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하사는 어떻게 20살에 해군 부사관이 됐을까?
황영민 지음 / 굿웰스북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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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사는 평범한 한 청년이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겨울 "아들, 해군 군함 타러 가볼래?" 아버지의 이 한마디는 청년의 인생 항로를 바꾼다. 색다르고 멋진 경험이 될 것 같아 흔쾌히 좋다고 대답한 고등학생은 군함의 웅장함에 매료되었고, 정복을 입은 승조원들의 멋진 자태에 온 마음을 뺏겼다. 공부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으나 해군사관학교를 목표로 준비했다 떨어지고, 큰맘 먹고 재수까지 했으나 해사 입시에는 실패하고, 22살의 나이에 장교와 일반 병의 중간 관리자 격인 해군 부사관이 된다. 이후 8년간 부사관으로 근무하며 꽃다운 20대의 청춘을 바다에서 보냈다. 그의 이름은 황영민이다.

 

황영민이 쓴 <김 하사는 어떻게 20살에 해군 부사관이 됐을까?>는 8년의 세월 동안 해군으로 전 세계 바다를 누빈 경험을 바탕으로 '수상함 2년, 잠수함 3년 복무한 해군 부사관이 알려주는 찬란한 환상부터 현실의 장벽까지 해군에 대한 모든 것!'을 전수해 주기 위해 쓰였다. 해사를 준비했으나 입시의 벽을 넘을 수 없었던 그가 해군 정복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없어 차선책으로 부사관을 택하는 진로 선택 과정, 초보 어리바리 하사에서 '믿을맨' 황 중사가 되기까지 그가 겪은 고군분투, 해군 부사관을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전하는 준비 요령과 팁, 부사관으로서의 힘든 복무와 높은 자긍심을 한 권에 빼곡하게 담았다.

그런데 '황 중사는 왜 김 하사를 넣어 긴 제목을 지었을까?'

 

"나는 해군사관학교에 도전해서 실패했다. 재수까지 했으나 그마저도 떨어졌다. 22살에 해군 부사관으로 입대해서 30살에 전역했다. 그리고 대학교 1학년 신입생으로 입학했다. 20살에 해야 할 공부를 무려 10년 후에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31살의 나이에 외국으로 유학 준비를 하며 이렇게 책도 쓰고 있다." - 104쪽

저자는 대학 입학과 해외 생활이라는 또 다른 도전을 위해 작년에 전역을 했지만, 본인의 경험을 나누기 위해 군복을 벗자마자 책을 썼고 '해군부사관취업진로연구소'라는 카페를 운영하며, '황중사TV'도 개설하여 해군 부사관의 길을 걸으려는 사람들에게 아낌없는 도움을 주고 싶어 한다. 그가 아직 현역이었다면 이런 활동을 할 수 없었겠지만, 오히려 전역을 하고 나니 객관적으로 지나간 과거를 되짚어 볼 수 있었으리라. 그 시절 모두 좋은 기억만 있는 건 아니겠지만, 나와서 보니 거기서 배운 모든 것들은 성장의 자양분이 되었던 아름다운 시간이었고,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경험이었다고 힘주어 말한다. 저자의 치열한 20대가 오롯이 담긴 이 책은 해군 부사관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주 타깃이고, 현직 해군 특히 부사관들은 자신들의 생활을 다루었기에 반갑게 볼 수 있는 책이다. 그러나 비단 해군 부사관 희망자가 아니라도 진로를 고민하는 10대 후반의 청소년, 해군 부사관이라는 다른 직업의 세계를 체험해 보고 싶은 모든 독자들이 읽어도 얻는 것이 있으리라 본다. 분명 누구나 읽어볼 만한 책이다.

부사관이 되었지만 그는 자신이 여러 가지로 부족한 면이 많은 사람이었다고 고백한다. 어떤 일이든 배우는 속도도 느리고, 행동도 느린 편이며, 신중한 성격 탓에 빠른 행동과 일 처리를 요구하는 군대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단다. 어느 곳이나 그렇겠지만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 대인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 더군다나 망망대해에서 오랜 기간 항해하는 선상이라는 밀폐된 공간은 불편한 사람을 피할 곳조차 없다.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지만, 부사관 생활은 단지 몸만 써서 생존하는 게 아니다. 끊임없는 평가, 시험, 과제, 훈련 등으로 배우고 익히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곳이다. 오죽하면 저자도 한순간 바다에 빠져 버릴까 하는 극한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대한민국의 당당한 해군 부사관으로 성장하는 과정이 가감 없이 그려져 있어 감동을 준다. 세상에는 큰 성취만 박수를 받아야 하는 건 아니다. 20대의 황영민은 충분히 멋있었다.

그는 해사를 꿈꾸었으나 현실적으로 입시의 높은 벽을 뛰어넘을 수 없었고, 좌절이나 한탄 대신 부사관이라는 차선책을 과감히 선택하여 '돌격 앞으로' 직진했다. 책에 묘사된 그런 어려움이 그의 앞날에 닥쳐 온다는 걸 미리 알았다면 선택에 두려움이 앞설 수도 있었겠으나, 몰랐기에 그만큼 용감하게 부딪치며 나갈 수 있었다.

황영민은 부사관이 되면서 꿈꾸었던 또 다른 희망사항 UDT가 되기 위해 지원하고, 교육대에 입소하는 데까지는 성공하나 교육 과정 중 예상치 못한 부상으로 퇴교하게 되면서 다시 한번 피눈물을 삼킨다. 좌절했다고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니다. 중요한 건 본인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시도하고 최선을 다했단 점이다. 도전하지도 않고 적당히 사는 사람들에 비해 실패하더라도 도전하는 자세는 충분히 성공자의 자질이다. 20대를 바다 위에서 단련한 황영민은 인생에서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성공할 확률이 높다. 최소한 실패를 두려워하거나, 변명을 하진 않을 것이다. 내가 최선을 다했는지는 본인만이 안다.

이 책에서 황영민은 누차 강조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고민만 하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차라리 실수를 통해 배우는 게 100번 낫다고.' 삽질만 하다가 인생 종 친다고? 내가 열심히 땀 흘리며 삽질하는 모습을 누군가는 보기 마련이다.

"무슨 일이든 하고자 하는 사람은 방법을 찾고, 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핑계를 찾는다." - 189쪽

"자신에게 꿈과 확신이 있다면 어떤 것도 장애가 되지 않는다. 가장 큰 장애물은 당신의 마음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자신의 마음에 있는 고정관념과 두려움을 걷어낸다면 인생의 도전에 늦은 때란 없다." - 104쪽

 

부모 세대의 가치관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빠른 변화의 시대를 살면서도, 아직도 대한민국은 전형적인 성공관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SKY를 거쳐 대기업 아니면 안정된 직장으로서 공무원?

고등학교 한 반에서 도대체 SKY 몇 명이나 가나? 나머지 학생들은 모두 잉여인간이란 말인가. 사회인이 되어서 이름만으로 상대방이 아는 회사 명함은 건네줄 때 자신감이 넘치고, 부모도 자랑하기 바쁘다. 이름만으로 알 수 없는 회사는 '뭐 하는 회사'인지 보충 설명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책에서도 예시되지만 큰 기업에 입사한 저자의 친구도 적성이 안 맞아, 기대와는 달라 기업체에서 퇴사한다. 반면 저자는 부사관 인력 채용 대비 평균 30%를 밑돈다는 어려운 바늘구멍을 뚫고 장기복무자로 선발되어 정년까지 보장된 군인 공무원이 되었지만 자신의 뜻에 의해 전역을 택한다. 인생에는 모범답안이 없다. 내가 만들어 가는 길이 정답이라 믿고 가는 수밖에.

인생 힘든 고비를 만날 때마다 많은 이들이 개구멍을 찾거나, 우회로가 없나 주위를 살핀다. 인생은 '정면돌파'만이 답이다.

대학을 가지 않은 젊은 저자들이 자신들의 진로와 경험에 대해서 쓴 <김 하사~> 같은 책이 많이 나오고 널리 읽혔으면 좋겠다. 지나치게 많은 대학은 반드시 구조조정되고, 반드시 대학을 가지 않아도 대졸과 큰 격차가 벌어지지 않는 세상이 하루 속히 오길 바란다. 오히려 일찍 직업 전선에 뛰어들어 큰 성과를 내는 성공 사례가 많아져서 사회의 물줄기가 바뀌길, 이런 작은 물결이 모여 큰 바다를 이루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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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시태그 하노이 & 하롱베이, 사파 - 2021-2022 최신판 #해시태그 트래블
조대현.김경진 지음 / 해시태그(Hashtag)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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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이 한국인들에게 가고 싶은 관광지로 떠오른 계기는 내 기억이 맞는다면 대한항공 하롱베이 CF의 영향이 상당했다. 화면에 비치는 수려한 이미지는 보는 즉시 '저기가 어디야?'하는 탄식을 자아냈다.

이래저래 베트남과 한국은 얽혀있는 관계가 많은 나라이고, 관광의 트렌드는 처음 베트남을 가는 사람은 우선적으로 '하노이 / 하롱베이' 코스를 여행하고, 이후 후에, 다낭, 호이안 같은 중부 지방이 각광을 받다가 코로나를 만났다.

처음으로 베트남 관광을 하려는 사람은 아무래도 '하노이 / 하롱베이' 코스부터 탐방하기 마련인데, 베트남 전문가 조대현과 김경진이 공들여 준비한 <하노이 & 하롱베이, 사파> '2021-2022 최신판'이 해시태그에서 출판되었다. 저자는 이 책 외에도 여러 권의 베트남 관련 여행 가이드북을 낸 바 있어, 신뢰할 만한 베트남 전문가임에는 틀림없다.

<하노이 & 하롱베이, 사파>는 빽빽한 글씨, 한 면에 배치된 여러 장의 작은 사진 등으로 전체적으로 촘촘한 느낌인데, 그만큼 하나라도 더 많은 정보를 독자들에게 전달하려고 하는 정성이 느껴진다. 이런 가이드북이 갖추어야 할 본령인 정보 전달에 지극하다. 다만 가끔가다 보이는 오타라든가 띄어쓰기 오류, 뜬금없이 튀어나오는 존경체는 한 번 정도는 더 교정을 봤으면 싶다.

보통의 여행 가이드북은 일정 부분 그 지역의 기본 정보에 할애하기 마련인데, 이 책은 좀 더 많은 분량이 베트남의 이해에 바쳐진다. <베트남 한 달 살기>라는 같은 출판사, 같은 저자의 다른 책이 있어서인가 '베트남 북부 한 달 살기'에도 상당 부분 분량이 할애되고, 깨알 같은 베트남 여행 Info가 145쪽까지 이어지고 나서야, 본론이라고 할 수 있는 하노이 여행으로 넘어간다. 관광 가이드라면 tmi가 많고 서론이 긴 느낌이지만, 일반적인 가이드북에 비해 베트남 사회 문화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가 가능하다.

당시 회사 업무로 코로나 이전 가장 빈번하게 다녔던 나라는 베트남이었다. 매번 하노이를 기점으로 움직였고, 하롱베이도 몇 번 갔다. 책에 소개된 닌빈에서 보트 투어를 하기도 했고, 배를 정박한 채 하롱베이 바다에서 보낸 1박은 내 생애 가장 평화로운 하룻밤이었다.

<하노이 & 하롱베이, 사파>는 하노이와 하롱베이를 위주로 깟바 섬, 사파, 닌빈, 하이퐁, 퐁냐케방 국립공원까지 다룬다. 제목에 포함된 사파는 하노이 북부의 산악지대로 12개의 소수민족들이 모여 살며 베트남에서 유일하게 눈을 볼 수 있는 곳인데, 관광객들은 산길의 흙을 밟으며 자연으로 돌아가는 트레킹을 주로 한다고.

처음으로 '하노이 / 하롱베이'를 여행하든 빈번하게 여행을 하든 베트남 전문가 조대현, 김경진이 공들여 쓴 <하노이 & 하롱베이, 사파> 한 권이면 충분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독자들이 원하는 관광, 맛집, 숙박에 대한 정보는 기본이고, 그 외 다양하고 세세한 정보까지 총망라되어 있어 가히 '베트남 북부 여행 백과사전'이라 할 만하다. 혹여 다시 하노이 갈 일이 생긴다면, 이 책을 들고 조금은 넉넉한 일정으로 어슬렁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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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차게보단 벅차게 - 전역 후 나 홀로 세계 일주
우승제 지음 / 바른북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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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에 따라 러시아와 남극보다도 춥다는(!) 강원도 철원의 백골 부대에서 군 복무를 마치고 2017년 2월 11일 자로 만기 제대한 우승제 병장은 복무 기간 중에도 여행의 꿈을 만지작거리며 키워 '전역 후 나 홀로 세계 일주'에 도전한다. 많은 여행기 중에서 저자의 시선을 사로잡고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은 청춘유리의 <오늘은 이 바람만 느껴줘>였다고 하는데, 저자는 대부분 여행기가 여성들에 의해서 쓰였다는 사실에 의아해하기도 한다. 남성 작가들도 물론 여행기를 내지만, 아무래도 말랑말랑한 '갬성'이라든가 인스타에 올리기 좋은 팬시한 사진, 맛난 거 먹고 물 좋은 카페 가는 다소 트렌디한 여행이 대다수 독자들을 대리만족시키기 때문 아닌가 싶다.

아직 군기가 빠지지 않은 '진짜 사나이'(♩♪♬) 우승제는 치밀한 계획이나 넉넉한 예산과는 처음부터 거리가 있다. '안 되면 되게 하라!' 남아 있는 군인정신 '맨주먹 붉은 피'로 '어떻게든 되겠지 뭐' 자세로 세계 일주에 도전한다. 무모하게, 투박하게, 절실하게, 그리고 숨차게보단 벅차게!

"그때부터 막연하게 책을 낸다면 '스펙 싸움으로 치열하고 바쁘게 살기보단 가슴 벅찬 하루하루를 보내자'라는 뜻으로 <숨차게보단 벅차게>라고 짓자 마음먹게 되었어요." - 바른북스 저자 인터뷰 중에서

이 책의 출간 역시 맨땅에 헤딩하는 정신으로 여러 군데 출판사 문을 두드린 결과라고 한다.

대부분 여행기의 구성은 이렇다.

여행의 흥분과 설렘이 표현되고, 좋았던 기억과 감동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다가 생각지 못한 암초를 만나 삽질하는 내용이 반드시 포함된다. 눈앞에 펼쳐진 멋진 광경을 열심히 사진으로 남기지만 그보다 강한 기억은 대부분 거기서 만난 사람들로 인해 생긴다. 길 위에서는 안 좋은 인간들도 만나지만, 예기치 못한 환대에 감동의 눈물 한 방울을 흘리며 '언젠가는 받은 만큼 돌려줘야겠다' 다짐한다.

<숨차게보단 벅차게>도 구성에 있어서는 이 패턴에서 크게 다르지 않지만, 책의 후반부 '여행을 가보지 않은 자, 여행을 한 번만 다녀온 자, 장기 여행자'로 대상을 구분해서 여행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인터뷰가 실려 있다. 일반적인 내용이라 굳이 왜 넣었나 모르겠고, 단행본에서 이 정도 분량을 잡아먹을 콘텐츠는 아니라고 본다.

저자에겐 근래 보기 드문 헝그리 정신이 있다. 바늘 하나 들어가지 않을 만큼 빡빡한 계획보다는 직접 부딪쳐서 해결을 보는 스타일이고, 애당초 넉넉한 여비를 들고 여행을 시작하지 않았다. 우승제의 여행은 엄밀한 의미에서 세계 일주는 아니고, "대부분 유럽 여행 + 산티아고 순례길 + 호주 워킹홀리데이 + 일부 아시아 여행" 정도로 볼 수 있겠다. 그는 아직 젊고 여행의 갈망이 강하니 아마 코로나가 종식되면 책에 밝힌 바대로 터키와 남미, 네팔 히말라야 트래킹에 도전할 거고, 머지않은 시일 내에 세계 일주는 완성되리라 예상되며 또 다른 여행기로 우리 앞에 나타날 확률이 높다.

 

여행의 출발 무슨 원대한 목표가 있어 런던을 택한 건 아니다. 단지 2017년 9월 11일 출발하는 날 가장 싼 곳이 런던이었기에 일단 시작을 런던으로 정했고, 그나마 도착해서 숙소 예약 바우처를 보니 도착일이 아닌 그다음 날로 예약이 되어 있어 잘 곳이 없었단다. 출발을 이렇게 하는 식이니 계획성과는 태평양만큼이나 거리가 있는데, '원래 계획 없이, 하염없이, 발길 닿는 대로 거니는 여유로운 여행을 좋아하는' 타입이라고 고백하는 인물이다.

터키로 행선지를 잡았지만 비행깃값이 너무 비싸 고민하던 중 손님으로 왔던 아는 형의 연락으로 모로코 사하라 사막에 동행하고, 순례길 일정이 끝나자 일행들은 모두 각자 계획한 다음 행선지로 떠나지만 저자는 '다시 어딘가로 떠나야 했기에 휴대폰을 꺼내 들어 목적지를 찾기 시작'하고, 꿈꿨던 크로아티아 여행을 마치곤 제일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슬로베니아로 향한다. 적응력과 즉흥성에 있어서는 진짜 갑이다. 놀라운 건 물가 비싼 일본에서 남은 돈이 8만 원뿐이었을 때, "돈이 없으니 일본으로 와서 밥을 사 달라"라는 농담 반 진담 반 문자에 호응해서 이틀 뒤 도쿄로 온 친구가 진짜 있었단 사실이다. 역시 친구를 보면 친구를 안다.

이 책에도 목표했던 곳을 방문했을 때의 감격과 흥분이 생생히 전달되는 순간이 있다. '여행의 성취'라고나 할까. 두브로브니크의 구시가지, 부다페스트의 야경, 그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사하라 사막의 장관(저자에겐 그간 다닌 여행지 중 가장 좋은 곳은 단연코 '모로코'라고), 사랑스러운 도시 류블랴나를 가진 슬Love니아... 여기에 고마운 인연들의 미담도 당연히 추가되지만.

그러나 정작 우승제의 여행기에서 기억에 남는 내용은 개고생한 이야기들이다. 워낙 이런 내용이 다른 여행기에 비해 많기도 하거니와 '여행의 성취'보다 저자는 이 부분 묘사에 강점이 있는 듯하다.

보통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순례자들은 조금이라도 무게를 줄이기에 평균 배낭 무게는 6~8kg이라는데, 세계 일주 중에 (아마도 즉흥적으로) 결정된 순례길이기에 저자의 배낭은 18kg. 세상에나, 그걸 메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다고? 이게 순례야 완전군장 행군이야. 혹시 저자는 군대 행군의 기억을 되살리고 싶었던 걸까! 저자는 무소의 뿔처럼 그렇게 묵묵하게 순례길을 걷는다.

유럽 배낭 여행족이라면 누구나 피해 갈 수 없는 함정, 소매치기를 당해 저자 역시 카드를 분실한다. 이후 여행은 보이는 한국인들에게 은행 어플로 먼저 계좌이체를 하고 atm에서 인출해 현금을 받는 식으로 여행을 지속했다는데 이 역시 아무나 도전해선 살아남지 못할 비기(秘器)다. 길에서 개한테 물리기도 하고, 먹은 음식이 잘못돼서 며칠 고생하고, 돈이 떨어지면 일을 해야 하고 일하다가 익숙하지 않은 언어로 실수를 연발하고, 호주에선 질이 안 좋은 한국인들에게 호되게 당하고... 그렇게 해도 자금 사정상 하루 끼니는 1~2번 아니면 굶는 날이 태반이었고, 탄산을 먹으면 잠시나마 배부르니 콜라 1.5L로 이틀을 버티기도 했단다. 가슴이 벅차기보단 숨이 차온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 될 것 같다며 설레며 살아가거나, 당연한 일이라 여기며 무미건조하게 살아가거나, 나는 되도록이면 전자 같은 삶의 태도를 견지하려 한다." - 123쪽

낭만적이라기보다는 현실적이고 투박한 여행기다. 어떤 독자들은 '뭐, 이렇게까지 해서 장기간 해외여행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마저 들 수 있겠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맛을 알고, 짝퉁의 판단은 명품을 잘 아는 자만이 익숙하다. 싸구려 숙소에서 아무리 베드버그에 시달려도, 밥 대신 콜라로 끼니를 때워도, 저가 비행기로 오랜 시간 불편한 비행을 해도 여행의 마력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2017.09.11 - 2019.11.28

중단 없이 여행을 한 건 아닌 걸로 보이지만, 책의 안쪽 날개에 표시된 저자의 여행 기간이다. 이 기간 동안 눈에 담은 풍경, 평범한 한국의 일상과는 다른 시간들, 길에서 만난 인연, 좌충우돌한 경험, 보고 들은 모든 기억은 저자 평생의 자양분으로 저장될 거다. 보통 여행기에서 기대하는 센티멘털한 감성은 아니지만, <숨차게보단 벅차게>는 군복 기운이 아직 덜 빠진 거칠고 격한, 그래서 귀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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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페션 - 두 개의 고백 하나의 진실
제시 버튼 지음, 이나경 옮김 / 비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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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갤러리에서 봄직한 토끼 그림 표지가 눈길을 끄는 <컨페션>은 제시 버튼의 세 번째 장편소설이다.

「엄마의 부재로 고통받은 로즈는 서른을 훌쩍 넘긴 어느 날 아빠로부터 놀라운 정보를 듣게 된다. 단 두 편의 소설로 거의 레전드 반열에 오른 콘스턴스 홀든(코니)이 엄마의 애인이었으며 사라진 엄마의 비밀을 알만한 유일한 사람이라는걸. 로즈는 의도와 우연이 겹쳐 코니에게 접근하게 되는데, 과연 로즈의 엄마 엘리스에게는 무슨 사연이 있었던 걸까?」

두 개의 시간대에서 이야기는 평행선으로 전개된다. 하나는 2017년 이후 현재의 로즈를 따라가고, 다른 하나는 1980년대 과거의 엘리스를 따라간다. 두 이야기의 교집합은 유명 작가 코니다. 결국 '엘리스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를 추적하는 미스터리 구조를 취하고 있기에, 500쪽이 넘는 벽돌 분량이지만 페이지 넘기는 속도는 빠르다.

중요한 건 '엘리스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라는 소설의 동력은 일종의 맥거핀이란 사실이다. 코니의 입으로 어느 정도 사실이 밝혀지지만, 최종적으로 물음표가 지워지진 않는다. 병렬된 두 개의 이야기로 보이지만, 결국 <컨페션>은 '로즈의 자아 찾기'였던 셈이다.

"로즈. 당신이 정말 엘리스를 찾고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한 발자국 물러섰다. "엄마를 찾고 있었어요."

코니는 고개를 저었다. "어떤 개념을 찾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자기 자신을 찾고 있었던 거죠." - 482쪽

로즈에게 '엄마'는 이게 선결되지 않으면 인생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어려운, 반드시 해결돼야 할 화두였다. 그래서 해결의 실마리, 코니의 존재를 알았을 때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부딪쳐서 해법을 찾아야만 했다. 로즈가 흘리는 고통의 눈물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더욱 단단해져서 인생의 다음 항로를 준비하는 로즈의 모습이 눈부시다.


제시 버튼의 재능이 다시금 빛난다.

섬세한 심리 묘사가 뛰어나고, 페미니즘 성향이 보이지만 여성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능력이 새삼 돋보인다. 특히 생생한 캐릭터 구축은 동시대의 작가들 중 선두주자가 아닌가 싶다. 엘리스, 로즈, 코니 3명의 주연 외에 켈리, 조이, 바버라, 욜란다까지 모두 펄떡펄떡 살아 숨 쉰다. 탁월한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은 단 세 편이지만 의심의 여지가 없다. 향후에 나올 작품도 제시 버튼의 이름은 믿고 고를만하다.

일단 작가의 손을 떠난 작품은 독자들 몫이라고 한다. <컨페션>을 읽고 나서도 독서모임의 합평이 가능할 만큼 풍성한 이야깃거리가 있을 거다. 두 개의 시간대별로 각기 다른 여성의 사회적 위상, 엘리스의 심리 분석, 엘리스의 현재...

내세울 것 하나 없고, 남들 눈에는 하찮게 보이는 인생일지라도 자신의 인생에서만큼은 누구나 주연이다. <컨페션>은 자기 인생에서 주연 자리를 찾아가는 매혹적인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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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독서법 - 당장 실천 가능한 세상 심플한 독서 노하우
최수민 지음 / 델피노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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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 / 일독일행 / 군대에서 하는 미라클} OOO.

모두 이 책에서 언급되는 앞의 단어 세 개에 공통적으로 이어지는 세 글자는 무엇일까?

정답은 바로 '독서법'이다. <일독일행 독서법>, <군대에서 하는 미라클 독서법>... 모두 출간된 저서다.

세상에는 독자들을 독서의 바다로 권면하는 수많은 '독서법'이 출간되어 있다. 이번에는 최수민의 <목차 독서법>이다.

 

독서가 왜 좋은지는 누구나 다 안다. 인간이 하는 다양한 행위 중에서 독서는 바람직한, 권장할 만한 행동으로 인정받는다. 왕년에 학교 다닐 때 취미란에 독서라고 의례 한 번쯤은 적은 기억이 있지 않던가?

책 좋아하고 책을 가까이하면 당연히 더 많은 책을 읽는 다독의 길로 접어든다. 어느 순간 독서 애호가들은 딜레마에 빠진다. 그렇게 많은 양서를 읽었음에도 조금 지나면 별로 기억에 남지 않을뿐더러, 독서로 인해 정작 본인의 삶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그다지 변화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빠지기 십상이다. 이렇게나 많은 성공, 자기계발에 관한 책을 읽었건만 왜 아직도 이 모양 이 꼴인 거지?

독서가들의 바램은 책을 읽으면 알파고만큼은 아니어도 책 내용이 오래 기억돼서 필요하면 다시 끄집어낼 수 있고, 책에서 영향받은 긍정적인 피드백이 모여서 어제 보다 나은 내가 되는 플러스 효과를 바란다. 책의 생명력은 오래갔으면 좋겠고, 실생활에서 활용도는 높았으면 하고 바란다.

최수민 저자도 아마 비슷한 고민을 했던 모양이다. 우연한 기회에 목차를 적기 시작했는데 그게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서 자신만의 '목차 독서법'으로 완성되었다.

'목차 독서법'은 책의 앞부분에 나와 있는 목차를 별도 노트에다 옮겨 적는 게 핵심이다. 여백이 있으면 기억해 둘 중요한 내용을 메모 형식으로 적어도 좋고, 책 내용을 한 줄로 표현해 놓는다면 금상첨화다. 이렇게 목차가 한 권 한 권 쌓이면 보다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목차 노트 자체의 목차가 필요하다.

일목요연한 목차는 책의 핵심이요 기본 설계도다. 저자가 한 권의 책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대/중/소 분류에 의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는 게 바로 목차고, 목차는 책의 나침반 역할을 한다. 목차의 순서, 대/소 분류만 잘 봐도 어느 정도 저자의 의도가 읽힌다. 또한 본문 내용의 핵심을 요약해서 한 줄로 만든 게 바로 크고 작은 목차의 제목이니, 책의 뼈대라고 할 수 있으리라.

나 역시 새로운 책을 접할 때 우선적으로 목차를 매우 유심히 읽는다. 처음으로 책과 눈을 맞추는 단계이며, 많은 책을 읽다 보니 이젠 목차만 봐도 대략적으로 이 책이 좋은 책인지, 어느 정도 심혈을 기울인 역작인지 판단이 서기도 한다.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신간이 경쟁하는 출판계에서 알려진 저자가 아니라면, 무조건 책 제목이 중요하다. 제목에 끌려 책을 펼치면 가장 먼저 접하는 부분이 바로 목차다. 목차의 중요성과 효용 가치는 굳이 자꾸 반복해서 강조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 보니 목차만 모아서 별도 노트에 정리하는 습관은 그 책의 정수를 내 것으로 하는 필살의 노하우라는 게 최수민의 주장이다. 목차 노트에 적힌 목차만 다시 봐도 그 책의 기억이 다시 소환될 수 있으며, 개별 목차를 통해 다시금 필요한 부분으로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발췌독이 가능하다는 것도 '목차 독서법'의 강력한 효능이다. 저자는 읽은 책은 물론, 읽지 않은 책이라도 목차를 정리하길 권한다. 서점에 가서든, 인터넷 서점에서 관심 가는 책을 만나든.

 

"목차를 읽으며 노트에 적고 적은 내용을 이해하고

그 내용의 핵심을 기록한다면,

비록 책의 일부분이지만 그 내용은

우리에게 정확하고 명확한 의미를 줄 수 있다." - 66쪽

 

'목차 독서법'이 좋다는 건 잘 알겠다. 충분히 시도해 볼 만한 독서법이다. 그러나 여기서 귀차니즘이라는 악마의 유혹을 만난다. 구태여 그걸 노트에다 필사할 필요가 있을까? <목차 독서법>에도 나와 있듯 컴퓨터에 문서로 입력해 놓으면 안 되나, 사진을 찍으면 간단한데, 인터넷 서점에서도 충분히 목차 정도는 확인이 가능한데...

쉽게 얻는 건 그만한 가치가 없는 법이다. 이렇게 쉬운 방법과 내 손으로 한 글자 한 글자 필사한 목차 노트의 가치가 분명 같을 수는 없다. <필사 독서법>이란 책도 있고, '쓰기'의 막강한 힘은 이미 검증받은 바 있다. 간절히 원하는 바를 종이에 쓰면 이루어진다잖나. 저자는 '독서가 읽기'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본문 내용은 '목차 독서법'을 저자가 개발하게 된 계기, 필요한 이유, 차별성, 방법 등으로 꾸려져 있다. 후반부로 갈수록 '목차 독서법'의 효과를 강조하는 내용이 중언부언되는 느낌은 좀 아쉬웠다. 효과, 필요성, 가치가 도돌이표처럼 반복된다. 상대적으로 소설로 대표되는 문학은 '목차 독서법'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점도 마음에 걸린다.

결정적으로 '목차 독서법'을 글로만 설명하고, 예시가 전혀 없단 점은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목차를 실제로 적는 방법도 한 장에 책 한 권의 목차를 적는 등 몇 가지 방법이 있다는데... 목차 적기도 가로 혹은 세로로 적을 수 있고 저자는 세로 적기를 선호한다는데... 목차 노트에 목차를 적으면 어떻게 보이는지, 여백에 핵심 내용을 표시하면 어찌 되는지... 4장 '목차 독서법 하는 방법'에는 이런 사례들이 그림 혹은 사진으로 예시되었으면 훨씬 입체적이고, 이해도도 올릴 수 있는 편집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냥 그렇겠네' 하고 상상하는 것과 실제 눈으로 보는 '목차 독서법'은 분명 차이가 있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은 데는 어떤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일개 독자로서 아쉬웠다. 요즘은 블로그에 올리는 서평에도 많은 이들이 사진도 올리고, 심지어 동영상도 첨부하는 시대 아니던가.

 

해보지 않았으면 '좋다 나쁘다' 말하지 말자. 최수민 저자를 믿고 일단 '목차 독서법'을 일정 기간 실행해 보자. 해보고 본인과 궁합이 안 맞으면 그만일 터. '목차 독서법'으로 독서력을 올리고, 읽은 책들의 활용 가능성을 높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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