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동생의 무덤 모중석 스릴러 클럽 50
로버트 두고니 지음, 이원경 옮김 / 비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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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참 작가는 많다. 한국에 연간 대략 250여 권 내외의 추미스 계열 책이 출간되지만, 그럼에도 우리에게 미처 소개되지 못하는 세계 각국에 존재하는 유수(有數)의 작가들이 많다. 이번에 <내 동생의 무덤>으로 국내 최초로 소개되는 '로버트 두고니'라는 미국 작가도 그렇다. 보통 작가들은 뚜렷한 한 명의 캐릭터 시리즈도 성공적으로 이어가기 쉽지 않은 레드 오션이 장르물 시장이건만, 두고니는 '데이비드 슬로언' 시리즈, '찰스 젠킨슨' 시리즈를 인기리에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내 동생의 무덤>은 '데이비드 슬로언' 시리즈에 잠시 등장한 시애틀 최초의 여성 강력계 형사 트레이시 크로스로드를 독립시킨 또 다른 '형사 트레이시' 시리즈의 서막이다. 형사 트레이시의 전사(前史)를 밝히는 시리즈의 기원인 것.

「우애가 너무 좋은 트레이시와 세라 자매. 트레이시가 벤에게 청혼을 받은 세상에서 가장 기쁜 날 세라는 행방불명이 돼버리고,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음에도 정황 증거만으로 성범죄 전과자 에드먼드는 1급 살인 유죄를 받아 무기징역에 처해진다. 짜 맞춘 듯한 증거와 믿을 수 없는 지각 목격자, 석연치 않은 재판 과정에 강한 의구심을 가진 트레이시는 결국 고등학교 교사를 그만두고, 그날의 진실을 몸소 밝히기 위해서 경찰에 투신한다. 20년의 세월이 흘러 동생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닫혀 있던 진실의 문은 열리는데... 」

490쪽의 책에서 354쪽에 이르러, 과거의 미심쩍은 판결이 뒤집히면서 누명을 쓴 에드먼드가 석방되는 과정이 그려진다. 첫 번째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면, 남은 140쪽에서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 새로운 인물이 갑자기 튀어나올 수는 없고, 그렇다면 앞서 진술된 인물들 중에 누군가는 결정적인 카드 한 장을 들고 있단 소리인데, 트레이시가 추적을 하면 할수록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자매의 아빠로 밝혀지는데...

소설의 결말을 중반 이후까지 종잡지 못했다. 중간중간 작가가 흘리는 떡밥에 투척되어 나만의 시나리오를 그리기도 했건만, 결말은 나의 그것과는 달랐다. 미스터리를 읽다 보면 독자의 짐작과 결말이 동일할 때 생기는 자긍심도 있지만, 그보다는 역시 짐작을 배반하는 결말이 짜릿하다. 짐작과 간격이 크면 클수록 묵직한 타격감이 크다. 흔히 말하는 반전의 쾌감이다.

최근 무수히 쏟아지는 반전을 위한 작품으로 <내 동생의 무덤>은 쓰이지 않았지만, 소설의 결말에서 다시 한번 만나는 뜨거운 가족애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미스터리에서 만나는 이런 감동은 사뭇 신선하다.


두 개의 축으로 소설은 전개된다. 하나는 트레이시의 친구 변호사 댄의 활약으로 과거 재판의 불합리를 뒤집는 법정 스릴러이고, 다른 하나는 형사 트레이시의 수사 과정이다. 13년간 변호사 생활을 한 로버트 두고니가 그려내는 법정 신은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자신감이 넘친다.

시체가 발견되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데, 여기서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건 과학수사다. 과거엔 의미를 밝혀낼 수 없던 증거물들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고, 이는 에드먼드의 무죄 입증에 결정적인 증거가 된다.

법정 스릴러로도, 형사물로도 흠잡을 데 없는 완성도를 보여주는 잘 쓰인 깔끔한 스릴러다. 미국에서 그리 큰 사랑을 받았다는 두고니의 작품이 왜 이제서야 소개되었는지 한탄하기 보다, 2014년 작품이지만 이제라도 선을 보이게 돼서 다행이란 생각이다. 이미 '형사 트레이시' 시리즈는 8권이 출간되었고, 현재도 집필 중이라고 전한다. '형사 트레이시'의 다른 작품, 아니면 두고니의 다른 작품을 또 만날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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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니아 - 전면개정판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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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소설에는 반드시 시체가 등장해야 한다. 시체는 많을수록 좋다. 살인보다 가벼운 범죄는 독자가 300페이지 가까운 책을 읽게 할 동기로는 부족하다. 끝까지 읽는 독자의 노력은 보상받아야 한다."

미스터리 황금기를 대표하는 미국 작가 S.S. 밴 다인의 '20칙'중 7번째 원칙이다.

소설이 시작하고 몇 페이지 지나지 않아 일가족은 물론, 집안 경사에 놀러 온 이웃까지 무려 17명의 사망자가 발생한다. 더 놀라운 건 조금 지나 범인이 범행 일체를 자백하고 자살한다는 전개다.

보통 미스터리는 세 가지 중 하나에 천착하기 마련이다. 누가(후더닛) 어떻게(하우더닛) 왜(와이더닛) 범행을 저질렀는가 밝히는 과정이 책을 읽는 재미다. '누가'는 고전기와 일본 (신)본격물에서 최고의 재미 '범인 찾기'를 선사했고, '어떻게'는 대표적으로 밀실이란 소장르에서 위세를 떨쳤으며, '왜'는 사회파 작가들의 화두라 간단히 정리해 볼 수 있겠다. '누가, 어떻게'가 소설 초반에 한여름 땡볕처럼 명백하게 밝혀진 온다 리쿠의 <유지니아>에서 남는 수수께끼는 '왜'뿐이다. 도대체 왜?

해당 독살사건(나카오가키 사건)이 일어나고 20년이 지난 시점, 누군가(!)가 당시 사건의 관계자들을 찾아다니며 다시 과거의 기억을 헤집는다. 도대체 왜 2?

라쇼몽식 구성으로 관련자들의 진술은 이어지는데, 놀랍게도 사건을 담당한 경찰을 비롯한 몇몇 인물은 당시 유일한 생존자인 앞 못 보는 명문가 소녀가 희생자가 아닌 진범일지 모른다는 강한 의구심을 드러낸다. 그렇다면 앞서 밝혀진 사건의 전모는 '도서(倒敍) 미스터리'였단 말인가! 독자들은 황급히 앞서 철석같이 믿었던 '누가'와 '어떻게'를 재확인해야만 한다. 근본이 흔들리는 상황, 그럼에도 여전히 '왜'라는 숙제는 풀리지 않는다. 도대체 왜 3?

정통 미스터리에서 범인은 밝혀지고, 사건의 모든 정황이라 할 범행 동기, 수법 등은 속시원히 드러난다. 제59회 일본 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한 <유지니아>는 그런 뻔한 길을 가지 않는, 별미를 제공하는 소설이다. 온다 리쿠는 의도적으로 곳곳에 여백을 남겨 놓아, 그곳을 독자의 상상력으로 채우게 한다. 딱 들어맞는 퍼즐이 아니라, 독자만의 퍼즐을 만들어낼 수 있는 'DIY'형이라고나 할까.

정말 아오사와 히사코는 진범인가? 헌책방 화재는? 마키코의 사망은 단지 일사병 때문일까?

<유지니아>는 비채의 일본 문학선 '블랙&화이트'의 3번째 책으로 2007년 처음 출간되었다, 14년이 지난 2021년 전면 개정판으로 우리 앞에 다시 섰다. 17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소설을 '아름답다'라고 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받기 좋지만, 여전히 <유지니아>는 몽환적이며 탐미적인 명작이다. '온다 월드'를 탐사하기 위해선 <유지니아>를 출발점으로 삼아야 하며, 여러 번 읽으면 처음 읽었을 때 몰랐던 비밀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매력덩어리다. '범인 찾기'에 다소 물린 독자라면 마땅히 <유지니아>를 펼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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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데니스 존슨 외 지음, 파리 리뷰 엮음, 이주혜 옮김 / 다른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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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리뷰>(the PARIS REVIEW)는 '작가들의 꿈의 무대'라 부르는 미국의 문학 계간지로, 1953년 출판과 문학의 중심지였던 프랑스 파리에서 창간했다. 영어로 작품을 발표하는 유명 작가치고 여기 지면을 거치지 않은 이가 없다 할 정도로 권위를 인정받는 문학잡지인데, 어느 날 편집자는 재미있는 기획을 한다.

작가들에게 <파리 리뷰>가 발표한 단편소설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 하나를 고르고, 그 소설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결정적인 이유를 서술해달라고 부탁한 것. 2012년 출간된 이 책의 원제는 《Object Lessons : The Paris Review Presents the Art of the Short Story》다. 출간 연도를 고려하면 약 60년의 세월 동안 발표된 작품들 가운데 현직 작가들이 고른 결과물인 셈이다. 국내 소설집의 아름다운 제목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는 수록된「히치하이킹 도중 자동차 사고」에 나오는 문장에서 따왔다. 원서에는 스무 편이 실렸다는데, 도서출판 다른에서 나온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는 이중 열다섯 편을 추려 수록했다. 소설 애호가라면 누구나 그냥 지나치기 힘든 유혹이다.

 

소설이든 영화든 최고 작품을 뽑을 때 평론가와 일반 팬들의 리스트는 많이 다르다. 아무래도 전문적인 감식안을 가진 사람들이 손꼽는 작품들은 일반인들의 눈에는 그냥 스쳐 지나가거나, 무엇보다 재미가 담보되지 않는 것들이 많다. 이 책에 선정된 단편들은 창작 강의나 글쓰기를 생업으로 하는 성공한 문인 자신이 꼽은 작품들이라 아마도 일반 독자들의 그것과는 다를 거다. 그야말로 '작가들의 작가'인 셈 아닌가. 보통 독자들이 좋아하는 스토리텔링 위주의 단편보다는, 다소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성향의 작품이 이들의 레이더에 포착돼 창작에 자극과 영감을 주었을 확률이 높다. 또한 해당 작가의 알려진 대표작이 아닌 숨겨진 걸작을 복권하고픈 심리도 있었을 테고.

수록된 작가들의 면면을 살핀다. 레이먼드 카버, 제임스 설터,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이렇게 세 명의 작가 정도만 이름을 알고 다른 분들은 잘 모르겠다. 조이 윌리엄스는 추천 작가로 본인의 작품이 실리기도 했고, 추천인으로 다른 작품을 추천하기도 한다. 보르헤스의 「모든 걸 기억하는 푸네스」를 추천한 알렉산다르 헤몬은 내주 개봉하는 <매트릭스 : 리저렉션>의 각본에 참여하기도 했다고.

앞서 예측한 대로 약 절반 이상은 핵심적인 줄거리가 잘 드러나지 않는 단편들이 많다. 완곡하게 표현하자면 읽는 재미가 별로라는 이야기다. 일반 독자의 시선으로 대가의 경지까지는 이해하지 못한 탓이 크다. 이런 독자들을 위해 해당 소설을 추천한 작가들이 소설의 말미, 몇 페이지에 걸친 해제를 실어 이해를 돕는다. 해제가 대부분 소설보다 더 어렵다는 게 함정이긴 하지만, 그래도 없는 거보다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

이 소설집에서 가장 마음을 뺏긴 단편은 이선 캐닌이 쓴 「궁전 도둑」이다. 좋은 소설은 일 방향의 해석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개인적인 감상은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로 「궁전 도둑」의 주제를 평가하고 싶다. 누구나 인생에 있어서 결정적인, 잊지 못할 사람이 한 명 정도는 있을 테고 그와 연관된 사건이 분명 있으리라. 두 번에 걸친 '미스터 율리우스 카이사르 선발대회'를 다루는 이 단편이 소설집의 백미로 다가왔다. 「궁전 도둑」은 2002년 <엠퍼러스 클럽>으로 영화화되었는데, 아쉽게도 국내엔 소개되지 않았다.

그 외 폴라로이드 사진 같은 즉각적인 이미지를 남기는 카버의 「춤추지 않을래」, 짧은 대화로 어떻게 많은 이야기를 함축하는지 잘 보여주는 모범답안 제임스 설터의 「방콕」, 기억을 잃어가는 아버지를 아들의 시선에서 연민으로 지켜보는 「늙은 새들」, 걸작을 위해서는 작가는 그 무엇도 희생할 수 있다는 풍자와 은유 「스톡홀름행 야간비행」이 기억에 남는다.

아직도 문학의 힘을 믿는 소설 팬들은 전문가들이 이름을 걸고 감식한 15편의 소우주에서 분명 자기와 주파수가 맞는 작품을 만날 것이다. 문예 창작을 염두에 둔 자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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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 : 젓가락 괴담 경연
미쓰다 신조 외 지음, 이현아 외 옮김 / 비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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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가락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익숙한 식기로 식별성이 강해 우리 문화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악어꿈」 331쪽

아시아 3개국의 장르물 작가들이 젓가락을 소재로 한 괴담집을 위해 어벤저스를 구성했다. 원래 중화권 작가들을 대상으로 기획되었으나, 괴기, 호러, 추리의 결합이라면 조건반사적으로 떠오르는 거물 미쓰다 신조가 합류하면서 판이 커졌다. 여기다 홍콩의 찬호께이마저 등장하니 추미스 팬이라면 환호성을 지를 만하다. 나머지 3명의 대만, 홍콩 작가 역시 신조나 찬호께이와 일합을 겨루려면 한국에 소개가 안 되었을 뿐, 자국에서는 1진 급 작가임에 틀림없다. 이 작가들은 후기에서 미쓰다 신조와 함께 글을 쓰는 영광을 누린다고 한껏 자세를 낮추지만, 팀을 구성하는데 턱없이 실력이 부족한 작가가 낄 틈은 없었을 거다. 이리 해서 탄생한 <쾌 : 젓가락 괴담 경연>(? : 怪談競演奇物語)은 5人5色의 매력으로 장르문학 애호가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책을 읽기 전 젓가락이라는 동아시아 공통의 소재로 각자 괴담을 쓰는 형식으로 알았는데, 5편의 중·단편이 실린 이 책은 '따로 또 같이'의 연작 구성을 취한다. 각 소설은 완결성을 띠지만, 일정 부분 연결 고리가 있다. 이 단편에서는 스쳐가는 인물이 다른 단편에서는 주요 배역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이야기의 매음새도 이어지고 있는 것. 상상력이 중요한 작가들에게 자유형이 아닌 이런 가이드를 두면 불편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지만, 개떡같이 얘기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A급 작가들은 역시나 나의 기우를 뛰어넘는 내공을 보인다. 분명 이들 못지않게 빼어난 편집자의 공이 컸으리라 짐작된다.

통상적으로 육상 계주에서 가장 중요한 건 마지막 주자이고, 그다음이 첫 번째 주자다. 5인 릴레이의 시작은 미쓰다 신조, 마지막은 찬호께이다.

 

"여러분은 저주를 기획할 때 자신들이 인간의 '악의'라는 벌집을 쑤신다는 것을 알아야 했어요. 아무리 간접적이라고 해도 부정적인 일이 생기는 게 당연한 거 아닐까요?" - 「저주의 그물에 걸린 물고기」 321쪽

'저주'를 생각한다.

강하게 원하는 것이 있을 때 사람들은 기복(祈福) 행위를 한다. 소원을 말해보고, 기도, 기원, 축복을 하고...

악의를 가지고 하면 그건 저주가 된다. 힘이 있는 자, 권세가 있는 자는 저주를 잘 하지 않는다. 저주란 힘없는 약자의 마지막 무기다. 한없이 당하기만 했을 때, 물리적인 힘으로는 도저히 가해자에게 복수를 할 수 없을 때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저주뿐이다. 결혼 못 하고 죽은 처녀 귀신의 저주는 무섭다.

개별 작품들에 대한 간략한 스케치를 해본다.

「젓가락님」 - 미쓰다 신조

젓가락님(오하시사마) 의식과 꿈속 '고도쿠' 세계의 결합.

* 고도쿠 ☞ 항아리 하나에 파충류나 벌레를 여러 종류 집어넣고, 마지막 한 마리가 살아남을 때까지 서로 잡아먹게 한 뒤 최종적으로 살아남은 것을 섬기면 신령한 능력을 얻는다고 믿는 주술.

역시 미쓰다 신조의 향기가 강하게 배어있다. 너무 짧아서 아쉬운데, 애초 계획한 2만 자 규칙을 지킨 유일한 작품이라고.

「산호 뼈」 - 쉐시쓰

트라우마를 지닌 여성 고객이 찾아간 퇴마 전문가와의 심리전.

젓가락은 왕선군(王仙君)이란 고유명사로 영혼을 부여받고 신격화되고 종교가 된다.

괴담으로 영혼이 치유되는 신비한 경험!

「저주의 그물에 걸린 물고기」 - 예터우쯔 (본 젓가락 괴담 경연의 발제자)

제한된 공간과 인물들 사이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이지만 기둥 트릭이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귀신 신부만 있고, 정작 경찰서에 가가 형사는 없단 말인가!

「악어 꿈」 - 샤오샹선

이 소설집에서 가장 강력한 한 방.

구성, 복선, 반전 모두 만족스럽다.

그것이 알고 싶다. "어떻게 젓가락님 의식은 타이완에서 일본으로 건너 갔는가?"

다만 10세 소녀의 위업은 무리수 아닌가요, 작가님.

「해시노어」 - 찬호께이

'누가 어떤 전개를 하더라도 내가 다 받아줄게'하는 찬호께이의 객기. 박학다식한 그의 대체 역사 강의. 다른 작품들과 톤 앤 매너가 다소 이질적으로 다가온다. 뷔페에서도 손이 안 가는 음식이 있기 마련.

전반적으로 매우 만족스럽다. 골라 먹는 재미가 있는 진수성찬이라고나 할까. 찬호께이와 미쓰다 신조가 참여한 7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벽돌책을 앞에 두고 무념무상이다. 올해도 '도조 겐야' 시리즈 신작이 나왔건만 일단 '선수들의 결과물' <쾌>로 아쉬운 마음을 달래본다.

더 이상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대할 수 없는 당신이 미쓰다 신조나 찬호께이라는 이름에 설렌다면 올해 연말 선물은 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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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란 무엇인가
이인화 지음 / 스토리프렌즈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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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란 용어가 언제부터인가 여기저기서 자주 들린다. 심지어 페이스북은 회사명을 Meta로 바꾸기도 했다. 책 제목대로 과연 '메타버스란 무엇인가' 개념을 정리해 보고 싶었다. 게다가 저자는 <영원한 제국>의 이인화 교수 아닌가!

그러나...

 

이 책은 소설가로도 알려졌지만, 이화여대에서 오랜 기간 국문학과 및 융합콘텐츠학과 교수로 재직한 이인화 교수가 썼다. <리니지2>에 심취해 『한국형 디지털 스토리텔링 : 리니지2 바츠해방전쟁 이야기』를 쓰며 일찍이 메타버스의 잠재력에 눈을 떠, 2008년부터 이대에 메타버스를 연구하는 가상세계 문화기술연구소를 설립해 운영했으니 최근 우후죽순 격으로 나오는 '메타버스' 이름이 들어간 저작물의 저자 중에서도 돋보이는 이력의 소유자라 하겠다. 본인은 '게임 중독에 빠진 한심한 교수라는 조롱을 당하면서 얻은 작은 결실'이라고 몸을 낮추지만 내용물은 매우 알차다.

'메타버스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실체 / 쟁점 / 활용」의 3부로 나누고 그 내용은 12개 챕터, 38개의 도표와 그림으로 요약했으며 저자가 생각하는 요점들을 소설가답게 이야기체로 풀어주고 있다.

다만 문제는 내가 이 분야에 너무 까막눈이기에 책의 내용을 소화하기엔 기본기가 매우 부족하단 점이다. 메타버스를 이해하려면 아무래도 MMORPG로 대변되는 온라인게임에 대한 선경험이 필수적일 텐데, 게임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난 게임과 담을 쌓고 살았다. 결국 메타버스라는 신세계를 쉽고 빠르게 이해하려면 시각적인 접근이 필수적인데, 그렇지 못한 상태에서 글로만 접하다 보니 한계가 있었다. 어쩌면 책 한 권 읽는 것보다 여기 소개된 <로블록스>에 한 번 접속해 보는 게 훨씬 이해가 빠를 수 있겠단 생각이다. 용어도 생소했고, 개념은 뜬구름 잡는 듯 해상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빼어난 소설가인 이인화의 필력으로도 나 같은 문외한을 구하진 못한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내 개인적인 문제다.

책에도 소개되어 있는 미 국방장관 도날드 럼스펠드의 '지식의 사분면'에 따르면, 난 철저히 '뭘 모르는지 모르는 무지Unknown Unknown'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76쪽)

 

이 대목에서 '디지털 리터러시'라는 개념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세상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빠르게 빠르게 변한다. 젊은 층은 빠르게 적응하는데 무리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세대도 분명 존재한다. 이제 겨우 따라갈만하면 또 다른 신문물이 눈앞에 버젓이 나타나니, 보조를 맞추기란 요원하다. SNS에 비유하자면 아직 블로그에 열심히 글 올리는데, 인친들은 어느새 모두 인스타그램 위주로 활동하는 형국이라고나 할까.

이제 겨우 네이버, 카카오톡 그리고 거기서 제공하는 각종 2차원 서비스에 익숙할만한데, 3차원 그래픽으로 된 가상공간에서 다른 사람들의 아바타를 만나고 이야기하는, 실시간 상호작용을 한다고? WHY?

<로블록스>의 대표 페르소나는 열세 살이다. <로블록스>의 5천만 개에 달하는 게임 월드는 대부분 미성년 개발자에 의해 만들어진 게임이고, <로블록스> 좀 한다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스튜디오 스크립트 대사부인 옐롯 선생은 열세 살 초등학교 6학년 남학생이란다. 10대가 선도하는 매체 메타버스는 열세 살 공룡이가 천백만 원씩 버는 세상이다.

"2020년 <로블록스>에서는 이런 아이들 125만 명이 3619억 원을 벌었다. 상위 1250명은 <로블록스>에서 천백만 원(1만 달러) 이상을 벌었으며 최상위 300명은 12억 이상을 벌었다." - 18쪽

뭔가 알고 싶다는 호기심이 생기기보다 무섭다.

 

이해도는 떨어지지만 그래도 나름 몇 가지 메타버스에 대한 핵심 포인트는 기억해두려 한다.

"메타버스는 사람들이 아바타로 살아가는 디지털 가상공간이다. 더 상세히 말하면 인터넷에 의해 연결된 3차원 컴퓨터 그래픽 기반의 인터랙티브 환경으로, 아바타가 돌아다닐 수 있도록 가상화된 세계이다." - 22쪽

"궁극적으로 메타버스는 구글 같은 데이터 검색 위주의 2차원 웹 포털을 대체할 '3차원 웹 포털'로 진화할 것이다." - 126쪽

"영화나 소설처럼 한 사람의 작가에 의해 창작되어 시작, 중간, 끝의 일방향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를 선형적 서사라고 한다. 그에 반해 메타버스의 서사는 매체와 사용자가 상호작용하고, 사용자와 사용자가 상호작용하는 비선형적, 상호작용적 서사이다." - 135쪽

"말과 글과 코딩은 인간이 뭔가를 배워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세 가지 방법이다. 인간의 의미작용은 말하기에서 글쓰기로, 글쓰기에서 코딩하기로 발전해왔다." - 216쪽

"메타버스를 포함한 디지털 미디어는 국적과 인종과 문화권을 초월하여 전 지구적인 규모의 대중문화를 형성하는 원동력이다. 앞으로 여기에 다양한 사람들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거대한 스토리 거주 환경이 나타날 것이다. 스토리를 말하는 것storytelling이 아니라 스토리 안에서 살게 될 것storyliving인 것이다." - 234쪽

 

책의 표지 "우리가 살아갈 오래된 미래, 메타버스"란 문구가 보인다. 장강의 흐름을 거스를 순 없다. 인터넷, SNS, 암호화폐, NFT... 그리고 메타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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