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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2
최명희 지음 / 매안 / 2009년 7월
평점 :
세상은 비가 많이 내려 물난리가 나기도 하고, 반대로 비가 오지 않아 땅이 말라버리기도 한다. 먹고 살기 어려운 때 가뭄까지 들면 더 힘들겠다. 먹을 게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은 어떻게든 살겠지만, 먹을 게 없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혼불》 2권에는 가뭄이 든 모습이 나온다. 청암부인이 농사를 지으려고 판 저수지도 말라버렸다. 조개바위가 있는 신령한 곳으로 물이 마르지 않을 것 같았는데 조개바위가 드러나고 저수지 바닥도 드러났다. 사람들은 깨끗한 물도 마시지 못했다. 흙이 섞여도 그 물이라도 길어다 두었다.
여기에도 소작농이 있다. 거멍굴에 사는 사람인 듯한데, 그건 처음에 제대로 못 썼구나. 양반, 이씨 집안 사람이 모여 사는 곳과 소작농이 사는 거멍굴이 있는 거겠지. 거기 사는 사람은 가뭄에 굶주렸다.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내자 물고기가 보였다. 가물치, 붕어. 누군가는 그거라도 가지고 와서 먹으려 하고 누군가는 그건 청암부인 거니 마음대로 잡아 먹으면 안 된다 여겼다. 가뭄이 길어지자 이른 아침에 사람들은 저수지로 간다. 처음엔 눈치를 봤지만 곧 그러지 않았다. 그건 어쩔 수 없는 건지도. 사람들이 양반 몰래 저수지 물고기를 잡아가기 전에 양반이 먼저 사람들한테 물고기를 잡아 가도 된다고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청암부인 몸이 괜찮았다면 소작농을 생각했을 텐데. 청암부인은 창씨개명을 하고 마음이 약해지고 쓰러졌다. 집안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가진 듯했다. 저수지 물이 마르는 걸 보고 청암부인한테 큰일이 일어나면 어쩌나 하는 사람도 있었다. 양반이다 해도 이때는 벼슬을 하지 못하기도 하는구나. 그런 사람은 무엇으로 돈을 벌었으려나. 땅인가. 청암부인이 쓰러지고 양아들인 기채가 집안 재산을 관리하게 되는데, 모자라다 여기는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고는 며느리 효원 집안에서 땅을 주지 않다니 했다. 시집 올 때는 재산을 가지고 와야 하나. 부자라면 보내줄지 몰라도.
효원은 친정에 한번도 가지 못했다. 그때는 시집 오고 세 해 안에 친정에 가야 좋았나 보다. 아버지가 찾아와도 효원은 제대로 만나지 못했다. 효원이 동생이 아파서 수술을 했던가 보다. 효원이 친정에 가고 싶지 않아서 못 간 건 아니다. 강모는 그런 일에 관심도 없었다. 강모는 효원과 처가에 가야 한다는 생각도 안 했겠다. 시부모도 효원을 별로 안 좋아하다니. 효원이 일하는 사람한테 내갈 밥을 많이 했더니 시어머니가 안 좋아했다. 효원은 자기 집 일을 하는 사람은 남이 아니다 여겼다. 잘해주면 거기에 맞게 일한다고. 이건 맞는 말 아닌가. 일하는 사람한테 아끼면 안 될 텐데. 1권에서 일하는 사람이 새참 적다고 했는데.
이번 2권에서 강모는 일을 저지른다. 이씨 집안 사람인 강수는 친척을 좋아하고 상사병으로 죽었던가 보다. 여러 해가 지나고 강수 영혼 결혼식을 치렀다. 그날 강모는 강실이를 범하고 바로 왜 그랬지 한다. 멀리서 좋아하던 게 나았다는 걸 깨달았다. 강모는 강실이를 내버려두고 효원이한테 뭔지 모를 자기 마음을 푼다. 효원은 강모가 자신을 겁간했다 느꼈다. 그 일로 아이가 생기고 효원은 아들을 낳는다. 집안 어른 청암부인은 그걸 기뻐했지만, 효원은 어떨까. 자식이니 예쁘기는 할까. 강모는 학교를 마치고 작은아버지 도움으로 부청에서 일하게 된다. 거기에서 공금을 횡령한다. 강모는 자신이 한 일을 공금횡령이다 여기지 않았구나. 돈 쓸 일이 있어서 가까이에 있는 돈을 쓴 것뿐이다. 강모는 언젠가는 갚을 거다 생각했다. 그 돈은 기생 오유키를 기생에서 빼내는 데 썼다. 기가 막히는구나.
어두운 밤에 일어난 일을 누가 볼까 했는데, 강실이와 강모를 본 사람이 있었다. 두 사람 소문은 시간이 흐른 다음에 거멍굴에 퍼졌다. 옹구네는 죽 입을 다물지 못하고 다른 사람한테 말했다. 그러고 싶을까. 아직 강실이 부모는 모르지만 곧 알지 않을까. 강실이 안됐구나. 지금이라면 강간 당했다고 말할 수 있으려나. 아니 지금도 어려울 것 같다. 사촌 오빠한테 그런 일을 당했다고 하면 쉬쉬하겠지. 《혼불》 이야기는 어디로 흘러갈까.
희선
☆―
“어머님. 놉이 누군가요? 놉은 남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 집 농사를 지어 주는 우리 손이요, 우리 발이 아닌가요? 놉을 남이다 생각하면 놉도 우리를 남이다 생각합니다. 남 일에 제 몸을 부릴 때 누가 성심을 다 허겠어요. 눈치보고 꾀부리고 한눈파는 게 당연하지요. 우리가 놉한테 주는 밥그릇을 애끼면, 놉도 우리한테 주는 힘을 애끼는 것은 불을 보듯 훤한 일이 아닌가요? 아무리 종이라도 신분이 낮아 천한 대접을 받을 뿐, 사지에 오장육부는 똑같이 타고 났고, 그 속에 마음이 있는 것은 양반이나 무에 다르겠습니까? 마음에서 우러나야 몸이 움직여지는 법인데, 배를 곯리고 마음을 상하게 한 뒤에 무슨 정성을 바랄 수 있을까요? 많이 먹고 즐거워서 힘이 나면 결국은 내 집 일을 그만큼 흥겹게 할 터이니, 한 그릇 밥을 더 주고 한 섬지기 쌀을 얻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낄 것이 따로 있지 밥심으로 일하는 일꾼들한테다 몇 숟가락 밥을 아낀다고, 그것이 쌓여 노적가리가 되어 주겠습니까…….” (76쪽)
놉 : 그날그날 품삯과 음식을 받고 일을 하는 품팔이꾼.
노적가리 : 한데에 수북이 쌓아 둔 곡식 더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