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은 책상이다
페터 빅셀 지음, 이용숙 옮김 / 예담 / 2001년 10월
구판절판


"언제나 똑같은 책상, 언제나 똑같은 의자들, 똑같은 침대, 똑같은 사진이야. 그리고 나는 책상을 책상이라 부르고 사진을 사진이라고 하고, 침대를 침대라고 부르지. 또 의자는 의자라고 한단 말이야. 도대체 왜 그렇게 불어야 하는거지?"-26쪽

"아마 이 사람들은 어디론가 가고 싶어서 열차를 타는 건지도 모르죠." 내가 말했다.
"그것도 사실이 아니에요. 왜냐하면 사람들 대부분이 언젠가는 다시 돌아오기 때문이죠. 심지어는 매일 아침 여기서 기차를 타고 매일 저녁 다시 여기로 돌아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게 기억력이 나쁘다는 거죠."
그리고 그는 역에 있는 사람들에게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는 사람들 등 뒤에 대고 외쳤다. "이런 바보 멍청이들! 그렇게 기억력이 없다니!' 그는 그들에게 계속 소리쳤다. "이 차를 타면 헤겐도르프를 지나간다고!" 그러면서 그는 자기가 그 사람들 기분을 망쳐놓았다고 믿었다.-67-68쪽

그리고 아내가 물었다 "그래서 이제 모르게 된 게 뭐에요?"
그러자 남편이 말했다 "나는 아직 모든 걸 다 알고 있어." 아직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아주 슬퍼했다.

...중략...

아내가 다음번에 "아직도 알고 있는게 뭐에요?" 라고 물었을 때 그는 대답했다.
"나는 전보다도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어. 날씨가 좋고 나쁜게 어떤거라는 것뿐만 아니라 이제는 바깥 날씨를 모른다는게 어떤거라는 것까지 알고 있잖아. 그리고 방 안이 아무리 어두워도 완벽하게 어두운 건 아니라는 것까지 알게 되었어."-90-91쪽

"내가 무엇을 알고 싶지 않은 건지, 먼저 그걸 알아야겠어" 남자는 이렇게 외치고 창문에서 종이를 뜯어버리고 덧창을 열었다. 창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고 그는 비를 바라보았다.

...중략...

"하지만 아직도 나는 아는 것도 부족해. 나는 모든 것을 알아야겠어. 모든 것을 알고 나야만 그 모든 것을 더 이상 알고 싶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테니까." -92-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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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사상가들 - 소크라테스. 석가모니. 공자. 예수
카를 야스퍼스 지음, 권영경 옮김 / 책과함께 / 2005년 8월
평점 :
품절


 

 칼 야스퍼스가 이런 책을 썼는줄은 몰랐다. 야스퍼스라면 보통 실존주의 철학자로 분류되는 이인데 3년간 대학에서 철학을 했지만 야스퍼스에 관해서는 서양철학사 개론서 만큼의 지식도 가지고 있지 않다. 실존주의로 분류되는 이들 중에서 니체를 제외하고는 그다지 대학 강단 철학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듯 하다. 야스퍼스는 특출나게 주목받는 저서를 낸 것도 거의 없다. 기껏해야 제목만 알고 있는 <이성과 실존>이나 <철학적 신앙> 정도 뿐.

  <위대한 사상가들>은 야스퍼스의 철학을 모르고서도 충분히 읽을 수 있는, 또 야스퍼스 뿐 아니라 철학일반에 대해서도 아예 모르더라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일종의 입문서 역할을 한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이 책은 철학서가 아니다. 그래서 제목이 '위대한 철학자들'이 아니라 '위대한 사상가들'이다. 원래 책은 '디 그로센 필로소펜' (독일어를 자판으로 어떻게 쳐야할지 모르겠다) 으로 '위대한 철학자들'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으나, 본 책에서는 번역서에서 다루고 있는 이들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철학자로 분류되는 이들을 다루고 있기에 제목이 그러했던 것이고, 번역서는 그 중 단 네 명만을 뽑아놔 따로 책을 만들었기에 '철학자들'보다는 '사상가들' 어울리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결국 역자가 야스퍼스의 '위대한 철학자들'로부터 뽑아낸 네 명의 '사상가들'은, 소크라테스, 불타, 공자, 예수 이렇게 네 명이다. 하지만 선택은 역자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야스퍼스는 이미 그의 저서에서 이 네 사람에 대해서 따로 언급하고 있다. 야스퍼스의 원저에는 이 네 사람을 다른 철학자들과 달리 철학의 기본모델로 제시하고 있었다. 그는 네 명을 모델로 제시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고찰한 네 명의 위인 외에도 아브라함, 모세, 엘리야, 조로아스터, 이사야, 예레미아, 마호메드, 노자, 피타고라스 등이 있다. 그러나 이들만큼 역사적으로 깊이 있고 지속적인 영향을 준 인물은 없다. 유일하게 마호메드만은 역사적 영향력에서 네 명의 위인과 어느 정도 견줄 만하지만 인간적인 깊이에서는 이들을 따라갈 수 없다." (칼 야스퍼스)

  어떤 철학이나 사상으로서 후대에 영향을 끼친 인물로서 선정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포함하여 인간적인 면모까지도 살펴봤던 것이다.

  이 책은 하나의 잘 만들어진 네 명의 사상가에 대한 레포트이다. 그만큼 매우 쉽고, 간결하고, 정리가 깔끔하게 되어있다. 이 책을 보면서 야스퍼스니 실존주의니 떠올릴 필요도 없고, 자연스럽게 떠오르지도 않는다. 또 한편으로 대단한 내용을 담고 있지도 않고 있다. 되려 야스퍼스를 떠올리며 그가 썼으니 뭔가가 있을거야 라고 기대하는 것은 절대금물. 혹시라도 그런 기대를 품고 이 책을 들췄다간 실망할 것이다. 정말 아무 내용도 없으니.

  야스퍼스는 네 명의 위인들의 생애와 철학사상을 실제 그들이 한 말과 예를 통해서 사실감있게 보여주고 있다. 절대로 소크라테스와 불타, 공자, 예수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이가 봐도 쉽게 느껴지는 책이다. 야스퍼스의 주관은 배제된 체 단순히 이들을 소개하고 이들이 왜 철학자들의 모델이 되어야 하는지를 객관적으로 보여주고 있기에 더 쉽다.

 

**
중학교 도덕 교과서에 보면 인물탐구 라고 하여 네번에 걸쳐서 각각 두명씩 위대한 인물에 대해서 알아보는 단원이 있는데, 이 책은 학생들이 인물 탐구를 위해 따로 가볍게 읽어볼만한 책이라고 소개하고 싶다. 야스퍼스에게서 뭔가를 기대하고 읽는 철학 관심자들은 기대를 거두고 중고등학교 학생용이라고 생각하고 읽으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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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사상가들 - 소크라테스. 석가모니. 공자. 예수
카를 야스퍼스 지음, 권영경 옮김 / 책과함께 / 2005년 8월
품절


소크라테스에게 교육이란 많이 아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 대화를 통해 진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소크라테스 부분)-13쪽

지식은 물건처럼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 스스로 깨달음으로써 얻을 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지식을 얻는다는 의미는 예전에 알고 있던 사실을 다시 회상하는 것과 같다. 모르면서도 지식을 추구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궤변론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나는 아는 것만을 추구할 따름이다. 만약 내가 안다면 더 이상 추구할 필요가 없으며, 모른다면 추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철학적 사고방식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추구하는 것으로, 무의식중에 예전에 알고 있던 기억을 현재의 밝은 의식으로 끌어내어 확인하는 과정이다.
(소크라테스 부분)-18쪽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을 자신은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죽음은 가장 큰 행복일지도 모르는데, 사람들은 가장 큰 불행으로 알고 두려워한다. 더욱이 꿈도 꾸지 못하는 깊은 수면처럼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무의 상태가 죽음이라면, 영원한 시간도 아름다운 하룻밤의 꿈에 불과하다. 혹은 죽음이란 영혼이 한 세상에서 다른 세상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즉, 그곳은 죽은 사람들이 모두 모여있고, 정의로운 재판관이 진리를 말하고, 억울하게 재판을 받고 사형을 당한 모든선한 사람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좋은 사람들과 지혜에 관해 토론을 하고, 무한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러므로 죽음과 마찬가지로 불행이란 것도 선한 사람들에게는 살아 있을 때나 죽었을 때나 일어날 수 없다."(소크라테스) -30쪽

이러한 상태(항상 깨어있는 상태)에 놓일 때 우리는 비로소 명상에 들어가 무의식의 심연까지 몰입할 수 있다. 의식은 육체를 뚫고 들어가 마지막 심연까지 무의식을 맑게 정화시킨다. 이처럼 무의식의 심연까지 정화시키는 것이 바로 에토스의 원칙이며, 명상과 철학적 사변의 원칙이다.
...중략...
"파멸의 소지가 될 수 있는 것은 모두 버려라. 늘 깨어있는 상태에서 행동하고 경험하라." (석가모니 부분)-67쪽

"진정한 기적은 중생을 올바른 신념과 내면의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자, 스스로 명상의 세계에 몰입해 깨달음을 얻고 해탈할 수 있는 자에게만 일어난다. 모든 개인의 마음은 바람이 불고 물이 흐르듯이 변화무쌍하기 때문이다." (석가모니)-68쪽

모든 자아는 명상의 단계에 속하므로 각 단계에 해당하는 가치가 있지만 그 자체의 존재는 아니다. 진정한 자아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감각적인 존재에서는 육체가 자아다. 명상의 첫 단계에서 이 자아는 무로 사라지고 형체가 없는 정신적이고 영적인 자아가 나타난다. 이 영적인 자아도 더 높은 단계로 넘어가면 사라진다. 명상에서는 자아 자체를 부정한다기보다 오히려 그 상대적 효과로 다양한 단계가 더욱 분명해진다. 열반과 동일한 최고의 경지에 이르기 전까지는 진정한 자아를 얻을 수 없다. (석가모니 부분)-74쪽

생성은 순간적인 존재의 고리다.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비존재로 연결된 일시적인 존재일 뿐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으며 동일하게 남아 있는 것도 없고 어디에도 확실히 완성된 것은 없다. 자아는 덧없는 과거의 환상으로 자아를 그 자체로 인정하며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석가모니 부분)-75쪽

이 세상에서 진리의 길을 찾는 유일한 방법은 이 세상이 사라지는 것 뿐이다. 우리는 이러한 길을 가는데 필요한 지식을 배우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이런 지식을 겸손하게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석가모니 부분)-81쪽

"아름다운 흰 연꽃이 더러운 흙에 오염되지 않듯이, 세상이 나를 더럽힐 수 없다."
(석가모니)-94쪽

"배움이 없는 생각은 권태롭고 위험하며, 생각이 없는 배움은 소용이 없다."(공자)
"나는 새로운 진리를 창조하는 사람이 아니라, 전통을 전하는 사람이며, 옛것을 존중하고 따르는 사람이다."(공자)-107쪽

"현재를 사는 사람이 과거의 방법으로 되돌아가고자 한다면 어리석은 사람이며, 불행을 초래할 뿐이다."(공자) -108쪽

진리가 옛것을 통해 분명히 드러난다면, 진리를 얻기 위해 우리는 과거를 먼저 연구해야 한다. 과거를 연구함으로써 진리와 허위를 구별할 수 있다. 이런 구분은 단순한 지식 습득이 아니라 옛것을 우리 것으로 만들려는 진정한 배움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진리란 외우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배움을 외적으로 실현시켜나가는 것이다.(공자부분)-109쪽

배움을 사랑하는 사람은 매일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자신이 무엇을 해야하는지 잊지 않는다.

배움이 없으면 정직은 저속함이 되고, 용기는 불복종이 되며, 강인함은 괴벽이 되고, 자비심은 어리석음이 되고, 지혜는 산만함이 되고, 진실은 오히려 방해가 된다.
(공자부분)-110쪽

군자가 곧 성인은 아니다. 성인은 원래 타고나는 것이지만, 군자는 자기 훈련을 통해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진리를 소유하는 것은 하늘의 길이며,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길이다. 진리를 소유한 사람은 아무런 고통 없이 정의를 수행할 수 있고 아무런 노력 없이 성공할 수 있다." (공자)-119쪽

"너희에게 말하니, 악한자에게 대적하지 마라. 누구든지 네 오른쪽 뺨을 때리거든 왼쪽도 돌려주며, 또한 네 옷을 빼앗으려 하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벗어주라.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빌리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마라." (예수)-163쪽

"지금까지 우리가 고찰한 네 명의 위인 외에도 아브라함, 모세, 엘리야, 조로아스터, 이사야, 예레미아, 마호메드, 노자, 피타고라스 등이 있다. 그러나 이들만큼 역사적으로 깊이 있고 지속적인 영향을 준 인물은 없다. 유일하게 마호메드만은 역사적 영향력에서 네 명의 위인과 어느 정도 견줄 만하지만 인간적인 깊이에서는 이들을 따라갈 수 없다." (칼 야스퍼스)-232-2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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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2-19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져가서 참고할랍니다

마늘빵 2006-02-19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네 ^^
 
몸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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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번째 접한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이다. 일본 소설에 입문 한 뒤로 한 명 한 명 작가를 알아가는 재미를 느끼고 있다. 가네시로 가즈키, 무라카미 하루끼, 오쿠다 히데오, 야마다 에이미, 츠지 히토나리를 거쳐서 이번엔 요시모토 바나나다. 가장 최근작 <불륜과 남미>를 읽은 이후 기대했던 만큼의 만족감을 얻지는 못했지만 그녀의 이전작들이 너무나도 호평을 받고 있어서 그 한권만으로 그녀를 판단하기에는 이르다는 생각 끝에 이번에 몇 권을 더 구입했다.

  <몸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그녀의 많은 작품들 중에 언제쯤 내놓은 것인지 모른다. 기왕이면 집필 시기를 알 수 있어서 그 순서대로 읽어나가는 혹은 역순으로 읽어나가는 재미를 누리고 싶었지만 불친절하게도(?) 그녀의 책 어디에도 그 순차는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마구잡이로 읽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그래도 그녀가 거쳐왔던 세월의 흔적들, 생각의 흔적들을 느끼고 싶었다.

  그녀가 소설가라는 사실을 모른 채 이 책을 접했을 때 무슨 과학책인줄 알았다. 몸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의학관련, 과학관련 대중서인줄 알고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요시모토 바나나'라는 작가의 이름만 기재되어있지 않다면, 이 책을 소설책으로 분류할 사람은 없을 듯 하다. 일전에 어떤 책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학교 도서관에서 철학책을 찾는데 철학분야에 끼워져있지 않고 다른 엉뚱한 곳에 가 있는 경우가 있었다. 도서관 사서들이 제목만 보고서 다른 곳으로 분류해놓은 것이다. 그럴 때면 아 뭐 실수할 수도 있지, 라는 생각이 드는 한편, 그런데 사서들은 이 많은 책들을 어떻게 제자리에 분류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가졌다.

  <몸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짧은 여러개의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다. 초록반지, 보트, 지는 해, 검정 호랑나비, 조그만 물고기, 적당함 등등의 여러 단편들은 각기 다른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있지만, 하나의 통일된 주제를 담고 있다. 그 주제를 풀어놓은 것이 바로 이 책의 제목이다. 몸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난 뒤 다른 여자와 또 만나 데이트를 하며 그녀와 함께 걸었던 그 때 그 장소로 나의 발길이 향할 때, 나보다 내 몸이 먼저 자연스럽게 행동하는구나, 하는 걸 느낀다. 바로 어제 우리가 함께 했던 그 즐거웠던 시간들이 오늘, 그리고 내일, 혹은 한달 뒤 까맣게 잊혀지고 말지 모른다. 기억에서 자연스럽게 지워지고 흔적조차 남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젠가 다시 또 알게 되기도 한다. 역자 김난주는 '옮긴이의 말'에서 이런 말을 한다.

  "그런 때, 시간은 흘러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것이라 생각했던 자신의 어리석음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이렇게 한순간에 지금이 먼 옛날이 되고 또 먼 과거의 시간이 오늘에 되살아날 수도 있는 것을, 하고 말이죠."

  함께 했던 그 행복했던 시간은 기억을 통해 영원히 '행복'으로 남을 것만 같지만, 언젠가는 기억 저장고에서 날아가버린다. 하지만 그때 내가 했던 말들,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는 비록 기억에서 사라졌지만 내 몸에 습관으로 배어있다. 단지 그걸 인지하지 못할 뿐. 언젠가 비슷한 상황이 돌아왔을 때 나는 안다. 익숙한 나의 몸짓에, 한 마디 말에, 언젠가 내가 했던 말인거 같은데, 언젠가 내가 했던 행동인 거 같은데... 나는 잊었지만 내 몸은 알고 있다. 그 모든 것을.

  요시모토 바나나는 이 책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옛 이야기를 내 몸은 기억하고 있다는 걸.

 "말하지 않아도 좋은 친구는 그리 많지 않다. 일단 억지로 얘기하기를 그만두면, 몸이 오랜 세월에 길든 서로의 리듬을 마음대로 새겨준다. 그러면 대화는 느긋하고 매끄럽다." (p51, 검정호랑나비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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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2-16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몸은 알고 있다~ 저도 읽어 보고 싶네요. 요시모토 바나나 참 미칠듯 질투나는작가같아요

마늘빵 2006-02-16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글을 잘 쓰더군요. 전 세계적으로 읽히는 이유도 그가 일본에서 뿐만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느낄 수 있는 보편적인 공감과 동의를 이끌어 내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어요.
 
몸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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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않아도 좋은 친구는 그리 많지 않다. 일단 억지로 얘기하기를 그만두면, 몸이 오랜 세월에 길든 서로의 리듬을 마음대로 새겨준다. 그러면 대화는 느긋하고 매끄럽다. - <검정호랑나비> 中 -51쪽

지금은 초췌하게 눈 밑에 기미까지 끼어 있지만, 언젠가는 새로운 사랑을 하고 다이어트다 뭐다 시끄러워 지리라. 내가 전에 여기 왔었다는 것을 잊게 한 똑같은 힘이 그녀를 또 웃게 한다.
멈추지 않는 시간은 아쉬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름다운 순간을 하염없이 품기 위해 흘러간다. - <검정호랑나비> 中 -52쪽

나는 그의 몸매도, 할 때의 표정도, 비디오를 보며 연구한 듯 집요한 섹스 스타일도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의 욕망은 삽입도 아니고 다른 무엇도 아니고 오로지 보는 것이 전부였고, 나를 즐겁게 해주려는 생각은 별로 없는 것 같았다. 너무 집요해 나도 모르게 몇 번이나 절정에 올랐지만, 그것은 그냥 보통 섹스에서의 평범한 기분 좋음이 아니라 어딘가 뒤틀린 환희였다. 그러나 뭐라 표현하면 좋을까.
그 유난히 가는 팔도, 울룩불룩 튀어나온 등뼈도, 부숭부숭한 털도, 안경을 벗으니까 유난히 긴 속눈썹도, 햇볕에 까맣게 탄 피부도 싫다고 외면할수록 좋았다. 아무말이 없는 것도 나를 매혹시켰다.
그것은 어린 시절 바다에 놀러 가서, 파도치는 해변에서 뒹굴 때의 감각과 비슷했다. 물을 머금은 부드러운 모래가 몸 아래서 흔들리는 느낌, 그 감촉이 황홀하도록 기분 좋아서, 수영복 속으로 모래가 찔끔찔끔 들어와 나중에 성가시다는 것을 알면서도, 에이 뭐, 하고 물가에 누워 있었던 때의 그 기분. 몸을 담글 때까지는 혐오스럽지만, 한번 그 부드러운 모래의 힘에 사로잡히면 거기에 있고 싶어진다.
- <미라> 中-81-82쪽

아마도 전쟁이란 것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를 그리고 또 무엇을 '미워하자'고 정하고는, 자기 안에 잠들어 있는 증오란 증오를 전부 끌어내 거기에 쏟아 붓고 탓하는, 그런 중독 비슷한 이상한 상태에서 일어나는지도 모르겠다......
- <밝은 저녁> 中 -94쪽

그 냉정함을 듬직하다 여겼었다. 하지만 사실은 벌써부터 알고 있었다. 그는 그저 무관심하고,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과 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는 마음이 이어지지 않는 사람일 뿐이다. - <아빠의 맛> 中 -1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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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06-02-16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과학서적인 줄 알았는데 아니네요...--;;;

마늘빵 2006-02-16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그렇죠? ^^ 저도 첨에 제목만 보고 그런줄 알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