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장애재활클리닉
한차현 지음 / 박하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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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일이나 나쁜 일이나 그것이 타인의 것일 때에는 작게 보이지만 내것일 때에는 무척 크게 느껴지는 것이 모든 사람들의 생각일 것이다. 가족을 혹은 가까운 이들을 먼저 떠나 보내는 아픔을 겪은 이들은 타인의 고통을 나누어 가지는 일에 어찌보면 좀더 능숙해질 수 있다고 본다.한번 겪어 보았기 때문에 좀더 고통 대처에 처음인 사람보다는 의연함이 있다.하지만 큰 일을 처음 겪는 이들은 슬픔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헤매이는 이들도 있는게 그 슬픔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슬픔으로 자신의 생을 가두는 이들도 종종 보게 된다. 실례로 친정아버지를 보내 드리며 나 또한 심한 고통에 시달렸고 바로 몇 달 후에 애견이 갑자기 죽는 일이 발생해서 그 해를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게 몸과 마음이 몹시 고통에 시다렸다.마음이 괴로우니 몸에서 여기저기 빨간불이 들어와 타인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는데 친정엄마가 몹시 힘든 시간을 보내셨는지 갑자기 혈압이 생겨 약을 드시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약을 드시고 계시다. 엄마는 아버지를 보내드린 큰 아픔에서 몸과 맘이 많이 상하셨다.이제 어느 정도 단련이 되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그 후유증은 몸이 기억하고 있는 듯 하다.

 

슬픈 일을 한번 겪고 다시 겪게 되면 단단해져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슬픔 안에 자신을 가두게 되는 경우가 있다. 내것이 아닐 경우에는 잊어버리라고 쉽게 말할 수 있지만 쉽게 잊혀지지 않는 슬픔이 있다. 평생 가슴에 남아 자신을 짓누르는 슬픔에 아파하고 치유가 되지 않아 슬픔장애에 빠졌다면 누군가는 치유를 해줘야 할텐데 그런 일을 하는 일들이 여기 있다. [애도와 위안의 사람들] 일명 '애위사' 에 차연은 슬픈 일을 겪은 이들을 찾아가 그들의 슬픔을 달래주는 일을 한다. 자식을 먼저 보냈거나 혹은 부모님을 보내드렸거나 죽음이라는 이유에도 가지가지가 있다. 누군가는 먼저 떠나보낸 이들은 한동안 슬픔에 빠져 자신의 일상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걷도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이들이 '애위사'에 일을 맡긴다. 영혼을 불러내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편안하게 보내주는 형식적이지만 그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슬픔을 다독여 준다. 그렇게 삶과 죽음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듯 장례식장을 밥먹듯 드나들면서 보내는 차연,그의 눈에 어느 젊은 죽음 앞에서 의연하게 혼자 지키고 있다가 꾸역꾸역 밥을 잘 챙겨 먹는 젊은 여자를 발견,그녀는 손예진을 닮았다는 이유로 쫒아가게 되고 그녀와 밥을 먹고 그녀의 원룸에까지 찾아가게 된다. 그녀의 정체는 무엇일까.

 

차연이 '애위사'라면 손예진을 닮은 여인은 자살을 하는 이들의 마지막을 지켜 주고 마지막 가는 길까지 끝까지 지켜주는 모임의 한 여자라고 해야하나.암튼 그렇게 하여 둘은 묘하게 얽혀가게 된다. 그가 내민 명함의 '애위사'를 알아 보게 해주었던 인물이 있다고 말한 그녀,그렇다면 애위사를 말해준 여자는 누구일까? 원형이 그녀를 만나게 해주겠다고 하여 찾아갔던 곳에서 뜻하지 않은 일을 겪게 되고 그녀의 '성이연'을 찾아 헤매이다 자신의 고객이기도 하면서 그녀와 함께 잠을 잤다는 것을 생각해 내면서 그녀를 '자살'이 아니라 동생과 남은 삶을 살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왜 그녀가 자살을 택하게 된 것일까? 거기에 혹시 자신의 술버릇 때문에 함께 잔 과거가 한몫을 하는 것은 아닌지. 차연은 애위사 일을 하면서 '슬픔에 빠진 사람을 위로하는 일이,그럼 쉬울 줄 알았어요? 이번 기회에 알아둬요. 슬픔은 삭히는게 아니라 떠나보내는 거라고." 라고 말하며 슬픔을 떠나보내지 못하여 고통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삶의 희망을 찾아 주기 위하여 부던히 애를 쓰다가 만난 자신의 과거속 인물인 성이연을 꼭 삶의 희망의 그늘로 끌어 들이려 노력을 한다.

 

슬픔 한가지 간직하지 않은 이들이 어디 있을까? 길을 막고 물어보면 모두가 슬픈 일 한가지 안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렇다고 모두가 슬픈 것은 아니다 삶의 희망을 찾아 죽음이 아니라 삶이라는 바다에서 유영하기 위하여 열심히 담금질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그렇지 못한 이들이 가끔 있다. 성이연처럼 아직 어린 동생이 있지만 엄마가 폐암으로 돌아 가시고 자신에게 안겨진 슬픔을 이기 못해 자살을 꿈꾸는,아니 실행에 몇번 옮겼지만 아직 기회가 오지 않은 이들. 그들이 삶을 마감하게 도울 수는 없다.어떻게 해서든 살게 해야한다.죽음이 불러 온 빈 공간을 다른 무엇으로도 채우지 못하고 슬픔에 허덕이는 슬픔장애증후군이 있는 이들에게 희망을 안겨 주었던 애위사 차연과 자살하는 이들의 마지막까지 지켜보는 일을 하는 네일아트 원형이 러브라인이 그려지는 듯도 하고 미스터리식으로 풀려 가는 것도 갔았지만 결론은 아니라는 것.가끔 어느 프로에서 보면 가족이 슬픔을 이겨내지 못하고 서로에게 골을 만들어 가족을 단절시키는 경우도 종종 보았다.그런 가족에게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연습을 시키듯 서로의 입장에 되어서 과거와 현재의 상황극을 통해서 서로를 이해하고 단절의 벽을 허무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한 아주 자그마한 슬픔이나 그외 일들이 얼마나 큰 단절을 혹은 죽음에 이르게 하는지 그 아픔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연습이나 재활클리닉이 현대인들에게 필요한지도 모른다.요즘 흔하게 힐링이나 치유라는 말을 듣게 되는데 많은 이들이 공감을 하는 단어일 듯 하다.그만큼 현대는 알게 모르게 마음의 병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시대인데 큰 슬픔을 간직하고 있으면 마음이 병은 더 클 듯 하다.

 

물도 고이면 썩게 마련이다.슬픔도 마음에 고이면 병이 된다. 슬픔을 삭히지도 못하고 떠나보내지도 못하고 마음안에 가두어 병을 만든 이들이 마지막 탈출구처럼 '자살'을 선택하게 놔두어서는 안된다.그러지 않아도 우리는 자살율이 제일 높은 나라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데 흥을 많이 간직하고 살아왔던 우리가 왜 이렇게 변해 버린 것일까? 너무 '빨리빨리' '대충대충'을 외치면서 냄비처럼 빨리 끓었던 것은 아닐까.로또 하나에 인생역전을 꿈꾸며 인생한방을 꿈꾸는 이들이 과연 로또로 인생역전을 만들었을까? 쉽게 얻은 정상은 쉽게 내려오기 마련이고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잃게 마련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그저 남이 내린 결론에 편승하여 '빨리빨리'를 외치던 우리들은 너무 빨리 달려가려고만 했기 때문에 자신을 돌아보며 슬픔을 떠나보낼 시간적 여유를 갖기 보다는 그냥 지나쳤던 것은 아닐까? 현재가 고통스럽다고 슬프다고 죽음이 답일 수는 없다. 한번 현실에 부딪혀 보지도 않고 자신의 삶에 종지부를 찍는 다는 것은 너무 허무한 일이다.성이연이 자신이 내린 결론에서 벗어나 차연의 목소리를 들은 것은 한번 다시 살아보겠다는 의지로 보인다.자신의 죽음에 반기를 든 애위사 차연이 그리고 차연에게 성이연이 자신들이 처한 현실에 희망이길 바래본다.사랑은 사랑으로 치유하고 사람은 사람으로 그 아픔을 달래는 것이다.모두에게 슬픔장애에서 벗어날 수 있는 치유의 시간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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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옆지기와 간만에 뒷산 산행

 

 

오월을 바쁘게 보내다보니 산행을 잘다가 열정이 식어버렸다. 산에 가고 싶은 생각은 굴뚝 같은데

쳐다만 보고 있는데 옆지기가 갑자기 뒷산 가자고 한다. 난 가고 싶은데 옆지기도 바쁘고 해야할

일이 있어 미루었더니 미안했는지 함께 잠깐 갔다오자고 한다.물한병 챙겨들고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오디라도 있으면 딸까 생각에 빈봉지 하나 챙겨 들었는데 늘 마음 뿐이라는 것.

 

 

산에 가고 싶어도 '살인진드기' 하니까 괜히 무서운 생각,그래서 옆지기가 뽀미도 데리고 가자고

하는데 진드기 때문에 뽀미는 아직 안된다고,뽀미 털 색이 까만색이라 진드기가 붙어도 잘 표시

가 나지 않기 때문에 산에는 데리고 가지 않고 그냥 산책만 시키기로 하고 우리만 가게 되었는데

산입구에 '진드기예방' 을 할 수 있는 약품을 뿌릴 수 있는 시설이 놓여 있어 우리도 신발과 팔에

조금 뿌렸다. 멀리서 볼 때는 먼지제거를 할 수 있는 것을 부착해 놓았다고 우리 뒷산도 많이 좋아

졌다고 생각을 했는데 먼지제거기가 아니라 진드기예방약품발사기 였던 것이다.

 

약품을 분사하고 계단을 올라가니 개망초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산을 조금 일구어 밭을 가꾸시

는 분들이 있어 이것저것 농작물이 심어져 있기도 한데 가물어서인지 벌레가 많이 먹었다.그래도

재미로 취미로 어르신들이 하시는 것이라 가끔 보는 재미도 있다. 그냥 두었다면 풀로 무성할 곳

인데 밭을 일구어 놓았으니 계절을 알 수도 있다.오르다보니 산딸기가 제법 빨갛게 많이 익어 있

어 가시에 찔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산딸기를 따 먹었다. 그리고 숲으로 들어가니 시원하니

참 좋다.그런데 이 시원함을 왜 멀리했는지.

 

 

개암 열매

 

고삼

 

간만에 산에 오니 정말 좋다.초록빛 나뭇잎이 주는 편안함도 좋고 새소리 바람소리도 좋고 주말

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아서 좋다.거기에 옆지기와 함께 나오니 좋다. 익은 산딸기를 따먹으며

오르는 재미도 있고 이것저것 꽃들도 찾아보고 나무도 찾아보고 천천히 자연과 함께 하니 좋다.

 

으아리

 

 

 

 

오늘은 한번도 가지 않았던 길로 한번 가보았다. 어떤 길이 나올지 몰라서 가다가 길 끝에 다달으면

그냥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 오기로 하고 가보았더니 오호~~ 이 길이 이 산의 둘레길처럼 한참을

도는 것이다.그야말로 둘레길이다. 정상에서 내려가는 길이 있는데 그 길을 가지 않고 우린 다른 산으

로 연결되는 길로 내려왔는데 이 길이 둘레를 돌아 정상으로 다시 오는 거였다.새로운 길을 알아 내

기도 했지만 그 길이 참 좋다는.. 숲을 통과하는 길이라 시원하고 한적하고 뒷산을 좀더 더 많이 걸

을 수 있어 다음엔 자주 이용해봐야할 듯 하다.그러지 않아도 산에 가면 여기저기 헤매고 돌아 다니

기 좋아하는데 이런 길을 알고 나면 더 시간을 지체할 듯 하다.

 

 

 

 

까치수영

 

둘레길을 한바퀴 돌고 정상으로 올라가러 하는데 어느 방치된 묘 앞에 패랭이와 엉겅퀴가 이쁘게

피어 있다. 오라는 이들은 오지 않고 이쁜 꽃이 피어 영혼을 지키고 있는 것처럼.. 엉겅퀴는 가만히

들여다보면 정말 이쁘다. 오묘함에 이끌려 이맘때는 꼭 엉겅퀴를 몇 번은 찍는 듯 한데 맘에 드는

것은 없는 듯...그래도 산에서 이런 꽃들을 만난다는 것은 활력소다.뒷산에도 꽃이 핀다는 사실.

 

 

뚯하지 않게 둘레길도 걷고 그러다보니 덥기도 하고 몸이 몸살기운이 남아 있어서인지 두통도

약간 있어서 챙겨 온 물한병을 다 마셨다.그리곤 다시 작은 산으로 이어지는 길을 걸어 작은 산도

걷고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하산 하였다.하산 후에 산 주변에 왕고들빼기가 많아서리 진딧물이

없는 것으로 왕고들빼기를 한줌 뜯어 와 저녁에 삶아서 왕고들빼기무침을 해서 맛있게 먹었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소박하게 뒷산 산행을 하면 참 많은 것을 얻는다.더불어 건강도 좋아지는

느낌이 들고 계절의 변화도 알게 되고 자주 가야하는데 이게 또 아침이면 게으름모드로 간다는 것.

그래도 자주 뒷산을 찾아야 할 듯 하다.

 

2014.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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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카페] 아기자기하면서 이쁜 백석동 카페,꿈엔들

 

 

두정동 [석정]에서 딸과 조카와 함게 갈비에 냉면을 맛있게 먹고 녀석들과 이쁜 카페에서 차 한잔

사준다고 하니 좋아한다. 그래서 네비에 주소를 치고 [백석동 꿈엔들]을 찾아 갔다.이곳은 주변에

아파트로 둘러 쌓여 있어 주변은 많이 왕래를 했는데 그 속은 잘 가지 않았었는데 먼저 옆지기와

[지산흑돈]이란 곳에 가서 한번 고기를 먹었는데 바로 그곳에서 조금만 더 가면 [꿈엔들]이 있다.

바로 옆에 [얼큰손칼숙수] 집도 있고 개발되지 않은 시골같은 느낌이 나는 곳이 있다니.. 이곳은

주인장의 살뜰한 솜씨가 느껴지는 아기자기하면서도 모두가 손으로 일구어낸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서 더 좋은 곳이다.

 

 

 

 

 

 

카페가 아기자기해서 바깥 구경을 하느라 카페 안에 들어가는데 시간을 지체하였다. 시골같은

분위기이면서도 카페 바깥 풍경도 정말 아늑함과 함께 차 한잔 하고 싶은 맘을 불러 일으킬만큼

기분 좋게 하는 것들이 많다.

 

 

 

 

 

 

 

 

 

창으로 보여지는 풍경도 이쁘고 호야꽃이 이쁘게 피었길래 쥔장에게 '호야꽃이 이쁘게 피었네요'

했더니 더 많이 이쁘게 폈는데 지고 있단다. 소품들 하나하나에 쥔장의 솜씨가 정성이 가득하여

하나 하나 둘러보게 되는 이쁜 카페이기도 하고 이런 카페 갖고 싶은 로망을 갖고 있기에 더 둘러

보게 된다.

 

 

 

이곳은 음료만 하는 것이 아니라 [들깨수제비]도 있다.다음엔 들깨수제비를 먹으러 와봐야할 듯

하다. 이번에는 딸과 조카는 음료를 우린 수제요플레를 시켰는데 맛있다.우리것을 다 먹고 딸과

조카의 것을 마셔 보았는데 맛있다.쥔장이 손수 수를 놓은 것들과 조화를 이루어 괜히 기분이

좋아지고 대접 받는 느낌이라고 할까..정성이 가득 담긴 느낌이 난다.

 

카페안의 분위기도 넘 좋아 딸과 조카와 함께 인물 사진을 많이 찍었다. 딸은 엄마가 가자고 하니

반신반의하며 왔는데 넘 이쁘고 좋다며 또 오고 싶단다.조카는 다음엔 친구들과 와봐야겠다며

이모가 좋은 곳을 알려 좋았다고 고맙단다.거기에 이렇게 맛난 것도 사주었으니 좋을시고...

 

 

 

 

 

카페에서 오래도록 머물고 싶은데 모두 가야할 길이 있기에 간만에 맛깔난 수다와 기분 좋은 시간

을 뒤로하며 카페를 벗어났다. 아쉬움이 남아야 다음에 또 오는 것이다.다음엔 우리 식구 모두 함께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딸들과 함께 하면 더 좋을 것 같다.물론 옆지기와 둘이 와도 좋겠지만 말

이다. 가까운 곳에 이런 카페가 있다는 것을 몰랐는데 좋은 곳을 알게 된 듯 하다.멀리가지 않아도

되니 가끔 한번 들러서 기분전환해도 좋을 듯.모두가 만족한 시간이라 좋고 다음을 기약할 수 있어

좋은 시간,좋은 장소였다.

 

2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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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주 나남창작선 118
이병주 지음 / 나남출판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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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드라마 <정도전>이 방영되고 있어서일까 나도 정도전에 관한 책을 한 권 읽어 보았고 저자의 책은 아니지만 다른 저자의 <정도전>을 다시 읽어보려고 준비해 놓고 있었는데 정도전하면 그와 비교가 되는 인물로 '정몽주'를 떠올릴 수 있는데 교과서에서 배운 얄팍한 지식밖에 없어서 다른 이도 아니고 저자의 책으로 읽게 되었다. 그런데 어찌하다보니 지방선거와 맞물리고 감기몸살로 인해 읽고 리뷰를 작성하지 않은 것이 자꾸 늦어지게 되었다. 선거에도 별 관심이 없다가 잠깐 일하게 되어 조금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보수 혹은 진보를 따지지 않고 인물을 보고 평가를 해야 하는데 언제부터인지 우린 편가르기를 하면서 인물보다는 다른 것에 더 치중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보게 되었다.

 

포은 정몽주의 56년 삶은 그야말로 성,충,정,지,근勤이 함께 어우러진 삶이었다고 보고 있다. 소설은 '화려한 등장이었다'로 하여 그가 과거에 급제하는 이야기부터 시작을 한다. 시골에서 올라온 가난뱅이 선비가 명문의 자제들을 제치고 과거에 급제를 하였으니 얼마나 많은 관심을 받았을까.19세에 부친상을 당해 조금 늦은 감이 있는 24세에 과거에 급제를 하여 많은 이들로부터 관심을 받았지만 나라는 왜구와 홍건적의 침노가 심하여 조정이 혼란할 시기였기에 그는 나라 안에서 뿐만이 아니라 명나라에까지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폭풍우를 만났지만 그의 기지로 인해 다행히 홀로 남아 필문과 필답으로 고려국의 사신이라는 것이 알려지게 되고 초련이라는 여인을 만나기도 하지만 아버지와 딸로서 서로 위로하며 서로 도와가며 살아가기로 하면서 그녀와 나눈 시에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내기도 한다.

 

"가지가 마르고 잎이 썩는다고 해서 걱정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소.이미 뿌리가 썩어 들어가고 있는데 말이오."

 

그의 이야기는 그가 남긴 몇 편의 한 시와 더불어 더욱 실감 있게 그려지지만 작가의 말처럼 '그의 생애를 재구성하기엔 사료가 너무나 부족하다. 범거할만한 <고려사>는 그이 정적의 후예라고 할 수 있는 조선의 중신들이 편찬한 것이어서 어느 정도 그 진실을 믿어야 할지 모르게 되어 있다. 그를 숭앙하는 사람들이 그에게 바친 찬사는 능히 한우충동할 정도이지만,옛글이 대개 그러하듯이 지나치게 관념적이고 추상적이어서 구체성이 결어되어 있다.' 역사는 승자들에 의해 쓰여지기 때문에 패자라 볼 수 있는 정몽주에 대한 기록이 부족한 듯 한가 보다.그렇기도 하지만 기록에서 정몽주 자신,인간에 대한 기록보다는 사건 기록이 우선이었으니 인간 정몽주를 모두 그려냈다고 하는 것은 진실성이 결여되었다고 불수도 있을텐데 그의 시나 글이 함께 하여 대체로 교과서적인 지식보다는 나았던 것 같다.

 

"그건 서산의 해를 붙들어 동쪽으로 돌리는 것보다도 지난한 일입니다.백성들은 왕에 관한 말만 들어도 치를 떠는 형편입니다."

 

소설에서는 그가 과거급제부터 선죽교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그 순간까지 기록하고 있다.'정몽주의 죽음은 바로 고려의 종언終焉을 뜻한다.그의 비참한 최후가 있은 지 3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공양왕이 추방되고 고려는 475년 동안 지탱한 왕조의 막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그의 죽음은 고려의 멸망과 같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그는 고려의 충신이라 할 수 있었다고 본다면 신흥세력인 이성계를 탓하기 보다는 그는 어떻게 보면 자신의 지조를 지키듯 고려의 충신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뿌리를 고려에 두지 않았나싶다.고려가 기울어 가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고려를 지키려 했고 자신이 선택한 충에 결코 흔들림없이 없던 그를 정도전이나 이성계 편에서 곱게 볼리는 없었겠지만 그렇게 처참하게 죽여야 했을까싶다.

 

"주인이 없어도 꽃은 피겠지만 주인 없이 핀 꽃은 뜻을 잃는다."

 

저자는 역사의 기록에 더하고 빼기 보다는 그만큼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아니 정몽주란 인물을 더 그려내고 싶었겠지만 그렇게 한다면 그란 인물에 진실성이 결여된다고 볼 수도 있어서 기록된 정몽주만큼 그의 글과 함께 그려냄이 더 다가온 듯 하다.저자의 책은 <지리산>을 읽고 반해 다른 책들도 소장을 하게 되었고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가 풀어내는 역사이야기는 우리가 놓쳐서는 안되는 부분들인 듯 하여 소설로라도 관심을 가져보는 차원에서 접했지만 이런 책임감 있는 작가들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한편으로는 생각을 한다.승자의 입장에서 보는 관점과 패자 입장에서 보는 정몽주에 대한 시선은 다를 것이라 생각을 하지만 우리가 그를 봐야하는 것은 승자도 패자도 아닌 무능력한 왕권 속에서도 자신의 충과 의를 다했으며 자신의 이익보다는 마지막 순간까지 절개를 지켰다는 것.이 책은 다시 읽어봐야할 듯 하다.너무 시간을 끌며 읽기도 했지만 읽고 바로 저장해두지 않은 것이 흠이 되었다.다음엔 이 책과 함께 저자가 쓴 <정도전>까지 다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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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알레산드로 바리코 지음, 이세욱 옮김 / 비채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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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이란 뒤돌아보면 '시작'이라는 말이 될 수 있다.땅끝마을에 가족나들이를 가서 여기가 끝인가 했는데 뒤돌아보니 다시 시작을 해야할것만 같은 아니 우린 다시 시작을 하고 있었다.두 딸이 혹독한 사춘기를 치루던 대입을 눈 앞에 둔 시점에서 부모의 욕심을 내세운 공부의 길을 강요할 것인지 딸들이 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선택하게 해야할 것인지 옆지기와 의견차이가 있었다.딸들보다는 더 많은 시간을 살아 왔기 때문에 미래가 안정적이라 할 수 있는 직업을 택할 수 있는 길로 가길 원하는 것이 부모의 생각이었지만 그들의 생각은 달랐다.자신안에 있는 '꿈'을 향한 선택을 하고 싶다고 했다.갈등이 무엇이 필요할까? 본인들이 이미 선택을 했다고 하는데.어쩌면 자신이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를 모르는 것보다 어쩌면 나은 일이라고 생각하며 꿈을 향해서 갈 수 있는 길로 가라고 했다. 남들 시선을 의식하지 말고 자신의 미래를 보라고 했는데 처음엔 자존심의 문제도 있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저희들이 선택을 잘했다고 한다.한참 친구들이 방황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부모가 등 떠민 곳으로 가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한다.그만큼 성장을 했다는 증거일테고 그만큼의 나름 꿈을 찾아가는 길을 찾았다고 본다.늘 내게도 그렇지만 딸들에게도 '가슴 뛰는 일'을 향해 가라고 한다. 나도 그렇게 살고 있는가 늘 의문이지만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 같다.

 

"제가 생각하는 것은 길이에요. 저는 길을 좋아해요."

 

<이런 이야기>의 알레산드로 바리코는 이탈리아 작가이다. 낯설기도 하지만 이탈리아문학작품을 많이 접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엔 선입견이 있었는데 읽다보니 빠져든다. '길', 꿈이라 할 수 있는 저마다 가슴에 간직한 '길'을 향해 나아가는 인생이야기라 할 수 있고 아버지 로베로와 아들 울티모가 자동차와 자동차경주를 할 수 있는 서킷에 대한 꿈을 향하여 나아가는 인생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다.소설을 읽다보니 흑백영화로 보았던 안소니 홉퀸스 주연의 영화 <길>이 생각나기도 했다. 잠파노와 젤소미나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불협화음에서 잠파노의 잘못인해 젤소미나가 잠파노를 떠나게 되기도 하고 죽음에 이른 후에 그녀가 존재가 얼마나 컸는지를 느끼는 영화였었나.젤소미나가 작은 북을 두드리며 걷던 그 길이 소설 속에서 울티모가 상상하는 그 길로 이어지는 느낌은 무엇인지.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 인생이라고 했다. 아무리 자신 안에 많은 길이 존재한다고 해도 그것을 제대로 현실에 끄집어 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리베로는 자신의 형의 힘든 현실을 보고는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바꾸기 위하여 과감하게 결정을 내린다.목장의 소를 팔아 버리고 멀리서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달려오는 자동차를 자신 인생안에 들여 놓은 것이다. 그것을 자신 뿐만이 아니라 아들인 울티모와 늘 함께 하지만 울티모는 아빠처럼 자동차에 미치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가 달리고 있는 '길'에서 자신의 인생을 본다.

 

'그 길들 가운데 하나가 내 아버지를 좌절시킨 날, 나에게서 길들이 사라져버렸어요. 그날 이후로 나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어요. 보이는 것이라곤 그저 모호한 형상들뿐이었죠. 삶 자체가 뒤죽박죽이 되어버려서 나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한낱 불투명한 안개가 아닌 어떤 것을 찾아내기 위해서 전쟁에 참가했습니다. 그런데 나는 거기 카포레토에서 일체의 확신이 멎어버린 공회전 상태,모든 길들의 완전환 소멸을 경험했어요.

 

그들이 사는 곳은 시골이라 할 수 있는 곳이라 자동차를 구경하기 힘든 곳이지만 그래도 리베로는 목장이 있던 곳에 정비소를 차린다.그런 그들에게 백작이 찾아오고 백작은 울티모와 그의 가족을 보고 새로운 희망을 보듯 한다. 백작은 울티모가족에게도 희망과 같은 존재로 거듭나기도 하여 백작과 리베로는 함께 자동차경주에 나가게 된다. 그들이 함께 자동차경주를 나갔던 날은 울티모 엄마가 임신한것을 알게 되었던 날이지만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겠다고 하고 그들은 자동차경주에 나서게 된다.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백작이 사고로 죽게 되고 리베로는 살아 남았지만 불구가 된다. 아버지가 소를 팔고 정비소를 차릴 때에도 자동차경주에 나갈 때에도 무언가 희망이 보일 듯 했지만 그들의 희망은 너무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되고 울티모는 카포레토 전투에 나가게 되고 전쟁에서 친구의 배신이며 자신의 꿈과는 점점 멀어져가는 현실을 보게 되고 미국으로 간 그는 엘리자베타와 피아노와 관계된 일을 하며 다닌다. 자동차정비가 아닌 피아노를 조율하고 팔고 꿈과는 먼 일을 하게 되기도 하지만 엘리자베타에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다가 받아 들여지지 않아 떠나게 된다.

 

'내가 늘 신기하게 생각하는 것이 하나 있다.부모들에게 자녀들의 꿈을 보는 눈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자녀들의 꿈을 보지 못한다. 나쁜 부모라서가 아니라 그냥 보지 못하는 것이다.

 

엘리자베타,그녀는 어린시절에 짝으로 정해지듯 한 인물과 결혼을 하여 부유하게 살지만 남편이 죽고 난 후에 울티모를 찾아 나서게 된다.아니 울티모와 함께 하는 동안 그가 말해주었던 '서킷'에 대한 것을 잊을수가 없다. 그는 분명 자신이 꿈꾸고 설계한 서킷을 꼭 어딘가에 이루었을 것이라 생각을 한다.왜 그렇게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아버지와 백작 그리고 자동차경주에 대한 이야기들이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기도 했지만 울티모는 늘 '길'에 대한 생각과 그림을 늘상 그리고 있었던것을 알기 때문에 그가 자신의 꿈을 어딘가에서 이루었을 것이라 생각을 한다. 그것이 고향 근처일까 하고 찾아가 보지만 부모님도 그곳을 떠나 살고 있고 자신들과의 꿈에서 멀어져 있지만 리베로는 자동차와 관련한 일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울티모는 그녀와 헤어진 후에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이런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어릴적 자신의 꿈과 그림을 그리고 난 후 어른이 되서 보면 그 그림의 자신과 비슷하게 닮아 있거나 근접해 있다고 한다. 과정은 어떨지 모르지만 세월이 흐른 후에는 자신이 어릴적 그렸던 그 꿈에 비슷하게 다가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울티모는 항상 자신만의 '길'을 그리고 있었는데 지금도 그 '길' 위에서 있을까?

 

"가다가 죽는 한이 있어도 가볼 만한 길,그녀는 그런 길들 가운데 하나였어요."

 

울티모에게는 그가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지만 백작이 남겨준 어마어마한 유산이 있다. 그 유산을 가지고 자신의 꿈을 이루었다면 더 빨리 쉽게 꿈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하지만 울티모는 그 유산을 건드렸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지만 백작의 아들을 자신의 아우로 받아 들이기도 했지만 자신만의 서킷을 그에게도 나누어주듯 한다. 그가 서킷을 만들기 위한 과정은 백작의 죽음도 있었고 아버지의 자동차사고 엘리자베타와의 만남과 이별도 있었으며 전쟁도 있었다. 쉽게 자신의 길을 그린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동안에 그는 자신의 길을 분명 수정해 나갔을 것이다. 어린시절부터 남다르게 보았던 길에 대한 애착이 서킷이라는 꿈으로 자리하면서 죽음에 이를수도 있는 전쟁이나 힘든 상황에서도 자신의 길에 대한 집념을 놓지 않았던 그는 자신의 서킷을 만들어내고는 길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엘리자베타는 그가 만들어 놓았을 것이라 생각하는 '길'을 찾기 위하여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마침내 찾아내지만 흔적이 많이 지워져 있다.하지만 완벽하게 복원을 해 자신이 한번 그 길을 달려본다. 그리곤 그것은 울티모의 길이기 때문에 다시 그 서킷을 부셔버리듯 하다. 타인의 꿈이 자신의 꿈이 될 수 없기도 하지만 그녀가 원한 것은 서킷이 아니라 울티모였다는 것을 세월이 흐른 후에야 알게 된다.

 

"그건 한낱 서킷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이에요."

......

"당신은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날들 가운데 하나를 선물하는 거에요."

 

얼마 살지 않은 삶이지만 지금도 이 길이 내가 꿈꾸던 길인지 잘알지 못한다.그런가하면 어떤 꿈을 꾸고 있었는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빛이 바래고 있다는 것을 안다. 자식은 부모의 삶을 보면서 닮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닮아가고 있다는 것을 세월이 흐르고 난 후에 알게 된다.리베로와 울티모의 인생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이 되어 있고 어느 순간 그들의 삶은 만나는 듯 하다가 다시금 서로 다른 삶으로 이어진다. 그렇다고 아버지 리베로는 울티모에게 어떤 꿈을 강요하거나 서두르지도 않는다. 자신이 자동차에 심취했듯이 그가 길에 빠져 있음을 알고 있고 엘리자베타와 어긋난 삶이었지만 그들이 서로 좋아했다는 것도 알게 된다.하지만 둘이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함께 살아갈 수 없는 인생임을 서로는 안다.아버지와 아들의 삶은 서로 다른 듯 하면서도 닮아 있다고 느끼는 것은 왜일까.'인생'과 '꿈' 에 대한 이야기라 볼 수 있는 바리코의 소설은 우리네 삶을 보는 듯 하여 지루하지 않고 낯선 작가이지만 이 작품만으로도 그를 기억할 수 있을 듯 하다. 삶이란 무어라도 딱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지만 자신의 가슴이 뛰는 일을 위하여 치열하게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어떻게 살아도 자신이 가지 않은 길에 대해서는 누구나 후회를 하게 마련이다.그렇다고 모든 길을 다 가볼 수도 없기도 하지만 쉽게 오른 정상은 또 쉽게 내려오기 마련이기 때문에 한번의 성공보다는 몇 번의 실패를,결과보다 과정을 더 값지게 생각을 하기에 울티모의 길을 더 재밌게 읽지 않았을까.

 

'살아가면 어떻게 평탄한 길만 원할 수 있을까.'

삶의 의미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바뀔 수도 있다고 본다.반환점에 다가온 나이가 되다보니 친구들과 가끔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된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돈이 제일 중요하다고 여긴다면 늘 주머니가 가볍다고 걱정할 것이지만 그와는 조금 거리가 먼 마음에 더 중점을 두고 있어서일까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살아가고 있지만 늘 무언가 이루려는 꿈은 잃지 말고 살아가자고 생각을 한다. 울티모를 힘든 전쟁 상황에서도 버티어내게 한 것은 가슴에 간직한 '꿈'일 것이다. 자식을 키워 오면서 어느 순간 나 또한 자식에게 부모의 꿈을 강요하며 살아 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는데 다행히 딸들은 엄마는 늘 자신들의 편이었다고 말해주는 것이 고맙다. 남들 눈에는 어떻게 비춰질지 모르지만 말이다. 늘 자신에게 '내편'이 있고 '내꿈'을 응원해줄 이가 있다면 더 자신감이 생긴다. 비록 울티모가 가족과 가까이 하지는 않았지만 그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아버지가 혹은 어머니가 자신의 꿈을 응원하고 있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부모는 자식의 꿈을 지지만 해줘도 큰 힘이 된다는 것을 한번더 느껴본다.그리고 또 한사람 엘리자베타라는 여인이 그의 꿈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은 울티모에게는 대단한 응원이다.울티모의 길을 따라가며 잠시나마 내 지난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는 것이 작은 위안이 되는 소설이었다. 지금 제대로 내 길을 가고 있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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