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이 아깝잖아요 - 나의 베란다 정원 일기
야마자키 나오코라 지음, 정인영 옮김 / 샘터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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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은 평소 내가 생각하던 것과 꼭 닮았다. 평소 햇볕이 아까울 때가 있다. 대부분 식물을 내놓으면 쑥쑥 클 텐데, 이불 빨래가 잘 마를 텐데, 류의 것들이다. 요즘에 식물등도 있고 건조기도 있지만 햇볕을 따라올 수는 없다. 자연광에 노출된 것일수록 더 생기있고 파릇파릇하며 보송보송하다.

나는 26년간 단독 주택에서만 살았다. 단독주택 중에서도 빛이 잘 들지 않는 집이었다. 하지만 그게 아쉽지는 않았다. 바로 마당이 있었고 옥상이 있었으니까. 엄마는 그곳에서 빨래를 널고 식물을 내놓고 고추를 말렸다. 그래서 나는 남들도 다 그러고 사는 줄 알았고 (어린 나는 아파트에 사는 것을 동경했고 한편으로는 로망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었지만)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을 보며 이런 부분이 얼마나 아쉬울까 생각하곤 했다. 결혼 후 아파트에 살면서 이제까지 누리지 못한 혹은 주택의 불편함들을 대체할 수 있는 안락한 생활을 하게 되었지만 마당이 없다는 것은 아쉬움을 표현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운이 좋았는지 내가 이제까지 살던 집들은 주택과는 달리 햇빛이 잘 들어온다는 것이 장점이었다. 그러면서 식물을 하나둘 들이기 시작했다. 식물을 들일 때에 촌스러운 다짐 같은 건 하지 않았다. 나는 잘 돌보지 못하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운 좋게도 몇몇의 식물들은 여전히 나와 함께 살고 있다. 어쩌면 식물들이 나한테 맞춰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50. 재배하는 식물에 대한 나의 마음가짐이 전문 농업인과 같을 순 없다. 농부가 내 베란다를 본다면 소꿉장난처럼 보일 것이다. 재미로 키우고, 실험하는 셈 치고 먹는다. 맛이 있는지 없는지, (사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접시에 담았을 때 그럴듯한지 아닌지에 더 많이 신경 쓴다.

그러다가 몇 년 전부터 문득, 재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것 역시 잘 키워서 먹어야지라는 생각을 애초에 하질 않았다. 아니 못했다는 사실이 맞겠다. 나는 상추가, 적겨자가, 쑥갓이, 깻잎이 그렇게 잘 자랄 것이라고 생각해보지 못했으니까. 자른 생수병에, 스티로폼에, 씨를 뿌리고 물을 흠뻑 주고 거기에서 싹이 올라왔을 때의 희열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세상에, 내가 싹을 틔웠어. 하지만 좋아할 수만은 없었다. 싹이 트는 순간부터는 책임이 뒤따랐으니까. 그것들을 잘 키워야겠다는, 잘 키워보고 싶다는, 기분 좋은 책임감.

135. 한번 시작된 삶은 되돌릴 수 없다.

136. 일단 싹이 트고 나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지켜볼 뿐. 건드리면 죽어버리고, 필요 이상 물을 주면 썩는다. 손전등 빛을 비추며 어울리지도 않는 다정한 목소리로, ‘잘 자라야 해’하고 속삭이거나 ‘후우’하고 숨을 불어줄 뿐이다.

싹이 올라오는 걸 보면서 방방 떠있다가 어느 순간 작물이 머뭇거린다 싶으면 왜 그러지? 물이 부족한가? 하고 되묻게 된다. 당시에는 그것을 보며 내가 크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막연한 책임감이라고만 생각했다. 나는 그때 기다림을 배웠다. 평소 같으면 거침없이 버렸을 텐데, 싹이 올라오지 않는 빈 스티로폼을 부여잡으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를 외쳤으니까. 이제 나의 집에는 재배를 하지 않는다. 벌레가 많아지는 여름이니까. 늦가을에 다시 만나기를 소망하며 올해의 재배는 안녕이다.



120. 가드닝은 잔혹함이 없으면 하기 힘든 작업이다. 식물을 키우면서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이 바로 이 솎음질이다. 같은 종류의 식물 중에서 하나만 골라 돌보고, 나머지는 버린다. 나로 인해 생명이 시작되게 만들고서는, 삶을 시작하면 뽑아낸다. 매우 불합리하고 잔인한 일이다. 나는 아직도 이를 정당화할 논리를 발견하지 못했다.

걱정시키던 해피트리가 이사를 와서는 무럭무럭 자라서 지금은 매우 풍성해졌다. 나는 그 모습이 좋아서 내내 솎음질을 하지 않았는데 시간이 날 때마다 닦아주어도 깍지벌레는 계속 생겨나고 끈적한 액체가 흘러서 바닥이 끈적거리는 현상까지 생겼다. 하지만 솎음질 하기를 미루었는데, 내가 가지를 쳐내야 한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아직 더 있어도 될 것 같은 친구들을 내 손으로 꺾어버리는 일은 그야말로 잔인함을 겸비해야 하는 일이었다. 전에 자주 가던 꽃집의 사장님은 솎아주어야만 더 건강한 잎이 날 수 있는 거라고 하셨지만 나는 매번 심호흡을 크게 하고 솎음질을 해왔었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미루고 미루던 솎음질을 했다. 미안해...라며. 풍성하던 잎은 이발한 것처럼 정리가 되었지만 잘려나간 가지와 잎들에 대한 미안함은 쉽게 가시질 않는다.

178. 꽃은 살고 죽는 문제와 관계가 없다. 생필품도 아니다. 사실 꽃에 큰돈을 쓰는 사람을 보면 ‘사치스럽게 산다’는 생각도 든다. 잠이의 품종 개량도 유럽 귀족들이 국민의 피 같은 세금을 쏟아부은 결과이니 어떻게 보면 참으로 지독한 얘기다. 하지만 인간은 먹고사는 게 전부가 아니다. 쓸데없는 데 돈을 쓰는 존재야말로 인간이다.

최근에 업무 스트레스가 격해져 꽃을 연달아 두 번을 샀다. 어떤 꽃이어도 상관이 없었지만 아무 꽃이나 사고 싶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단일 품종의 꽃을 골랐다. 첫 번째는 보라색 아네모네였고, 두 번째는 주황색 오니소갈럼이었다. 꽃들은 존재만으로도 나에게 한 아름의 위로를 건네주었고 나는 그 위로에 탄복했다. 한때 꽃을 왜 돈 주고 사냐고 생각했던 사람 중 한 명이었던 나는 177. 금세 종잇장처럼 시들어버리는 덧없는 아름다움도 꽃의 매력이다.라는 문장에 꼼짝없이 당하고야 만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나는 다시 식물들을 볼 여력이 생겼다. 조금 더 보살펴줘야지,라고 생각하며 식물들과의 교감을 시작한다. 다시, 또, 반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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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개발의 정석 오늘의 젊은 작가 10
임성순 지음 / 민음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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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내내, 다 읽고 나서도, 그리고 다 읽은 지 며칠이 지난 지금도... “아이고 두(頭)야. 어쩌자고 내가 이 책을 읽었을까.”였다. 내가 이 책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짤막하게 쓰지 않으면 계속해서 생각이 날 것 같아서 써보는 글.

우선 나는 요근래 많은 것들을 경험했고 그 결과로 약간의 시간을 벌었다. 다시 실패를 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나는 여러 방면에 관심을 기울이기로 했다. 그것에 대한 결과가 「자기 개발의 정석」을 도서관 책장에서 집어 드는 일이었다. 자기 계발이 아니라 자기 개발이라고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한다. 참고로 나는 (이건 순전히 나의 약한 비위가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을 읽으며 그 흔한 커피 한 잔도 마시지 못했다. 그뿐인가, 지금도 뭘 먹으려다가도 이 책의 내용만 생각하면 역해져서 뭘 먹지를 못하겠다. 이 책을 도서관에서 읽을 땐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이 책을 읽는 것을 누군가가 볼까봐 얼른 표지를 숨기기에 급급했다. 정말 어쩌자고 이 책을 읽었을까.

마흔여섯의 이 부장, 비뇨기과의 트인 바지는 유격을 면제받기 위해 포경수술대 위에 올라갔을 때의 자신을 회상하게 했다. 평균 미달이 주는 자존감 없는 삶을 살아왔지만 불행하다고 여기지 못했는데 아이러니하게 그는 전립선염에 걸렸고 의사로부터 수지마사지를 받아야만 했다. 하지만 만성으로 번져 병원을 더 자주 찾아야 했기에 아네로스라는 기구로 치료를 하기로 하는데...

그리고 그는 ‘인생 최대의 위기’를 다시 경신했다. 하......

58. 이 부장은 상상해보았다. 이사가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업무가 달라지고, 직함이 달라지고, 대접이 달라지고, 연봉이 달라지고, 사회적 시선은 분명 달라질 터였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원했기에 이 부장 역시 아둥바둥 달려왔다. 하지만 여전히 집으로 돌아가면 로봇청소기만이 기다리고 있을 터였고, 일주일에 한 번 아네로스를 써야 했으며, 자기 전엔 스타브론정을 먹어야 할 터였다.

사십대 후반의 남성, 기러기아빠 - 그를 대변해 줄 수식어는 많았지만 정작 그가 갖고 싶은 수식어는 없었다. 61. 가족이기는 했지만 이미 식구라고는 부를 수 없는 존재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캐나다로 돈을 보내줘야만 하고, 그것은 그가 가족에게 빚을 갚을 수 있는 통로라고 생각하는 것도 우울하게 느껴졌다. 그런 중년 남성이 느닷없이 들이닥친 오르가슴이라는 욕구를 가지고 그것을 치료 목적으로 계속해나가는 것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내 남편을 처량하게 바라보게 만들었다. 아...... 어떤 단어들을 직접적으로 내뱉지 않는 나인데도 불구하고 “전립선 잘 보호해 줄게.”라고 말하는 나를 보며 그는 조오-금 수치스러웠다고 말한다. 아니... 나도 그러고 싶지 않은데 어쩔 수 없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전립선 타령이거든... 그리고 뭔가 몰입하는 건 좋아. 좋은데, 난 그냥.... 그게... 차라리 축구였으면, 레플리카였으면 좋겠어... 알겠지?

155. 어차피 어떤 것이든 결국 지나가 버릴 것이며 무엇을 결정하든 계속될 수는 없을 테니까.

이 부장에게, 아내에게, 무엇보다 딸에게 너무나도 혹독한 결말이었다. 그리고 알고 싶지 않은 걸 알게 된 나에게 생긴, 이 트라우마는 어쩐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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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어 - 즐겁게 시작하는 제로웨이스트 라이프
허유정 지음 / 뜻밖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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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로 웨이스트의 글을 읽지 않은 지는 조금 되었다. 환경에 대한, 쓰레기에 대한 책에는 여전히 관심이 높았으나 실천은 어렵다고 판단되어 괴리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일하던 곳은 건설 현장. 그곳에서는 하루에도 엄청난 쓰레기가 나왔다. 작업자들이 참 때마다 마시는 캔 음료와 한 번 먹고 버리게 되는 종이컵, 컵라면 용기와 도시락 용기, 그에 못지않은 일회용 젓가락. 그것들은 분리수거가 되지 못한 채로 항공마대(톤마대)에 담겼다. 그걸 눈으로 직접 보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정말 손톱의 때만큼도 되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된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나를 가장 견디지 못하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이면지들이었다. 특히 내가 만들어내는 이면지들. 나는 그곳에서 나무를 몇 그루 베어내고 왔나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더더욱 책을 멀리하게 되었다. 그 책들을 읽다보면 나는 환경 파괴범이 된 것만 같아서.

그와 별개로 나는 여전히 집에서 비울 것들을 찾고 있었고, 배달을 시켜도 일회용 젓가락은 빼달라고 했으며, 마트에 갈 때에도 장바구니를 들고 다녔고, 나무칫솔을 사용하는 것과 친환경수세미와 설거지바는 꾸준하게 사용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그거로는 안 됐다. 내가 하루에 쓰는 비닐이, 내가 하루에 쓰는 키친타월이, 내가 하루에 쓰는 종이가 나를 비웃었다. 그렇게 하면 뭐해? 어차피 이만큼 쓰는데- 라고.

이 책을 읽게 된 건 다름 아닌 온라인 독서모임의 힘이 컸다. 그게 아니라면 나는 한동안 제로 웨이스트에 관한 책을 읽지 않았을 것이었다. 저자는 오로지 자신을 위해서 시작했지만 점점 더 영역을 넓혀갔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휴지 대신 손수건 챙기기가 되었다. 물론 코를 풀어야 할 때는 휴지가 필요할 테니 여분의 휴지를 챙기지 않을 수 없지만, 손수건을 이용해서 대부분 해결할 수 있어서 오히려 편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자주 가지고 다니려고 한다. 또 나에게는 손수건이 몇 개나 있으니 어렵지 않은 일이기도 했다.

외출 시 텀블러와 손수건을 가지고 다니고 설거지를 할 땐 수세미와 설거지바를 사용하고 양치를 할 땐 나무칫솔을 사용하며 일회용 행주 대신 소창행주를 사용하고 면생리대를 사용하고 비닐 대신 스테인리스 반찬통에 담아달라고 하는 등의 저자의 노력들이 책에 실려있다.

그런 일련의 것들이 귀찮지 않냐고 묻는 말에, 그것들을 처리하는 게 더 귀찮다고 말하는 저자의 말을 올해 초까지만 해도 이해할 수 없었을 텐데, 지금은 조금 이해할 수도 있다. 이전에는 지하주차장이 없는 곳에 살았고 집 앞에 바로 분리수거장이 요일별로도 아닌 매일 버릴 수 있게 되어있어서 차를 타기 전에 쓰레기를 몇 개 가지고 내려올 수 있었는데, 지금은 지하주차장에 있는 차에 바로 타면 되니 쓰레기를 자주 가지고 내려올 수가 없다. 그래서 전과는 다르게 시간을 내어 가지고 내려와야 하는데 이게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이전과 다르게 비닐 하나를 쓰더라도 얼마나 돌려가며 재사용을 하는지...

최근에 샐러드를 주문해서 먹기 시작하면서, 그리고 신선식품이 집으로 배송이 오기 시작하면서 아이스팩들이 하나둘 점점 더 부피를 넓혀가고 있다. 이것들을 종량제봉투에 넣어 버리면 되지만 아이스팩 수거함에 넣으면 그게 재사용이 된다는 말을 듣고 찾아보다가 집에서 조금 거리가 있는 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아이스팩 수거함에 넣기로 했다. 물론 이 실천이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지금은 먼저니까.

무엇보다 따라하고 싶었던 것 중 하나는 음식물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장 본 영수증을 냉장고에 붙인다는 것이었는데, 영수증이 나달거리며 집안에 있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개인적 취향으로 냉장고에 있는 품목을 수기로 써서 붙이고 싶다. 전에는 호기롭게 집에 있는 음식 위주로 냉장고파먹기를 하겠다며 요일마다 메뉴를 써놓고 냉장고에 붙여놓기도 했었는데, 그건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환경보호에 관심이 있었을 때는 더더욱 아니었으며 단순히 재미였었다. 그렇게 해서 냉장고를 비워간다는 그 즐거움. 그걸 다시 느낄 수 있다면 나도 한발 앞으로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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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사회 생활이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청안 지음 / 모모북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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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분명 내 목소리를 내고자 했는데, 그 목소리가 누군가‘들’을 대변하게 된 게 아닐까. 왜 그 사람들은 나로 인해 통쾌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뒤로 빠져있고 나만 이렇게 미운오리새끼 취급을 받아야 하는 걸까. 나는 흔히 말하는 총대를 매는 스타일은 아니다. 내가 불편했고, 그게 개선되기를 바랐기 때문에 목소리를 내었다. 결국 나는 마음의 병을 안기 직전에 퇴사를 통보했고, 지금도 누군가‘들’은 그곳에 남아 마음의 병을 키우고 있다. 그러면서 연락을 한다. “저 원형탈모 생겼어요.”




22. 나는 문제가 생기면 숨거나 회피하기보다 정면돌파를 택하는 쪽이다. 그렇다고 싸우는 것을 즐기진 않는데, 꼭 해야 될 말이라고 판단했다면 참고 앓느니 저지르고 아파하는 쪽을 택했다. 후회했다고 생각했지만 참았다면 더 많이 후회했을 것이다. 참지 않고 말한 쪽이 후련했다. 결과는 내가 책임지면 된다.


책임을 진다는 것,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이제까지의 직책은 내가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구조였다. 협의를 하고 그것에 맞게 따라가면 되었다. 그러다가 업무가 바뀌면서 책임이라는 것이 자연스럽게 뒤따랐다. 그런 나에게 “하고 싶은 대로 해 봐,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내가 다 책임져줄게.”라고 말하는 총괄책임자의 밑에서 성실하게, 또 원리원칙대로 업무를 수행하다가, “그걸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해? 안 해도 돼~”라는 총괄책임자로 바뀌면서 나는 혼란이 많이 일었다. CSI(construction safety management integrated information, 건설공사 안전관리 종합정보망)에 응당 올려야하는 것들을 올리지 않았고, 그렇다면 그것에 대한 사고가 일어났을 때는 모든 것이 초토화되는 상황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에이, 고용노동부 안 나와~ 나는 이제까지 한 번도 안 나왔어.” “그거 안 해도 돼~”라며 안일하게 대처하는 관리자‘들’의 모습들을 보며 근로자들의 안전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그럼에도 내가 그곳에서 계속 건의를 했던 까닭은 내가 다치지 않기 위함과 근로자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함 둘 모두였으나 나는 실패했다.





바꿀 수 없는 것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은혜와

바꿔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이 둘을 분별하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다들 말했다. 이곳에 있으려면 마음을 비워야 한다고. 그때마다 대답했다. 나 역시 공무, 공사, 설계에 있으면 마음 놓고 있을 텐데, 법정관리자로 선임되어 있으니 매일매일이 살얼음판 같다고. 과녁에 화살을 쏘는데 근처도 가지 못하고 다 빗나가는 것만 보고 있어 한편으로는 초라해진다고. 이곳에 있다가는 나 역시 무디고 노둔한 인간이 될 것 같아 있을 수 없을 것 같다고.





42. 회사(상사)는 불안하게 만드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43. 더욱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일을 맡길 때부터 마음을 턱 놓고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당연지사 좋을 것이고,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잡음이 없는 사람이 좋을 것이다. 경영자나 상사의 입장에서 맡긴 사람의 마음이 불안하지 않고 일의 마무리도 좋을 때, 회사는 그런 사람을 좋아한다.


나는 일을 하려고 했으나 몇몇의 관리자는 스트레스받지 말고 마음 편.하.게 있으면 된다고 했지만 나는 떠날 수밖에 없었다. 총괄책임자는 그런 나의 사직 이유로 현장부적응을 들었다. 44. 회사가 좋아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원칙과 기준이 모호한 ‘좋은 게 좋다’식의 태도는 없앤다. 단호해진다. 일을 시작했으면 끝을 본다. 그리고 결과를 맺는다. 덧붙여서 내 주관 업무가 아니라 하더라도 나와 관련된 이이라면 일의 진척 상황을 체크하면 좋다. 예외는 있었다. 내가 직전에 있던 회사는 좋은 게 좋다는 식의 사람을 원했다. 이전 관리자와 비교하며 그 사람은 그러지 않았다고 나를 깎아내리려 하여 결국에는 나도 위험성평가와 환경보전비 작성자에 안전관리자 이름을 넣는 자기 업무도 모르는 등신같은 안전관리자와 그걸 자각하지 못하고 서명하는 총괄책임자의 밑에서 일하고 싶지 않다고 대꾸하고 퇴사하게 되었다.

하지만 퇴사하는 그 순간까지도, 어리석은 관리자들은 언젠가 지금의 생각을 뜯어고칠 일이 생겼으면 좋겠지만 이 현장이 준공 때까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컸고 지금도 그렇다.




50. 직급이 올라갈수록 월급을 많이 받는 이유는 책임질 일이 많아지기 때문이고, 회사에 기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나는 스물두 살 12월에 첫 직장을 가졌다. 그때보다 지금의 급여는 무려 5배 가까이 올랐으나 결국 그만큼의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오래전 나는 돈을 많이 벌고 싶지 않다고 했었다. 나의 아빠는 개인사업자로 직장 생활을 하지는 않았지만 돈을 많이 벌어 올수록 몸이 고단한 일이 많아졌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내가 맡은 업무에 진정성과 책임감을 부여하고 싶어 발을 동동 구르며 업무에 대해 늘 고민한다.




나는 내가 지금 이렇게 부딪히고 깨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마흔 즈음이 되면 사회생활을 좀 더 노련하고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왔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이런 제목의 책에 눈길을 주고 책장을 열어 읽게 되는 걸 발견하고 세상 사는 게 참 녹록지가 않네. 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책을 읽으면서 내가 놓쳤던 부분들과 반성할 부분, 앞으로의 업무를 하려면(결국 사회생활을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해 조금 더 건설적인 방향으로 계획을 수정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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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 팔면서 인생을 배웁니다 - 중요한 것은 어떻게든 살아내는 힘
떡볶이 사장 도 여사(도정미)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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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소에 타인의 급여에 대해 관심이 없는 편이라 굳이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래서 떡볶이를 팔아 월 천만 원을 번다는 이야기에도 솔깃하지 않았다.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 일을 ‘재미있게’ 그러면서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난 지금도 직장을 구할 때 여전히 네임 밸류를, 급여를, 복리후생을 따지고 있지만 결국은 일이 재미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어쩌면 배부른 소리일지도 모른다. 일을 재미로 하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되겠냐고 타박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이런 내가 어리다고 느껴질 수도 있고 조금 우스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성실하게 일하는 남편 덕분에 당장 돈을 벌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는 나의 입장에서 일은 단순해야 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자기계발이어야했고 어떤 의미에서는 재미도 있어야했다.

대전 오매불떡에서 떡볶이 장사를 한다는 도정미 사장님.

떡볶이는 어떻게 보면 정말 참신하지 않은 메뉴 중 하나다. 그런데 그 떡볶이가 맛있기가 그렇게 힘들다는 것을 몇 년 전에 알고 난 뒤 나는 지역을 옮겨 다닐 때마다 떡볶이를 찾아다녔다. 와, 떡볶이 맛있는 곳을 찾기가 이렇게 힘이 든다고? 라는 생각이 들면서, 대전 대화동 할머니떡볶이가 생각났다. 초등학생 때부터 다녔는데 아직도 하시는 걸까 사뭇 궁금해진다. j랑 갔을 땐 j는 특별한 걸 느끼지 못했다고 하는데 나에게는 친구들과 오손도손 함께 먹던 추억의 맛이다. 여름에는 선풍기 두 대가 돌아가지만 땀을 뻘뻘 흘려가며 먹던 그 떡볶이. 그리고 찾은 곳은 대구 아양교에 있는 섹시떡볶이였다. 대구에 있는 동안 일주일에 한두번은 사먹었는데 직장이 멀어지면서 드문드문 찾아갔던 그 떡볶이집. 정말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리고 타 지역으로 이사를 오게 된 나는 다시 떡볶이 방랑자가 되었다. 하하.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아마 저자의 떡볶이집도 누군가에게는 나처럼 이렇게 추억을 몽글몽글 떠올릴 그런 떡볶이집일 것 같아서다. 웃으면서 반겨주는 떡볶이사장님- 



책을 다 읽고 난 뒤에 빨간 모자를 쓴 저자의 사진을 보게 되었다. 정말 많은 노력을 하셨구나 생각했다. 누구나 일을 하면서 잘 되는 날이 있고 아닌 날이 있는데, (물론 컨디션에 따라 다를 수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일은 ‘준비’하고 ‘대응’하며 ‘고심’해서 ‘최선’을 찾아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발판 삼아 ‘발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식당 사장님들 중 본인이 하는 동종업종의 식당을 찾아간다고 말하는 걸 종종 들은 적이 있다. 저자 역시 떡볶이집을 부러 찾아가서 하나하나 배울 점들을 보고 듣고 느끼고 익히고 와서 본인에게 대입하여 실천을 했다. 보고 느끼고 배우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실천을 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에 대단하다고 느꼈다. 사탕이나 머리끈, 쓰레기봉투, 테이블보를 상황에 맞게 동봉하고 리뷰에 정성스레 댓글을 달고 배달기사님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일. 사소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부분들이지만 이런 것들이 고객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결국 사람들이 함께 복작이며 살아간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도 많지만 우리는 결국 모르는 타인으로부터 위로를 받고 애정을 받는다. 그 따스함의 잔향은 생각보다 오래, 그리고 깊이 남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웃음이 되고 위로가 되는 따듯한 날들을 꿈꾼다.


며칠 전에 집 앞에 푸드트럭으로 순대가 왔다. 그날은 내 기분이 너무 좋아서 전에 없이 순대 사장님께 “오늘 와주셔서 감사해요!”라고 말했는데 오히려 사장님이 감동했다고, 기분이 정말 좋다고 말씀하셨다. 그 얘기를 듣고 있자니 이사를 오기 전에 들러서 감사 인사를 전해야지 생각은 했지만 결국 일정이 꼬여 들르지 못했던 떡볶이집 사장님께 문자를 드렸고, 답이 왔다.

/ 난 지금 떡볶이가 먹고 싶다. 그리고 오늘은 푸드트럭 순대가 오는 날이다.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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