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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솝 우화』에는 “동물 말고도 식물, 사람, 신(神) 등이 등장하며 이야기는 대체로 강자의 승리로 끝난다”(옮긴이 서문) 동물들이 나오는 교훈이 담긴 이야기를 이솝우화라고 통칭하는 것에서 보듯 우화에는 동물들이 가장 많이 등장한다. 뿐만 아니라 ‘좋은 것’과 ‘나쁜 것’과 같은 개념도 등장한다. 가급적 텍스트 인용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이솝 우화』의 ‘미리보기’(알라딘)가 활성화되지 않은 상태라 첫 번째 우화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미리보기가 가능하다면 굳이 입력하지 않았을 것).   

좋은 것들은 허약한지라 나쁜 것들에 쫓겨 하늘로 올라갔다. 그러자 좋은 것들이 어떻게 해야 사람들에게 갈 수 있겠는지 제우스에게 물었다. 제우스가 좋은 것들에게 이르기를, 사람들에게 다가가되 한꺼번에 몰려가지 말고 하나씩 가라고 했다. 그리하여 나쁜 것들은 가까이 사는 까닭에 늘 사람들을 공격하지만, 좋은 것들은 하늘에서 하나씩 내려와야 하기 때문에 드문드문 사람들을 찾아가는 것이다. -<001. 좋은 것들과 나쁜 것들> 전문


첫 번째 우화가 우화 하면 으레 떠올리는 동물과는 거리가 먼 개념이 등장하는 점이 흥미롭다. 123번째 이야기도 이와 유사하다. 


제우스는 좋은 것들을 모두 항아리에 담은 뒤 어떤 사람에게 간수하라고 맡겼다. 호기심 많은 그 사람은 항아리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고 싶어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좋은 것들이 모두 신들에게로 날아가버렸다. -<123.제우스와 좋은 것들이 든 항아리> 전문


인간의 호기심을 그 누가 말리겠는가? 우화에서는 호기심 때문에 나쁜 결과에 이르렀는데, 플루타르코스의 윤리론집 『수다에 관하여』(천병희 옮김)에는 인간의 호기심이 어떻게 작동되고, 나쁜 습관의 원인이 되는지 흥미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한편으로 이 호기심이 없다면 오늘날과 같은 문명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에서 역설이다. 이쨌든 123번 우화는 ‘판도라의 항아리’[『신들의 계보』 관련 글은 올린 바 있다. 이 책 「일과 날」(47~105행)에서 언급]라는 신화 이전의 유사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천일의 유리1』 리뷰는 이미 썼고, 페이퍼는 『천일의 유리2』와 관련해서 쓰기로 한 것은 『천일의 유리2』는 ‘미리보기’(알라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2권을 1권에 이어 ‘나는 지혜의 고리다’라는 2월 13일 화요일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1권과 2권을 통틀어 모두 1,000꼭지의 에피소드가 한 페이지에 하나씩 소개된다. 그래서 ‘천일’이다. ‘미리보기’에 등장하는 화자들만 나열해도 한눈에 구성의 특이점을 파악할 수 있다. ‘나는 □□이다’의 20일 동안의 □□은 다음과 같다. 지혜의 고리(2월 13일 화요일~) 민요, 스코프(Scope), 눈사람, 길가에 선 채 나누는 대화, 고드름, 관찰, 덧없는 세상, 에어즈 록, 거절, 향응, 흉내, 실의, 폐옥, 선망, 장갑, 귀향, 골격, 자만, 오토바이, 치와와, 색종이(~3월 6일 화요일)


마침 겨울인데, ‘눈사람’은 유쾌하고 ‘고드름’은 평범한 일상의 풍경에 감추어진 익살과 섬뜩한 뭔가를 담고 있다. 굳이 1,000일 동안의 1,000개의 에피소드를 나열한 것은 설화의 집성본인 『천일의 전설』이라는 유실된 페르시아 책에서 유래한 『천일야화 Book of the Thousand and One Nights』 덕분일 것이다. 그리고 ‘천일의 유리’는 1,000개의 시선을 땀은 1,000개의 에피소드(우화들)를 통해 서사를 이어간다. “아직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은 산지에 위치한 마호로 마을의 언덕 위 외딴집에 살고 있는 소년 요이치의 짧은 생애”가 담긴, 소설이다. 속세를 벗어난 (공간) 배경이지만 ‘도시=퇴폐’와 같은 등식에 따른다면 “헛된 집착과 욕망의 포로가 되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무능력함”을 풍자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일어 번역본이나 영어 번역본을 거쳐 소개되는 과정에서 그런 ‘가위질’이 다반사가 되는 바람에 이솝은 오히려 딱딱하고 근엄한 도덕 교사로 변해버렸다. 서너 편 정도만 읽어봐도 우리가 알고 있던 이솝의 모습이 그의 본디 모습과 얼마나 다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솝 우화』, 옮긴이 서문 중에서 


왜 원전을 읽어야 하는지, 한 언어의 집인 콘텐츠를 다른 언어의 집으로 제대로 옮기는 일은 국가가 지원해야 할 사업이며, ‘천일의 유리’라는 콘텐츠는 거슬러 올라, 가령 '『이솝 우화』를 제대로 읽을 수 있는' 환경이기에 가능했다고 하겠다. 왜 우리는 아직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가 없는가? 


“...나는 고양이만이 아니라 인간의 몸에도 구멍을 뚫을 수 있는 힘을 숨기고 있다. 그걸 잘 알고 있을 그가 아직은 더 살아야 한다는 말을 뱉자마자 벌렁 큰 대자로 드러누워, 당당하게 가슴을 내 쪽으로 향한다. ...” -나는 고드름이다, 2월 18일 일요일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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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17 20: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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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랏말싸미>는 여인(궁녀)의 구강 구조까지 클로즈업을 하는 등 표음문자이자 '설형문자'인 한글의 창제원리를 디테일하게 소개한다. 알고 있다고 여겼지만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을 영화를 통해 대중들이 알게 되었다. 이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나름의 역할을 한 것이다. 영화는 영화일 뿐, 한 편의 영화에서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할 수 없고, 사실이 그렇다. 천만관객 국내 영화가 너무 많아서인지, 이 영화의 관객이 채 100만을 넘지 못하는 현 상태가 아쉬운 이유다. [영화 <나랏말싸미>(THE KING'S LETTERS, 2018 제작, 2019.07.24 개봉, 954,800명(2019.08.31, 영진위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01. 말은 있는데 문자가 왜 없을까, 한글창제는 호기심에서 시작되었다. 
모든 주의(主義)는 프레임(frame)이 그렇듯, 맹목적일 때 고착화될 때 위험해진다. 항상 예외는 있는 법이고, 세월이 흘러 한때 사론이 정론으로 자리바꿈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主義)는 주의(注意)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민족이 세계(시장)에 내놓아도, 이것만은 우리것이라고 자랑스럽게 내세울 세 가지 정도를 꼽으라면 그 첫째가 한글이다. 셋 중 하나로 조선후기에 시작된 민화(民畵)를 꼽기도 한다. 일본의 강점에 의해 조선이 근대화된 것이 아니라, 상인세력들의 급부상과 양반계급의 몰락 등 자발적인 근대화의 싹을 '민화'의 제작과 거래, 소유 등에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광화문 한복판에 세종대왕상이 서 있는 것은 타당하다. 세종대왕이 주도한 한글창제는 우리 민족의 자부심이며, '민족주의'를 얘기할 때, 제1근거가 된다. 그런데, 왜 한글을 창제하기로 마음먹은 것일까? 결과적으로 애민(愛民)에 따른 훈민(訓民)의 필요성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왕조의 4대 왕에 이르러 왜 갑자기 이런 사업이 추진된 것일까? 그 계기는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거창한 이유가 아니고 (어쩌면 사소한) '호기심'의 발로라고 본다. 말은 있는데 왜 그 말을 기록할 문자는 없는 것일까? 그러나 이런 사소한 호기심은 문자혁명을 이룩했다.
조선창업 프로젝트를 주도한 정도전은 왕권과 신권의 조화, 공정하게 경쟁하고 건강한 갈등이 있는 그런 나라를 꿈꾸었다. 한쪽으로 치우침으로써 권력이 남용되는 것을 경계한 것. 세종대왕은 아버지 태종과는 다른 방식으로 왕권 강화책을 도모하는데, 창제한 한글은 결정적인 무기가 된다. 중앙집권의 강화, 민심을 왕정에 반영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말을 그대로 기록할 수 있는 문자의 발명이었다. 특권(양반)층이 반발하는 것 또한 당연했다. 한글 창제와 반포를 두고 왕권과 신권이 극렬하게 신경전을 벌인다. 이 영화에서도 세종대왕이 왜 한글을 창제할 생각을 하게 되는지, 그 출발이 '호기심'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 에피소드(잘 기억나지 않는다)를 부각시켜야 했다.
철학이든 과학이든, 하드웨어이건 소프트웨어이건 새로움 또는 새로운 것의 창조는 이 호기심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달리 표현하면 불편함의 발견인데, 이 발견이 곧 호기심이고 호기심 때문에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 이 호기심을 억누르지 않고 그 궁금증을 풀었을 때, 발명품이 탄생한다. 한글의 탄생도 예외는 아니었다. 세종대왕 제위 시에 현대의 과학에 힘입은 발명품처럼 그런 새로운 창안 품들이 속속 개발되었다는 사실을 두루 감안할 때, 세종대왕은 호기심이 무척 많은, 그러나 생각에만 머물지 않고 실천적으로 결과물을 낸 과학자이자 언어 철학자가 된다. 이 영화의 영어명은 <THE KING'S LETTERS>다. 난독증도 아니고, 한글의 실체, 한글이 가진 힘을 제대로 홍보한 영화가 역사왜곡 논쟁의 거미줄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올해 아니 내년쯤의 한글날 TV영화로 방영하는 1순위 영화가 될 것인데, 새삼스럽게 불필요한 논쟁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호기심’에 대해 살핀다.

 

#2. ‘지혜 사랑’(철학) 원천은 호기심, 당대 현실에 대한 실망감에서 시작

"플라톤과 그를 따랐던 많은 철학자에 따르면, 지혜에 대한 사랑을 뜻하는 철학의 원천은 호기심입니다. 우리는 왜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 왜 전지전능한 신이 있는데도 악이 있는지, 무엇이 선을 선으로 만드는지 궁금해 합니다. 심지어 아이들로 이런 질문을 합니다." -『철학이 필요한 순간』(스벤 브링크만 지음, 다산초당) 29면
덴마크 사람. 철학 강연으로 유명하며 베스트셀러 작가인 스벤 브링크만의 ‘강의록’(책) 중 일부다. 철학은 우리가 1)지닌 개념을 검토하고, 2)더 명료하게 질문하고, 3)보다 더 정확하게 대답하기 위해서 필요하다는 것. 그런데 철학이 호기심에서 시작된다는, 플라톤 철학의 출발점과는 좀 다른 관점이 있다. 현대 철학자 사이먼 클리츨리의 의견인데, 철학이 ‘실망감’에서 나왔다는 것. 우리 마음에 있는 '사회가 정의롭지 않다는 실망감'이 정치철학에 대한 필요를 낳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는 열망을 낳았다는 것이다. 한편 크리츨리는 철학은 ‘신이 없다는 실망감’에서 나온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폭력적이며 불공정한 세상'에서는 선이 끝끝내 승리할 때가 드물고, 악인이 행복하게 살기도 합니다."(앞의 책)
그렇다면 플라톤에서 전환점을 맞이하는 철학의 출발점이 '호기심'이란 것과, 현대 정치철학의 출발점이 '실망감'이라는 의견은 상호 충돌하는 것일까? 소크라테스를 떠올린다. 학교에서 배웠거나 인터넷에서 읽었거나 역사적 인물로서의 소크라테스도 좋다. 플라톤의 대화편들에서, 크세노폰의 진솔한 회상에서 만나는 보다 진지한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떠올려도 좋다. 그는 호기심이 많았고, 그것을 억제할 수가 없어 아테네 시내를 어슬렁거린다. 그리고 당대의 내로라하는 지성들, 권력을 쥔 정치가들,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예술가들을 만나 공개토론을 진행했다. 논쟁하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인 양, 그의 분주한 행보는 호기심의 발로였다. 그러나 당대의 현실정치에 대한 실망감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했다. 초기 플라톤의 대화편들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가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하는 철학자라면, 중기에서 후기에 이르는 플라톤의 대화편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는 현실(정치를 포함 거의 모든 것)에 대한 '실망감'에서 (플라톤이) 철학하고 교육효과를 늘리려 집필한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이 있었고, 당대에도 직접 혹은 간접으로 현실정치에 개입하는 소피스트(연설가들)들이 있었지만, 서양철학의 진정한 출발은 소크라테스-플라톤이라도 보는 데 이의는 없을 듯하다. 서양철학의 전통은 이처럼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되어 세계 각지로 퍼져나갔고, 때로는 동양의 사상과 교류했다. 철학자를 뜻하는 영어 'philosopher'은 '지혜에 대한 사랑'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다. 플라톤의 대화편 「파이드로스」에서 소크라테스(플라톤)는 '지혜 사랑'을 직접 언급한다. 철학자들에게는 있지만 소피스트들에게는 없거나 결여되어 있는 것, 그 차이를 설명하면서다. 최근 발간된 『철학의 역사』에서도 공감할 수 있는 의견을 발견한다.

"서양철학의 전통에서 중시하는 지혜란 단지 어떤 대단한 인물이 참이라고 말해주었다는 이유로 믿는 게 아니라 논쟁하고 추론하고 질문하는 데에 바탕을 둔 것이다. 소크라테스에게 지혜는 수많은 사실을 아는 것이나 어떤 일을 하는 법을 아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의 한계 등 우리 존재의 진정한 본질을 이해하는 것을 의미했다. 오늘날 철학자들은 소크라테스가 한 것과 거의 흡사한 일을 하고 있다." -『철학의 역사』12~13면, 나이절 워버턴, 소소의책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은 거의 대부분이 질문과 대답으로 이루어져 있다. 상당수는 자문자답, 대답하기 위해 스스로 하는 질문이다. 질문은 관심, 질문은 문득 고개를 쳐든 호기심에서 시작된다. 앞서 사이먼 클리츨리의 의견(철학은 실망감에서 출발한다)은 소크라테스 시대에 이미 시작되었다. 소크라테스는 새로운 관점에서 아테네를 바라보았고,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랑하기에 미워할 수도 있는 것. 그러나 역설적으로 아테네 정치가들(실력자들)이나 명망가들, 투표권을 가진 시민의 상당수에게 소크라테스는 존재 자체가 불편함이었다. 사형판결로 자명했고, 자살과도 같은 것이었다. 세계의 실재에 대한 객관적인 앎, 과학의 출발점도 호기심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왜 당대의 아테네 시민들은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궁금증을 풀기 위해 아테네 시내를 배회하는 소크라테스를 불편하게 여겼을까? 호기심의 어두운 면이 있다.

 

#3. 수다에는 수다 자체 못지않은 큰 악덕이 따르는데, 호기심이다.

플루타르코스(기원후 50년 이전~120년 이후)의 철학에세이 「수다에 관하여」에서는 수다와 관련된 호기심의 실체가 드러난다. 수다에는 수다 자체 못지않은 큰 악덕이 따르는데, 호기심이란다. 수다쟁이는 (무엇이건) 말을 많이 할 수 있기 위해 많이 듣고 싶어 한다는 것, 세상사 이것저것, 근동의 장삼이사에 대해 필요 이상의 호기심을 갖고, 필요 이상의 호기심이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도 개의치 않는다는 것. 가짜뉴스가 판치는 작금의 세상은 또 어떠한가!
"그들은 특히 자신의 수다에 새로운 소재를 공급하기 위해서 비밀스러운 또는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내려고 꼬치꼬치 캐묻고 돌아다닌다. 그들은 얼음을 손에 들 수 없으면서도 놓으려고 하지 않는 어린아이들과도 같다. 그러므로 이렇게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수다쟁이는 남의 비밀을 가슴에 품지만, 그곳에 간직하지 못하면 마치 뱀에게 물리듯 그 비밀에 물리고 만다고. 동갈치나 독사는 새끼를 낳다가 터져 죽는다는데, 비밀도 입 밖에 나오면 누설자를 파멸케 하기 때문이다." -『수다에 관하여_플루타르코스의 윤리론집』 12장 508c~d
앞서 수다쟁이는 "말을 많이 할 수 있기 위해 많이 듣고 싶어 한다"고 했다. 상대방의 의견을 귀를 기울이는 '경청'은 그 자체로는 훌륭한, 특히 현대의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미덕이다. 그런데, 말을 많이 하려고 듣는, 곧 정보수집 차원에서 ‘엿듣거나’ ‘캐묻는’ 경청은 지양되어야 하는데, 그 동력이 호기심에서 나온다는 얘기다. 인용에서는 수다쟁이의 호기심보다는 비밀을 간직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폐단을 문제 삼았다. 하지만 과도한 호기심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엿볼 수 있다.

기원전 399년. 소크라테스는 사형된다. 이후 500년이 지난 기원후 100여 년 무렵, 플루타르코스는 수다 관련 글을 썼다. 그런데 이 저자는 소크라테스가 활동하던 그리스(아테네)의 황금시기에 쏟아진 저작들과 작품들도 두루 읽고, 사례를 수집하여 집필했음을 인용과 주석에서 확인할 수 있다. 조금은 조심스럽지만 소크라테스를 플라톤처럼 '섬김' 수준으로 보기보다는 그냥 당대를 함께 살았던 사람들에게 소크라테스는 어떤 사람으로 보였을까, 호기심이 발동한다. 당시 아테네 시민들은 소크라테스를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할 뿐 아니라 곳곳에서 이야기좌판을 펼치는 수다쟁이, 성가신 존재로 여겼던 것은 아닐까? 보통 사람들로서는 살아가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논리를 펼치는 것이며, 이것저것 관심사가 아닌 것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 대화를 엿보았다면 그랬으리라. 소크라테스 자신이 '캐묻지 않은 삶을 살 가치가 없다'(<변론>)고 재판과정에서 당당히 밝혔다. 그간의 삶이 그랬고 앞으로도 영원히, 죽어 저세상에 가서도 이런 철학의 방법론을 고수할 생각이라고. 소크라테스의 수다는 제자 플라톤에 의해 정리되고 보완됨으로써, 서양철학의 아침 해, 둥근 해로 떠올랐음에도 말이다. 플루타르코스는 같은 책에서 '수다'라는 고질적인 병에서 벗어나는 처방을 한다. 여기에 거론되는 소크라테스를 보면, 소크라테스를 그렇고 그런 수다쟁이쯤으로 폄하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어쨌든 호기심은 철학의 출발점이기도 하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50%의 확률로 잘못 그리고 과도하게 작동하면 수다쟁이의 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하는 등,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갖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허기나 갈증을 느끼지 않는데도 먹거나 마시도록 유혹하는 먹을거리와 마실 거리를 피하라고 권한 바 있다. 마찬가지로 수다쟁이는 가장 마음에 들거나 평소 지나치게 심취하는 화제는 조심해야 하며, 그런 화제에서는 밀려오는 말의 물결에 완강하게 저항해야 한다." -『수다에 관하여_플루타르코스의 윤리론집』 22장 513c~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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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에 제작된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 Roméo et Juliette>(독일, 감독 위르겐 플림)은 2018년 5월에 개봉되었다.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은 현재 무대에 올라 공연중(2019.03.02~2019.06.30, 서울 종로구, 명작극장)이다. 연극으로 영화로 책으로,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과 함께 잘 알려진 작품 『로미오와 줄리엣』에 대한 사랑은 식을 줄 모른다. 그런데 이 이야기의 원형은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 수록된 「퓌라무스와 티스베」다.
[자세한 이야기는 필자의 리뷰: '변신이야기'와 '이솝우화'에서 만나는 뽕나무와 오디, 참고].

필요시 클릭, https://blog.aladin.co.kr/791561146/8257185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의 원형은「퓌라무스와 티스베」
19세기 근대 역사학자 랑케는 로마 문화를 호수로 비유하면서 고대의 모든 역사가 로마라는 호수로 흘러들어갔고, 근대의 모든 역사가 로마의 역사에서 다시 흘러나왔다고 말했다.(위의 책 옮긴이 서문) '흘러들어갔고' 앞에는 '그리스문화'가 자리할 것이다. 결국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의 원형은 그리스 신화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사랑의 완성은 결혼'이라는 믿음에는 숱한 균열이 생겼지만, 그래도 남녀 혹은 여남의 사랑이 완전하고 안전한 것이기 위해서는 결혼이란 제도가 필요하다. 다만 결혼이 사랑의 새로운 시작이기를 바랄 뿐. 어쨌든 결혼은 당사자들만의 결합이 아니라 집안과 집안의 관계 맺음이다. '때문에' 서로 눈이 맞은 연인들이 숱한 장애물을 넘고 넘어 결혼에 이르고, 그 사이에 안타까운 사연들이 많다.

 

랑케, "고대의 모든 역사는 로마라는 호수로 흘러들어갔고,

근대의 모든 역사가 로마의 역사에서 다시 흘러나왔다."

이것은 실화다! 한국의 섬이란 섬을 두루 여행하며 글을 쓰는 강제윤 시인은 섬을 탐사하는 동안 수집한 신화와 전설들을 들려주는데, 다듬으면 보석이 될 원석의 발견과 유포라고 할까? '섬'이라는 고립성 '덕분에' 그러한 이야기가 탄생하고, 대대손손 이어져 내려오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 뜻밖에도 『당신에게, 섬』(꿈의지도, 2015)에는 신화와도 같은 현대의 실화가 등장한다. 제주 서귀포 가파도라는 섬 이야기(「가파도의 로미오와 줄리엣」)에 등장하는 김동욱 전 이장님의 사랑 이야기다.
그에게는 두 살 아래 여동생이 있다. 여동생이 고등학교를 서울로 갔다. 방학 때마다 고향에 와서 놀이 삼아 물질을 했는데, 어느 날 물속으로 들어간 뒤 나오지 않았다. 여동생의 해녀 친구는 해녀대장이던 자기 어머니에게 구조를 요청한다. 그러나 다들 외면했다. "바다에 빠져 죽은 사람을 건져 주면 죽은 사람에게 남은 숨을 다 줘 버리기" 때문에 "다시는 해녀 노릇을 할 수 없다."는 오래된 믿음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이장님 집안은 여동생의 친구네 집안과 원수가 되었다. 여동생의 죽음에 죄책감을 가진 친구를 위로하고 달래는 동안 이장님과 여동생의 친구는 연인 사이가 된다. 그러나 결혼 허락은 떨어지지 않고, 이장님은 유랑의 길을 떠나 객지에서 살아간다. "귀신이 세 개 들어도 남녀 간의 사랑은 못 말린다는데 내가 졌어." 그렇게 10년 만에 이정님은 결혼 허락을 받는다.(책 172~174면 요약) 강제윤 시인은 '사랑은 힘이 세다'며 실화 소개를 마무리한다.
어쨌든 한국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해피엔딩이다. 그는 가파도를 떠나 몇 달씩 떠돌다 돌아와 살기를 반복했다. 제주도 한 읍의 사무실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기도 하지만 집을 떠나 유랑하는 시간이 늘었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이기에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멀리 벗어나야만 하는 선택, 문득 이 이야기를 읽으며 떠오르는 소설이 있다.

 

이것은 실화! 서귀포 가파도 이장님 부부의 '로미오와 줄리엣'
"형에 대한 내 감정은 날로 사나워졌다. 그녀에 대한 말 못할 사랑이 간절해질수록 형에 대한 미움도 커졌다. 나는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하는 것이 결코 허물이 될 수 없다는 명제에만 편집적으로 집착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은 떳떳하고 자랑스럽고 나아가 바람직한 것이다. 사랑의 대상이 누구든, 나는 사랑의 보편성에 매달렸다. 하나의 관념, 또는 추상화된 사랑을 붙잡고 늘어졌다."

_이승우 장편소설 『식물들의 사생활』(문학동네, 2014, 발표는 2000년) 61면

 

어느날 문득 형의 애인을 사랑하게 된 동생이 겪는 번민인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도의적으로 힘든 사랑, 이 소설의 내레이터인 '나'의 사랑은 처절한 비극의 씨앗이 된다. '나'는 자신의 사랑을 다스릴 수 없어, 가출을 하고 수년 동안 객지를 떠돈다. 나와 형과 형의 연인 사이의 삼각 관계는 이 소설의 사랑 이야기 중 '메인'이다. 하지만 아버지와 어머니, 어머니가 사랑한 '그분'의 사랑도 있다. 그래서 장편소설 제목이 '식물들의 사생활'('들의')이다. '나'는 가출하면서 사진가를 꿈꾸던 형의 촬영장비 일체를 팔아넘기고, 그 안에 든 필름 때문에 형은 강제징집을 당하고, (당국자들의 고의적인 행위로) 지뢰에 두 발목이 잘려 장애인이 된다. '동물'의 세계에서 '식물'의 세계로 진입한 것. '한 가족 안에서 벌어지는 좌절된 사랑의 고통을 식물적 교감으로 승화해가는 과정을 처절하고도 아름답게 풀어낸 작품'. (더 이상 얘기하면 스포일러가 될 듯) 어쨌든 이승우는 『식물들의 사생활』로(프랑스 등에서 번역 출판되면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르 클레지오가 '한국 작가 중에서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이 가장 높은 작가'로 지목할 만큼 찬사를 받았다.

 

'한국 작가 중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 가장 높은 작가'로 주목받아
"매끈한 나무줄기가 날씬한 여자의 나신을 연상시켜" 형은 취한 것처럼 말했다. "정말 황홀한 것은 흰 꽃이지. 5월이니까 조금 있으면 꽃이 필 거야. 땅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는 때죽나무의 흰 꽃들은 은종 같아. 그 아래 서 있으면 딸랑딸랑 종소리가 울리는 것만 같지." 그의 목소리가 깊은 바다에 떨어지는 닻처럼 어두운 숲속으로 유영해들어갔다.  _같은 책, 47면

이승우의 작품들에는 서양의 신화들이 배경에 깔리곤 하는데, 그가 '노벨문학상 수상이 유력한 한국 작가'라는 기대를 모으는 것과 연관이 있다. 서양인들의 시각에서 대체로 수상작이 결정되기에 하는 얘기다. 다시 말하면 이승우의 소설들에 그리스-로마의 신화들이 이야기의 원형으로 차용되고 변주된다는 점이 그들의 '공감을 이끈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는 플라톤의 대화편 『향연』에서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가 펼치는 사랑론이 소개된다(75면). 하지만 소설 전반에 걸쳐 주요한 뿌리가 신화는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천병희, 숲, 개정판 2017.10. 초판 2005. 3.)에 소개된 「월계수가 된 다프네」 이야기다.
'활의 신' 포이부스(아폴론)은 쿠피도(에로스)가 활을 구부리는 것을 보면서 비웃고, 쿠피도는 앙갚음으로 화살 두 개를 쏜다. 하나는 사랑을 쫓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랑을 불지르는 것. 쿠피도는 사랑을 쫓는 화살을 페네오스의 딸인 요정 다프네를, 다른 화살로 아폴로를 쏘아 그의 뼈와 골수를 꿰뚫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시작! 쿠피도의 복수는 잔인하다. 쫓고 쫓기는 사랑의 공방전이 펼쳐지고, 막다른 골목에 이른 다프네는 아버지 신(페네오스의 강물)에게 구원을 요청하고. 그 자리에서 한 그루 나무로 변신한다.

 

『식물들의 사생활』의 밑그림, 『변신이야기』중「월계수가 된 다프네」

그녀의 기도가 채 끝나기도 전에 짓누르는 마비감 같은 것이
사지를 사로잡았다. 부드러운 가슴 위로 엷은 나무껍질이 덮였고,
머리카락은 나뭇잎으로, 그녀의 두 팔은 가지로 자랐다.
방금 전까지도 그토록 빠르던 발이 질긴 뿌리들에 붙잡혔고,
얼굴은 우듬지가 차지했다. 빛나는 아름다움만이 남아 있었다.  _『변신이야기』, 550~552행

             VS

그래도 포이부스는 그녀를 사랑했다.
그는 나무줄기에 오른손을 얹어 그녀의 심장이
새 나무껍질 밑에서 아직도 헐떡이는 것을 느꼈고,
나뭇가지들을 인간의 사지인 양 끌어안고 나무에 입맞추었다.
나무가 되어서도 그녀는 그의 입맞춤에 움츠러들었다.
그는 그녀에게 말했다. "그대는 내 아내가 될 수 없으니,
반드시 내 나무가 되리라. 월계수여, 내 머리털과 내 키타라와
내 화살통에는 언제나 네가 감겨 있으리라"  _위 같은 책, 553~559행


신화에서 소설에서 발견하는 또 하나의 사랑, "사랑은 하는 것"
쿠피도의 복수 때문이기는 하지만, 이 변신 이야기에서 '사랑은 하는 것'임을 추출할 수 있다. 『식물들의 사생활』에서도 나의 형의 연인인 순미를 향한 사랑, 아버지의 '그분'에 대한 사랑을 평생 간직하고 살아가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아폴로의 사랑을 닮았다. "그가 수집한 변신 이야기는 내가 알고 있는 식물의 숫자보다 많다. 그리고 그것들은 모두 좌절된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소설, 146면)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칸느영화제)을 받았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영화를 아직 보지 않았으니 이 정도)임을 입증하였다고 할까. 신화는 동서양이 닮아있다. 그럼에도 세계의 독자들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는 서양의 신화나 그들의 정신세계의 원형이 되는 이야기들을 꼼꼼히 읽고 변용하여 사용할 때,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희소식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종려나무 꽃이랍니다: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칸느영화제)을 받았다. 트로피의 상징은 종려나무 잎이다. 다른 영화제의 대상인 황금사자상의 경우처럼  '황금'은 '최고'를 뜻하겠지만 사자는 황금색과 연관이 있다. 종려나무는 지중해 일원에 많기도 하고, 최근에는 우리나라 남쪽 지방에서도 이국적인 느낌을 주겠다면서 가로수로 종려나무를 심기도 한다.

최근에 종려나무 꽃을 보고 아 황금색이구나, 하고 핸드폰으로 촬영한 것인데, 마침 봉준호 감독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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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레스테스가 어머니의 정부 아이기스토스를 죽이고 어머니를 죽이러 가자, 클뤼타이메스트라는 젖가슴을 내보이며 살려주기를 애원한다. 아이스퀼로스의 비극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의 결정적인 장면이다. 이 작품은 1부  「아가멤논」, 3부 「자비로운 여신들」과 함께 『오레스테이아』로 불리는 내용 3부작 중 2부다. 아이스퀼로스는 『오레스테이아』로 기원전 458년 비극경연에서 일등상을 받았다. 아버지(아가멤논)의 죽인 이를 죽이는 복수이지만, 친어머니를 죽여야 하는 오레스테스의 고뇌가 느껴진다.

(오레스테스와 퓔라데스, 궁전에서 달려온다. 오레스테스의 칼에서 핏방울이 떨어진다)

 

오레스테스: 당신도 찾고 있었소. 그자는 충분한 보답을 받았으니까.
클뤼타이메스트라: 슬프도다. 가장 사랑하는 강력한 아이기스토스여, 당신일 죽다니!
오레스테스: 그자를 사랑한다고? 그렇다면 그자와 같은 무덤에 누우시오./ 그러면 당신은 결코 그자를 배신하지 못할 테니까.
클뤼타이메스트라: 멈춰라, 내 아들아. 얘야 너는 이 젖가슴이/ 두렵지도 않느냐? 잠결에도 이 어미의 젖가슴에 매달려/ 그 부드러운 잇몸으로 달콤한 젖을 빨곤 했는데.
오레스테스: 어떻게 할까, 퓔라데스? 어머니를 죽이기가 두렵구나.

-『아이스퀼로스 비극 전집』 중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892~899행

머뭇거리나 오레스테스에게 용서는 없다! 그녀의 정부 옆에서 죽이려고 궁전으로 데려간다.

 

#01. 클뤼타이메스트라 VS 오레스테스, '살려 달라' 젖가슴을 내보이며 아들에게 애원하는 어머니

이번에는 서사시 <일리아스> 22권. 절친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으로 다시 전투에 나선 아킬레우스와 헥토르의 대결이 펼쳐진다. 헥토르는 일리오스와 스카이아이 문 앞에 그대로 버티고 서 있다. 스카이아이에는 아버지 프리아모스와 어머니 헤카베가 제발 성안으로 들어오고, 아킬레우스와 맞서지 말라고 눈물로 호소한다. 프리아모스의  애처로운 호소에 이어 어머니가 나선다.

[이번에는 또 그의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울었고
옷깃을 풀어헤쳐 다른 손으로 젖가슴을 드러내보였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그에게 물 흐르듯 거침없이 말했다.
“헥토르야, 내 아들아! 이 젖가슴을 두려워하고 나를 불쌍히
여겨라. 내 일찍이 네게 근심을 잊게 하는 젖을 물린 적이 있다면.
내 아들아! 그 일을 생각하고 성벽 안에 들어와서
적군의 전사를 물리치고 선두에서 그와 맞서지 마라.
무정한 녀석! 그가 너를 죽이면 나는 내가 낳은 자식인 너를
침대에 뉘고 슬퍼하지 못할 것이며, 많은 선물을 주고 얻은
네 아내도 마찬가지다. 너는 우리에게서 멀리 떨어진
아카이오이족의 함선들 옆에서 날랜 개들의 밥이 될 테니까.”]

-『일리아스』 22권 79~89행. 그러나 헥토르는 죽음의 길을 간다. '잔혹한 운명이 그를 그곳에 묶어놓았던 것'이란다.
 
#02. 헤카베 VS 헥토르, '살아 달라' 젖가슴 드러내며 아들에게 호소하는 어머니 

이번에는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안드로마케」(Andromache)(『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1』 천병희 옮김, 숲, 2009)다.

"그리고 그대는 트로이아를 함락한 뒤-따질 것은
따져야겠으니 하는 말인데-그대의 수중에 들어온
아내를 죽이기는커녕 그녀의 젖가슴을 보자 칼을 던져버리고
애무를 받아들였고, 그대를 배신한 암캐에게
아부를 했지, 퀴프리스에게 져서, 그대 가장 용렬한 자여!"
-「안드로마케」 627~631행 페넬우스가 메넬라오스에게. (헥토르의 아내 안드로마케는 전쟁 포로로 끌려와 아킬레우스의 아들 네옵톨레모스의 첩살이를 하며 몰롯소스라는 아들을 낳았다. 메넬라오스가, 헬레네와 낳은 딸 헤르미오네가 정실부인인데, 후사가 없자 안드로마케 모자를 탓하며 죽이려 들자 아킬레우스의 아버지 펠레우스가 나타나 이를 제지하며, 헬레네와 메넬라오스의 재결합을 질타하는 장면이다.)

 

헬레네는 스파르테의 왕비(공주)다. 메넬라오스가 데릴사위로 왕이 된 것이므로 혈통으로 보아 헬레네를 '여왕'으로 불러도 될 것이다. 스파르테(펠로폰네소스동맹)와 아테나이인들(델로스 동맹)이 전면전을 벌이는 펠로폰네소스 전쟁 초기(기원전 430~425년 사이)에 공연된 것으로 알려진, 「안드로마케」에서,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는 '가장 나쁜 여자', '개 같은 배신녀'로 그려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스파르타의 여성 전체가 욕을 먹고 있다. 최혜영은 『그리스비극 깊이 읽기』 159~160면) 비극은 아테네에서 집필되고 아테네의 무대에서 상연되었는데, 헬레네를 공격하는 것은 곧 스파르타를 견제하는 방법임을 주장한다. 헬레네의 트로이아행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예나 지금이나 의견이 분분하다. 그녀가 트로이 왕자 파리스를 기꺼이 따라갔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했다(납치설), 또 하나는 헬레네의 환영(허상)만 파리스를 따라 트로이로 갔고, 실제의 헬레네는 이집트에 머물다가 남편을 만나 집으로 무사히 돌아왔다는 설 등이 있다.

 

#03. 헬레네 VS 메넬라오스, 살라고, '다시' 살려고 가슴 드러내며 성적 매력 발산하는 헬레네
아름답고 성적 매력이 넘친다. 하지만 부도덕하다. 헬레네의 이런 모습은 그리스인들의 교과서였던 『일리아스』 속 이미지다. 세 번째는 텍스트에 도기 그림까지 추가한다. 기원전 5세기경 아티카에서 제작된 도기인데 대체로 호메로스적 관점에서 헬레네를 그리고 있다고 보고 있다. 메넬라오스가 칼을 들고 헬레네를 처단하기 위해 다가가다(이때 헬레네는 가슴을 드러내고 성적 매력에 호소하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기도 하다), 결국 칼을 떨어뜨린 채 그녀를 다시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적색무늬 토기, 루브르 박물관 소장. 왼쪽에서는 아프로디테 여신이 헬레네와 메넬라오스 사이에는 에로스가 날아다니며 이들의 재결합을 부추기고 있다. 헬레네의 입장에서는 ‘살려고’ 하는 일이고, 이를 계기로 메넬라오스와 ‘다시 살게’ 된다. [사진 출처]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Helen_Menelaus_Louvre_G424.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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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족(三族)을 멸(滅)한다는 말이 있다. ‘삼족의 벌’이라는 형벌인데, 반역죄를 지은 사건의 주모자에게 내리는 형벌로 사극(드라마)이나 영화에서 자주 접하는 용어다. 그런데, 삼족은 본래 아버지·아들·손자를 말하거나(三代), 이처럼 아버지의 형제자매, 자기의 형제자매, 아들의 형제자매를 이르는 동성삼족(同姓三族)을 뜻했으나, 고려 후기부터는 대체로 이성삼족(異姓三族)까지 뜻하고 있다. 외가 처가까지도..

 

삼족(三族)을 멸(滅)한다, 그리스 비극에서 찾은 비극
이성삼족이란 종족(宗族)·본족(本族)·본종(本宗) 등으로 불리는 부계의 친족과 모당(母黨)·처당(妻黨)이라는 모계·처계 친족을 포괄한다(이 범위를 일러 일족이당(一族二黨)이라고도 한다.). 본가는 말할 것도 없고, 죄인의 어머니(외가) 집안과 아내(처가)의 집안까지 씨를 말려버린다는 무지막지한 형벌이 아닐 수 없다. 공동운명체에 속하는 어느 한 사람의 잘못은 그 화가 삼족 전체에까지 미치는 일이 많았다. 이를 삼족의 벌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연좌제(連坐制)가 적용된 사례가 삼국시대에도 보인다. 그러나 벌을 받는 범위는 집권자의 뜻에 따라 넓혀지기도 하고 좁혀지기도 하는 경우를 볼 수도 있다. [위키백과]를 참조했다.

 

이런 연좌제(連坐制)가 적용된 사례 삼국시대에도
그렇다면 이는 우리나라만의 얘기일까? 양상은 조금 다른데, 그리스 비극을 공간 배경이 되는 그리스의 폴리스 간의 갈등관계에서 살피면 무시무시한 저주가 거기 깃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필자가 최근에 주목하는 책, 『그리스 비극 깊이 읽기』는 아테나이가 그들의 자랑인 비극 경연을 통해 어떻게 주변의 경쟁국들을 견제하고, 그리 인식하도록 시민들을 교육했는지 그들의 역사에 대한 이해를 조금만 곁들여도 곧이어 파악할 수 있다. 특히 아테나이의 인접 국가인 테바이의 신화와 역사를 소재로 차용한 그리스 비극 3대 작가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나, 비극 작품을 통해 테바이의 역사와 전통을 폄하하는데 기여했다. 비극 경연은 당대 최고의 공연예술로 시민교육의 주요한 도구였는데, 그 내용을 파악하면 일종의 아테나이에 대한 애국심을 고취하는, ‘의식화’였다고 볼 수 있는 것.

 

그리스 비극경연, 아테나이 애국심을 고취 ‘의식화’ 마당
 『그리스 비극 깊이 읽기』를 마무리하며, 최혜영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한 대목을 인용한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전야에 코린토스인들이 아테나와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스파르타를 설득하는 연설이다. "아테네인은 조국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몸도 완전히 남의 것인 양 희생하고, 또 조국을 위해서는 자신의 생각까지도 바친다"고 말하는데, 여기서 '자신의 생각까지도 바친다'는 지적은 매우 상징적이다. 당시 아테네인들로 하여금 공통의 생각을 갖게 한 기제들이 있다면, 대표적인 것 하나가 바로 비극 공연이 아니었을까, 책의 저자는 이렇게 진단한다.

 

아테네인들, “조국을 위해서는 자신의 생각까지도 바친다”

테바이를 배경으로 하는 비극작품으로 가장 성공을 거둔 이는 '비극의 완성자' 소포클레스다.  페리클레스 시대를 대표하는 이 시인은 서른이 안 된 나이로 기원전 468년에 비극경연대회에서 아이스퀼로스를 누르고 우승한 뒤로 대 디오뉘소스 제의 경연에서 모두 18번이나 우승한다. 그가 쓴 비극 123편 중 전해오는 것은 7편, 그 중 최고의 비극으로 평가되는 「오이디푸스 왕」이 있으며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이를 격찬하여 비극의 전형(典型)이라고 하였다.
「오이디푸스 왕」은 기원전 436에서 433년 사이에 공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어지는 이야기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는 기원전 406년경 소포클레스가 죽기 직전쯤 쓴 것으로 실제 공연은 죽은 다음인 401년에 이루어졌다. 그런데 소포클레스는 두 작품보다 오이디푸스 왕가를 다룬 작품을 먼저 썼는데, 「안테고네」(기원전 442년)다. 시건 진행 순으로 정리하면 「안테고네」는 오이디푸스 왕이 죽은 이후에 벌어진 일이지만, 테바이 왕가를 배경으로 하는 소포클레스의 세 작품 중 가장 먼저 쓴 것.

 

테바이의 불행은 아테네의 행복? 정점 찍은 「오이디푸스 왕」

소포클레스가 쓴 테바이 왕가를 다룬 비극들 말고도 당대의 많은 비극작가들이 오이디푸스 왕 관련 이야기를 다루었다. 오이디푸스를 주인공으로 삼은 아이스퀼로스의 『오이디포디아』는 「라이오스」, 「오이디푸스」, 「테바이를 공격하는 일곱 사람」의 3부작에 <스핑크스>를 포함한 4부작으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이 가운데 3부에 속하는 「테바이를 공격하는 일곱 사람」(기원전 430~428년 사이)만 온전하게 전한다. 「테바이를 공격하는 일곱 사람」은 오이디푸스 왕이 죽고 난 다음, 두 아들이 왕권을 둘러싸고 싸우다가 둘 다 죽는 사건을 다루는 작품이다.
에우리피데스도 오이디푸스 왕가의 비극을 다룬 극을 썼다. 「크리시포스」, 「오이디푸스」, 「페니키아 여인들」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페니키아 여인들」(기원전 412~408년 사이?)만이 온전하게 남아 있다. ‘크리시포스’는 라이오스 왕이 동성애적 사랑으로 납치한 소년의 이름이고 라이오스는 오이디푸스의 친부인 전(前) 왕이다. 「크리시포스」에서 에우리피데스는 오이디푸스 가문이 저주받게 된 근본 이유를 다루었으리라. 망명자 신세였던 라이오스는 자신을 받아준 은인 펠롭스의 아들이자 자기 제자였던 크리시포스를 성추행하고 납치하는 죄를 저지름으로써 신들의 저주를 받게 되었다는 것. 이 작품은 「오이디푸스 왕」의 일종의 '프리퀼(Prequel) 스토리'라 할 수 있다. 프리퀄(Prequel)은 그 이전의 일들을 다룬 속편.

 

현존 아이스퀼로스, 에우리피데스에서도 ‘테바이 공격’ 흔적 역력
「페니키아 여인들」은 이오카스테와 오이디푸스 사이에 태어난 두 아들 폴리네이케스와 에테오클레스의 비극적 죽음을 다룬 작품이다. 그런데 앞서 소개한 아이스퀼로스의 「테바이를 공격하는 일곱 사람」과 소재가 비슷한데 난데없이 페니키아 여인들이 등장하는 것일까? 테바이를 건국한 시조인 카드모스가 알파벳을 창조한 페니키아 출신, 곧 외지인임을 강조하기 위해서란다. 당시 디오니소스 극장에서 공연을 지켜보던 사람들-아테네인들은 물론이고 각 나라에서 온 대사들이나 방문자, 거류민들 등-에게 테바이 왕족은 페니키아 출신의 이민족이 세운 축복받지 못한 국가가라는 점을 분명하게 상기시켜 주었을 것이라, 라고 최혜영은 쓰고 있다.

 

프레임 전쟁: 테바이 건국 카드모스가 페니키아 출신이라 「페니키아 여인들」

현존하는 작품들로만 치면, 그나마 소포클레스는 오이디푸스 왕을 중심으로 위아래 3대에 이르는 비극에 대해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에우리피데스의 「박코스의 여신도들」 거슬러 올라가 테바이의 주요 수호신들 중 하나인 디오니소스 신을 무대에 올린다. 테바이는 디오니소스 신의 탄생지로, 실제로 디오니소스 신전이 테바이인들 삶에서 비중이 컸음을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는 것, 디오니소스 신은 테바이 공주를 어머니로 태어났지만, 테바이를 싫어하고, 곧잘 테바이를 적대시하는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대표 비극이 에우리피데스의 「박코스의 여신도들」 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오이디푸스 왕의 두 아들이 죽은 이후, 그 다음 세대의 이야기들도 비극으로 만들어졌다. 전사한 에테오클레스의 아들 라오다마스가 성장하자 크레온은 그에게 왕위를 물러준다. 하지만 라오다마스 치세에 폴리네이케스의 아들 테르산드로스가 이끄는 아르고스 일곱 장수들의 아들들, 즉 에피고노이(후손들이라는 뜻)가 아버지들의 복수를 위해 다시 테바이를 공격한다. 이번에는 아르고스의 페리고노이가 승리하고 테바이 왕 라오다마스가 전사함으로써, 마침내 폴리네이케스의 아들이 테바이의 왕이 된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다루는 비극이 소포클레스의 「에피고노이」 혹은 「에리필레」라는 것(현존 비극은 아니다).

 

오이디푸스 왕의 손자들 간의 골육상쟁까지도 다뤄, 삼족의..

오이디푸스나 그의 아들들, 카드모스나 펜테우스 같은 테바이 왕은 아니었지만, 테바이 왕가와 결혼을 통해 연계된 이들을 소재로 한 비극도 있다. 보이오티아 지역의 왕 아타마스를 소재로 삼은 비극이 대표적이다. 아타카스는 보이오티아의 오르코메노스 왕으로서, 카드모스의 딸 이노와 결혼했던 인물이다. 디오니소스 신의 이모이기도 한 이노는 아타마스의 두 번째 부인이었는데, 이들의 결혼으로 인한 비극사는 아테네인들의 관심을 끌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소포클레스는 아타마스와 그 아들 프릭소스 등 아타마스 집안의 가정사를 소재로 한 세 편을 비극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아이스퀼로스의 아타마스 비극은 정말 단편적으로 전하고, 에우리피데스의 「이노」 역시 현전하지 않는데, 비참한 결말을 가진 비극이었을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테바이에 대한 부정적인 느낌을 유포하는 작품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글머리에서 정리한 ‘삼족의 벌’을 떠올리게 하는 아테나이와 테바이 사이의 골 깊은 갈등을 현존 비극을 통해 확인하거나 유추할 수 있다. 아테네 비극에서 테바이 왕가의 이야기가 왜 이처럼 집요하게 등장하는 것일까? 최혜영은 그리스 비극이 공연된 기원전 5세기는 물론이고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테바이의 아테네의 역사적 관계를 살피며 나름의 답을 찾고 있다. 헤로토토스의 『역사』(페르시아 전쟁 중 테바이는 ‘반그리스적’인 행동을 일삼았다)를 다시 읽어야겠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도 그리스 비극을 새로운 관점에서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다시 펼쳐야 한다. 바쁘다. 현존 작품들을 다시 읽는 것은 그 이전에 해야 할 일이니……. 비극경연을 통한 아테나인들의 그들의 주변국들에게 대한 견제는 집요하고 철저하다. 미중 혹은 중미 무역전쟁 등등 너무나도 현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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