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에서 살다
조은 지음, 김홍희 사진 / 마음산책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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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서기란 벼랑 끝에서 사는 것인가. 제목의 의미에 갸우뚱 한 것도 잠시, 몇 페이지를 읽어나가기도 전에 수긍을 한다. 사노라면 종종 너무 이질적이어서 생경한 사람을 만나기도 하지만 그 닮은꼴에 반해서 무한정의 친밀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시인의 산문에서 발견한 익숙한 일화들과 생각에 허허로운 웃음이 자꾸만 터진다. 그다지 유쾌한 얘기도 아닌데 웃는 것이 미안하지만 살아보니 비슷하게 겪었거나 앞으로 닥칠 것만 같아서다. 결혼 적령기를 훌쩍 넘기고 사노라면 이런저런 편견들과 맞서게 된다. 대개는 가벼운 농담반 진담반으로 넘기지만 호기심을 넘어 의도적인 비방을 하는 사람을 이따금 만난다. 타고난 그의 천성이 그러하니 무슨 말을 한들 소용이 없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그 후유증에 며칠을 앓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사람 보는 눈이 제법 영악해진 요즘은, 아니다 싶은 사람과는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 멀리 돌아간다. 그리고 어쩌다 운이 나빠 만나더라도 빈틈을 보이지 않는다. 


시인은 혼자 살고 있다. 그녀는 빈말이라도 자신의 생활이 멋들어지거나 고고하다 말하지 않는다. 때론 어둠 속에서 낯선 이에게 쫓겨 대문을 열기도 하고, 만일을 대비해 종을 달아 놓는가 하면, 주변에 사는 극성스런 아줌마 군단과 맞서 외로운 싸움을 하기도 한다. 아무도 편들어주지 않는 혼자만의 삶에는 그렇게 우여곡절이 많은 것이다. 대부분의 독신여성들이 들려주는 적당히 과장된 아름답고도 당당한 삶과는 사뭇 다르지만, 실상 이것은 누구나가 겪는 삶의 빼놓을 수 없는 일부다.


곁들인 작은 크기의 사진 탓인지, 소탈하고 솔직한 글을 읽는 내내 눈과 마음이 즐거웠는데, 글 속의 사진은 실제 시인이 사는 집과 마을의 일부를 담은 것이란다. 13. 75평의 대지 위에 지어진 작은 집에서 오로지 시를 쓰기 위해 사는 여류시인의 삶은 어쩔 수 없는 비루함과 함께 한 겨울 푸른 소나무처럼 결백하고 단단하다. 그리고 쉬이 꺾이지 않을 고집이 묻어난다. 오염되지 않은 땅에 두 발을 굳건히 딛고 선 아름다운 영혼을 만난 오늘, 미뤘던 숙제를 하듯 생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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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einsusun 2004-12-19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벼랑에서 살다>를 읽고, "~척"하지 않은 솔직하고 절제된 글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결혼하지 않는 이유를 조은 시은은 이렇게 대답했죠.
"삶을 확장시키고 싶지 않다."
공감이 되면서도 마음이 저릿저릿한..... 아직 읽지 않았지만 조은 시은의 두번째 산문집 <조용한 열정>도 샀답니다.

2004-12-22 22: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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