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볼 속 세상 같은 삶을 살아온 이월의 새엄마. 빛바랜 퇴화가 두려워 그녀가 선택한 죽음. 그녀의 마지막 소원을 이뤄주고 싶었던 이월의 전화. 그렇게 시작된 유진의 마지막 의뢰. 이월은 유진과 달리는 눈길이 끝나지 않았으면 했다. 하지만 그 행복은 강도의 습격에서 이어진 유진의 실종으로 끝났다. 유진에게 건네받은 '모루의 사진'과 반드시 돌아올 거라는 다짐만 남긴 채.
모루가 궁금했던 것, 이월이 말할 수 없었던 것. 유진의 열쇠고리. 이월은 모루의 마지막 원동력을 빼앗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진실은 밝혀지기 마련이고, 따가운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작업장에서 방독면 하나를 가운데 두고 두 사람은 맨몸으로 마주섰다. 화를 낼까? 욕을 할까? 실망하고 돌아설까? 수많은 상상을 했던 지난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둘은 서로를 안아주었다. 서로를 이해했다. 그럼 이제 우린 어떻게 해야 하지?
'유진은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결국 두 사람은 그 모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선택했다. 어차피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없는 세상, 그럴 바엔 흠집을 무늬로 만들어버리는 모루. 그리고 봄의 시작인 입춘이 든 이월. 두 사람의 드라이브는 멈추지 않을 것이고, 그들이 멈추지 않는 한 멸망은 오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죽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는 것이므로.
코로나19를 시작으로 우리의 앞에도 어쩌면 수많은 이상 기후 증상과 바이러스들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모루와 이월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것이다.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