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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나탈리 골드버그 지음, 권진욱 옮김 / 한문화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말할 때는 오로지 말 속으로 들어가라, 걸을 때는 걷는 그 자체가 되어라, 죽을 때는 죽음이 되어라. 그러므로 글을 쓸 때는 쓰기만 하라.
처음 이 구절을 읽었을 땐? 와우! 그랬다. 당장 컴퓨터 앞으로 달려가 앉고 싶었다. 그리고 손가락을 쉬지 않고 움직여 장문의 글을 써야할 것 같았다. 그러나 웬걸......... 하루도 지나지 않아 이런 핑계, 저런 핑계, 못해, 안 해, 귀찮아하고 있다. 정신이 번쩍 드는 충격적 약발도 단 하루가 전부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이 놀라움 그 자체라는 것은 변함없다. 누구라도 이 책을 읽는 순간부터는 위대한 작가의 자질을 가진 잠재력의 소유자라는 행복한 착각에 빠져드니까. 어쩐지 뭔가가 허전하다 싶은 날, 책꽂이에서 뽑아 들고 아무 페이지나 펼치고 읽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면 곧 기분이 좋아지고 숨어있던 단어와 의미들이 두둥실 머릿속을 유영하리라. 그리고 부족하나마 완성된 한 토막의 에세이가 토해지리라.
일상은 때로 감각을 마비시킨다. 언제 어디서건 쓰라고 하지만 컴퓨터는커녕 펜과 종이도 여의치 못할 경우가 있다. 카페는커녕 어질러진 책상도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마음속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쓰고 싶다는 욕구가 채워질 리가 만무하다. 하루 일을 끝내고 돌아온 집엔 물론 컴퓨터도 있고, 펜, 종이는 물론 시간과 여유도 구비되어있다. 그거면 되는 것일까? 정작 제일 중요한 스쳐지나간 영감의 그림자도 희미한데? 어떤 천재는 장소 불문, 시간 불문하고 써내려갈지도 모르지만 보통의 인간에게 그것은 잔인한 요구이다. 겨우 한다는 것이 이러한 푸념뿐.
시의 온기에서는 발을 떼고 시에 ‘대하여’ 말하는 데만 열을 올리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자. 시에 머물 수 있도록 가까이 다가가라. 작품 그 자체 속으로 들어가라. 그것이 시를 쓰고 배우는 방법이다.
시 속으로 들어가라니 정말로 쉽지 않은가. 아무나 가능하다는 듯, 못 들어가면 바보라는 듯 말한다. 어떤 수단을 쓰든 문을 열고 들어가 문을 닫으면 될 듯 하다. 그러나 문제는 시의 변덕이다. 때때로는 선뜻 열어주던 문도 제 기분이 나빠지면 결코 문을 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인 나탈리 골드버그는 글쓰기에 대한 강박증도 에너지라고 말한다. 회피하거나 게으름 피우는 대신 정면으로 문제와 맞서는 방법은 역시 글을 쓰는 것이다? 오, 간단한 치유법이다. 너무 쉬워서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다.
글이 글을 쓰도록 하라. 당신은 사라진다.
도대체 어디로? 역시 수행의 부족인가. 나는 느리고 더듬거리며 주저앉아 하염없이 허공을 쳐다보며 시간을 흘러 보내기 일쑤다. 그리고 결국 길을 찾지 못하고 뒤돌아서지만 되돌아 나오는 법도 잊을 때가 허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