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여 땅이여 1 - 개정판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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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요즘 뉴스에서 접하는 '개인정보유출'이라는 정말 있을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는 고객과의 믿음과 신용이 깨지는 이야기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만은 아니다.심심치 않게 등장하여 고객의 뒷통수를 때리는 이런 사건들이 IT강국이라는 곳에서 다반사로 일어나야 하는지.은행도 보험사도 통신사도 정말 믿을 곳이 하나 없지만 현대를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곳에 필요한 절차를 이렇게 악용해도 되는 것인지 참 의문이다. 누굴 믿고 살아야 하는지. 이런 뉴스도 너무 듣다보니 이젠 그런가보다 하는 무감각해지기도 하는데 지킬건 지키고 살아가야하지 않을까. 그런가하면 이 책에서는 한국의 주식시장의 궤멸을 노리는 미국의 핫머니 침투와 컴퓨터 해킹 그리고 종교와는 다른 우리가 미신이라 여기는 신비한 힘을 좇아 가며 우리의 '뿌리' 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만든다.

 

'기미히토 교수는 직접 그 현상을 목격했으니까 의문을 갖기 않겠지만, 사실 그 토우는 정말로 불길한 요물이오.'

 

일본의 도쿄대학 동양문화연구소에서 컴퓨터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다. 학교에서 최고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 모두 매달려 시스템오류를 찾아보고 수정해 보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원점이다.그렇게 하여 미국의 실리콘벨리에 가 있는 컴퓨터 천재라고 할 수 있는 기미히토가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오게 되고 그는 이곳에 들어서며 이상한 기운을 느끼게 되기도 하지만 컴퓨터 시스템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얼마전 이곳에서 과로사를 한 교수의 죽음을 파헤쳐 들어가다 '토우'에 집중하게 된다. 토우 한 쌍,그것이 어떻게 하여 이곳에 오게 된 것인가? 평범한 토우처럼 보이지만 그 내력을 되짚어가다보니 결코 평범한 토우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기미히토는 그 토우를 치우면서 컴퓨터 시스템의 오류를 없애게 되는데 이 토우가 어디에서 오게 된 것이고 왜 유독 죽음에 이른 교수가 연구하던 시스템에만 토우의 힘이 작용하게 되었는지? 현대 과학으로도 풀 수 없는 '신비한 힘'이 정말 존재하는 것인지.그 토우가 원래 있던 곳은 한국인데 그렇다면 토우가 지키려고 한 것은 무엇이고 한국인들은 그 토우에게 어떤 영적인 힘을 불어 넣은 것인가.

 

'터미널 다운 - 고통의 3분 27초.'

 

토우로 인한 도쿄대학 동양문화연구소의 컴퓨터 시스템의 문제가 하나의 사건이라면 또 하나의 사건은 누군가 컴퓨터에 들어와 악마와 같은 '3분27초' 동안 시스템을 자동적으로 움직이게 만들어 돈을 인출해 갔다.그런가하면 자신들의 요구조건을 들어주지 않으면 큰 피해를 입히겠다며 막대한 요구조건을 내걸었다. 보안업체를 불러 시스템강화를 했지만 속수무책,컴퓨터 천재들을 불러 해 보았지만 누구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미국 유학생인 컴퓨터 천재 수아가 맡게 되면서 해커와 해커와의 싸움에서 수아의 승으로 끝이나지만 아직 풀지 못한 '숫자의 비밀' 속에서 그냥 넘기려 했던 무언가 그들의 음모를 찾아내는 수아,컴퓨터 해커까지 낀 그들의 거대조직은 한국에서 도대체 무슨 일을 하려고 움직이고 있는 것인가.

 

'수천 장의 경판은 반듯하고 정연한 모습으로 판대 위에서 오직 침묵으로 기나긴 세월을 여며오고 있었다.먼지 하나 쌓이지 않은 판고 안에 수천 장의 경판이 마치 생명처럼 기를 머금고 살아 있는 것이 그대로 느껴져오자 일행은 옷깃을 여몄다.'

......

'이상한 기분이 드는군요. 마치 저 경판들이 살아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토우의 비밀을 풀기 위하여 한국에 건너와 정신병원에 있는 사도광탄을 만나게 되고 해인사를 찾아 '팔만대장경'을 보면서 일제강점기 그들이 민족혼의 맥을 끊기 위하여 토우를 파헤친 곳은 이곳이 아닐까? 기독교가 현재에는 종교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미신'이라 불리는 아니 어떻게 보면 모든 종교는 미신이라 할 수 있지만 우리 고유의 영적 존재와의 교감에서 오는 신비한 힘과 문화 민족으로의 그 뿌리는 일본인도 해내지 못했고 저지하지 못했던 팔만대장경이 아닌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팔만대장경의 경판의 숫자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고 팔만대장경에 대하여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 5천년 역사 동안 형성된 우리의 정신문화와 신비주의가 과학에 의해 철저히 부정당하고 폐기처분당하는 마당에, 이 땅의 작가에게 더 이상 절실한 문제가 어디 있는가. 반성은 의문으로 이어졌다. 기독교도 불교도 이슬람교도 굳건한데, 유독 굿이니 부적이니 서낭당이니 하는 우리 문화만 과학의 속죄양이 되어버린 것은 무슨 까닭인가.그들의 종교는 과학적이고 우리의 정신문화는 비과학적이기 때문인가.나는 이러한 문제들을 독자들과 함께 생각해보고 싶어졌다.' 우리 정신문화와 신비주의,우리 민족 깊숙히 차지하고 있는 정신문화,그 원천의 힘을 찾가듯 하면서 만나는 팔만대장경,누구도 흉내내지 못하는 그곳에 우리의 힘이 있는 것은 아닌가.

 

안성 청룡사 대웅전에 있는 팔만대장경 경판..딱 한 장 있다.

 

일제강점기 그들은 우리민족에게 갖은 만행을 저질렀지만 그중에서도 특히나 문화말살,문화의 뿌리를 뽑으려고 쇠말뚝을 박는가하면 문화재 약탈을 일삼았다. 저자의 <몽유도원>에서 다루고 있는 '광개토대왕비'의 비문과 '몽유도원도',안견의 몽유도원도는 우리의 것이면서 우리에게는 모사본만 있고 일본 덴리 대학교에 진품을 가지고 있으니 이런 역사의 아이러니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들이 우리민족의 정신문화,문화말살을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우리는 그에 굴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 우뚝 섰다.하지만 우리는 무언가 잊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저자의 책을 읽다보면 느끼게 된다.과거의 역사 없이 현재의 역사가 이루어진 것은 아닌데 우리는 너무 과거를 잊고,너무 등한시하며 살아가고 있다. 소설을 읽으며 반성과 함께 좀더 역사에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내가 팔만대장경을 본 것은 그리 기억이 나지 않는데 가까운 곳 그리고 자주가는 절의 대웅전에 딱 한 장 모셔져 있는 팔만대장경 경판이 있다는 것을 알고 놀랐던 적이 있고 그로 인해 더 찾게 된 곳이 있다. 이 책을 읽다보니 가야산 해인사에 가서 언제 팔만대장경을 한번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도 가져본다.

 

소설 2부에서는 일본 동양문화연구소의 슈퍼컴퓨터가 선택적 오류를 일으킨 것과 교황청의 파티마 제3의 예언 공개를 촉구하며 하이재킹의 배후로 지목된 사도광탄의 이야기며 한국의 주식시장을 뒤흔들어 놓을 라이언펀드와 싸우는 천재컴퓨터 소녀 수아의 이야기며 그 천재들이 우리나라에 모여 어떤 일을 벌이게 될지 우리의 과거 역사 그리고 현재와 미래에 이르기까지 아우러보는 이야기에 푹 빠져들 듯 하다. 저자의 소설은 역사와 함께 펼쳐지는 이야기로 과거의 역사를 무시할 수 없다는,우리의 현재와 미래가 과거 역사와 이어져 연결되어 있기도 하지만 좀더 역사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한다는 경각심을 불러 일으킨다. 소설을 읽으며 모르는 사건과 인물을 검색을 하며 읽다보면 더 재밌게 소설을 읽을 수 있고 역사공부도 되서 한 권 한 권 소설이 아니라 역사서처럼 읽게 된다.개인정보유출이라는 또 하나의 뉴스가 찌푸리게 하는 날에 소설과 함께 하니 기분이 묘하다. 현재 우리가 우뚝 설 수 있게 만든 그 힘의 근원은 무엇일까 빨리 2권으로 달려야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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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유도원 세트 - 전2권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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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읽는 중에 천만원이 모자라 외국 경매에 나온 문화재를 놓쳤다는 뉴스를 접하게 되었다. 강탈 당한 문화재를 나라가 나서서 찾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나 단체가 나서고 있는 나라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나. 정말 씁쓸한 뉴스였는데 이 책을 읽다보니 더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모르면 약이지만 김진명 작가의 책을 읽다보면 하나 하나 수면위로 떠 오르는 진실들에 정말 애국심은 아니어도 역사를 바로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그의 책을 많이 읽은 것도 아니고 역사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좀더 관심을 가지고 읽어 보려고 하는데 우리가 모르고 있던 부분들이 아니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부분들이 너무도 많다는 것을 느낀다.

 

광개토왕비에 '백잔신라구시속민 유래조공 이왜이신묘년래 도해파 백잔000라 이위신민 이육년병신 왕궁솔수군토리잔국' 이라는 중요한 구절이 있는데,원래 이 구절의 해석을 놓고 한국과 일본 간에 심각한 대립을 해왔어요.

 

<가즈오의 나라> 라고 나왔던 책을 15년이 지나고 다시 수정하여 <몽유도원>으로 개정판이 나온 책이다. 왜 '가즈오의 나라' 였을까? 가즈오란 인물은 미술관을 하는 일본인을 양부로 둔 청년이 정신병을 앓고 있다. 왜? 겉으로는 아무 문제없어보이는 청년,그에겐 비밀이 있다. 그의 할아버지는 애국지사였고 그의 삼촌이 북한에 살고 있는데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일본에 와서 살고 있다. 한국인이면서 일본에서 양부를 두고 살아가는 가즈오,그는 자신의 정체를 알고는 정신병을 앓고 있다. 자신을 키워주고 있는 양부와 할아버지가 다름아닌 자신의 아버지를 죽게 만든 장본인이며 나라를 팔아 먹은 매국노와 같은 인물이다. 하지만 자신을 지극정성으로 키워주었기 때문에 가즈오는 그 사이에서 갈등을 빚고 정신병을 앓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정체,뿌리는 무엇인가?

 

'조선 사람들에게 그들의 역사를 알지 못하게 하라. 그들 조상의 무위,무능,악행을 들추어내 그것을 과장하여 조선의 후손들에게 가르쳐라.그리하여 청소년들로 하여금 실망과 허무감에 빠지게 하라.' -사이토 총독의 말.

 

일본의 시골 한 마을에서 비석을 연구하는 한 노인이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살해 되었다.노인이 죽고 없어진 것이란 어느 책 뒤에 붙어 있던 메모지와 같은 종이 한장,도대체 범인은 누구길래 다른 것은 다 마다하고 겨우 종이 한 장 때문에 노인을 죽인 것일까? 노인의 정체는 그야말로 어느 곳에도 흔적이 남지 않은,그의 과거가 의심스러운 인물이다. 하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책은 정말 대단하다. 비문에 관한 그야말로 방대한 연구를 한 인물과 같은 책을 가지고 있지만 그가 교수인지 연구원인지 신원을 알 수 없다는 것이 의심스럽다. 그 살인사건에 도움을 주기 위해 일본 대학원에 유학을 온 박상훈이라는 인물이 반장과 함께 살인사건을 수사하게 된다. 상원은 비문에 관한,광개토왕비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는 역사학도이다. 그가 하야코와 찾아가게 된 미술관에서 가즈오를 만나게 되면서 사건은 더 넓은 범위로 펼쳐지고 역사 부분에서 실세라 할 수 있는 와타나베,그가 있는 대동아연구소가 등장하면서 사건은 더욱 광범위해진다.

 

역사는 일기장이나 거울과 같은 것입니다.

......

인간은 영원히 살아 있습니다. 육신은 가지만 그가 살았던 인생,그의 이름,그 존재의 의미는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가즈오의 할아버지는 시베리아형무소에서 죽어갔다.왜일까? 그리고 '울란야호이'라는 단어에 뜻을 찾기 위한 노고와 광개토대왕비의 비문에 대하여 일본과 우리의 해석이 틀린 것에 대하여 상훈이 모든 노력의 시간들이 어쩌면 우리가 해야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역사의 오류를 밝혀내기 위하여 그리고 강탈 당한 문화재 반환을 위하여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데 오랜시간동안 왜 우리는 침묵하고 있는가? 아니 남의 일처럼 관심도 두지 않는 것에 대한 저자의 우리에게 보내는 경종이라 보여지는 일정은 그야말로 일본과 한국 그리고 중국 시베리아를 오가며 밝혀낼 수 있으면 발로 찾아 떠나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본인들은 역사를 왜곡하면서 자신들이 과거에 저지른 만행을 잘못된 역사를 교과서에 그대로 실어 자라나는 후손들에게 잘못된 역사교육을 시키고 있으니 미화된 역사로 공부한 아이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도태되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 살아나기를 포기를 한 것인지.그런 일들을 정부와 역사학자들이 손을 잡고 버젓이 하고 있다. 그래도 우리나라는 역사학자들이 정부편에 서서 하지는 않는다고 따끔하게 충고를 하고 있다.바로 잡아야 할 것은 그것이 과거 조상이 잘못한 일이라도 그대로 진실을 가르쳐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참모본부는 일본의 국민을 전쟁터로 불러내기 위해 한반도는 본시 일본의 땅이었다고 조작했습니다...문제는 지금의 일본 학계입니다. 학문적 진리를 구하려는 겸허한 태도보다 민족의 우수성을 선전하려는 얕은 발상이 일본의 학계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과거 남의 나라를 지배한 것을 자랑으로 알고 역사를 조작했던 군국주의자들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일본의 학계를 위해 참으로 슬픈 일이며 일본의 국민들에게 불행한 일입니다.

 

역사도 시간이 흐르면 그 진실성이 떨어지지만 어딘가에는 진실이 분명 존재한다. 광개토대왕비의 비문이 세월이 흘러 글자를 제대로 알아볼 수 없다고 해도 그것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추어 왜곡할 수는 없는 것이다.그 진실을 알고 있는 이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보지도 못하고 꼭꼭 숨어 있거나 진실을 숨겨야만 하는 그런 잘못된 나라라면 미래의 인재들이 그곳에서 제대로 뿌리를 내리고 살 수 있을까? 그리고 과거에 남의 것을 훔쳐 왔다면,그것이 자신들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반드시 주인에게 돌려 주어야 한다. 문화의 뿌리를 훔쳐온다고 정신이나 혼까지 훔쳐올 수는 없는 것이며 역사를 고친다고 그 뿌리까지 모두가 고쳐지는 것은 아니다. 일본인들이 모두가 나쁘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 우익이 있다면 반대편에 서서 잘못된 것을 수정하려는 아니 잘못을 시인하고 사죄하려는 이들도 분명 있다. 미술사 강의를 하는 하야코는 상훈을 만나며 몽유도원도를 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실천하려고 하고 양심에 가책을 느낀 역사학자는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양심선언을 하고 은퇴를 하려고 한다.그런가 하면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 잘못을 계속적으로 부풀려가는 이들도 있다. 저자는 어느 순간에 정체된 한일간의 문제를 다르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변해야 한다는 것을 소설로 이야기 하고 있다. 우리도 변해야 하고 그들도 변해야 한다.

 

민족에게는 현재의 번영도 중요하지만 과거의 역사도 중요합니다.일본이 그 어두운 역사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하면 결코 진정한 의미에서 앞선 나라라고 볼 수 없습니다.

 

서울대 역사학자는 자신의 지식이 통하지 않자 목숨을 내놓듯 죽음에 이르렀지만 젊은 역사학도 상훈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세세히 캐고 잘못된 부분을 바로 정정하면서 그들에게서 사죄를 받아낸다. 그것이 우리가 해야할 현재의 자세라고 본다.그런가 하면 일본인들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이들도 있지만 개중에는 자신들이 역사를 왜곡하고 있고 진실이 무엇인지 알고 양심적으로 행동하려는 깨인 사람들이 있다. 한쪽에서 움직인다고 될 일이아니라 함께 움직여서 잘못된 것은 바로 잡고 받아 들일 것은 받아 들이는 역사를 보는 바른 혜안을 제시한다. 가즈오처럼 자신의 정체에 혼란을 일으키면 그 뿌리마져도 흔들려 제대로 된 뿌리를 내릴 수가 없는 것이다.그것이 아무리 겉모습이 번드르한 성이라 해도 모래위에 성밖에 되지 못하는 것이다. 역사는 상훈처럼 늘 배우는 자세로 임해야 하나라도 더 배우게 되는데 그 밑바탕이 되는 교과서나 역사서등이 왜곡되었다면 우리가 무엇을 배우고 가르치겠는가.

 

상훈이 생각하는 잘못의 출발점은 문화의 상실이었다. 고유문화의 맥을 잘린 겨레에게는 타락한 물질문화에 대한 노예적 종속이 있을 뿐이었다. 올바른 한국의 정신은 돈에 대한 무조건적 아부에,힘에 대한 이유 없는 복종에 있지 않았다. 통일을 완수할 건강하고 힘찬 정신은 문화를 회복하고 역사를 바로잡는 데서 얻어질 것이었다.

 

소설이지만 저자의 소설은 읽다보면 역사를 다루고 있어 더 맘이 아프다.주입식으로 공부한 역사는 늘 영어나 수학보다 더 관심밖으로 밀려 아이들은 국사에 별 관심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하지만 사극이나 소설로 보여지는 역사를 믿으려고 하기도 한다.진실이 무엇인지 그 뿌리에 관심을 가지기 보다 문화아이콘이 되어야 관심을 보인다.'나는 한반도의 역사와 문화를 독자들과 같이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싶었다.맹목적으로 일본을 매도하는 공허한 감정풀이 대신 성실한 자기성찰과 노력이 있을 때만이 우리에게 발전이 올 것이다.비단 우리나라의 독자들뿐만 아니라 선량하고 성실한 대다수의 일본 국민들과도 역사를 같이 생각해보고 싶다.' 저자의 말처럼 감정풀이만 할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고 잘못된 것은 함께 고쳐 나가고 21세기다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본다.현대는 나 혼자 잘살아서 되는 시대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공존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함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역사이기 때문에 더 민감하고 감정싸움이 될 수 있는데 감정싸움이 아닌 상훈처럼 적확한 자료와 지식으로 맞써서 시정해야 한다.살인사건을 해결하고 역사의 오류,역사의 진실이 무엇인지 밝혀 낸 것은 역사학자들도 있지만 역사학도 상훈이다. 그의 혁혁한 노력이 켜켜이 세월속에 파묻혀 있던 진실을 캐내 바로 잡았듯이 과거 역사를 관심 밖에 두었다면 이제 21세기 인재들이 나서야 할 때이다.과거의 역사가 꿈속이었다면 이제는 그 꿈에서 깨어나 현실을 바로 보아야 한다.저자의 말처럼 역사를 바로 잡으려는 우리의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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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12년 - Movie Tie-in 펭귄클래식 139
솔로몬 노섭 지음, 유수아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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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섬노예'라고 해서 우리나라 어느 섬에서 염전일을 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전파를 탔다. 무엇인가 해서 보았더니 직업소개소의 소개로 간 곳이 염전이있고 그들은 그곳에서 임금도 받지 못하면서 오랜시간동안 일을 하면서 섬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들이 정상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혹은 신용불량자라는 이유로 섬까지 흘러 들어가 갖은 노역을 하면서도 자신의 임금이 통장 잔고로 쌓이고만 있는 줄 알고 열심히 일하는 이들,그런 이들에게서 노동과 임금을 갈취하는 이들은 누구란 말인가? 그들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섬을 아니 '천연소금'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 놓게 만들어 정말 찝찌름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오랜 전통으로 모두가 하고 있기 때문에 나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따라갈 수밖에 없는 '섬노예' 제도는 현대판 노예 이야기라고 볼 수 있었다.그뿐만이 아니라 심심치 않게 들려 오는 이런 일들이 비단 다른나라 혹은 다른 시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내 주변에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나는 말로는 다 못할 고뇌에 사로잡힌 채 그냥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이제 내 앞에는 상상도 못할 끔찍한 형벌만이 남았다. 활화산처럼 분노를 뿜어내고 나니, 남은 건 가슴을 찌르는 후회뿐이었다.친구 하나, 의지할 곳 하나 없는 노예가 도대체 뭘 말하고 뭘 할 수 있겠는가? 무려 '백인' 에게 극악무도한 행동을 저지르고 말았는데,모욕과 학대에 못 이겨서라고 변명할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긴 한 걸까?

 

'노예 12년'은 소설이 아니라 자유인 이었던 흑인남성,결혼하여 아내와 자녀를 둔 한가족의 가장이 더 나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하여 뉴욕에서 다른 주로 갔다가 노예를 잔인하게 다루기로 악명 높은 루지애나 주로 팔려가 이 농장 저 농장 다니며 일을 하고 그곳에서 겪었던 일들을 써 놓은 글로 농장에서 노예에서 다시 자유인으로 벗어났던 긴박했던 이야기와 증거자료들을 과감없이 풀어 놓아 '노예해방 전쟁'의 도화선이 된 작품이라고 한다. 하지만 솔로몬 노섭은 자유인이 되어 작가로 노예 생활의 이야기를 강연을 다니기도 했지만 4년 후 그의 행방은 묘연했다고 하니 그가 자유인으로 자유를 다 누리고 살았다고 볼 수도 없겠다. 하지만 그가 풀어 낸 '노예 12년'이라는 작품은 많은 생각과 사회적 반향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솔로몬 노섭,그의 아버지는 노예였다가 자유인이 되었으니 그는 탄생부터 자유인이었던 것이다. 노예들은 주인의 이름을 따서 짓는지 그야말로 그들의 이름부터 누군가에게 귀속된 주종의 관계를 나타내듯,아니 물건 취급을 하듯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어찌 되었든 그는 아버지 그리고 솔로몬 노섭까지 자유인이라는 신분이 되었으니 그들에게는 '자유'를 가져다 준 이름이기도 하니 대단한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런 그가 자신이 살던 곳에서 그냥 살았다면 좀더 자유롭고 여유롭게 살았을텐데 좀더 욕심을 부려 본다고 타지로 나갔다가 그야말로 노예상인에게 붙잡혀 팔려가게 된다. 자유인이었지만 감금되고 자유인이라는 증서를 빼앗겨 아무런 행동도 해보지 못하고 이름도 바뀌어 그야말로 노예아닌 노예로 팔려가야 했던 노섭은 갖은 방법으로 자신이 탈출할 방법을 생각해보지만 너무 위험하다. 아니 사람들이 흑인이라고 믿어주질 않는다. 그러다 악명 높은 루지애나까지 가게 되고 그곳에서 노예로 살아가게 된다.

 

유색인종을 자기와 똑같이 창조주가 만들어낸 인간이 아니라 '순수 동산' 으로 취급했기 때문이다.노예는 가격만 더 셀 뿐 집에서 기르는 개나 노새와 다름없다고 여겼다. 내가 자유인이라는 명확한 증거를 들이밀었을 때나 여기를 떠나던 날 나한테도 아내와 자식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렸을 때도, 엡스는 나를 떠나게 만든 법 조항을 비난하며 욕만 퍼부어 댔다.

 

솔로몬 노섭처럼 노예로 팔려 온 사람중에는 자식들과 뿔뿔히 흩어져 와야했던 여인도 있고 다른 이유로 팔려 왔다가 주인이 와서 데려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솔로몬에게는 가족들이 찾아 오는 그런 행운을 얻지는 못했다. 좋은 주인을 만나면 그나마 일은 힘들어도 참고 견디겠지만 주인도 그 밑의 감독관으로 있는 이들도 정말 인간 말종을 만난다면 그들의 삶은 짐슴보다 더 못한 물건과 같은 삶을 살아야 했다. 주인은 좋았지만 감독관이 그야말로 솔로몬과는 앙숙과 같은 이를 만나 호되게 고생을 하게 되고 옮겨가게 된 곳이 이번에는 주인장이 그야말로 인간 바닥이다. 그는 나름 힘도 좋고 재주도 좋아 눈에 띄는 일들을 하게 되고 남을 매질할 수 있는 자리까지 오르게 되지만 어느 자리나 마음이 편할 수는 없기도 하지만 눈 뜨고는 못 봐줄만큼 백인이라는 이유로 너무 인간을 업신여기도 동물처럼 대하는 것에는 모두가 분노할 일이다.왜 유색인종이라고 멸시를 받고 냉대를 받아야 한단 말인가.백인이라고 모두가 우월인자는 아닐 터인데 백인이라고 텃새를 부리듯 하는 우월주의에 흑인이라는 이유로 목숨도 인간취급을 받지 못했던 노예,정말 가슴 아픈 일이다.

 

그런 그가 그를 도와 탈출을 도와줄 백인을 만나고 마음을 터놓고 자신의 이야기를 함으로 해서 자유인라는 것이 밝혀지고 노섭 변호사로 인해 루지애나 노예에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이야기는 동명의 영화로도 나왔지마 이런 이야기는 영화보다는 원작으로 읽고 싶어서 읽게 되었는데 가슴 찡하다. 솔로몬의 이야기도 정말 어처구니없고 가슴 아프지만 이야기속의 엘리자의 삶은 정말 가슴 아프다. 어머니로 자식들과 헤어져 자식들의 생사도 모르고 살아가면서 가슴에 자식에 대한 그리움만 자리하고 있어 그 슬픔이 너무 커서 끝내 자식들 얼굴도 생사도 모르고 죽어가야 했던 여인,그런 삶이 비단 엘리자 뿐일까? 그런가하면 팻시는 주인이 기르는 동물 취급을 당하면서도 생명을 연장해야 한다는 것이 정말 가슴 아팠다. '팻시는 주인이 기르는 동물이나 다름없었다.'

 

'흑인으로 태어난 순간부터 자유를 향한 투쟁은 시작된다.' -넬슨 만델라

왜 그들이 흑인이라는 이유로 자유를 박탈 당하고 짐승처럼 백인들의 노예가 되어 인간존엄은 어디에서도 찾아보지 못하고 학대와 차별을 받아가며 살아야 했는지. 노예해방은 주마다 다르게 되었는지 솔로몬 노섭이 일자리를 찾으러 나간 1841년부터 자유인이라는 증거가 확실시 되던 1853년까지의 이야기는 많은 아픔을 담고 있기도 하지만 그 후의 삶 또한 결코 평탄지 않았음을 직잠할 수 있다. 솔로몬 노섭이 노예선에 타기 전에 자신의 신분을 밝혔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그가 자유인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까? 자유인이라는 증명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흑인이라는 이유로 모든 것을 빼앗기고 노예가 되어 살아야 했는데 자신을 증명해즐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 흑인이 말이 통했을까? 흑인으로 태어남부터가 인생의 걸림돌이 되어 그야말로 짐짝취급을 당하고 짐승처럼 살아가야 했던 이들의 삶이 가련하다. 그런가하면 가려운곳을 시원하게 긁어 주듯이 그를 도와 준 '배스'라는 인물이 뱉어내는 이야기들은 생각해 보게 만든다. 너무도 당연한 이유들이 통하지 않던 시대에 노예라는 삶을 운명처럼 이겨내고 견뎌내야 했던 솔로몬 노섭의 이야기는 현재에도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을 멸시하거나 냉대 혹은 노동을 갈취해서도 안된다.

 

이 책이 예나 지금이나 사회적으로 주목받게 된 것은 자신이 겪은 일을 통해 잘못된 사회제도에 반격을 가했기 때문일 것이다.이 책을 읽다보니 얼마전에 읽은 <미시시피 미시시피>도 생각나고 어릴적 보았던 <뿌리>도 생각이 났다.<미시시피 미시시피>에서는 백인과 흑인, 그것이 주종의 관계가 아니라 같은 아버지의 자식이면서 나중에는 경찰과 용의자로 만나게 된다. 어릴적에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에는 백인인 친구가 더 월등한 대접을 받으며 살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아니 그가 살인용의자로 지목 된 후에는 그야말로 피폐한 삶을 살게 되는데 그것이 흑인 친구를 만나 과거와 해후를 하면서 현재 그들이 짊어진 삶을 해결해 나가는 이야기인데 흑인과 백인의 갈등이나 대립을 혹은 학대를 받는 이야기는 다른 문학작품 속에서도 많이 다루어졌지만 솔로몬 노섭의 '노예 12년'은 그가 겪은 이야기라 더 사실감 있고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인간은 인갑답게 자유를 누리며 살아야 하는데 우리의 현재를 둘러보게 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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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의 의류 수거함 - 제3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40
유영민 지음 / 자음과모음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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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의 마법사>를 읽었던가?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읽지 않은 것도 같고 읽은 것도 같고 이 책을 읽다보니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요즘은 옷이 떨어져서 버리기 보다는 유행이 지나서 버리는 것들이 많다.그만큼 옷이 흔해지기도 했지만 '패스트 패션' 이라고 해서 유행도 그렇고 모든 것이 너무 빠르다. 넘쳐나는 것들 속에서 쉽게 구매하고 쉽게 버리고 어려웠던 시절에는 생각도 못했던 일들이지만 정말 너무 흔해진 것 중에서 하나가 옷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런 이유인지 아파트에도 거리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의류수거함'이며 그것은 수거날이 아니어도 늘 넘쳐난다.

 

외고에 떨어지고 나서 패배자의 맛을 느낀 '도로시'는 자살을 결심하고 자살카페에 가입하려고 했지만 그것도 생각대로 되지 못하고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이곳을 떠나 자유의 나라로 보이는 호주로 이민을 가고자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돈을 모아야 할까? 그러다 어느 날 뜻하지 않게 의류수거함에 걸쳐 있는 옷을 발견하고 끄집어 냈다가 생각보다 멀쩡한 것에 놀라고는 그 속에 들어 있는 옷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왜 멀쩡한 옷을 사람들은 버릴까? 이 옷은 누가 수거를 해가고 멀쩡한 옷들로 무언가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그러다 도로시는 그녀가 알고 있는 보세옷가게 마녀에게 넘기기로 하고 이윤을 나누기로 한다. 수거함에 옷을 수거하기 전에 도로시가 밤에 몰래 훔쳐 내겠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 의류수거함 속에는 옷만 있는 것이 아니다. 쓰레기도 있고 도로시는 어느 날은 강아지도 발견하게 된다. 그야말로 도로시와 토토의 만남이 되었다.

 

"인간이 사는 곳이란 낙원이란 없다. 낙원처럼 보일 뿐이지."

 

의류수거함에서 옷을 훔치며 밤의 시간에 만나게 되는 마녀,노숙자,마마,카스 삼촌,두 손자와 살고 있는 폐지 줍는 할머니 등 사회에서 소외계층이나 아픔을 간직한 사람들과의 만남은 도로시의 인생의 진로를 바꾸어 놓고 말았다. 처음 시작은 패배의 공간에서 벗어나는 것이었지만 자신보다 더 아픔을 간직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자신의 아픔도 치유하게 되고 타인의 아픔도 보듬어 안을 줄 아는 그야말로 배려심이 많은 도로시로 거듭나게 된다. 북에서 건너 왔지만 힘들게 살아 가고 있는 카스 삼촌,그도 의류수거함의 옷을 훔치며 살지만 많은 것을 바라기 보다는 시원한 맥주 한 캔이면 족할줄 아는 마음 따뜻한 삼촌이다. 노숙자 아저씨 또한 큰 아픔을 가지고 있어 거리 생활을 한다. 그가 땅에 묻어야 했던 동물들의 위령제를 지내주면서 그리고 도로시와 함께 하면서 자신의 아픔을 치유해 나간다. 보세 옷 가게를 하는 마녀 또한 이곳을 떠나 호주에 가길 원하고 옥상에서 식당을 하는 마마,자식을 잃은 후에 더 많은 자식을 품에 안게 된 넉넉한 아줌마다. 그리고 195,그가 버린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보게 되고 자살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 도로시만의 자살방지 프로그램을 실행하면서 195의 마음을 돌려 놓게 된다. 자살이 아닌 살자로 바꾸어 놓게 되면서 도로시가 밤시간에 만나는 이들과 함께 어울리며 음지에서 양지로 나온 195는 새로운 삶을 설계하게 된다.

 

"이봐, 무언가에 중독되지 않고서 어떻게 이 누더기 같은 세상을 버리겠어. 때로는 중독도 살아가는 힘이 된다구."

 

그렇다면 도로시는 의류수거함에서 무엇을 건져내게 된 것일까? 아니 사람들은 의류수거함에 무엇을 버렸던 것일까? 무심코 버렸던 자신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그리고 그 물건을 꺼내어 나눔을 실천하고 타인을 배려할 줄 알게 되었으며 사랑을 배우게 된 도로시는 그야말로 의류수거함 속에서 자신의 꿈까지 찾게 된다. 나 뿐만이 아니라 이웃을 생각하는 멋진 사람으로 거듭나서 그녀는 사회복지과를 지원하게 된다. 단순할 것처럼 시작된 이야기는 이웃과 사회를 생각해보게 되는 이야기로 거듭나면서 도로시와 함께 리어카를 끌고 몰래 아니 능숙하게 의류수거함 속에서 함께 옷을 꺼내고는 숙자 아저씨와 함께 라면을 끓여 먹고 마마님의 숲이라는 식당에서 가정식 백반을 먹으며 카스 삼촌과 함께 편의점에서 시원한 맥주 한 캔을 나누고 폐지 줍는 할머니의 집을 따뜻하게 함께 고쳐줄 수 있는 훈훈함 속을 함께 달려가야 할 것만 같다.그들은 많이 가져서 나누는 것이 아니다. 자신들이 아픔을 겪어 보았기에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눌 줄 알고 아픔을 함께 보듬어 안을 줄 아는 것이다.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 중에는 물론 많이 가져서 나누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 많이 가졌다기 보다는 넉넉하지 못한 사람들이 더 나눔을 실천하고 산다는 통계와 이야기를 보았다. 그만큼 가진 자의 주머니는 열기 힘들지만 넉넉하지 못한 이들은 그 아픔을 알기에 주머니가 열리기 쉽다는 것,하지만 난 많이 실천하지 못하고 산다. 나누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겨우 생각지도 못한 아주 작은 마일리지 정도만 나누고 살고 있는데 큰 것을 나누기 보다는 도로시처럼 '마음'을 나누는 것도 참 좋은 일이라 생각을 한다.

 

"뭐,어차피 우리 삶이 여행이잖아? 그 여행길에서 뭐라도 하나 제대로 건져야 할 텐데 말이야."

 

어떻게 보면 도로시라는 친구는 정말 씩씩하다. 낮에는 학교생활을 하고 밤에는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의류수거함을 뒤지기도 하고 또한 그가 밤시간에 만난 친구들과 친분을 이어가기도 하니 도로시의 언니 말처럼 '영혼의 부자'가 되는 일을 직접 체험하고 있고 또 그 중심에서 자신이 나눌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나누듯 밤시간에 만난 친구들과의 연대를 끊어 버리기 보다는 끝까지 연결하여 폐지 줍는 할머니의 집을 따뜻하게 고쳐 주고 195가 새로운 희망을 충전하게 하면서 자신의 꿈까지 찾았으니 의류수거함을 뒤지는 일이 그야말로 일석 몇 조 쯤은 되지 않았을까? 한참 그 시기의 아이들은 자신들의 진로를 결정하지도 못하지만 한번의 실패를 맛보았다면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고 자신감을 잃어 버리기도 하는데 너무도 씩씩하게 밤시간에 그것도 여학생이 리어카를 끌고 의류수거함에 있는 옷을 훔칠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것을 혼자서 독식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와 함께 나누는 나눔을 실천하는,그야말로 따뜻함이 담겨 있어 읽고 난 후에 의류수거함을 바라보는 시선은 달리질 듯 하다. 여학생이라 어떻게 이야기를 끌어갈까 고민을 하게 되었는데 그런 고민은 떨쳐 버리고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따뜻함에 동화 되어 가는,사춘기 소녀가 불만 가득한 세상을 그려내기 보다는 자신이 실천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사회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것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도로시가 의류수거함에서 인생을 건져 올렸다면 삶이 여행이라는 이 길에서 정말 무언가 하나 제대로 건져 올릴려면 나 자신만 생각하며 살기 보다는 이웃을 나눔을 실천하며 살아야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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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친 할아버지께 라임 어린이 문학 1
강정연 지음, 오정택 그림 / 라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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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라는 것은 당사자에게도 가족들에게도 정말 힘든 일이다. 그런데 열두살 꼬마에게는 어떨까? 열두살 장군이게는 엄마도 없고 아버지는 함께 살지만 산다고 볼 수 없는 그야말로 아직은 낯선 가족이다. 그런 장군이게는 누구보다 친한 할아버지,엄마가 이혼을 하고 떠나고 난 후 할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누구보다 가족의 빈자리를 빈틈없이 채워 주었던 할아버지,그런 할아버지가 아버지가 떠나고 난 후의 빈자리를 채워 주셨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다른 것도 아니라 치매라니... 어른들도 감당하기 힘든 상황을 어린 장군이 잘 적응을 할까?

 

 

장군은 또래들보다 덩치는 크지만 용기가 조금 부족하다. 같은 반에는 이쁜 여자 친구인 수진이도 있는데 수진이가 장군이가 좋다고 해도 말도 제대로 나누지 못해 보았지만 싫지는 않다. 그런가하면 장군이보다 덩치가 작은 창식이는 장군이보다 더 힘이 센것처럼 장군이를 완전히 골려먹는 재미로 학교에 오는 것처럼 장군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걸고 넘어진다. 정말 어떻게 창식이를 이겨 놓을 방법이 없는 것일까? 아니 아직 장군이는 마음을 터놓은 가까운 친구가 한 명도 없다고 볼 수 있다. 수업시간에 발표를 할 때에도 덜덜 떨기만 하고 제대로 한번 한적이 없는 듯 한데 다른 친구들은 발표도 잘하고 씩씩하다. 여름방학 숙제를 무엇을 할까 발표를 해야 하는데 숙제를 무얼하고 발표를 어떻게 한다지.

 

 

그런 장군이에게 좋은 기회가 왔다.비록 아빠의 일이 잘 안되어 강원도에 살던 할아버지와 함께 살게 되었지만 할아버지는 국어선생님을 오랜시간 하셨기도 하지만 책 읽는 것을 좋아하셨고 장군에게 글 읽는 것도 가르쳐주셨고 책도 읽어 주셨던 정말 친구같은 분이시다. 물론 바다도 좋아하셔서 자전거도 태워 주시고 수영도 가르쳐 주셨다. 그런 할아버지가 장군과 함께 살게 되었는데 장군이 컴터로 할아버지께 편지를 보내도 할아버지가 읽으시지 않는 것이다. 할아버지네 컴퓨터가 고장난 줄 알았는데 집에서 함께 살게 되었으니 이젠 편지를 쓰지 않아도 되는데 할아버지와 여름방학 숙제를 함께 하면 될 듯 한데 할아버지가 오시고 대신에 아빠는 가방을 싸서 나가셨다. 아빠도 아빠나름 잘하고 싶었지만 일이 잘되지 않아 아빠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지만 장군은 그런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할아버지와 정말 친한 사이다.그런 할아버지가 치매란다. 다른것도 아닌 글 읽기와 글쓰기가 안된단다.말도 안돼! 40년동안 국어선생님을 하셨는데 말이다.그렇다면 이제부터 장군이가 할아버지가 장군에게 글을 가르쳐주고 읽어주셨듯이 이젠 장군이 할아버지게 돌려 드리는 방법을 해보면 어떨까.

 

 

할아버지와 장군의 동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할아버지가 치매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고 함께 병원에도 가고 병원에서는 장군이가 이젠 할아버지 보호자라는 말에 뭔가 책임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 할아버지가 오시고 난 후 장군은 할아버지와 함께 수영도 다니게 되고 재래시장 구경도 가고 같은 반 여자친구인 수진이네 집에 놀러도 가게 되고 정말 많은 일들이 벌어진다.할아버지는 장군이 할아버지께 쓰는 편지를 대신 베껴 쓰는 방법으로 글쓰기를 다시 배우기고 하셨는데 그게 다름 아닌 여름방학숙제로 제출하게 되었고 담임선생님은 그런 장군의 일기를 출판사 친구에게 보여줘서 장군이 어린 나이에 책을 출판하게 되었다.꿈을 아직 정하지 않았는데 작가라는 꿈이 생겼다.자신에게 그런 능력이 있었다니 모두 할아버지 덕분이다.그런가 하면 창식이 앞에서 벌벌 떨던 자신,할아버지 말씀처럼 부딪쳐야 할 벽이라면 피하지 말고 당당하게 맞써서 싸웠더니 창식이가 그런 장군의 모습을 보지 못해서인지 힘 있게 나오는 장군을 보고 창식이가 도망치듯 한다. 별거 아니었는데 왜 지난날 자신감 없이 하였는지.

 

 

장군은 할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자신감을 찾게 되고 무언가 자신 안에 있는 꿈을 찾게 된다. 열두살 어린 장군이 엄마가 없다고 아빠가 자리를 비웠다고 삐뚫어지는 것이 아니라 할아버지 덕분에 더 자신감을 찾고 자신 안에 존재하는 능력을 알게 된다. 치매 초기인 할아버지는 장군에게는 엄마이기도 혹은 아빠이기도 하면서 장군의 정말 친한 친구이기도 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부모가 없어서 운이 없는 아이가 아니라 할아버지의 사랑이 있으므로 해서 장군이는 누구보다 운이 좋은 사이 정말 친한 친구를 얻은 행운의 아이가 된 것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이야기처럼 장군에게 할아버지의 '사랑' 이 없었다면 덩치만 큰 자신감도 자존감도 없는 아이가 되었을터인데 할아버지의 사랑 덕분에 장군은 무럭무럭 자랄 수 있는 아이가 된 것이다. 사람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사랑과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장군과 할아버지의 따뜻한 이야기에서 엿볼 수 있다.'장군아, 너는 매우 귀한 아이다.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내 손자다. 사랑한다,장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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