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헤로도토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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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랖이 넓다!" 무슨 일이고 참견하고 간섭하는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오지랖'이란 우리말로서 윗옷의 앞자락을 말한다. 곧 오지랖이 넓다는 것은 옷의 앞자락이 넓다는 뜻. 웃옷의 앞자락이 넓으면 안에 있는 다른 옷을 감싸버릴 수가 있는 것처럼 사람도 무슨일이나 말이든간에 앞장서서 간섭하고 참견하고 다니는 것을 비유하여 오지랖이 넓다고 말한다.

여기에 덧붙여 오지랖이 넓으면 몸을 구부릴 때나 움직일 때나 옷에 이물질이 묻을 확률이 높다. 고생이 상당했으리라. 해서 나는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읽을 때마다, 역사의 아버지께서는 오지랍이 참 넓으신 분으로 세계의 오지 곳곳을 찾아다닌 오지 기행가라고 생각하는데, 사라질 뻔한 이야기들을 세이브해줘서 감사하다는 얘기다.

헤로도토스가 <역사> 구조적 특징 가운데 하나는 여담 형식의 지리학적 인종학적 민속학적 역사적 자료들이 대량을로 제시되는데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신화의 소재 가운데 흥미로운 부분을 골라 '책을 다룬 책'처럼 새롭게 창조해내는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를 곳곳에서 만나는 느낌이다. 인간의 역사는 대체로 전쟁의 역사라고 해도 될만큼 그 출발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전쟁 이야기 중간중간에 양념에 해당하는 삽화와 수집한 정보들을 아낌없이 넣어 버무린 덕분에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헬라스인과 비 헬라스인들의 행적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망각되고, 무엇보다도 헬라스인과 비 헬라스인이 서로 전쟁을 하게 된 원을 밝히는 데 있다."고 <<역사>> 서언에서 탐사보고서를 쓴 목적을 분명히 하면서도 말이다.

주로(主路)를 따라간다 싶으면 어느새 샛길, 말 나온 김에 하는 말이지만, 정복할 대상을, 혹은 정복한 대상의 민족과 종족들의 이런저런 풍습들을 늘어놓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이 양반 구라가 대단하다는 감탄하게 된다. 어쨌거나 덕분에 역사는 우리가 아는 '그로테스크한' 역사가 아닌 흥미진진한 읽을거리가 되는 것이다.

페르시아의 퀴로스 왕이 난공불락으로 축성한 앗시리아의 바뵐론을 정복한, 그러나 생각보다 쉽게 정복이 된 바뵐론에 대한 전쟁담과는 달리 그들의 축성이나 풍습 몇가지에 더 비중을 두고 얘기한다. 그가 소개하는 바뵐론의 가장 현명한 관습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그들의 관습들 가운데 내가 보기에 가장 현명한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인데  듣자 하니, 일뤼리콘의 에네토이족도 이 관습을 지킨다고 한다.) ..마을마다 매년 한 번씩 다음과 같은 행사가 열렸다. 시집갈 나이가 된 처녀들이 소집되어 전부 한 곳에 모이면, 남자들이 그들을 둘러선다. 그러면 전령이 처녀들을 한 명씩 일으켜 세워 경매에 붙인다. 경매는 가장 예쁜 처녀부터 시작되는데, 그 처녀가 높은 값에 팔리면 그 다음으로 예쁜 처녀를 경매에 붙이곤 했다. 처녀들은 노예가 아니라 아내로서 팔렸던 것이다. 장가들고 싶은 바뷜론 남자들 가운데 부자들은 젊고 예쁜 여인을 사려고 서로 더 높은 값을 제시했다. 그러나 장가들기를 원하는 하층민은 미색(美色)은 따지지 않고, 못생긴 처녀를 아내로 얻고 돈까지 덤으로 받았다."(역사, 1권 196장 초반부)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등장하는 분위기 떠오르기도 하고, 은밀한 거래가 이뤄지는 술과 여인들이 등장하는 밤의 무대가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요즘처럼 농기계가 편리함을 주기 불과 얼마 전까지도 농자천하지대본이던 우리에게 가족의 수는 그 집안의 농업노동력이었듯이 인구를 늘리기 위해서는 어찌되었거나 적령기의 남녀가 결혼하도록 하기 위한 수단이었으리라. 예나 지금이나 미모가 기준이 되고, 그에 따라 돈이 가치 기준으로 등장한다는 점에서는 유감스럽지만, 하지만 지참금을 여자가 가져오건 남자가 신부측에 바치건 '거래성 혼인'은 혼인 제도 그 자체에 깔려 있는 것이니..좀더 지켜보자.


"전령은 가장 잘생긴 처녀들을 다 팔고 나면 가장 못생긴 또는 불구인 처녀를 일으켜 세워 경매에 붙이되, 가장 돈을 적게 받고 그 처녀에게 장가들겠다는 남자에게 팔았기 때문이다. 그 돈은 잘 생긴 처녀들을 팔고 생긴 것이라, 어떤 의미에서는 잘 생긴 처녀들이 못생기고 불구인 처녀들을 시집보내는 셈이었다."

(이 점은 음음, 마음에 든다.)


"자기 딸이라도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시집보내는 것은 누구에게도 허용되지 않았고, 처녀를 샀다 해도 보증인 없이 집으로 데려가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실제로 그녀와 동거할 것임을 보증하는 보증인을 세워야만 그녀를 집으로 데려갈 수 있었다. 둘이 서로 의견이 맞지 않으면 남자는 받은 돈을 돌려주는 것이 관례였다. 다른 마을에서 온 사람도 원한다면 경매에 참가할 수 있었다. 이것이 그들의 가장 아름다운 관습이었으나, 지금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자꾸만 결혼 연령이 늦어지거나 독신을 고집하거나 또한 결혼하고 싶어도 청년실업 때문에 결혼은 꿈도 못꾸는 청춘들이 많은 우리의 지금 상황에 적용하기는 쉽지 않지만, 응용해볼 여기가 있는 관습이 아닐까? 결혼을 못하는 농촌총각들도 결혼할 수 있고, 먼 이국으로부터 온 며느리들, 다문화가정의 문제도 앞서 해소할 수 있었을 것인데 하는 생각 등등
그런데 바뵐론이 함락이 되면서 이런 전통도 사라져버렀다고 헤로도토스는 기술한다. "그들은 요즘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냈던 것이다. [그들이 여자들에게 부당한 짓을 하거나 외국으로 데려가지 않기 위하여.] 바뷜론이 함락되며 살기가 어려워지자 궁핍한 서민들은 모두 딸에게 매춘을 시키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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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우 2012-11-13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농촌총각들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이렇게 해야 인구정책이 좀 나아질 수 있을까요? 태어났으면 종족을 번식해야 하는 것은 자연의 법이거늘..

timeroad 2012-12-09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 사는 것 다 거기서 거기라고 하는데, 그렇담 더욱.. 지금이야 기계힘을 빌리지만 가족 수가 많으면 농본사회에서는 짱이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