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볼 드라이브 오늘의 젊은 작가 31
조예은 지음 / 민음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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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9년 11월 17일, 코로나19 첫 감염자가 보고되었다. 새로운 감염병의 등장은 크게 놀랄만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 겨울만 잘 견뎌내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코로나의 종식선언은 점차 소원해졌고, 그것은 변이까지 일으키며 위세를 더해가고 있다. 한때 그것을 저승사자의 그림자처럼 여기던 우리도, 이제는 그것과 조금 불편하고 힘든 공존을 이뤄가고 있다.

'다 망했으면 좋겠다.' 생존자가 있다면 그가 고통스러울 테니까, 어느 날 전지구적인 재앙이 닥쳐서 모두가 한 날 한 시에 눈을 감았으면 좋겠다. 감히 바랄 수 있다면 내 평생을 걸고 바라본다.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의 등장은, 이 소설의 재앙은 잔인한 현실을 직시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죽지 못한 채 살아가야 한다고.

눈이 내린다. 쉬지 않고 눈이 내린다. 하지만 골목을 뛰어다니며 눈싸움을 하는 아이들도, 집 앞에 쌓인 눈을 청소하기 위해 밖으로 나온 어른들도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스노볼 속의 세상 같다. 아름답지만, 쓰라리게 시린 조형.

눈 아래 세상은 전부 다른 색을 띠고 있지만 눈 덮인 세상은 어디나 비슷한 결로 망해 가고 있다는 것.

스노볼 드라이브 中

눈 유사체가 내린다. 쉬지 않고 내린다. 톡, 토독. 인체에 닿으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방부제. 이 녹지 않는 눈은 예고도 없이 갑작스럽게 내렸다 그치곤 했다. 그리고 결국 정부는 백영시를 '특수 폐기물 매립 지역'으로 선정했다. 그것은 곧 백영시에게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전국의 가짜 눈이 모이는 곳. 언제 어느 곳을 둘러봐도 하얀 풍경만이 펼쳐지는 곳. 그곳이 백영시였다.

그렇게 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원인도 대책도 알 수 없는 이 재앙은 끝없이 이어졌다. 지구도 인류도 멸망하지 않았다. 이들도 우리와 같이 조금씩 재앙에 적응하며 불편하고 힘든 공존을 이뤄냈다.

그 때 즈음이었다. 백모루의 유일한 가족이자 희망이었던 이모가 사라진 것은. 단서는 스노볼 하나와 이모의 마지막 의뢰인이었다던 낯선 전화번호 하나. 전화기는 꺼져있었고, 스노볼은 이모와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가 나타났다. 이이월. 녹지 않는 눈이 내리던 첫 날, 모루를 구해주었던 아이. 스노볼을 수집하는 취미를 가진 백영중학교 이사장의 아들. 친해지고 싶었다. 동시에 의심했다. 그가 이모의 실종과 관련되어 있는 건 아닐까? 하지만 이월은 아무 말이 없었다. 무언가 알고 있는 듯 하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 모루는 알 수 없었다.

모루와 이월의 밀고 당기는 관계 끝에는 껄끄러운 진실 하나가 파묻혀있었다.

"나는 너도 내 조카도 그냥...... 좀 생각 없이 살았으면 좋겠어. 생각 많이 해 봤자 뭐 해? 이렇게 이상하게 굴러가는 세상에. 우울하기나 하지. 안 그래?"

스노볼 드라이브 中

스노볼 속 세상 같은 삶을 살아온 이월의 새엄마. 빛바랜 퇴화가 두려워 그녀가 선택한 죽음. 그녀의 마지막 소원을 이뤄주고 싶었던 이월의 전화. 그렇게 시작된 유진의 마지막 의뢰. 이월은 유진과 달리는 눈길이 끝나지 않았으면 했다. 하지만 그 행복은 강도의 습격에서 이어진 유진의 실종으로 끝났다. 유진에게 건네받은 '모루의 사진'과 반드시 돌아올 거라는 다짐만 남긴 채.

모루가 궁금했던 것, 이월이 말할 수 없었던 것. 유진의 열쇠고리. 이월은 모루의 마지막 원동력을 빼앗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진실은 밝혀지기 마련이고, 따가운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작업장에서 방독면 하나를 가운데 두고 두 사람은 맨몸으로 마주섰다. 화를 낼까? 욕을 할까? 실망하고 돌아설까? 수많은 상상을 했던 지난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둘은 서로를 안아주었다. 서로를 이해했다. 그럼 이제 우린 어떻게 해야 하지?

'유진은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결국 두 사람은 그 모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선택했다. 어차피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없는 세상, 그럴 바엔 흠집을 무늬로 만들어버리는 모루. 그리고 봄의 시작인 입춘이 든 이월. 두 사람의 드라이브는 멈추지 않을 것이고, 그들이 멈추지 않는 한 멸망은 오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죽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는 것이므로.

코로나19를 시작으로 우리의 앞에도 어쩌면 수많은 이상 기후 증상과 바이러스들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모루와 이월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것이다.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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