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블라블라블라 - 내가 사랑한 뮤지컬 20
박돈규 지음 / 도서출판 숲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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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타이어를 갈았다. 마모가 심한 상태였다. 정비사는 리프트로 차체를 들어 올리고 헌 타이어 4개를 뺐다. 3~4년을 길에서 곧추선 채 하중을 견디며 달려온 바퀴가 처음으로 땅에 드러누웠다."

평범한 일상 에세이와도 같은 구절로 글은 시작된다. 그러나 사태를 담아낸 문장을 촘촘히 뜯어보면 예사롭지 않다. 3~4년을 줄곧 서 있던 바퀴가 비로소 누워 휴식을 취하게 된다는 대목이 특히 그러하다.


"세월이 흘러 나무가 땅에 누우면/당신도 나란히 나무 곁에 누워/눈보라가 되거나/한 소쿠리 비비새 울음이 된다.."

올해 참 오랜 만에 발간된 시집 <와온바다>에 수록된 곽재구의 <나무>라는 시의 마지막 행이다. 나무는 평생을 서서 살아왔으니 얼마나 고단했을까? 죽어서 통나무가 되어야 비로소 안식의 시간을 갖는다. 우리네 삶도 이와 다르지 않아, 그러므로 당신도 만사를 잊고 나무처럼 나무 곁에 누워보라고 시인은 권유한다.


"잘려나간 발톱처럼 낯설고 측은했다. 매끈한 새 타이어를 끼우고 정비소를 돌아 나오는데 산더미로 쌓인 폐타이어들이 보였다. 길의 끝이 무덤이다."

첫 인용에서 이어지는 글이다. 수만 킬로미터를 달렸을 타이어들의 길 위에서의 시간들, 그 길의 끝이 무덤이란다. 그리고 다음 단락에서 "뮤지컬 캣츠는 정반대다. 무덤에서 길을 낸다."라고 받아침으로써, 그가 사랑한 뮤지컬 20편 가운데 하나인 <캣츠_왕의 익살, 광대의 기품>이라는 공연리뷰가 시작된다. 폐타이어는 뮤지컬 <캣츠>의 무대의 중요한 소품이면서 고양이들의 광장의 중심에 있다.


지은이 박돈규는 한 편의 뮤지컬을 소개하기 위해, 그 작품으로부터 선사받은 감동의 시간들을 스케치하기 위해 소소한 일상에서 소스를 끄집어낸다. 자나깨나 뮤지컬 생각을 하고 뮤지컬 공연에 빠져들고, 그럼에도 일간지 공연전문기자로서 매체가 요구하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고(苦)을 달게 받아들이는 필자, 스스로가 프롤로그에서 "이 책은 나를 중독시킨 뮤지컬에 대한 고백이다."라고 털어놓았는데, 그의 중독이 어느 정도의 깊이인지를 무심코 뽑아낸 인용부분에서 살필 수 있다. 그리고 저자는 서문에서 그가 '사랑한 뮤지컬'에 대한 이야기, 곧 러브스토리를 엮는 과정이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음을 고백한다.


"뮤지컬 담당 기자는 직업적으로 단순하면서도 복잡하다. 취향을 드러낼 수도 없고 완전히 숨길 수도 없다. 기사와 나 사이의 긴장이다."

밥(노동)을 위해 써야 하므로 쓰고, 보아야 하므로 보는 공연은 때론 고역일 수 있다. 노동이 그 자체로 즐거움을 수 없는 것은 신문기자만의 고민은 아닐 것이다. 시시푸스처럼 반복되는 일상에 얽매인 채 살아가는 삶, 해서 삶에 질리고 노년에 이르러 죽음을 순조롭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인간은 노동이 밥벌이 수단이면서 그 자체가 즐거움을 주는 것이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필자는 "기사를 써야 한다는 의무감이 없을 때, 편견을 내려놓을 때, 감상이 편해진다."고 말한다. 그리고  '좋은 뮤지컬'은 어쩌면 꼭 봐야 하는 것과 그렇지 않아도 되는 것 사이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속내를 드러낸다.


알고보면 뮤지컬 담당기자(직업)는 늘 무엇과 무엇 사이에서 일하고 있다. 무대와 관객 사이에 있고 있어야 한다. 뮤지컬이라는 문화상품의 생산자와 소비자인 관객 사이에 있어야 한다. 다만 예를 들어 영화와 비교하자면 뮤지컬은 작품소개(기사)시에 '스포일러성' 기사가 되지 않을까 하는, 고민에서 자유롭다는 점이다. 뮤지컬의 스토리를 자세히 기사에서 다룬다고 해서, 사전에 읽은 관객들이 받는 감동은 줄어들지 않기 때문이다. 말이 나온 김에 덧붙이면 좋은 작품은 설렁 그것이 영화라고 해도 '스토리가 사전에 알려진다고 해서 감동이 반감되는 경우는 아니어야 할 것이다. 무엇과 무엇 사이 또는 경계에 선 그는 개인적으로 뮤지컬에 중독된 애호가기에 괴롭다. 생각과 느낌 모두를 자신의 기사에 담아내지 못하는 것, 형식(틀, 프레임)에 갇힌 내용은 갑갑하였으리라.


앞서 소개한 시집에서 또 한 편의 시가 눈에 들어온다. <사랑이 없는 날>에서 시인은 무엇과 무엇 사이에 있는 아픔을 노래한다. "생각한다/봄과 겨울 사이에/무슨 계절의 숨소리가 스며 있는지", "내가 좋아하는 것과/싫어하는 것 사이에", "눈 오는 섬진강과 지리산 사이에" "남과 북 사이에" "은서네 피아노학원과 종점 세탁소 사이에" "홍매화와 목련꽃 사이에" "너와 나 사이에" <또 무슨/ 병은 없는지> 걱정한다. "또 무슨/ 병은 깊은지" 짠한 마음을 토로한다.  

이처럼 이 책 지은이는 뮤지컬 전문기자와 뮤지컬 애호가 사이에서 병이 깊어지는 것을 감지하면서 살아야 했다. 급기야 '형식'(기사)에게 반기를 든 그는 그간 일로써 썼고 쌓인 뮤지컬의 리뷰들을 대대적으로 뜯어고치는 리모델링 작업을 하기 시작했고, 그 결실이 <뮤지컬 블라블라블라>다.


소소한 일상이 담겨 있다. 아버지로서 딸에 대한 이야기를 곳곳에서 꺼내고, 국내외 곳곳을 여행하면서 보고 느꼈던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끼어든다. 급기야 그가 사랑하는 뮤지컬과 뮤지컬을 만나는 일련의 과정은 기행수필로 질적 변화를 꾀하고, 그것은 성공적이다. 하여 <박돈규의 뮤지컬 오뒷세이아>라고 명명해도 좋을 만큼 기행수필집이 되고, 독자들은 부담없이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다. 그리고 엄밀하게는 '내가 사랑한 뮤지컬 20'이란 부제에서 '사랑한'은 '사랑하는'이 되어야 한다. 보고 또 보고, 보고 또 보아도 질리기는 커녕 앞선 관람 때에는 보면서도 보지 못했던 것이 보이고, 들리는데도 들을 수 없었던 것들이 들려, 새로운 감동을 선사하는 것이 좋은 뮤지컬이고, 중독은 바로 이 대목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뮤지컬은 철저하게 계산되고 준비되었을 뿐 아니라 감동을 끌어내는 보편적인 법칙에 충실하면서 무대장치로, 노래로, 소소한 화제를 만들어내는 등 관객들을 현혹하는 일을 다반사로 하며 새로움을 만들어낸다. 투자된 비용이 적지 않다. 해서 뮤지컬은 철저하게 '쇼 비지니스'이면서 '공연예술의 꽃'이라는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 신일 때라야 그들의 꿈꾸는 지속가능한 공연이 가능하다. 


한 편의 시집에서 참 마음에 드는 시 한편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 9년 만인가, 오랜 만에 나온 곽재구의 시집에서, <사랑이 없는 날>이 내게는 그런 시였다. 특히, 섬진강과 지리산 사이도, 남과 북 사이도 아니고, "은서네 피아노학원과 종점 세탁소 사이에"라는 구절에서 눈물이 핑 도는 것을 경험했다. 이에 비하면 홍매화와 목련꽃 사이는 꽃잔치에 불과한 사족일 뿐이었다. 피아노학원과 세탁소 사이까지는 그렇고 그럴지만, 구체적인 상호(商號)에서 우리네 삶의 일상이 묻어있어서는 아니겠는가. 20개의 뮤지컬을 만나 사랑한 이야기에는 상자 기사 형식으로 뮤지컬 공연을 둘러싼 소중한 정보들이 양념처럼 겯들어져 있다. 역시 뮤지컬의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서 그가 만난, 해소하지 않으면 안 되는 매니아로서의 궁금증을 풀어헤친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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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road 2012-12-28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적재적소에, 한 편의 뮤지컬마다 국내 시인들의 시를 적절하게 인용하여 감칠맛이 나게하는데, 나의 리뷰도 그와 같이 써보려, 했다.
 
뮤지컬 블라블라블라 - 내가 사랑한 뮤지컬 20
박돈규 지음 / 도서출판 숲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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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 하나 들어갈 틈 없이 잘 짜인 뮤지컬이 주는 감동은 때론 섬짓하기까지 하다. 공연전문기자보다는 뮤지컬에 중독된 관객이고 싶은 이가 고르고 찬사를 아끼지 않는 그 뮤지컬만큼이나 잘 뽑아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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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 원정기 - 아나바시스
크세노폰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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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략분은 아래 *1참조) 자유의 이행에는 전후좌우의 설명이 필요 없다. 그것은 원군(援軍)이다. 원군은 비겁하다, 자유는 고독한 것이다. 그처럼, 시는 고독하고 장엄한 것이다. 내가 지금-바로 지금 이 순간에-해야 할 일은 이 지루한 횡설수설을 그치고, 당신의, 당신의, 당신의 얼굴에 침을 뱉는 일이다. 당신이, 당신이, 당신이 내 얼굴에 침을 뱉기 전에……."

인용이 좀 길어 앞부분을 이 글 아래에 실었다. 스무 살 시절, 아니 그보다 앞서 80년대 초반 고교 시절에 만난 김수영 시인의 거침없는 시론(詩論)-<詩여, 침을 뱉어라>-의 일부이다. 시인의 삶과 정신세계를 이해하는데 너무나 유명한 시론이기도 하고, 포도송이에 알알이 박힌 알맹이처럼 숱하게 인용되고 재해석되고 새로운 논지 전개에 물꼬를 터주는 유명한 시론이다. 그리고 상당한 세월이 흘렀다. 마침내 내게는 겨우 한 문장쯤으로 이 시론에 대한 기억은 남아 있다. "원군은 비겁하다." <그것은 원군(援軍)이다. 원군은 비겁하다, 자유는 고독한 것이다.>  '자유하다'는 좀 그렇고 '자유롭다'의 상태에 스스로 도달하는 것이 쉽지 않은 시대를 살아간다는 얘기였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억압하고 검열하는 프레임 속에서 자유롭지 못한 현실을 얘기한다. 자유롭지 못하다는 말만 되뇌이고 다른 버전으로 이야기할 뿐 진정 자유로운 시를 내용에서도 형식에서도 쓰지 못하고 있음, 쓸 수 있음에도 쓰지 '않고' 있음에 대한 자기 비판이 담겨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 지금 얘기하는 김수영의 시론(詩論)은 '당시에도 혹은 지금도' 시론(時論)이기도 하다. 시인이 시론을 쓰던 당시에도 지금도 우리나라는 원군인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휴전 상태인 것이다. 80년 광주민주항쟁 당시 미국이 취한 태도를 보면서 우리는 마침내 미국(미군)이 한국에 머무는 이유를 알아버리고야 말았다. 심증은 가득하나 '물증'이 없던 시절은 가도 비로소 그들의 존재(정체)를 자각한 계기가 광주민주항쟁이었다. 어쩌면 김수영의 '원군은 비겁하다'라는 말은 이러한 한반도의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도 담고 있는 것이라, 나는 생각하였다.

*고대 그리스의 사상가이자 저술가인 크세노폰 (Xenophon). 그는 기원전 431년경에 아테네에서 태어나 기원전 354년경에 죽었다. 기원전 399년, 독배를 마시고 죽는 소크라테스의 제자이며, 플라톤과는 동문수학한 사이. '아나바시스'로 알려진 그의 대표작  <페르시아 원정기>(Anabasis)를 읽으면서 나는 끊임없이 앞서 언급한 '원군'이라는 단어와 거기에 묻어 있는 이런저런 의미를 떠올리곤 했다. 아테나이 출신의 크세노폰은 페르시아의 왕위를 찬탈하려는 퀴로스에게 고용된 그리스인 용병대에 참가한다. 당시 그는 꽃다운 20대. 페르시아. 부왕 다레이오스(2세)는 맏아들 아르타크세르크세스(2세)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죽는다. 그러나 왕비인 파리사튀스는 남편이 살아있을 때에도 차남인 퀴로스가 왕위를 물려받도록 강추!! 차남 퀴로스-소 퀴로스-도 당연히 자신이 왕위를 물려받을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형이 즉위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암살기도를 하여 사형될 운명이지만 역시 어머니의 간청으로 목숨을 부지하고..

결국 쿠로스는 그리스 원군(용병)까지 동원(고용)하여 반역을 꾀하는 것. 바로 이 전쟁에 크세노폰이 원정군의 한 사람으로서 참전하고 있다. 원군이 지원군의 약자라고 할 때, 원군은 도움을 구하는 나라에 도움을 주는 나라가 어떤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파견하는 군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크세노폰이 참여한 이 원정대는 '원군'이라기 보다는 '용병'에 가깝다. 국가 차원에서의 파견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인 이익-돈, 물질적인 부, 잔리품을 포함함-을 목적으로 파견된, 거래로서의 전쟁(참전)으로만 보기에는 당시를 전후한 세태를 살필 필요가 있다. 바로 이 부분이 <페르시아 원정기>를 읽으면서 자꾸 확인해야 했던 질문이다.

사실, 아테나이인들이건 스파르테인들이건, 거슬러 올라가 <일리아스>(호메로스의)에서부터 만나는 전쟁마다 그 전후과정을 살피면 답은 분명하게 나온다. 전쟁을 해야 하는 명분도 중요하지만 실제 참전하는 이들은 장군이고 사병이고 간에 전리품에 관심이 더 많다. 역설적으로 전리품을 탐내지 않는 장군들의 인품이 빛난다(영웅전의 주요 인물들, 그렇지 못한 인물들의 사례도 담겨 있다). 궁극적인 목적이 전리품을 획득하기 위한 일종의 '비지니스' 였음을 알고 다소 실망하게 되는 전쟁들이 수두룩하고, 어쩌면 '약탈'은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것으로까지 보인다.

먹지 않으면 먹히는, 먹어야 사는 '동물의 세계'를 보라. 목숨을 빼앗지 않으면 목숨을 유지할 수 없는 절대절명의 존재를 위한 순간들, 고대의 인간들이 미개해서가 아니고 어쩌면 그들에게 전쟁은 자연으로 보일 정도이다. 그리고 전쟁은 21세기를 사는 현재에도 동물성에 충실한 '약탈'의 유전자를 충실하게 이어가고 있지 않은가!  바로 이러한 시각은 명분이 약한, 크세노폰의 참전에 대한 '변론'이 된다. 어쩌면 '명분'을 앞세우나 결국은 '약탈'이 목적인 것보다는 비겁하지 않은 참전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들 '1만인' 용병 이전에도 펠로폰네소스 전쟁 초기에 그리스인들은 (페르시아의) 태수들에게 고용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1만 인'과 더불어 비로소 용병의 역사에서 새 시대가 열렸다고 할 수 있다."(옮긴이 서문) 그런데 자신들을 고용한 퀴로스가 어이없이 죽고, 설상가상으로 자신들을 인솔하던 장군들와 대장들이 페르시아왕측의 술수에 의해 처형된다. 타국에서 오도가도못할 상황에 처한 것. 그러나 이들은 흩어지기는커녕 오히려 한데 뭉쳐 나중에 스파르테군에 합류할 때까지 2년 가까이(기원전 401년 여름부터 399년 봄까지) 성공적으로 전쟁을 수행한다. 용병인 그들에게 궁극의 목적이었던 전리품은 제대로 얻지 못했지만 '살아남은' 목숨이 그들의 전리품이었던 셈이다. 특히, 크세노폰은 비전투 참모로 용병부대에 끼어 있었는데, 마침내 그들을 지휘하는 위치에 오르고, 본인의 참전기이기도 한 <페르시아 원정기>라는 고전을 집필하였으니 노고에 대한 품값을 톡톡히 받은 셈이다.
***이 원정기의 초반부 상황은 플루타르코스는 영웅전(<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에서도 엿볼 수 있다. 플루타르크는 영웅전에서 퀴로스의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 소개를 상당 부분 생략하는데, 크세노폰의 <원정기>가 이미 있기에 그러하다, 라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전투에 대해서는 많은 역사가들이 자세하게 기록했는데, 그 중에서도 크세노폰의 기록은 마치 눈에 보이듯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크세노폰의 생동감 있는 묘사는 직접 전쟁터에 나간 것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필자는 여기서 크세노폰이 빠뜨린 것을 보충하는 정도로만 기록하겠다."(영웅전, 동서문화사 간 1857면)그런데, 플루타르크(기원후 50년 이전~120년 이후)는 크세노폰보다 한참 후에 기록들에 의지해서 당시의 전투를 소개하고 있다. 그럼에도 당시 원정군으로 참전했던 크세노폰을 비전투요원이었기에 알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여 자신의 기록에 신빙성을 더하고 있다. 퀴로스가 죽고 목과 손이 절단되는-관행적으로- 바로 그 현장에 크세노폰이 없고, 조금 떨어진 위치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현장성과 그리고 다름 아닌 그 전투의 결과로 갓끈떨어진 처량한 신세에 이르른 그가 수집하고 정리한 정보들이 만만한 것일 수는 없지 않겠는가! 별도의 글에서 다루겠지만 오히려 '영웅전'에서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가 동생 퀴로스를 자신이 직접 죽였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벌이는 여러 해프닝이야말로, 흥미롭기는 하나 그저 비하인드 스토리 혹은 아님은 말고 식의 기록일 수 있음을 언급해두고자 한다.

"군대에는 크세노폰이라는 아테나이인이 있었다. 그는 장군도 대장도 사병도 아니었고, 그가 행군에 참가한 것은 그의 옛 친구 프록세노스가 사람을 보내 그를 불러왔기 때문이다. 프록세노스는 또 그가 오면 퀴로스의 친구로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하며, 자기에게는 퀴로스가 조국보다도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페르시아 원정기>, 3권 1장 4정) 원정에 참가해야 하나, 말하야 하나 크세노폰은 스승이면서 친구와도 같은 소크라테스와 상담까지 했다는, 자기 이야기를 제3의 서술처럼 시치미 뚝 떼고 이어가는 모습이 귀엽다고 할까?

*한편, 스파르타의 왕 아게실라우스(기원전 444무렵~360년).는 "당시 그리스 최고의 인물로서 뛰어난 왕이자 장군이었다. 84세까지 장수를 누렸으며, 이집트 원정에서 돌아오다가 숨을 거두었다." 이처럼 동서문화사의 영웅전은 서두에 아게실라오스의 프로필을 소개한다. 팔십이 넘은 이 양반은 말년에 메세네라는 작은 땅덩어리라도 손에 넣으려고 하나 전쟁경비가 모자라 시민과 친구들에게 경비를 빌리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힘들자 급기야 이집트의 왕 타코스를 위해 싸움에 나선다. 전쟁경비를 마련하기 위한 용병이었으니 반대와 비웃음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스 최고의 장군으로서 세상에 이름을 떨치던 위대한 그가, 이집트의 한 야만인 우두머리에게 고용되었다는 것은 추태라는 것이 세상의 평가였다. 그는 타코스가 보낸 돈을 받아 용병을 모집한다. 그리고 그 병력으로 함대를 구성한 뒤-페르시아 원정 때처럼 30명의 스파르테 장군을 고문으로 임명하여- 이집트로 출항했다. 이제까지의 전쟁에서 입은 부상 때문에 몸을 가누기도 힘든 늙은 장군(왕)이 왜 그러한 선택을 했을까? 그의 속마음(믿음)을 플루타르크는 이렇게 읽고 있다.

'어떤 일이든 그것이 자기 자신만의 명예가 아나라 나라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집 안에 틀어박혀 죽는 날만 기다린다면, 그것이야말로 정말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노년에 관하여>의 주 대담자 대 카토의 삶을 떠올리게 하는 플루타르크의 진단에 별풍선 세 개를!) 상당히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또한 국익을 위해 갖은 반대와 수모를 견뎌내는 노년의 왕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2012년 현재 우리나라의 대통령은 바로 이 대목에서 어떤 생각을 할까?(단적으로 李대통령-맥쿼리 유착의혹 다룬 ‘맥코리아’ 개봉!).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의 용병 파견은 일종의 인력수출이다. 스파르테는 이미 알고있듯이 문(文)보다는 무(武)를 숭상하는 상무국가로, 비록 나라살림이 넉넉하지도 않고 또 그렇게 부를 축적하기보다는 부가 인간을 타락시키는 악의 근원이라는 점을 법과 체제에 반영한 나라였다.

그러나 모든 전쟁은 군인들로만 싸우는 것이 아니고, 나라살림이 넉넉해야 군수물자와 군량을 댈 수 있는 경제전쟁이기도 했다. 영화 <300>의 테모필라이 고개에서의 전투에서보듯 스파르테 전사들은 그야말로 일당백의 전사들이었다. 그러니, 스파르테가 가진 최대 자산은 전투능력과 지휘능력이 출중한 군대였고, 아게실라우스 왕은 그들이 가진 경쟁력 있는 군인(인력)들을 수출해서라도 국가재원을 마련했던 것이다.

크세노폰 (Xenophon, 기원전 431년경~기원전 354년경)의 페르시아원정은 기원전 401년 여름부터 399년 봄까지이다. 아게실라우스(기원전 444무렵~360년)는 84세에 세상을 뜨는데, 이집트 용병출전이 80이 넘어서라고 했으니 기원전 366년무렵이다. 페르시아원정 시점이 35년쯤 앞이다. 그리스 세력의 한 축인 스파르테의 왕도 용병으로 돈벌이에 나서는 것은 후에 일이지만 크세노폰이 용병대의 일원으로 페르시아의 내전에 참전하는 것이 그렇게 큰 흉은 아닌 것처럼 생각되는 것이 (당시의) 인지상정일까? <페르시아 원정기>를 쓰기 위한 참전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당시 크세노폰의 젊은 혈기, 미지의 세계로의 여행충동, 모험심.. 로드무비의 원조인 <오뒷세이아>의 애독자였을 그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자꾸만 동쪽으로 간 까닭은? 알맞은 대답이 있다면 그것은 동시에 크세노폰의 참전 동기에 대한 답도 되지 않을까. 원군은 비겁하다. 그러나 목적이 선하다면 혹은 명분이 솔직하다면 원군 그 자체라도 비겁하지 않을 수 있다. 플랜트 수출(plant export)은 생산설비나 대형기계 등을 비롯하여 관련기계의 설치·가동에 이르는 모든 것을 포함한 공장 전체를 수출하는 것을 말한다. 페르시아 내전에 참전한 용병들, 그리고 아게실라우스 왕이 이끈 스파르테 군인들의 이집트 용병 파견은 단지 용병들만이 아니라 일종의 전투력을 갖춘 시스템을 판매한 플랜트수출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아래*1: "나는 아까 서두에서 시에 대한 나의 사유가 아직도 명확한 것이 못되고, 그러한 모호성은 무한대의 혼돈에의 접근을 위한 도구로서 유용한 것이기 때문에 조금도 부끄러울 것이 없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이러한 모호성의 탐색이 급기야는 참여시의 효용성의 주장에까지 다다르고 말았다. 그러나 나는 아직까지도 '여직까지 없었던 세계가 펼쳐지는 충격'을 못 주고 있다. 이 시론은 아직도 시로서의 충격을 못 주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여직까지의 자유의 서술이 자유의 서술로 그치고, 자유의 이행을 하지 못한 데에 있다. 모험은, 자유의 서술도 자유의 주장도 아닌 자유의 이행이다." (김수영 시론, <시여 침을 뱉어라>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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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우 2012-11-27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군은 비겁하다! 헉헉 거리면서도 끝까지 읽게 하는 힘이 있네여. 김수영과 크세노폰과.. 아게실라오스 스파르테,, 잘 읽었슴다.

timeroad 2012-12-09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길어서 죄송!!
 
일리아스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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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멸의 인간들에게 죽음은 운명에 따르는 순명,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렇게 목숨을 잃는 것이 다른 어떤 이에게는 복수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생물학적인 죽음은 정말 잔인한 복수는 끝이 아니라 시작일 수 있다. 바로 시신을 훼손하고 장례절차를 밟을 수 없게 만들어버리는 것. 해서 헥토르는 자신의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 간청한다.


"내 그대의 목숨과 무릎과 어버이의 이름으로 애원하건대,/ 나를 아카이오이족의 함선들 옆에서 개들이 뜯어먹게/내버려주지 말고"

화장하게 하는 등 장례 절차를 밟게 해달라고.. 그러나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의 청을 받아주지 않는다. 애초에 받아줄 마음이 없었다. 아니 헥토르가 그렇게 간청했으므로 그것을 받아주지 않는 것이 처절한 복수가 된다. "함선들 옆에는 파트로클로스가 아직 문상도 받지 못하고/ 묻히지도 못한 채 누워 있는" 상태이다.


"이렇게 말하고 그는 고귀한 헥토르에게 치욕적인 일을 생각해냈다.(395행)"

그는 두 발의 뒤쪽 힘줄을 뒤꿈치에서 복사뼈까지 뚫고
그 사이로 소가죽 끈을 꿰어서 헥토르를 전차에 매달아
머리가 뒤에서 끌려오도록 해놓았다. 그런 다음 그는
이름난 무구들을 전차 위에 올려놓고 자신도 올라 채찍을
휘두르며 말을 보니 말들도 마다않고 나는 듯이 달렸다.
헥토르가 끌려가자 그 주위에서는 먼지가 일고, 그의 검푸른
머리털은 양쪽으로 흘러내려 전에는 그토롭 곱던 그의 머리가
온통 먼지투성이가 되었으니, 제우스가 이제 그를 적군에게
내주어 그 자신의 고향 땅에서 그를 모욕하게 했기 때문이다."(22권, 396~404행)


그리고 아킬레우스는 자신이 죽이고 모욕한 헥토르의 시신을 방치해둔 채 전우의 장례식을 성대하게 치른다. 심지어 전차에 헥토르를 매단 채 축성한 친구의 무덤 주변을 몇 바퀴를 도는 퍼포먼스까지,, 분풀이를 한다. 그리고 이 광경을 헥토르의 가족들은 지켜보고 있다. 좀 심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지만.. 불사의 신인 어머니(테티스)야 그럴 일이 없겠지만 친아비와 친아들의 죽음보다도 더 안타깝게 생각하는 친구의 죽음을!! 장례경기까지 치르게 하면서 성대하게 치르면서 애도한다.


2012년. 김기덕 감독의 영화 <피에타>는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도대체 어떤 영화이기에 그런 훌륭한 상을 받았을까, 궁금해서 너무 늦지 않게 극장을 찾았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트럭에 남자 주인공 이강도가 끌려가면서 자살을 하는 장면, 엔딩장면을 보면서 <일리아스>의 중요장면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었다. <피에타>를 보았느냐? 아직 보지 못했다는 사람에게는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강한 스포일러일 것이고 마지막 장면이 지닌 의미가 아주 크기에 한 차례 보시라고.. 그리고 보았다는 사람에게는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이가 있나 묻지만 정말 나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공감하는 얘기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그리고 <일리아스>를 며칠에 걸쳐 다시 읽었보았다. 부분부분 전투신들이 지리하게 느껴져서 띄어넘었던 부분들까지 해서 거의 새롭게 읽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만큼 제대로 몰입하지 않으면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그 싸움이 그 싸움 같기 때문이다. 또한 늘 그렇듯이 숱한 영웅들의 이름이며 행적들까지, 속도가 나지 않지만 그래도 촘촘하게 읽어나갔다.

피에타! 역시 베니스, 이탈리아의 도시 이름을 단 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을 수밖에 없었겠구나, 하는 것이 결론이다. 자신을 버린 어머니의 '빈 자리'라는 틈새를 집요하게 뚫고 들어와 결국은 자기 아들을 죽인 상대에게 복수하는 엄마 미선(조민수)에게서 우리는 우리 시대의 아킬레우스를 만난다. 그녀도 일리아스에서처럼 죽은 아들의 장례마저 미루고 복수를 준비하고 서서히 그 지점을 향해 나아간다.

아킬레우스가 아테네의 도움으로 아폴론에게 버림받은 헥토르를 죽이고 있다. 기원전 5세기, 포도주 희석용 동이 세부(위). 아킬레우스가 헥토르의 시신을 전차에 매달고 끌고 가고 있다. 기원전 500년경, 물항아리 세부(아래). <일리아스>(천병희 역, 숲 펴냄) 앞 화보 촬영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이라는 말을 하는데, 강도(이정진)를 응징하고자 하는 미선에게는 이중적으로 적용된다. 자식의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네 원한을 풀어주리라, 그리고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자식의 원한을 풀고야 말기에 하는 소리다. 그동안 아들의 시신은 자살을 했던 작업장의 대형냉장고에 보관된 상태이다. 오랜 휴식을 끝내고, 자신의 절친의 죽인 헥토르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전열을 다듬는 아킬레우스에게는 아침 한 끼를 먹는 시간도 아깝다. 그러나 미선은 주도면밀하고 냉정하게 복수극을 이끌어간다. 그녀라고 해서 아들을 죽인 원수 앞에서 넘기는 밥이 잘 넘어갔을리 없다. 그러나 그 침착함이 더 소름이 끼친다.


<일리아스>는 영화로 치면 스펙타클한 전쟁영화이다. 이를 소재로한 <트로이>도 있지만.. 그리고 토로이 전쟁은 그야말로 복수극이다. 헬레네를 납치하다시피 끌고간 파리스를 응징하고자 하는 헬레네의 본 남편 메넬라오스의 대척점에서부터..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의 갈등도 그리고 그로인한 숱한 영웅들과 전사들의 희생이라는 것도.. 더구나 호메로스의 다른 대서사시 <오뒷세우스> 모험과 여행을 바탕에 깐 로드무비의 원형이라면 <일리아스>는 스펙타클한 전쟁영화의 원형일 것이다. 특히 살육의 장면들이 생생하게 묘사되는데, <피에타>에서도 기존의 김기덕영화처럼 직접적인 장면들은 많이 가렸으나 여러 종류의 죽음과 상채기가 도처에 깔려 있으며 상해의 장면들이 참 다채롭고 백화점 수준이다. 그러나 무슨 까닭이 있겠으나 희생자들이 왜 그런 지경에 이르렀는지에 대해서는 다만 사채를 썼고 제 때에 갚지 못해서만 있을 뿐 그 내력은 중요하지 않다. <피에타> 영화소개를 보니 다음과 같이 정리되어 있다.


"영화의 제목이자 주제를 관통하는 ‘피에타’는 이탈리아어로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으로, 성모 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안고 비탄에 잠겨 있는 모습을 묘사한 미술 양식을 통칭한다. 미켈란젤로, 들라크루아, 고흐 등 세기의 예술 작품에 이어, 새로운 <피에타>를 탄생시킨 김기덕 감독은 ‘피에타’가 지닌 고유의 통렬한 슬픔을 극적인 영상으로 재해석해냈다."
그러나 나는 르네상스라는 용어에 이미 그 답이 내포되어 있지만, 어쩌면 제목 때문에 혼선이 좀 있기는 하나 피에타는 '일리아스'를 소스를 얻었다고 할 만큼 닮은 부분이 적지 않다. 그리스 옆동네 베시스에서 상을 받을 만하지 않은가! 어디서 본듯한 고전(교양)의 세계와 맥락이 닿아 있으니 말이다.


"<피에타>는 강도와 엄마라는 여자 사이의 묘연한 관계를 통해 ‘피에타’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다. 심장을 파고드는 강렬한 슬픔을 고스란히 스크린에 옮겨낸 영화 <피에타>는 21세기 형 ‘피에타’ 신드롬 열풍의 시작을 알릴 것이다. 한편, 김기덕 감독은 “현대의 모든 큰 전쟁부터 작은 일상의 범죄까지,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는 공범이며 죄인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그 누구도 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므로 신에게 자비를 바라는 뜻에서 <피에타>라고 제목을 정했다.”

감독은 제목이 담긴 의미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용서는 없다. 그리고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 <일이아스>나 <피에타>나 결국 무자비에 대한 응징이 물고 물리는 이야기다. 복수를 위해 무자비로 끝까지 밀어부칠 때 양날의 검은 결국 본인도 결국 무자비의 희생양이 되게 한다. 아킬레우스는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알고 있다.


"죽어라! 내 죽음의 운명은 제우스와 다른 불사신들께서/ 이루시기를 원하는 때에 언제든 받아들이겠다."(22권, 365~366행)
헥토르를 죽이고 나서 아킬레우스가 하는 말이다. 영화 <피에타>는 고전 <일리아스>와 많음 점에서 닮아 있다.  서양의 고전이면서 인류문명의 고전이기도 한 호메로스의 작품들을 제대로 읽으면 보이는 것이 있다. 어쩌면 서양인들의 양식의 바탕에 그러한 고전이 있기에, <피에타>라는 영화는 작품 이전의 원전 덕분에 쉽게 '울림'을 줄 수 있었던 것은 아니겠는가! 모범답안처럼 수상작으로 결정하게 되기까지. 아마도 나와 비슷한 내용의 글을 쓴 기자들이나 논객들이 없지 않으리라. 다만 웹상에서 '피에타' + '일리아스'로 검색했을 때 검색된 글이 없었음을 밝혀둔다.

 

영화 <피에타>의 스틸 컷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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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우 2012-11-13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랬군요. 사실 영화에서 마지막 장면이야말로 가장 센 스포일러죠. 알았건 몰랐건 설득력 만빵인 글입니다.

timeroad 2012-12-09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연히 영화만드는 감독이 일리아스를 안 읽었을리 없지만, 인터뷰를 함 해보고 싶은..
 
역사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헤로도토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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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랖이 넓다!" 무슨 일이고 참견하고 간섭하는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오지랖'이란 우리말로서 윗옷의 앞자락을 말한다. 곧 오지랖이 넓다는 것은 옷의 앞자락이 넓다는 뜻. 웃옷의 앞자락이 넓으면 안에 있는 다른 옷을 감싸버릴 수가 있는 것처럼 사람도 무슨일이나 말이든간에 앞장서서 간섭하고 참견하고 다니는 것을 비유하여 오지랖이 넓다고 말한다.

여기에 덧붙여 오지랖이 넓으면 몸을 구부릴 때나 움직일 때나 옷에 이물질이 묻을 확률이 높다. 고생이 상당했으리라. 해서 나는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읽을 때마다, 역사의 아버지께서는 오지랍이 참 넓으신 분으로 세계의 오지 곳곳을 찾아다닌 오지 기행가라고 생각하는데, 사라질 뻔한 이야기들을 세이브해줘서 감사하다는 얘기다.

헤로도토스가 <역사> 구조적 특징 가운데 하나는 여담 형식의 지리학적 인종학적 민속학적 역사적 자료들이 대량을로 제시되는데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신화의 소재 가운데 흥미로운 부분을 골라 '책을 다룬 책'처럼 새롭게 창조해내는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를 곳곳에서 만나는 느낌이다. 인간의 역사는 대체로 전쟁의 역사라고 해도 될만큼 그 출발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전쟁 이야기 중간중간에 양념에 해당하는 삽화와 수집한 정보들을 아낌없이 넣어 버무린 덕분에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헬라스인과 비 헬라스인들의 행적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망각되고, 무엇보다도 헬라스인과 비 헬라스인이 서로 전쟁을 하게 된 원을 밝히는 데 있다."고 <<역사>> 서언에서 탐사보고서를 쓴 목적을 분명히 하면서도 말이다.

주로(主路)를 따라간다 싶으면 어느새 샛길, 말 나온 김에 하는 말이지만, 정복할 대상을, 혹은 정복한 대상의 민족과 종족들의 이런저런 풍습들을 늘어놓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이 양반 구라가 대단하다는 감탄하게 된다. 어쨌거나 덕분에 역사는 우리가 아는 '그로테스크한' 역사가 아닌 흥미진진한 읽을거리가 되는 것이다.

페르시아의 퀴로스 왕이 난공불락으로 축성한 앗시리아의 바뵐론을 정복한, 그러나 생각보다 쉽게 정복이 된 바뵐론에 대한 전쟁담과는 달리 그들의 축성이나 풍습 몇가지에 더 비중을 두고 얘기한다. 그가 소개하는 바뵐론의 가장 현명한 관습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그들의 관습들 가운데 내가 보기에 가장 현명한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인데  듣자 하니, 일뤼리콘의 에네토이족도 이 관습을 지킨다고 한다.) ..마을마다 매년 한 번씩 다음과 같은 행사가 열렸다. 시집갈 나이가 된 처녀들이 소집되어 전부 한 곳에 모이면, 남자들이 그들을 둘러선다. 그러면 전령이 처녀들을 한 명씩 일으켜 세워 경매에 붙인다. 경매는 가장 예쁜 처녀부터 시작되는데, 그 처녀가 높은 값에 팔리면 그 다음으로 예쁜 처녀를 경매에 붙이곤 했다. 처녀들은 노예가 아니라 아내로서 팔렸던 것이다. 장가들고 싶은 바뷜론 남자들 가운데 부자들은 젊고 예쁜 여인을 사려고 서로 더 높은 값을 제시했다. 그러나 장가들기를 원하는 하층민은 미색(美色)은 따지지 않고, 못생긴 처녀를 아내로 얻고 돈까지 덤으로 받았다."(역사, 1권 196장 초반부)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등장하는 분위기 떠오르기도 하고, 은밀한 거래가 이뤄지는 술과 여인들이 등장하는 밤의 무대가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요즘처럼 농기계가 편리함을 주기 불과 얼마 전까지도 농자천하지대본이던 우리에게 가족의 수는 그 집안의 농업노동력이었듯이 인구를 늘리기 위해서는 어찌되었거나 적령기의 남녀가 결혼하도록 하기 위한 수단이었으리라. 예나 지금이나 미모가 기준이 되고, 그에 따라 돈이 가치 기준으로 등장한다는 점에서는 유감스럽지만, 하지만 지참금을 여자가 가져오건 남자가 신부측에 바치건 '거래성 혼인'은 혼인 제도 그 자체에 깔려 있는 것이니..좀더 지켜보자.


"전령은 가장 잘생긴 처녀들을 다 팔고 나면 가장 못생긴 또는 불구인 처녀를 일으켜 세워 경매에 붙이되, 가장 돈을 적게 받고 그 처녀에게 장가들겠다는 남자에게 팔았기 때문이다. 그 돈은 잘 생긴 처녀들을 팔고 생긴 것이라, 어떤 의미에서는 잘 생긴 처녀들이 못생기고 불구인 처녀들을 시집보내는 셈이었다."

(이 점은 음음, 마음에 든다.)


"자기 딸이라도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시집보내는 것은 누구에게도 허용되지 않았고, 처녀를 샀다 해도 보증인 없이 집으로 데려가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실제로 그녀와 동거할 것임을 보증하는 보증인을 세워야만 그녀를 집으로 데려갈 수 있었다. 둘이 서로 의견이 맞지 않으면 남자는 받은 돈을 돌려주는 것이 관례였다. 다른 마을에서 온 사람도 원한다면 경매에 참가할 수 있었다. 이것이 그들의 가장 아름다운 관습이었으나, 지금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자꾸만 결혼 연령이 늦어지거나 독신을 고집하거나 또한 결혼하고 싶어도 청년실업 때문에 결혼은 꿈도 못꾸는 청춘들이 많은 우리의 지금 상황에 적용하기는 쉽지 않지만, 응용해볼 여기가 있는 관습이 아닐까? 결혼을 못하는 농촌총각들도 결혼할 수 있고, 먼 이국으로부터 온 며느리들, 다문화가정의 문제도 앞서 해소할 수 있었을 것인데 하는 생각 등등
그런데 바뵐론이 함락이 되면서 이런 전통도 사라져버렀다고 헤로도토스는 기술한다. "그들은 요즘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냈던 것이다. [그들이 여자들에게 부당한 짓을 하거나 외국으로 데려가지 않기 위하여.] 바뷜론이 함락되며 살기가 어려워지자 궁핍한 서민들은 모두 딸에게 매춘을 시키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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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우 2012-11-13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농촌총각들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이렇게 해야 인구정책이 좀 나아질 수 있을까요? 태어났으면 종족을 번식해야 하는 것은 자연의 법이거늘..

timeroad 2012-12-09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 사는 것 다 거기서 거기라고 하는데, 그렇담 더욱.. 지금이야 기계힘을 빌리지만 가족 수가 많으면 농본사회에서는 짱이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