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비즈니스의 모든 것 - 디지털 뉴노멀 시대를 지배하는
마이클 쿠수마노.데이비드 요피.애너벨 가우어 지음, 오수원 옮김 / 부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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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배달'하면 가장 처음 떠오르는 이미지는 아마 철가방, 짜장면... 이런 정도일 거다.

배달은 필요하긴 하지만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일거리였고, 디지털하고는 은하수만큼 먼 아날로그 3D 직종 아니던가. 그런 낙후된 영역이 특별한 사업이 되리라고는 대부분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했다.

배달을 플랫폼화(化) 시키자 그 사업성은 놀라웠다. 김봉진 의장이 창업한 배달의 민족은 신화가 됐다.

창업 이래 한 번도 적자를 벗어나지 못한 쿠팡은 뉴욕 증시 상장으로 만루홈런을 쳤다.

 

(디지털 뉴노멀 시대를 지배하는) <플랫폼 비즈니스의 모든 것>!(원제 THE BUSINESS OF PLATFORMS : Strategy in the Age of Digital Competition, Innovation, and Power)

보통 제목에 '~의 모든 것' 이렇게 들어가면 이름값을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 책은 다르다.

플랫폼 기업에 대해 30여 년간 연구해온 3인의 '전문가' 교수들이 그간의 결과물을 고농축으로 한 권의 책에 담았다. 다소 학문적인 이론도 일부 나오지만, 대부분은 우리가 익히 들어본 기업들의 실제 사례를 통해 업계의 흥망성쇠를 역동적으로 소개하는지라 지루하지 않게 페이지는 넘어간다. '플랫폼'의 이름을 달고 나온 무수히 많은 도서 중에서 가장 먼저 만나야 할 책이다.

본문 내용을 살펴보자.

플랫폼, 플랫폼 하는데 과연 '플랫폼 사고'는 어떤 것인가(1장), 플랫폼의 위력을 설명할 때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네트워크 효과와 위협 요소인 멀티호밍(2장), 플랫폼 생태계 구축을 위한 4단계 기본 전략(3장), '실패에서 배운다' 알려진 플랫폼 기업들의 실패 사례(4장), 전통 기업이 플랫폼 시대에 적응하고 살아남는 법(5장), 영향력이 커진 만큼 비례해서 커지는 사회적 책임 '플랫폼 거버넌스'(6장), 향후 10년을 지배할 플랫폼의 미래(7장)로 플랫폼 비즈니스의 과거, 현재, 미래를 분석, 예측한다. 불필요한 내용, 군더더기가 일절 없고 내용은 알차고 충실하며 현실감이 넘친다. 현장에서 수많은 기업 컨설팅을 수행한 저자들은 이론뿐 아니라 실무적인 접근에도 능하다. 여기다 2장부터는 장의 말미에 핵심을 정리한 '플랫폼 비즈니스 솔루션'으로 방점을 찍는다.

<플랫폼 비즈니스의 모든 것>이란 제목에 부끄럽지 않은 명쾌한 책이다. 고수의 숨결이 느껴진다.

 

기업의 생존 경쟁은 전쟁이나 다름없다. 살인을 하면 기껏해야 한 명을 죽이는 결과지만, 피도 눈물도 없는 기업 간 경쟁에서 패하면 근로자와 그 가족들은 사지에 몰릴 수도 있다.

누구나 플랫폼, 플랫폼 하지만 이 또한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고, 모든 기업이 승리자가 될 수 없다는 건 자명하다.

"그러나 시장을 디지털 기술로 플랫폼화한다고 해서 반드시 사업의 근간이 바뀌거나 업계 관련 상식과 지식이 낡은 것이 되지는 않는다." - 102쪽

그러나 현실에 안주하면 이는 곧 죽음이다. 그래서 전통 기업들도 플랫폼 시대에 어떻게든 적응해야 한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싶어 하는 '늙은 개 Old Dogs'를 위한 전략으로 3가지를 밝혀 놓았다. 플랫폼을 구축하거나, 기존의 플랫폼을 사들이거나, 플랫폼에 속하는 것이다." - 63~64쪽

MS는 자사 윈도우를 설치하면서 자동으로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기본으로 깔았다. 그러니 초창기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보이던 넷스케이프는 경쟁이 될 수 없었고, 얼마 되지 않아 익스플로러의 시장 점유율은 95%에 달했다. 그랬던 MS는 적수가 없다고 자만하다가 구글을 등에 업은 크롬을 만나, 웹브라우저 시장에서 '익스플로러는 지는 해, 크롬은 뜨는 해'가 된다.

잘 기억도 나지 않지만 MS도 윈도폰이란 스마트폰을 출시하고 시장에 참전한 적이 있었으나 결국 완패하고 만다. 여기서 우린 '플랫폼 시장의 승자는 대체로 최상의 상품이 아니라 최상의 플랫폼'이라는 플랫폼 경쟁의 핵심 원리를 알 수 있다. 구글 안드로이드는 이미 생태계를 만든 상태였고, '애플빠'로 표현되는 충성스러운 고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고부가 가치 전략을 구사하는 애플은 스마트폰으로 얻는 세계 전체 이윤 중 90%를 가져간다.

이런 흥미로운 사례가 수두룩하다. 거기다 최근 페이스북 사례에서 보듯 플랫폼 기업의 힘이 커지면서, 공정성 문제에 민감해지는 트렌디한 내용도 6장에서 빠짐없이 다루고 있다.

 

관련 기업에 종사하거나, 사업 차원에서 플랫폼 활용을 고민하는 개인은 물론, 플랫폼 기업을 통하지 않고서는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도 이 책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순 없다. 플랫폼 비즈니스에 대한 인사이트를 가지게 해주는 고마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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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 - 최고의 나를 이끌어내는 부의 심리학
롭 무어 지음, 이진원 옮김 / 다산북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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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끌'이니 '벼락거지'니 돈에 민감한 시대다 보니, 어떻게 하면 보통 사람들도 부자가 될 수 있는지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진다. 서점가에서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부자의 속성에 대해서 잘 알고, 지름길로 안내하겠다는 '머니 멘토'들의 서적들이 큰 인기를 얻고 있고 있는데, 영국 출신의 젊은 백만장자 롭 무어는 최근 떠오르는 부자 구루 중 한 명이다. 그의 전작들인 <레버리지>, <머니>, <결단>은 국내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고, 이번에 소개되는 신작 <확신>의 부제는 "최고의 나를 이끌어내는 부의 심리학"이다. 이 책의 처음과 끝은 '자존감'이란 단어로 설명된다. 원제는 <I'M WORTH MORE>인데,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가치가 있고, 더 강하고, 대접받을 만한 인물이다' 뭐 이런 의미일 거다.

"당신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사람이며, 지금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는 것을 확신한다." - P 274

이 문장이 <확신>이란 책의 핵심 주제라고 판단된다.

"이 책은 15년 동안 수십만 명에게 꾸준히 받아왔던 질문, 즉 자신의 가치를 어떻게 깨닫고 잠재력을 어떻게 발휘할 수 있는지에 관한 답이다." - P 8

롭 무어가 <확신>을 쓴 집필 동기다.

이 책은 시종일관 자신감, 자긍심, 자기애, 자존감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굳이 '현대는 자기 PR의 시대'란 화두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본인 스스로 자신을 아끼고, 존중하는 마음이 없다면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나를 소중히 여기고, 가지고 있는 장점을 최대화하면 불가능은 없다는 게 롭 무어의 따뜻한 조언이자, 본인의 경험담이다. 이건 근자감이나 자뻑하고는 궤를 달리한다.

'나는 가진 것도 없고, 특별히 똑똑하지 않은데...' 대부분 이런 사고방식에 젖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지 않나? 하지만 저자는 책에 소개한 수많은 사례를 통해 '평범함'이 '비범함'으로, 별거 아닌 아이디어가 커다란 사업 성공 아이템으로 변한 성공담, 인생역전의 스토리를 전하면서 독자들을 고무시킨다.

'에이, 뭐 그런 건 다 소수의 특별한 경우 아닌가?'라고 딴지를 건다 하더라도 그것 역시 독자의 선택이다. <확신>에서 어떤 부분을 취사선택하는가는 당신의 확신에 달렸다. 제발 기억하자, I'M WORTH MORE!

"당신은 누구의 인정도 필요없다. 당신 자신만 인정해주면 된다. 당신에게는 타인의 사랑이 아니라 당신 자신의 사랑이 필요하다." - P 113

경제적인 부를 이루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기 위해서 기본 마인드를 재고(再考) 하길 독려하는 <확신>은 자기계발을 위한 심리학 서적에 가깝다.

자기 가치를 스스로 저평가하지 말고, 안 좋은 과거의 기억에서는 벗어나고, 타인의 평가에 지나치게 일희일비하지 말고, 자신의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 평정심을 갖고, '나는 무슨 일이든 이루어낼 수 있다'라는 강한 자기 확신을 강철같이 견지하고, 평생 돈에 대해 배우려는 겸손한 학생으로 남는데 전념할지어다.

"당신은 돈을 벌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라고 배우지만, 실은 돈이 당신을 위해 열심히 일하도록 해야 한다." - P 330

롭 무어는 자존감을 성공을 위한 확신으로 바꾸는 6가지 원칙을 제시하는데, 제6원칙에서 드디어 독자들이 알고 싶어 하는 '부의 창출 공식'을 선보인다.

 

"부 Wealth = (가치 Value + 공정한 교환 Fair Exchange) * 레버리지 Leverage

W = (V + FE)*L" - P 306

간단하면서도 폐부를 찌르는 '부의 창출 공식'인데, 자세한 내용은 책에서 확인하길 바란다.

"당신이 열정을 존중하고, 열정을 직업으로 바꾸고, 시장에 봉사하고, 부의 창출 공식을 이루는 요소들인 가치, 공정한 교환, 레버리지 사이에 균형을 맞출 때 돈의 연금술사가 된다." - P 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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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숍
레이철 조이스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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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듣기 시작했을 때, 유통되는 매체는 레코드판과 카세트테이프였더랬다. 세월이 흐르고 결혼을 할 무렵 레코드는 수백 장에 달했는데, 신혼살림 규모에 처치 곤란한 지경에 이르렀고, 이미 시장의 흐름은 LP가 아닌 CD의 시대였다. 턴테이블에 음반을 올리고 듣는다는 건 구석기 시대의 유물처럼 돼버렸고, 아무래도 레코드를 감상하려면 공간을 많이 차지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 필요했고, 모은 레코드 역시 적잖은 공간이 필요했다. 시대의 흐름에 반항하느라 레코드와 CD로 동시에 신보가 발매돼도 한동안 CD를 사지 않고 레코드를 사며 버티기도 했으나, 결국 와이프의 잔소리와 물리적인 공간의 문제, 장강의 뒷물결에 떠밀려 몇 백 장의 레코드는 처분할 수밖에 없었다.

예전만큼은 아니라도 음악을 좋아하는 습성이 변한 건 아니어서 CD 컬렉션 역시 빠른 속도로 많이 늘었다. 다만 CD는 부담스러운 오디오 시스템이 아니라도 컴퓨터에서도 아쉬운 대로 들을 수 있고, 모은 CD 역시 레코드에 비하면 그다지 큰 공간이 필요하진 않다. 다만 과거 레코드로 샀던 추억의 명반들이 하나 둘 CD 수납장에 재등장하게 되었고, 이산가족을 다시 만난 소회에 젖기도 했다. 사라질 듯 여겨졌던 레코드는 끈질기게 소수의 음악팬들에 의해 명맥을 유지했고, 피지컬 CD는 아이돌 문화의 기념품같이 변한 디지털 시대에 오히려 레코드는 부활했다. CD의 존재감은 사라지고 레코드는 복권되는 시대, 명반이 복원돼도 CD가 아닌 레코드로 재발매되는 시대. 지난 세월 도대체 난 뭘 한 거지?

영국 작가 레이철 조이스의 2017년작 <뮤직숍>은 지나간 나의 음악 여정(!)을 반추하게 만든다.

쇠락한 동네에서 전혀 장사가 될 거 같지 않은 레코드 가게를 운영하는 프랭크가 소설의 주인공이다. 자개 옷장을 개조한 청음실을 구비하고, 오로지 레코드만을 취급하지만 소설의 대부분 사건이 벌어지는 1988년은 CD가 위세를 떨치기 시작하는 시기로 레코드는 애물단지가 되고 음반사들은 떠오르는 신세기 아이템 CD 판매에만 관심이 있다. 어린 시절부터 홀어머니 밑에서 LP 판을 아버지 삼아 자란 프랭크는 사랑에도 실패하고 오로지 음악에 기대어 세상을 사는데, 가게에 들른 고객들의 고민을 들어주다 적합한 음반을 추천하는 게 이곳의 자연스런 영업 방식이다. 그의 선구안은 소원한 부부 관계를 회복시키고, 불가능한 대출을 가능하게 만드는 신묘한 경지다.

시대의 변화에 아랑곳하지 않고 레코드 순혈주의를 고수하고, 개발의 떡고물에 흔들리지 않는 유니티스트리트 사람들은 아날로그 정서에 가치를 버리지 않는 희귀종이지만 서로가 서로를 지키는 깊은 연대감을 보여준다. 이 동네에 일사 브로우크만이라는 독일 이름을 가진 이방인이 등장한다. 그녀는 왜 늘 장갑을 끼고 절대 벗지 않을까?

우리는 지나치게 많은 연애담을 봐왔다. 소설로, 드라마로, 영화로...

남녀 주인공은 뭔가 그늘이 있고 사연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첫눈에 반하지만 과거의 무언가가 발목을 잡고 일단 위기가 닥친다. 우회로를 거치지만 결국엔 해피엔딩!

이러한 로맨스 작법은 <뮤직숍>의 주인공인 프랭크와 일사의 러브 라인에서도 충실히 재현된다.

레코드 가게를 배경으로 하는 닉 혼비의 <하이 피델리티>를 떠오르게 하는 이 소설의 진짜 주인공은 음악 그 자체다. 과거나 현재나 프랭크는 음악의 세계에서 살고, 거기서만 존재 가치가 있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음악을 편애할 리가 없다. 클래식부터 펑크, 소울, 록, 재즈 모든 장르를 아우르고 리스트는 비발디, 제플린, 10CC, 아레사 프랭클린, 섹스 피스톨스 등 방대하다.

프랭크의 가게는 장르별, ABC 순이 아닌 '정서와 뿌리가 같은 음악들'로 느슨하게 배열되어 있단다. 그런 장관을 현실의 음반 가게에서도 볼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프랭크는 일사에게 음반이 들어 있는 가방을 건넸다. 《월광 소나타》와 마일스 데이비스의 《카인드 오브 블루》, 비치 보이스의 《펫 사운즈》앨범이 들어있었다." - P 194

더블 앨범처럼 소설은 ABCD 네 개의 면으로 구성됐다. C면을 읽고 D면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21년의 세월이 필요하다. 그러나 소설의 엔딩은 강산이 두 번 바뀌는 기다림을 보상하고도 남는다. 나로서는 전혀 예측하지 못한 황홀경이었는데, 장면이 머릿속에서 그려지면서 음악을 잃어버린 프랭크에게 감정이입이 되다 보니...!


음악의 광대한 바다에 빠졌던 청춘기를 거친 독자라면 간만에 만나는 '음악의, 음악에 의한, 음악을 위한' 소설이다. 스트리밍의 시대에도 굳건히 레코드를 지킨 분들이라면 만족할 만한 소설이요, 영화 제작자라면 판권 확보가 시급한 작품이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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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메다의 나무들
장수정 지음 / 로에스미디어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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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숲해설가로 일하는 장수정이 쓴 수필집으로 2013년부터 2018년에 걸쳐 매달 한 편씩 신문에 기고한 숲 에세이들을 발표순으로 엮었다.

기승전'숲'이라고나 할까. 춘천이 고향인 저자는 세상 모든 일을 숲의 생태계에 대입해서 생각하는 사고를 지닌 듯하다. 숲을 구성하는 다양한 동·식물, 나무, 곤충들이 그녀의 한없는 애정에 힘입어 글 속에서 생명을 얻는다. 글로 만나는 자연도감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인데, 일반인들은 구분하기도 힘들고, 접하기도 어려운, 설사 접한다 하더라도 그런 아름다운 이름이 붙어 있는지 모를 생명체들이 끝없이 소환되고 에세이의 주인이 되며, 저자의 감정이입의 대상이 된다.

귀룽나무, 쑥버무리, 사스래, 애기똥풀, 풀색꽃무지, 사향제비나무, 쇠무릎, 쇠비름...

모든 사물에는 이름이 있겠지만 참 다양하고 아름답다. 실제로 저자도 관련 도감을 보면서 계속 지식을 업데이트한다고 한다. 세상은 아는 만큼 애정도 생기는 법 아니던가. 아니, 애정이 있어야 알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일까. 하여간 비단 직업 때문이 아니라도 숲 생태계에 대한 저자의 무한 애정은 매 페이지 행간마다 배어있다. 급기야 은날개녹색부전나비 애벌레를 가져와 날개가 돋는 장면을 집에서 목격하기도 한다.

여기다 국문과 출신이라 그런지 구사하는 단어의 범위가 넓다. 저자의 소설 <검은 숲의 사랑>에서도 느꼈지만, 언어 구사력이 남다르다. 어휘의 폭넓은 활용과 섬세한 묘사로 숲 생태계에 대한 사랑을 약간의 일상에 덧붙여 이야기하는 책이 바로 <안드로메다의 나무들>이다.


저자의 이런 대단한 숲 사랑은 집안 내력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산림과에 입사해서 퇴직도 그곳에서 했다고 하니 2대에 걸쳐 산림에서 일하는 셈인데, 아무래도 아빠의 뒷모습은 딸에게 크나큰 영향을 미친 모양이다.

책의 가독성이 좋다고는 못하겠다. 문장이 눈에 쏙쏙 들어오는 편은 아니다.

책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들이 내게는 동떨어진 다른 세상의 일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감정이입할 에피소드가 적은 건지도, 그만큼 내 감성이 메말라서 일 수도 있지만 여하튼 읽는 재미가 크진 않았다.

아들이 입대하던 날을 다룬 '연병장 풍경'과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 감상문 '아다지오를 듣는 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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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의 내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3
하라 료 지음, 문승준 옮김 / 비채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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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은행에 2인조 강도가 들었다. 손님들을 인질로 잡고, 제일 처음으로 한 일은 당연하게도 핸드폰 압수! 그런데 한 사내가 자신은 핸드폰이 없다고 한다. 요즘 같은 세상에 무슨 말도 안 되는...

"휴대전화는 갖고 있지 않아."

"이봐,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양반이 괜히 애먹이지 마. 요즘 세상에 휴대전화가 없다고? 신주쿠 중앙공원에 사는 노숙자도 전화기는 있어."

"갖고 있지 않은 건 어쩔 수 없지. 몸수색이라도 해보지 그래?"

현대판 코미디의 주인공, 탐정 사와자키다.


<지금부터의 내일>은 일본 하드보일드를 이끄는 하라 료의 탐정 사와자키 시리즈 시즌 2의 두 번째 장편인데, 전작 <어리석은 자는 죽어야 한다> 발표 이후 무려 14년 만에 소개되는 신작이다. 아무리 과작의 작가라지만 시리즈의 오랜 팬들은 기다리다 지쳐 쓰러질 지경이다. 가뜩이나 46년생 작가의 나이도 적지 않은데 말이다.

탐정 사와자키 시리즈를 처음 접하는지라 전작들과의 연속선상에서 논할 수는 없지만, 시리즈의 매력이 무엇인지, 사와자키란 어떤 인물인지, 왜 탐정 사와자키가 일본 하드보일드를 대표하는 캐릭터인지 이 한 편으로 체감하는데 크게 부족하진 않다.

이미 세상을 떠난 파트너 이름을 그냥 사용하는 '와타나베 탐정 사무소'를 홀로 지키는 탐정 사와자키는 휴대폰을 쓰지 않으며, T·A·S라는 고색창연한 전화응답 서비스를 애용한다.(아직도 일본엔 이런 서비스가 존재하긴 하나?)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절대 신뢰할 수 있는 탐정이란 평판을 얻고, 상대가 누구든 기본적으로 반말이 편하며, 안락의자 탐정과는 은하수만큼이나 떨어진 몸으로 움직이는 뚜벅이 탐정이고, 경찰이나 야쿠자 양쪽 모두에게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는 인물이다. 그렇다고 무시당하는 존재는 아닌지라 경찰과는 적당히 공존하며, 야쿠자는 새로운 사무실에 화환 정도는 보내는 관계다. 그런데 대관절 폭력단이 왜 50대 탐정에게 이전 축하 화환을 보내는지 그것도 의문이긴 하다. 이들은 도대체 무슨 관계인 걸까.

「의뢰인 A가 B의 신상조사를 사와자키에게 의뢰한다. 조사를 시작하자마자 B는 사망한 인물이라는 게 드러나고, A는 진짜 A가 아니라 A를 사칭한 인물이었다. 진짜 A는 다른 사건에 연루되어 행방불명이고.. 」

일단 드러나는 기본 플롯이 흥미를 끈다. 은행강도, 신원이 불분명한 시체, 전통의 고급 요정, 서로 대립하는 폭력단 파벌, 어디선가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나는 청년 실업가, 은행에서 발견된 거액의 비자금... 도무지 연결고리를 찾기 힘든 사건으로 탐정 사와자키는 뛰어든다. 이미 받은 수임료를 정확히 정산하기 위해.


<지금부터의 내일>에는 현대 추미스에서 주로 나오는 잔인하고 과장된 살인을 비롯한 강력 범죄는 거의 없다. 일어난 어수선한 사건조차 수학 공식처럼 정확한 답안이 제시되지 않는다. '대략 이런 거 아니겠어?'하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 지나가는데 이는 곧 탐정 사와자키의 스타일이자 하라 료의 방식일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 역행하는 뼛속까지 아날로그 정서를 장착한, 쇠락한 건물 2층에서 존재하지도 않는 파트너 이름을 내건 탐정 사무실을 운영하며, 아직도 전화응대 서비스를 애지중지하고, 거친 직업이지만 신사적인 방식을 동경하는 이 시대의 마지막 '낭만 마초'가 등장하는 이 소설은 본격물도, 사회파 미스터리도 아니다.

하드보일드 문학이나 필름 누아르 영화에서 봐온 정통 탐정의 어둡고 쓸쓸하지만, '강한 자엔 강하고 약한 자엔 약한' 유전자는 탐정 사와자키에게 제대로 발견된다. 잘 알려진 바대로 하드보일드물 중에서도 하라 료가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건 레이먼드 챈들러가 창조한 탐정 필립 말로인데, 이번 작품으로 "챈들러의 <기나긴 이별>에 필적하는 대표작으로 만들고 싶다"라는 야심을 밝힌 바 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독자들에게 도착한 새로운 탐정 사와자키 시리즈는 다시 또 언제 만나겠냐는 경건한 마음으로 줄어드는 페이지를 아쉬워하며 분위기에 취해서 읽어야 한다. 탐정 사와자키가 창조해내는 뭔가 아스라한 정서와 복고풍 분위기는 이 작품의 처음과 끝이다. 당신이 흡연자라면 담배가 생각날 것이고, 비흡연자라 하더라도 캔맥주 한 캔 정도는 이야기에 젖어드는데 좋은 동반자가 되리라.

아무래도 '사와자키 월드'에 귀순해야 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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