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하는 식물 - 세상을 보는 식물의 시선
마이클 폴란 지음, 이경식 옮김 / 황소자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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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가 굉장히 흥미진진한 '책 속의 문장(으로 추정되는 한 실험)'과 함께 이 책의 제목을 소개해서, 홀린 듯이 읽게 되었다. 하지만 무려 한달이나 이 책을 읽는 동안 어디에서도 그 실험을 찾을 수 없었다.[...] 이 책도 충분히 재미있고 유익했지만, 뭔가 속은 것 같은 이 기분 뭐지.

 내가 이 책을 읽게 한 실험은 '미모사'라는 식물을 가지고 진행했던 실험이었다. 그리고 이 책의 주인공은 '사과와 튤립, 대마초, 감자'였다. [미모사 비슷한 것도 안 나옴.]​ 어쨋든 이 이야기는 그만 두고, 책 이야기를 해보자면, 시작부터 모든 것이 충격적인 책이었다.

​ 우리 인간은 다른 생물 종이 품고 있는 의도와 욕망의 객체가 될 수도 있고, 다윈의 정원에 나타난 새로운 종류의 꿀벌일 수도 있다. 영리하지만 때로는 부주의하고 또 놀라울 정도로 이타적인 꿀벌. (35쪽.)

의식적인 존재인 인간과, 움직일 수 있지만 의식이 없다고 간주되는 동물, 그리고 보통은 그 이하의 어느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어류, 식물, 곤충 등등. 이 책은 그 중 '식물'의 시선을 담고 있다. 우리가 어쩌면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을지도 모르는 '식물과 인간의 공생관계'에 대해서. 그들이 어떻게 우리 인간을 이용해왔는지에 대해서.

 사실 읽는 내내 이것저것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던 것 같은데, 한 달이나 책을 읽었더니 [읽는 중에 이사도 하고, 멘탈도 꺼냈다 넣었다 반복도 해보고, 새해도 맞이했다. 허허.], 붙여놓은 포스트잇만 많고, 나의 의식은 엄청나게 많은 변화를 겪었는데, 정작 이 공간을 채울 내용은 떠오르지 않는다. 특히나 역사적 이야기가 많은 튤립과 대마초의 내용은 부스러진 정신과 함께 날려먹었고, 역시 내 입장을 온전하게 정하기에는 아직 모르는 것이 너무 많은 GMO문제를 담은 감자는, 그냥 좋은 상식을 얻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한다. [식물육종관련 연구를 하는 친구에게 언젠가 몬산토사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것에 대한 복습을 한 기분도 들고, 괜히 내가 먹고 있는 프렌치프라이가 쎄-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머리는 알아도 마음이 안될 때라는게 있잖아...]

 그래서 가장 흥미진진하게 읽었고, 가장 많이 주변사람들에게 떠들어댔던 '사과'이야기를 조금 할까한다. 그넘의 '조니 애플씨드'가 뭐라고, 왠지 귀여운 느낌이라 계속 머릿속을 맴돌고 있음ㅋㅋㅋ ​라곤 하지만 사실 조류독감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 같기도 하고...

​ 사과나무는 사괴 씨에서 바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과 씨를 심어서 키운 나무에서는 그 씨를 품었던 사과와 전혀 다른 사과가 열린다. 이렇게 열린 사과는 거의 대부분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시기 때문에, 먹을 수 있는 사과가 열리게 하려면 접붙이기를 해야 한다. (47쪽.)

 접붙이기가 아니라 씨를 심어서 사과나무를 키우고 이를 통해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려는 열품이 몰아치던 당시에 미국 사람들이 개발했던 사과 특성의 혼합은 놀라울 정도이다. 그런데 이런 혼합 특성은 그때 이후로 대부분 사라졌는데, 그 사과 박물관에서 나는 바나나 맛이 나는 사과나 배 맛이 나는 사과를 보았다. 향신료 맛이 나는 사과, 끈적끈적하고 달콤한 사과, 레몬처럼 상큼한 맛이 나는 사과, 견과류처럼 기름기가 많은 사과도 있었다. 무게가 500그램이나 되는 사과도 있었고, 어린 아이의 주머니에 쏙 들어갈 정도로 작은 사과도 있었다. 색깔도 제각각이었다. 노란색, 녹색, 적갈색, 보라색 등이 있었고 심지어 파란색도 잇었다. 점박이 있었고 줄무늬도 있었다.​ (100쪽.)

​ !!! 인간의 유전적 다양성이라고 해야, 우리의 모습은 제각기 기괴할 정도의 차이를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식물의 유전적 다양성이란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인 것 같다. [그것보다 파란 사과나 점박이는 왠지 찝찝할 듯.]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사과라는 것은 빨간색의 한 손에 꽉 잡히는 사이즈를 가진 달콤한 과일인데, 사실 그 안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열매를 열리게 만드는 씨앗이 5개나 존재한다.

 아마 그들은 인간이라는 꿀벌과 공생하기 위해서 치열한 경쟁을 벌여왔을 것이고, 인간이 원하는 색과 식감, 맛을 만들어 냄으로서 성공적으로 지구상에 번성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친숙한 많은 식물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의 삶에 녹아들었다.

​ 아일랜드 사람들은 감자에 의존함으로써 경제의 변화무쌍함뿐만이 아니라 자연의 변화무쌍함에도 더할 나위 없이 취약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을 확인해주는 사건은 1845년 늦여름에 갑자기 터졌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돌아온 배를 통해 감자 잎마름병이 유럽에 상륙했고, 이 무시무시한 병원균의 포자는 발마을 타고 몇 주 사이에 유럽 대륙 전역으로 퍼졌다. 그리고 감자와 감자를 주식으로 삼던 사람들에게 종말을 알렸다. (322쪽.)

 감자가 당시 잎마름병을 극복하고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과학자들이 안데스 산맥에서 자라는 야생 감자에게서 그 병에 저항하는 유전자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안데스 산맥은 바로 감자의 다양성 중심지였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야생 식물의 터전인 야생지가 점점 줄어드는 세상에 살고 있다. 야생 감자와 야생 사과가 모두 사라지고 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무리 과학 기술이 발달한다 하더라도 새로운 유전자를 만들어낸다거나 이미 사라져버린 유전자를 되살리지는 못한다. (116쪽.)​

​ 하지만 그들은 과연 과거의 그 선택에 대해서 만족하고 있을까. 그들은 분명 인간의 마음에 드는 유전자를 발현시킴으로써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고 성공적으로 번성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인간은 그들의 유전적 다양성까지 고려해주지는 않았다. 그리고 아마 이런 인간의 탐욕은 그들의 계산에 없었으리라. 인간에게 선택받은 식물들의 유전자는 때때로 그들의 야생에서의 생존에 방해가 되었으며, 단일 재배로 인해, 갑작스럽게 몰살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현재 우리는 조류독감으로 인해 달걀 하나를 사먹기에도 손이 덜덜 떨리는(?) 상황을 겪고 있다. 양계장에서의 독감의 확산에 대해서 주로 언급되는 원인으로, 좁은 공간에서 밀집해서 키우는 현실이 소개되고 있는데, 물론 그게 가장 큰 이유이겠지만, 언젠가 내가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또 한가지 원인이 있다고 한다. '유전적 단일화'. 인간에게 유익하게 품종개량된 그들은 대체로 유전자가 거의 동일한 지경이라는 이야기였다. 만약 그것이 사살이라면 밀집되지 않는 환경이라고 해도, 그들이 인간의 길들이 안에 머무는 한, 집단폐사의 상황을 피해갈 수느 없을지도 모른다. ​

 자연의 변화무쌍함. 과연 우리는 이런 모든 상황들을 '자연의 탓'으로 돌려도 괜찮은 걸까? 과거에는 그것들이 오롯히 자연의 탓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현재에 닥친 수많은 재해들은, 결국은 우리가 긴 시간동안 축척해온 '안일함'이 터져나온 '인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제는 이 모든 재앙들을 '자연재해'가 아닌 '인해'의 입장에서 고려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 그런데 이런 자연 재해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을 덮친 폭풍은 자기 분수를 모른 채 오만하게 구는 인간에게 자연이 무한한 위력을 과시한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과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지구 온난화 때문에 대기가 불안정해져서 나타난 현상으로 바라보아야 할까? 사실 인간이 가지런하게 줄을 맞추어 심은 나무들은 폭풍이 뿌리를 뽑고 흔들 때, 이 폭풍 역시 인간 지배력을 의미하는 그 나무들의 질서만큼이나 인간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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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렉트릭 유니버스 - 전기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었는가
데이비드 보더니스 지음, 김명남 옮김 / 글램북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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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과학이야기꾼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데이비드 보더니스의 책들은 한순간도 나를 실망시킨적이 없다. 저자의 책들을 읽다보면, 저자가 얼마나 다양한 분야의 지식들에 해박한지 또는 이 책 한 권을 쓰기위하여 얼마나 다양한 책들을 공부했을지 상상해보는 것 만으로도 놀라울 정도이다. 또 그의 글은 굉장히 쉽고 재미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깔끔하여 과학책인데도 불구하고 막힘없이 읽혀지며, 굳이 여러번 되세기지 않아도 기억에 잘 남는편이다. 읽으면 읽을 수록 최고의 이야기꾼이라는게 와닿는다.

 

 그런데 중단되는 것이 인간의 전기 공급만이 아니라면 어떨까? 전기력이라는 것 자체가 사라져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지구의 모든 바다들이 위로 솟구쳐 올라 증발할 것이다. 물 분자들끼리의 전기적 결합이 끊어지기 때문이다. 우리 몸 속 DNA분자 가닥들도 서로 뭉치지 않을 것이다. 대기를 호흡하는 생명체 중에 용케 살아남은 것은 있다 해도 금세 질식하게 된다. 전기적 인력이 존재하지 않으면 공기 중의 산소 분자가 혈액속의 헤모글로빈분자와 결합하지 못하고 쓸모 없이 튕겨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지구의 지각을 구성하는 규소와 옅타 물질들을 단단히 묶어주던 전기력이 사라지므로 땅바닥이 갈라져 녹아낼기 시작할 것이다. 대륙판들이 갈가리 찢어져 사라진 빈 공간으로는 높은 산이 무너져내린다. 그때까지 살아남은 생명체가 있다면 최후의 순간에 태양이 꺼지는 것을 목격할지도 모른다. 우리의 태양에서 전기적으로 전해지던 빛이 한 순간 멈춰버리면 세상의 마지막 낮은 캄남한 밤으로 변할 것이다. -14p

 물리학을 전공으로 배워서 그런지몰라도 '전기'라는것이 다양한 곳에 쓰인다는 것을 알면서도 '전기'라고 하면 지루한 수식들과 복잡한 전선들, 그리고 우리의 생활속에 사용하는 다양한 전기제품들만 떠오른다. 금속따위나 반도체라느니 최외각전자가 어쨋느니하는. 그래서 전기의 역사라고 했을때는 또 전보가 만들어진 원리나 전쟁에서 사용된 발명따위가 지루하게 나열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그런 이야기는 맞았지만, 시작부터 새로운 사고가 열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전기가 사라진다면? 단순히 정전의 문제가 아니었다. 우주의 모든 것은 전기력으로 묶여있고, 우리의 신체도 결국은 전기의 힘으로 구성되고 조작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런 자연스러운 것들이 사라진다는것 자체가 상상이 안되는 부분이지만) 그런 방향까지도 전기의 응용이라는 분야로 소개될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에서 하느님은 검지를 뻗어 아담을 가리키고 있다. 그 검지의 신경 말단에서 분자들이 굴러나와 - 아담의 나트륨 채널을 열어젖히는 효과적인 방법을 동원함으로써 - 전기적 자극을 전달하고, 드디어 이 최초의 인간은 신경을 부르르 떨리며 깨어나는 것이다. - 276p

  이 저자의 책이 또 한번 놀라운 것은 독자로 하여금 그다지 반감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신학자들의 입장은 조금 다를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책들은 아무리 객관적인 어조로 쓰여져있다 한들 '내 생각이 옳은데, 안그래?'하는 느낌이 드는 경우가 많다. 특히나 이공계열의 책들은 그런 느낌으로 책이 쓰여졌을 경우는 그 학문에 대한 환상이나 애정들마저도 산산히 부서트리곤 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안타까울 정도이다. 하지만 이 책은 큰 반감없이 읽혀지며, 오히려 애정어린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볼수 있게 해주는 놀라운 능력을 가진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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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과학도에게 보내는 편지 -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과학자 <개미>, <통섭>의 저자 에드워드 윌슨이 안내하는 과학자의 삶, 과학의 길!
에드워드 O. 윌슨 지음, 김명남 옮김, 최재천 감수 / 쌤앤파커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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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는 셀 수 없을만큼 다양한 직업들이 존재하고, 우리는 그들 중에 몇 가지를(대부분은 한 가지) 선택하여 자신의 인생을 바친다. 사실 나는 그런 생활자체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조차도 종종 모르겠다. 우리는 분명히 사고를 하고 있는데, 때로는 사고를 할 수 있지만 그냥 기계처럼 유전자의 명령에 따라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나는 비교적 한가지 꿈을 오랫동안 꾸는 편이었다. 9년가량 예술인을 꿈꿨고, 결정적인 순간에 과학에 매료되었으며, 그리고 지금 7년의 과학자의 꿈을 살포시 내려놓고 있다. 과학도라거나 물리학도, 생물학도. 왠지 아련하게 늘상 멋있는 말이다. 언젠가 누군가가 '분명 멋있고 한번쯤 꿈꾸는 일이지만, 정말 10년뒤 20년뒤 내 모습을 생각하면, 그 자리가 내 자리는 아닌 것 같다'라고 이야기한적이 있다. 예술인이 주변환경을 따라 막연히 그렸던 꿈이라면, 과학도는 나에게 로망이었고, 결국은 현실에 부딧히자 내가 머물기에는 이질감이 느껴지는 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과학자라는 자리는 여전히 매력적이며 아직 대학을 완전히 졸업하지 않는 나의 상태는 준과학도이므로 과학과 관련된 여러 정보들은 여전히 나의 눈을 사로잡곤 하는 것 같다.

 뛰어난 과학자 중의 한명인 저자가 이제서 과학에 첫발을 내딛고 있는 젊은 과학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책의 제목답게 이 책은 저자가 우리에게 직접 이야기를 건내는 듯한 친근한 말투로 다가온다. 때로는 뜨끔하게 마음 한구석이 아려오고, 때로는 잔잔한 두근거림이 느껴진다. 그래, 이런게 과학이었어. 연구실을 박차고 나온 나를 다시 돌아본다. 과학은 여전히 나의 마음을 뛰게 하는데, 그렇지만 이 알수없는 이질감은 사라지질 않는다. 외국의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늘 이런 기분이 든다. 이건 국가환경의 차이인걸까. 해외의 사례를 듣고 있자면, 정말 순수하게 '자연과학'이라는 학문을 즐기는 것이 과학자라는 생각이들어 두근거린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과학은 자연과학이라는 가면을 쓴 '공학'만이 존재한다는 느낌이든다. 순수하게 즐겁다, 재미있다는 생각이전에 '왜 이걸 해야하지?'하는 이유나 목적을 찾고 싶어진다. 결과적으로 무슨 병을 고치게 되는지, 어느 부분이 편리하게 되는지를 알아야할 것 같다고 할까.

 과학은 분명 멋진 학문이다. 나는 과학을 내 인생에서 완전히 분리한다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걸 사실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순수한 즐거움은 어디서나 찾을 수 있는 걸까. 저자의 말대로의 '과학자의 삶'이라면 내가 과학에 이질감을 느낄 이유도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당신은 그 무엇보다도 진실을 추구하고자 과학자의 길을 택했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새롭고 검증 가능한 지식, 시험 가능하고 과학의 나머지 영역에 통합되는 정보를 좀 더 증진하거나 현명하게 활용하는 것이야말로 여러분이 남길 유산입니다. 그런 지식은 그 자체로는 해롭지 않습니다. 

 그러나 역사가 끊임없이 보여주었듯이, 지식이 왜곡되면 해로울 수 있습니다. 이데올로그들이 멋대로 끌어다 쓴다면 치명적일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필요하다고 판단한 상황에서는 적극적인 활동가로 나서십시오. 지식으로 무장한 당신은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언제라도, 과학계가 당신을 그 일원으로 받아들이면서 부여했던 신뢰에 배신하는 행위만큼은 절대로 하지 마십시오.  -25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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