밀한, 그러니까, 세상에 존재하는 어떠한 단어로도 정의할 수 없을 것 같은 절절한 감정(..은 내가 잘 모르겠어서 실패.)을 오직 두 사람의 언어로 표현해 낸, 두 사람만의 '유일한'....으음..(에잇, 관두자.) 뭐, 여하건 그렇다. 대체 리뷰를 왜 시작했지, 나.
"누군가 나를 먹어주면 영혼이 그 사람 안에서 계속 산다는 신앙도 외국에는 있다던데."
이 문장이 조금 도움이 될까. 나는 마지막 순간, 간절함으로 전해진 그들의 진심(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을 꽤 초반에 언급된 이 문장의 힘을 빌려 이해했다.
사실 두 사람은, 서로 아무런 접점이 없는, 완전히 반대의 존재였다. 활달하고 누구에게나 인기있는 소녀인 '사쿠라'와, 차분하고 혼자 있길 즐기는 문학소년 '하루키'. 하루키가 병원에서 우연히 사쿠라의 '공병문고'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둘의 관계는 대화 한 마디 없이 끝을 맺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루키가 사쿠라의 공병문고를 집어들기로 결정한 순간, 모든 것은 변화하기 시작했다.
"사이좋은 클레스메이트, 너 말고는 아무한테도 말 안 했어. 너는 분명 나에게 진실과 일상을 부여해줄 단 한 사람일 거야. 의사 선생님은 내게 진실밖에 주지 않아. 가족은 내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과잉반응하면서 일상을 보상해주는 데 필사적이지. 아마 친구들도 사실을 알고 나면 그렇게 될 거야. 너만은 진실을 알면서도 나와 일상을 함께해주니까 나는 너하고 지내는 게 재미있어."
하루키는 사쿠라에게 '자신과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좀더 의미있는 일을 해야하지 않느냐'고 물었지만, 그녀는 하루키와 함께 하는 시간을 매번 "선택"했다. 그녀의 말을 빌려 '길지 않은 그녀의 남은 인생을 의미있는 것에 사용하는 일을 도울 기회'를 그에게 부여한 것이다.
"..(중략).. 비밀을 알고 있는 클레스메이트도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어?"
"......없지는 않다, 라고 할까."
"근데 지금 그걸 안 하고 있잖아. 너나 나나 어쩌면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그런 의미에서는 너나 나나 다를 거 없어. 틀림없이. 하루의 가치는 전부 똑같은 거라서 무엇을 했느냐의 차이 같은 걸로 나의 오늘의 가치는 바뀌지 않아. 나는 오늘, 즐거웠어."
"괜찮다니까, 신경 쓰지 마. 내가 낼 거야. 얼마 전까지 아르바이트도 했고 저금해둔 게 많아서 다 써버려야 하거든."
죽기 전까지, 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아마 그런 뜻일 터였다.
"그건 더 안 되지. 좀 더 의미 있는 일에 써야 해."
"이것도 의미가 있어. 나 혼자 숯불구이 먹어봤자 별로 재미없잖아? 나의 즐거움을 위해 돈을 쓰는 거야."
솔직히, 두 사람의 감정의 변화나 삶의 변화보다도, 나는 이런 구절들이 더 눈에 띄었다. '죽음'을 앞둔 당사자인 '사쿠라'의 삶을 대하는 태도일까. 사실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증명해 온 사쿠라가, 스스로의 불안을 잊기위해, 또 사람들에게 가여운 아이보다는 밝고 명랑한 아이로 인식되고 싶은 마음에 한 (그러니까, 타인을 의식한) 행동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어쨋든 그녀의 대사들은 소위 '불행'과 '의미있는 일'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들이 절정을 맞은 것은 '사쿠라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모두가 췌장의 병으로 인한 죽음을 기대했을 테지만, 사쿠라의 끝은... '묻지마 살인마에게 희생'되는 것으로 찾아왔다.
최소한 나는 어느 누구에게나 내일이 보장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었다.
나는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은 그녀에게는 당연히 내일이 있는 것처럼 생각했었다.
얼마나 어리석은 인식이었던가.
나는 얼마 남지 않은 그녀의 생명만은 이 세상이 잘 봐줄 거라고 굳게 믿었다.
물론 그런 일은 없다. 없었다.
세상은 차별하지 않는다.
그들의 사랑은 서로를 향한 '동경'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누군가와 마음을 통하며 자신의 삶을 증명하는 사쿠라는 누구에게도 영향을 받지 않고 스스로의 가치를 만들어가는 하루키를, 타인의 생각은 자신과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하루키는 사람들과 사랑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사쿠라를. 나는 네가 되고 싶어. 그래서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이것은 오직 두 사람만이 나눌 수 있는 최고의 찬사, 최고의 사랑고백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