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사회 생활이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청안 지음 / 모모북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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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분명 내 목소리를 내고자 했는데, 그 목소리가 누군가‘들’을 대변하게 된 게 아닐까. 왜 그 사람들은 나로 인해 통쾌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뒤로 빠져있고 나만 이렇게 미운오리새끼 취급을 받아야 하는 걸까. 나는 흔히 말하는 총대를 매는 스타일은 아니다. 내가 불편했고, 그게 개선되기를 바랐기 때문에 목소리를 내었다. 결국 나는 마음의 병을 안기 직전에 퇴사를 통보했고, 지금도 누군가‘들’은 그곳에 남아 마음의 병을 키우고 있다. 그러면서 연락을 한다. “저 원형탈모 생겼어요.”




22. 나는 문제가 생기면 숨거나 회피하기보다 정면돌파를 택하는 쪽이다. 그렇다고 싸우는 것을 즐기진 않는데, 꼭 해야 될 말이라고 판단했다면 참고 앓느니 저지르고 아파하는 쪽을 택했다. 후회했다고 생각했지만 참았다면 더 많이 후회했을 것이다. 참지 않고 말한 쪽이 후련했다. 결과는 내가 책임지면 된다.


책임을 진다는 것,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이제까지의 직책은 내가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구조였다. 협의를 하고 그것에 맞게 따라가면 되었다. 그러다가 업무가 바뀌면서 책임이라는 것이 자연스럽게 뒤따랐다. 그런 나에게 “하고 싶은 대로 해 봐,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내가 다 책임져줄게.”라고 말하는 총괄책임자의 밑에서 성실하게, 또 원리원칙대로 업무를 수행하다가, “그걸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해? 안 해도 돼~”라는 총괄책임자로 바뀌면서 나는 혼란이 많이 일었다. CSI(construction safety management integrated information, 건설공사 안전관리 종합정보망)에 응당 올려야하는 것들을 올리지 않았고, 그렇다면 그것에 대한 사고가 일어났을 때는 모든 것이 초토화되는 상황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에이, 고용노동부 안 나와~ 나는 이제까지 한 번도 안 나왔어.” “그거 안 해도 돼~”라며 안일하게 대처하는 관리자‘들’의 모습들을 보며 근로자들의 안전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그럼에도 내가 그곳에서 계속 건의를 했던 까닭은 내가 다치지 않기 위함과 근로자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함 둘 모두였으나 나는 실패했다.





바꿀 수 없는 것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은혜와

바꿔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이 둘을 분별하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다들 말했다. 이곳에 있으려면 마음을 비워야 한다고. 그때마다 대답했다. 나 역시 공무, 공사, 설계에 있으면 마음 놓고 있을 텐데, 법정관리자로 선임되어 있으니 매일매일이 살얼음판 같다고. 과녁에 화살을 쏘는데 근처도 가지 못하고 다 빗나가는 것만 보고 있어 한편으로는 초라해진다고. 이곳에 있다가는 나 역시 무디고 노둔한 인간이 될 것 같아 있을 수 없을 것 같다고.





42. 회사(상사)는 불안하게 만드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43. 더욱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일을 맡길 때부터 마음을 턱 놓고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당연지사 좋을 것이고,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잡음이 없는 사람이 좋을 것이다. 경영자나 상사의 입장에서 맡긴 사람의 마음이 불안하지 않고 일의 마무리도 좋을 때, 회사는 그런 사람을 좋아한다.


나는 일을 하려고 했으나 몇몇의 관리자는 스트레스받지 말고 마음 편.하.게 있으면 된다고 했지만 나는 떠날 수밖에 없었다. 총괄책임자는 그런 나의 사직 이유로 현장부적응을 들었다. 44. 회사가 좋아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원칙과 기준이 모호한 ‘좋은 게 좋다’식의 태도는 없앤다. 단호해진다. 일을 시작했으면 끝을 본다. 그리고 결과를 맺는다. 덧붙여서 내 주관 업무가 아니라 하더라도 나와 관련된 이이라면 일의 진척 상황을 체크하면 좋다. 예외는 있었다. 내가 직전에 있던 회사는 좋은 게 좋다는 식의 사람을 원했다. 이전 관리자와 비교하며 그 사람은 그러지 않았다고 나를 깎아내리려 하여 결국에는 나도 위험성평가와 환경보전비 작성자에 안전관리자 이름을 넣는 자기 업무도 모르는 등신같은 안전관리자와 그걸 자각하지 못하고 서명하는 총괄책임자의 밑에서 일하고 싶지 않다고 대꾸하고 퇴사하게 되었다.

하지만 퇴사하는 그 순간까지도, 어리석은 관리자들은 언젠가 지금의 생각을 뜯어고칠 일이 생겼으면 좋겠지만 이 현장이 준공 때까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컸고 지금도 그렇다.




50. 직급이 올라갈수록 월급을 많이 받는 이유는 책임질 일이 많아지기 때문이고, 회사에 기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나는 스물두 살 12월에 첫 직장을 가졌다. 그때보다 지금의 급여는 무려 5배 가까이 올랐으나 결국 그만큼의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오래전 나는 돈을 많이 벌고 싶지 않다고 했었다. 나의 아빠는 개인사업자로 직장 생활을 하지는 않았지만 돈을 많이 벌어 올수록 몸이 고단한 일이 많아졌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내가 맡은 업무에 진정성과 책임감을 부여하고 싶어 발을 동동 구르며 업무에 대해 늘 고민한다.




나는 내가 지금 이렇게 부딪히고 깨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마흔 즈음이 되면 사회생활을 좀 더 노련하고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왔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이런 제목의 책에 눈길을 주고 책장을 열어 읽게 되는 걸 발견하고 세상 사는 게 참 녹록지가 않네. 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책을 읽으면서 내가 놓쳤던 부분들과 반성할 부분, 앞으로의 업무를 하려면(결국 사회생활을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해 조금 더 건설적인 방향으로 계획을 수정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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