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낸시 (스티커 포함)
엘렌 심 지음 / 북폴리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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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쥐가 고양이를 키운다는게 말이나 될까. 지미라는 멋진 아들을 둔 아빠쥐 더거씨의 집 앞에 어느 날 갓난아이가 찾아왔다. 온동네 어른들을 홀려버린 귀여운 외모의 이 여자아이는 다름 아닌 고양이. 어리고 귀여운 아이를 차마 내치지는 못하지만, 고양이를 함부로 쥐들의 마을에 들이기도 곤란하여 마을은 일순 술렁거린다. 하지만 곧 그들은 어린 고양이 낸시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책방에서 들었는데 헥터형이 낸시가 고양이라고... 고양이라서... 나쁘다고 마을 쥐들에게 말하겠다고 했어... 그러면 낸시는 마을에서 쫒겨나고 말거야... 그러니까... 우리가 지켜 줘야 해. 낸시는 우리 친구잖아. -188,189p

 낸시가 마을의 일원이 되고나서 마을의 모든 쥐들에게는 하나의 비밀이 생겼다. '아이들에게는 낸시가 고양이인걸 알려선 안돼, 아이들이 놀랄거야.' '마을 주민들에게 낸시가 고양이인걸 들켜선 안되. 낸시는 쫓겨나고 말거야.' '낸시에게 자신이 고양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면 상처를 받을꺼야. 우리는 그 아이에게 몹쓸 거짓말을 하고 있어.' 그렇게 모두가 다 알고 있는 하지만 아무도 알지 못하는 비밀들이 지켜져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이렇게 사랑스러운 책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랬지... 헥터 너는 어렸을때부터 너무 가까이서 책을 보곤 했었지. 보렴. 자 이렇게~ 훨씬 잘보이지? -175,176p

 우리는 얼마나 많은 편견들 속에 세상을 보고, 그것을 재단하고 있는 것일까. 누구도 자신이 편견을 가지고 세상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우리는 알게모르게 그것들의 지배를 받고 있다. 아마 이 책의 등장인물 중 하나인 '헥터'는 우리들 대부분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위의 문장은 헥터의 아빠가 헥터의 책읽는 모습을 교정해주는 척 유리창너머의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주려는 장면으로 그려지지만, 나는 이 문장 자체로도 충분한 깊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진리인양 믿고 따르는 어떠한 '프레임'들에 갖혀버린 시선들. 이 시선에서 조금만 자유로워진다면 우리는 우리의 친구들, 이웃들을 훨씬 잘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던 사실들이 전부가 아니었음을.

 

 

'다르지만 괜찮아. 그것이 나쁜 것이 아냐. 조금 특별할 뿐.'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개개인의 개성과 고유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세상은 우리를 획일화하고싶어 안달한다. 단순히 물리적인 것들을 떠나서, 개인의 성격, 취향... 모든 것을 마치 정해진 정답이 있는 양 강요하고, 그것에서 벗어난 사람을 안타까워하거나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남들과 다른 것은 틀린 세상. 그것을 부끄러워하고, 자신의 특별함을 죄로 여겨야하는 세상. 이런 세상에서 행복한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고양이면 어떻고, 쥐면 어때? 이해는 못 해도 서로를 그대로 인정은 할 수 있는 세상. 개개의 특별함이 매력이 되는 세상이 온다면 좋겠다. 우리 모두는 '낸시'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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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떡하지, 나? 어떡하지, 나? 1
호소가와 텐텐 지음, 권남희 옮김 / 엔트리(메가스터디북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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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을 끝까지 다 읽고, 이 책의 이야기가 저자의 실화인가하는 생각을 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있는 마스다 미리씨의 공감만화들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을 가진 책이었다. 뭐라고 할까 마스다 미리의 책은 공감을 해주려고 너무 힘을 쓰다보니 오히려 드라마틱해지고 억지스러운 느낌이 든다고 하면 이 책은 그냥 누군가의 그림일기를 읽는 정도의 느낌이었다고 할까? 전체적인 내용도 좀 더 현실적인 느낌이 들어서 오히려 저자와 더 공감했던 것 같다.

 이상하게도 우리는 늘 '나만 방황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마음속에 품고 살아가는 것 같다. 아무리 주변에서 남들도 다 똑같애~라고 이야기해주어도 마음속으로는 '너가 내가 아니라서 그래. 정말 나는 니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최악이라고.'라고 생각해버린다고 할까. 문득 이런 내가 생각하는 나가 아닌 남이 보는 나는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나의 모습도 닮고 싶은 모습일지도 모르니까.

 이 책이 유독 현실성이 느껴졌던 것은 우리가 흔히 '평범한 삶'이라고 이야기하고, 무작정 따르고자하는 삶의 모습을 따르는 '타인'의 모습과,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알고보면 그것을 따라가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취업이라던가 결혼이라던가 하는 것들이 내 또래를 대표하는 단어가 되어가면서 의아하다는 생각을 자주하곤 한다. 그다지 행복해보이지 않는데, 원하는 일도 아닌데 취업만 된다면 간이고 쓸개고 빼다 바칠것 같이 행동하는 사람들. 싫다, 관두고 싶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스스로 그 길로 들어가 앉아있는 사람들. 나이가 다되어간다는 이유로 부랴부랴 결혼대상을 찾는 사람들. 현실적인 요소를 다 빼어두고, 원하는 일인걸까? 간절함을 연극하고 있는 걸까? (차라리 그럴것이라면 동물들처럼 철학을 할 수 없는 편이 더 나았을텐데, 인간을 이루는 DNA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일을 저질러버린거지...?)

 우리가 '평범한 삶'을 한가지로 정의하고 따르는 것은 사실 속편한 길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른 답도 보이지 않는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고, 주변의 사람들의 입도 다물게 할 수 있다고 할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라면서도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은 현실감없는 철없는 놈소리를 듣는 세상. 사실 그 철없는 놈들이 가장 초조하다는 건 모르는 걸까? 그리고 조금만 생각해보면 방황하고 초조해하는 사람들만이 유일하게 '정말' 자신의 길을 찾아 나아가고 있는 사람들인지도 모르는데...

 

 "앞으로 어떻게 할거야?"라고, 나도 마치코도 절대 묻지 않는다. 그래서 마치코와 있으면 편했다. 

                                                                                                                            -27p

  우리의 날개를 꺽어버린 것은, 그리고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 것은 알고보면 답답한 교육현실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를 가장 불행하게 만든 것은 '앞으로 어떻할거야?', '그다음은 뭘할꺼야?'라는 주변인의 영혼없는 질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는 거라고 했는데, 자꾸 미래를 물어보면 어쩌자는 걸까? 취업을하던 창업을 하던 진학을 하던, '그래서 그 다음엔?'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즐거운 일'이었느냐하는 것이 더 중요한게 아닐까?

 더 이상 미래를 걱정하며 아파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냥 지금 이 순간 즐거운 일을 찾고, 그것을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해서 즐겼다면, 후에 그 일이 평생할 일이 아니었다는 사실(나랑 맞는 일이 아니었다는)을 알게되는 순간이 오더라도 적어도 후회는 하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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