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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종말 이후 - 컨템퍼러리 미술과 역사의 울타리
아서 단토 지음, 이성훈 외 옮김 / 미술문화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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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고 끝에 <예술의 종말 이후>가 출간되었습니다.


아서 단토Arthur Danto의 <예술의 종말 이후 After The End of Art>가 번역되어 나왔습니다.
나와 경성대 철학 교수 이성훈의 공역으로 출간된 책입니다.
이 책은 매우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으므로 여러분이 읽기를 권합니다.

단토는 포스트모던이란 말을 거부합니다.
그 이유는 포스트모던이 모던을 계승하고 초월한다고 하지만 모던이 현재 제대로 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계승과 초월이란 말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며, 무엇보다도 포스트모던은 성급하게 사용된 용어로 양식을 지칭하는 의미를 지니지만 그러한 정의에 해당되지 않는 현재의 작품도 아주 많기 때문입니다.

단토는 Contemporary(동시대)라는 말을 사용할 것을 주문합니다.
동시대란 예술의 종말 이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현재 미국뿐 아니라 유럽의 많은 미술 이론가들의 글에 단토가 끊임없이 인용되고 있습니다.
그의 예술 종말론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매우 난해해서 국내 모 출판사가 단토의 저서 한 권을 오래 전에 계약해놓고도 여태까지 출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학 학회에서 단토에 관해 논문을 발표한 사람들이 더러 있지만, 나도 가서 직접 들어봤지만 저서를 제대로 읽고 논문을 발표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누군가가 단토에 관해 쓴 것만 읽고 마치 단토를 이해하는양 발표하는 것을 직접 들었습니다.

매우 난해한 책인데 최대한으로 이해 가능하게 번역하는라 3년은 족히 걸렸습니다.
내가 초역을 하고 이성훈 교수가 2차역을 하여 완성했습니다.
단토가 한국 독자를 위해 서문을 써 보내주셔서 고맙게 생각하며 실었는데 그분은 우리나라 도자기에도 관심이 많아 익히 잘 알고 계십니다.
책 뒤에 이 교수와 나의 역자 해설이 있습니다.
읽기 전에 참고가 될 것입니다.

단토는 1964년 앤디 워홀의 <브릴로 상자>를 기점으로 예술이 종말을 고했다고 주장합니다.
그 이유는 서양의 미술 개념인 예술은 모방이란 사고가 <브릴로 상자>에서는 발견할 수 없고,
미술품은 만들기라고 오랫동안 생각되어 왔는데, 뒤샹의 레미 메이드에서 보듯 그리고 <브릴로 상자>에서 보듯 작가가 만들지 않아도 미술품이 될 수 있으며 평범하지 짝이 없는 비누를 담은 브릴로 상자도 작가가 변용시킬 의도만 있으면 미술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기 때문에 과거 미술의 개념 또는 미술사가 종말을 고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논지입니다.

과거에는 미술품이 되기 위한 조건이 미리 정해져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그러한 조건이 따로 없고 화랑에 쓰레기를 거져다 놓든, 고장난 자전거를 가져다 놓든, 다리가 하나 없는 책상을 가져다 놓든 미술품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작가가 창작의 자유를 한껏 누린 때가 과거에는 없었도 현재에 와서야 가능하게 되었는데 이를 동시대의 특징으로 꼽은 것입니다.

문제는 평범한 물질도 미술품이 될 수 있다면 미술의 개념이 혼란스러워지지 않겠습니까?
동시대 작품은 자기-지시성, 즉 스스로 미술품임을 증명할 수 있는 의미를 지녀야 합니다.
작가가 작품을 통해 이 점을 밝히지 못하면 비평가가 또는 철학자가 설명을 통해 그 의미를 관람자에게 전달할 때 비로소 미술품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비평가의 역할, 철학자의 역할이 작품을 완성하는 데 한 몫을 한다는 것입니다.

여하튼 단토의 논리는 미래에 대한 청사진이 담겨 있고 이 책을 읽고나면 창작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됩니다.

혹시 읽다가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저에게 질문하시면 되겠습니다.
번역자로서 after service를 할 의무가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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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미술의 만남
고위공 지음 / 미술문화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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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문학과 미술의 만남


<문학과 미술의 만남>은 홍익대학교 문과대학 교수 고위공의 저서입니다.
책을 읽다가 추천할 만하여 소개합니다.
저자는 서울대학 물리과 독문학과와 동대학원 독문학과를 졸업하고 1979년 독일 튀빙엔 대학에서 표현주의 시인 트라클의 서정시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현재 홍익대학 독문학과와 대학원 미학과에서 독일시, 문예학, 해석학, 비교예술론 등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1999년 영국 International Biographical Center에서 "20세기 세계 학술연구업적 수상자"로 선정되었습니다.

문학과 미술은 오래 전부터 만났습니다.
그리고 현재에도 이런 만남은 지속되고 있습니다.
문인과 예술가들은 옛날부터 가까웠고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는 문인이 예술론을 전개하여 미술에 큰 혜택을 주었습니다.
19세기말의 상징주의와 20세기의 중요한 미술운동 입체주의, 미래주의, 다다, 초현실주의 등 이런 운동의 이면에는 문인들의 충고와 이론적 후원이 있었습니다.


고위공은 문학과 미술이라는 광범위한 주제를 다양한 방법으로 조명했는데,
특히 다음 세 가지를 주목하여 이론을 폅니다.

1. 작품의 제재나 주제, 예를 들어 그리스 신화나 신 구약성서는 고대 및 중세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두 예술에 공통된 소재를 제공한다.
중세 성화나 르네상스 문학과 예술이 대표적이다.
또 어떤 자연풍경, 역사적 사건, 사회현상은 시인과 화가 모두에게 서술대상이 된다.
한 작가가 인접 예술의 작품에서 창작의 영감을 얻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상상력이란 모든 예술에 공통된 창조의 원류이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들의 불후의 명화는 후세의 많은 시인들에게 시를 창작하는 동기가 된다.
이와 같은 사실은 예술 상호간의 영향과 수용의 관계를 형성한다.

2. 표현방식과 매체사용에 있어
문학과 미술은 실제의 질료선택이나 제작기법에 있어 차이가 있으나 대상의 예술적 서술이라는 점에서 연관성이 있다.
모방Mimesis의 개념으로 환원하는 시학 원리는 고대 이후 두 예술의 공통성을 설명하는 기초가 된다.
물론 여기에서도 형식과 장르의 차이에 따른 구체적 매체사용의 이질성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3. 예술작품의 해석과 수용에 있어서
문학과 미술은 비록 외형의 현상형식이 다르게 나타난다 하더라도 추구하는 심미적 목표, 기능, 영향은 동일하게 파악될 수 있다.
시인과 화가가 사회와 여론에 대처하는 입장과 태도는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바로 이 점이 고유한 특성을 지닌 예술과 미술가를 통일된 조망에서 바라보게 하는 요인이다.

고위공 교수가 약간 어려운 말을 구사하기 때문에 문장이 난해해보이지만,
내용은 쉽습니다.
쉽다기보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아주 오래된 문학과 미술의 관계를 풀어나간 것은 저자가 코코슈카와 친분이 있는 트라클에 관한 박사학위논문을 썼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문학과 관련이 있는 미술품을 꼽으라면 아주 많습니다.
그러나 상이한 두 예술의 서로 주고받은 영향을 일목요연하게 논리적으로 언급한다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고위공 교수에게 큰 박수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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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과학과 미켈란젤로의 영혼 2
김광우 지음 / 미술문화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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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다음은 Booksetong 1월호에 실린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과학과 미켈란젤로의 영혼>에 관한 서양미술사학자 노성두 씨의 서평입니다.
노성두 씨는 제목을 '황금빛 광채를 닦아낸 르네상스의 맨얼굴'이라고 붙였습니다.
내 책에 호평해주신 노성두 씨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예술가의 경쟁, 또는 라이벌 예술가들의 생산적인 긴장 관계에 관한 기록은 미술의 역사에 차고 넘칠 정도로 풍부하다.
오만 가지 흥미진진한 일화의 가지가 시대와 역사를 넘어 조형예술의 모든 장르마다 뻗어 있어서, 무성한 숲 그늘이 가히 장관을 이루고 있다.
사정이 그런데도 이런 노다지 주제가 좀처럼 다루어지지 않고 있으니, 그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과학과 미켈란젤로의 영혼>은 바로 수천 년 동안 미술의 역사가 가려웠던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책이다.
지금까지, 유명 작가의 모노그래피나 '명화 감상 100장면' 같은 식의 뻔한 책들이 코흘리개 미술 왕초보들을 겨냥한 수박 겉핥기 기획이라면,
이 책은 그야말로 잘 드는 칼로 수박을 턱 쪼개서 시원한 과육을 한 입 버석 씹어먹는 본격 미술사를 위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기회에 쪼잔한 기획들이 싹 자취를 감추고, 좀 성숙한 책들이 쏟아져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글쓴이는 하인리히 뵐플린이 일찍이 르네상스의 3대 거장이라고 이름붙인 이탈리아 미술의 최고봉 가운데 맏형뻘 되는 레오나르도와 미켈란젤로를 한 코에 엮어서 비교한다.
칸도 크다는 생각이 든다.
괴테와 단테 또는 이승만과 박정희를 묶어서 한 입에 땡치려는 심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두 작품, 또는 두 작가를 묶어서 나란히 비교하는 비교 시각의 방법론은 서양미술사에서 하인리히 뵐플린이 처음 소개한 것이다.
가령 르네상스 시대에 지어진 피렌체의 산토 스피리토 교회와 바로크의 얼굴마담 격인 로마의 산타 사비나 교회의 건축 조형적 해결을 비교하면 어떤 것이 어떻게 같고 다른지 한 눈에 파악할 수 있어서 여간 신통하지 않다.
글쓴이는 짖궂은 친구들이 아무리 장난을 걸어도 결코 한 눈을 팔지 않는 모범생처럼 뵐플린의 방법론을 방점 하나 빠드리지 않고 충실하게 따른다.

건축, 조각, 회화의 다방면에 걸쳐 두 거장이 두루 남긴 작품들의 비교는 물론이고,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두 거장의 집안 내력과 어린 시절, 도제시절에 구박받던 일, 예술적 창의와 자연에 대한 입장, 미술 이론과 사상에 이르기까지 마치 르네상스의 두 천재에 홀딱 반한 양다리 스토커처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혹시 전생에 풍산개가 아니었을까 의심스럽다.

경쟁하는 예술가의 소재를 지교 시각의 방법론에 섞었을 때 나타나는 화학 작용이 어느 정도의 폭발력을 지니는지 불안한 사람은 이 책을 넘길 자격이 없다.
적어도 3도 화상은 각오해야 한다.
내상은 더욱 치명적일 수 있어서, 미술사학의 웬만한 초절정 내공이 아니라면 골치 아픈 논의들은 접어두고 그냥 책에 실린 그림만 감상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이 책은 그림들이 꽤 근사하다.
지구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관련 이미지 자료는 거의 망라한 것 같다.
글쓴이의 수고도 박수를 받을 만하지만, "다 퍼 줄게" 식의 막무가내 철학을 한사코 고집하는 출판사의 후덕한 엉덩이 뒷심도 부럽기만 하다.

르네상스는 서양미술의 황금기로 일컬어진다.
레오나르도와 미켈란젤로는 모두 신성한 예술가의 칭호를 누렸다고 한다.
그러나 황금빛 광채를 닦아낸 맨얼굴 그대로의 르네상스와 만나고 싶다면 이 책은 더없이 성실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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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미술 500년 - 모방에서 창조로
김광우 지음 / 미술문화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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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로 쏘아올린 문화의 메카 프랑스


허미경 기자
&raquo; 프랑스미술 500년
김광우 지음. 미술문화 펴냄. 2만원

이탈리아의 레오나르드 다 빈치는 어째서 프랑스에 뼈를 묻었던가. 젊은 피카소는 왜 고향 스페인을 떠나 파리에서 청운의 꿈을 피워올렸던가. 루브르미술관엔 어떻게 해서 그리 많은 남의 나라 미술품들을 소장하게 된 걸까. 이 책은 이런저런 물음에 대한 일종의 대답을 모색한다. 15세기에서 19세기까지 프랑스 미술의 발전사를 들여다봤는데, 르네상스 시절부터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 전쟁 때에 이르기까지 거의 매쪽 들어찬 당대의 그림 사진들과 함께다.
그 유명한 루브르미술관은, 새삼스레 말하자면, 본디 왕들의 궁전이었다. 미술이 정치권력의 우산 아래 자라났던 역사성 탓이다. 프랑수아 1세는 다 빈치라는 대가를 극진히 대접하며 프랑스에 머물게 했다. 나폴레옹은 이탈리아·스페인 등 당시 미술 선진국 출신 대가들의 작품은 물론 세계 각지의 명화 약탈에 골몰했다. 세계의 뭇 걸작들이 루브르미술관에 소장된 이유다. 나쁘게 보면 야만적 문화 침탈이지만 프랑스의 눈으로 보면 문화의 메카로 발돋움하려는 전략이었다. 루브르에 걸린 걸작들은 수많은 프랑스의 화가들에게 ‘모방하면서 창조’하도록 해준 교본이었고, 하여 파리는 세계의 뛰어난 예술가들을 불러들이는 요람이 되었던 것이다.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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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 쉴레, 클림트의 표현주의 The Great Couples 3
김광우 지음 / 미술문화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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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바르트 뭉크를 이해하기 전에

 <뭉크, 쉴레, 클림트의 표현주의>(미술문화) 중에서


앙리 마티스(1869-1954)는 『화가의 노트』(1908)에서 말했다.
“나는 자연을 비굴하게 모사할 생각이 없다. 자연을 해석하여 그것을 회화의 정신에 복종시켜야 한다.”
이 말은 에드바르트 뭉크(1863-1944)의 회화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다.
마티스는 “회화는 결국 표현이다”라고 주장했다.
‘표현’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았더라도 20세기 초에 들어서면 회화는 표현적이어야 한다는 공감이 이루어지게 된다.
로제 비시에르(1888-1964)는 “나의 회화는 나의 인생의 이미지이며, 나의 약점까지도 포함한 나 자신의 모두를 비추는 거울이다”라고 했는데, 이는 “회화는 결국 표현이다”라는 마티스의 말에 대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표현’이란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마티스이지만 표현주의 그림을 마티스에 앞서 그린 사람은 뭉크이다.
그는 빈센트 반 고흐(1853-90), 폴 고갱(1848-1903), 제임스 앙소르(1860-1949) 등과 함께 표현주의의 선구자로 칭송받고 있다.

화가가 관람자를 감화시킴으로써 자신의 감정을 전달해야 한다든다 작품 속에 구현된 감정이나 느낌에 의해 표현성을 띠게 된다는 생각이 19세기 말 다수의 화가들에 의해 일어났다.
그러나 구현의 의미와 방식에 대해서는 화가들마다 달랐다.
뭉크에게 있어 구현의 의미는 그가 26살 때 한 말에서 알 수 있다.

나는 숨 쉬고 느끼고 괴로워하고 사랑하는 사람, 즉 살아 있는 사람을 그릴 것이다. 사람들은 이 직업의 신성함을 이해할 것이며 교회에서처럼 모자를 벗을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있어 구현의 방식은 심리적이고 감정적인 모티프를 강렬하게 다룸으로써 관람자로 하여금 동일한 느낌을 자아내게 하는 것이었다.
뭉크는 일찍부터 사회적 행동과 도덕 및 미술에 대해 새로운 사고방식을 가진 자유분방한 사람들과 교류했으며, 그런 환경이 그로 하여금 인습의 굴레에서 해방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의 회화의 가장 중요한 점은 성의 문제와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것이다.
인간 조건에 대한 그의 회화적 표현은 관람자의 감정에 호소하는 강렬한 힘을 갖고 있다.
이런 호소력이 그를 노르웨이에서 가장 위대한 화가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초기 현대 회화의 발전의 가장 중요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가 독일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그의 회화는 자연히 독일 표현주의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

뭉크처럼 자신의 내면세계에 집착한 화가는 드물 것이다.
그가 외부세계보다 내면세계에 집착하게 된 것은 죽음에 대한 경험과 불안 때문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누이를 잃었으며 자신도 병에 시달렸다.
그는 자신의 가정을 죽음의 가정으로 기억하고 그런 불행을 극복할 수 없었음을 고백했다.
끊임없이 죽음을 의식하고 있었으므로 그런 의식이 그대로 회화에 반영될 수밖에 없었다.

뭉크의 회화는 한마디로 ‘혼의 고백’이다.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혹은 표현하지 않을 수 없는 것들을 고백의 형상들로 창조해내는 것이다.
그것은 개인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현대인의 불안이다.
뭉크의 작품에는 정신적 동요가 대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물론 더 나아가 기억의 형태까지도 변화시키는 요소가 있다.
뭉크의 회화는 전통을 무시한 새로운 양식의 회화이며 표현이 매우 강렬해서 회화가 결국 표현임을 충분히 웅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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